# 30
30화 글쎄요
파스타!
밀가루와 물을 주재료로 만든 반죽을 소금물에 삶아 만드는 요리.
여기까지는 인터넷 뒤져보면 나온다.
이걸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밀가루 요리’였다. 국수, 칼국수, 수제비와 비슷한 개념의 음식인 것이다.
따지면 라면도 넓은 범주에서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렴한 국수나 수제비에 비해 파스타는 비싸도 너무 비쌌다.
대체 이유가 뭘까?
강형우는 그에 대해서 몇 번이나 고민했었다.
사실 ‘내 밥상 니 밥상’에서 일할 때는 단체 급식 요리를 무지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번은 특식 메뉴로 스파게티가 정해졌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기름에 다진 소고기와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볶고, 업소용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자작하게 끓이면 소스 완성.
그걸 삶은 면과 버무리면 비로소 스파게티가 만들어진다.
가격은 일 인분에 1,200원 선.
대량 조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특히 싸구려 페이스트에 대용량 케찹과 물, 설탕, 조미료를 섞으면 더 싸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의 파스타 한 접시가 무려 2만 원이 넘는다니.
물론 추가로 치킨 올리브 샐러드와 폭신한 빵이 나왔다지만 강형우의 기준에선 폭리에 가까웠던 것이다.
“오빠도 빨리 무라!”
강영지의 말에 이성이 돌아왔다.
그래, 오늘은 휴일이다.
그러니 릴렉스, 릴렉스.
강형우는 제일 먼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집었다.
덜어 놓으니 확실히 마늘 향이 훅 올라왔다.
미끄덩대는 올리브 오일 느낌도 나쁘지 않았고, 씹을 때 톡 하고 걸리는 페페론치노도 그럭저럭 어울린다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게 이만 원이라는 거!
하아, 차라리 라면 한 박스를 사지.
“맛 괜찮죠?”
공지혜가 불쑥 묻자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마늘 기름에 면 볶은 맛?”
“예에?”
“아, 아니. 나쁘진 않은데… 많이 먹어 보질 못해서, 알잖아 내 입이 저렴한 거.”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강영지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고, 공지혜는 당황했다.
문제는 근처를 지나가던 잘생긴 알바가 잠깐 휘청했다는 거다.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었나?
“너무 조금 먹어서 그런 거지. 험험. 자 다음 거 먹어 볼까?”
강형우는 능청을 떨면서 해물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듬뿍 덜어 왔다.
기름에 베이컨과 마늘, 야채, 해산물을 볶고 생크림을 붓는다. 면 삶은 물을 더해서 농도를 맞추고, 거기에 면을 넣어서 자작하게 볶아 먹으면 된다.
거기에 치즈, 치즈, 치즈였다.
이게 강형우가 아는 까르보나라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늘기름 볶음면보다는 훨씬 맛이 다채롭다는 거다.
마늘향도 있었고, 짭조롬한 베이컨과 크림소스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거기에 치즈의 끈적임까지 더해지니 면발마다 제대로 맛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아! 공지혜가 말했던 닭육수!
알고 먹으니 미묘하게 그 맛이 느껴졌다. 일종의 감칠맛이 전체를 조화롭게 감싸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러 번 만들어 봤기에 안다. 이건 조금 맛있다 정도지 확 입맛을 잡아 끈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게다가 세 번 정도 먹자 느끼함이 쑤욱 올라왔다.
생각나는 건 김치였다.
“얼굴 티 난다.”
강영지가 툭 내뱉자 강형우는 억지로 샐러드를 뒤적거렸다.
나름 상큼함으로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였다.
우적우적 샐러드를 먹고 나니 조금은 괜찮은 것 같았다.
“뭐, 먹을 만하네. 나쁘지 않아!”
“그렇나? 난 진짜 맛있는데. 사실 이렇게 딱 맞게 나오는 집은 얼마 없거든. 느끼하고 짜고, 기름지고 하는데 이 집은 돈값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학교 앞 스파게티가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확실히 남자와 여자 입맛이 다른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이만 원이 넘어가는 파스타는 처음이었으니 뭘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 많이 먹어.”
강형우가 접시를 앞쪽으로 밀어주자 강영지는 바로 포크를 들었다.
돌돌돌 크게 말아서 한입에 넣는데, 정말 복스럽게 잘 먹었다.
그런데 왜 자꾸 돈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오물거리는 한입에 라면 한 개씩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너무 궁색하게 살아서 그런가?
강형우는 마지막으로 비프 토마토 파스타를 먹었다.
이게 그나마 제일 괜찮았다.
소고기 안심인지 등심인지가 잘 구워져 올라가 있었는데, 나름 토마토 맛과 잘 어울렸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맛과 가격 생각 때문에 몰랐는데 분위기는 좋았다.
훈훈한 외모의 모델급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했고, 소소한 질문 하나에도 웃으면서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역시 핑크핑크여서 딱 여자들이 좋아할 가게였던 것이다.
갑자기 어느 요리 잡지에서 봤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식당의 가격은 음식만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특별한 날, 특별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값어치는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그런가 할 수 있었다.
공지혜가 점찍어 둔 남자 직원을 가리키자 강영지의 눈이 휙 돌아갔다.
저 남자는 정우성을 닮았네, 저 남자는 원빈을 닮았네 하면서 호들갑 떨며 속삭이는 모습이 흐뭇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건 다른 여자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하자!
확실히 여기 직원들이 잘생기기는 했다.
심지어 언뜻 보이는 주방 안에 쉐프도 금발의 잘생긴 외국인이었다.
그들을 보니, 솔직히 자신감이 조금은 떨어졌다.
꿇리지 않는 건, 키와 우락부락한 근육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후식으로 조각 케이크와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어지간하면 식당 한 군데서 이렇게 오래 있기가 힘든데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다.
“분위기 괜찮지 않나?”
“어, 나름 신선한 경험? 생각해 보니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봐라. 잘 왔다잖아.”
강영지의 말에 공지혜가 소소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어라? 왜 유재석이 보이지?
팬인데 싸인 좀 해달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정말 유재석 닮은 사람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식사 맛있게 잘 하셨나요?”
“예, 사장님.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공지혜가 아는 척을 하는데,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사장님이 닭육수가 비법이라고 말해 줬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들 잘생긴 직원들만 찾았지 사장을 외면했던 것 같았다. 카운터 근처에서만 머물다가 아는 얼굴이 보여서 용기 내어 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사장님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았다.
게다가 묘한 동질감이 들어서 더욱 그랬다.
“카운터까지는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친절한 사장을 따라 나서서 계산하려 하는데, 거의 동시에 카드가 나왔다.
“나보고 사라며?”
“돈이 어디 있다고? 나 이번에 과외비 받았다.”
“오빠, 저도 용돈 받았어요. 여기 오자고 한 게 저니까 제가 내야죠.”
두 동생들이 그리 말하는데 참으로 기특했다.
그때 사장님이 강형우의 카드를 잡았다.
이날 폭식에 폭음했다.
소화 좀 시키자고 동전 노래방을 들렸고, 공지혜랑 둘이서 농구공을 던지다 망했다.
하지만 오락실 펀치 기계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오양족발집을 들려 품평회를 한 뒤, 치맥에 포차까지 달렸고 결국 강영지를 업고 집에 들어와야 했다.
당연하게도 하루의 마무리는 박혜숙의 잔소리였다.
하지만 정말 간만에 즐거운 하루이기도 했다.
***
♪~ ♪♪
박차고 태어나서…… 짠짜잔, 짠짜잔.
겁날 게 뭐가 있나~
깨지고 박살……
잠결에 휴대폰을 잡는데 보이질 않았다.
더듬더듬 하다가 뭔가 걸려서 손을 쑥 뻗어 잡았는데, 힘이 과했나 보다.
쩍 소리가 나면서 폰에 금이 갔던 것이다.
벌떡 일어난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 노예 해방까지 두 달 남았는데.”
요즘은 옴레기라 불리는 스마트폰이었다.
돈 아까워서 어째어째 쓰고는 있는데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아니, 힘이 쎄진 건가?”
무의식적으로 꽉 잡았던 건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폰이 부서질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쩝! 다행히 화면은 들어오네.”
강형우는 폰을 조심스럽게 충전기에 꽂고 일상처럼 새벽운동에 나섰다.
한참을 호흡에 집중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린 뒤 샌드백 앞에 섰다.
시작은 가볍게, 허리를 틀고, 어깨를 부드럽게, 손목의 회전을 살려서!
팡, 팡, 팡, 퍼어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샌드백 안을 채웠던 안 입는 옷들이었다.
강형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샌드백을 살폈다.
“이게 원래 터지는 거였나?”
단골손님을 통해 싸게 구입한 중고이긴 하지만 그래도 샌드백일 텐데?
자세히 살펴볼까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후우웅 불었다.
당황한 강형우는 서둘러 옷가지부터 주었다.
그걸 일단 방 안에 가져다 놓고 다시 살피는데, 그냥 터졌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다.
“헐, 희한하네.”
잠결에 힘줬다고 폰에 금이 가질 않나, 샌드백이 터지질 않나.
그때 강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울컥한다고 패지 마라. 사람 죽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나온 이유는, 술이 왜 이렇게 세냐고 물어서였다.
새벽마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자 키와 체중을 물었고, 순순히 이야기하자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다.
하긴, 운동선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몸이니 평범한 사람한테는 위협적일 수밖에.
생각해 보니 수련을 시작한지 벌써 넉 달째였다.
별다른 변화는 모르겠지만 몸이 부쩍 좋아진 것 하나만은 사실이었다. 과음해도 숙취를 거의 못 느꼈고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음에도 피로감이 없었던 것이다.
“에구 모르겠다. 그냥 조심해야지 별수 있나?”
강형우는 새벽의 일을 그저 운이 없었다고 가볍게 넘기고 말았다.
***
“파스타. 라면. 파스타. 스파게티.”
며칠간 공부했던 걸 기록한 공책을 꺼내 여러 번 살펴보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자료를 찾았다.
확실히, 지성분식에는 면 요리가 부족했다.
메뉴판에는 달랑 라면 하나가 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라면을 파는 곳이 많았다.
근처 분식집만 해도 치즈, 떡, 만두, 짬뽕 라면이 존재했고, 따로 바지락을 넣어서 해장 라면을 파는 곳도 있었다.
굳이 경쟁할 것도 아니고 어묵국밥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
해서 메뉴를 간소화시켰다. 혼자 주방을 감당해야 하기에 조리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물론 단골들이 부탁하면 다른 걸 해 주기는 한다.
치즈를 넣거나 떡, 만두를 추가해서 500원씩 더 받고는 했던 거다.
하지만 어묵국밥이 끝물이니 제대로 된 추가 메뉴가 필요했다.
“면 요리라면 나쁘지 않아!”
어차피 라면이 있으니 면사리 준비는 쉬웠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응용하느냐였다.
그래서 궁리하고 고민하고 공부했다.
문제는…….
“아! 왜 자꾸 까르보나라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네.”
본능인지 직감인지가 자꾸 방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쪽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분식집에서 까르보나라 파스타라니.
그때 공지혜가 소리쳤다.
“오빠! 라면 두 개요.”
“어! 알았어.”
강형우는 힐끗 시계를 쳐다봤다.
11시 25분, 슬슬 점심장사가 시작될 타이밍이었다.
이제 어묵국밥 손님들이 줄어들면서 다른 메뉴가 많이 나갔고 덕분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강형우는 꼬박 3시까지 주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가게에서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팔겠다고요?”
공지혜 역시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급 파스타집에서 이만 삼천 원이나 했다. 약식으로 줄이고 줄여도 최소 만 원은 넘을 터.
“말이 안 되려나?”
“안 될 건 없죠. 학교 앞에서 육천 원 정도에 파니까요.”
“엉? 그렇게 싸게?”
“예. 그래서 아무도 안 사 먹어요. 맛없다고.”
“헐, 그럼 하나마나네.”
“흐음, 글쎄요?”
공지혜는 뭔가 기대한다는 눈빛이었다.
어쩌면 강형우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이 녀석도 베타테스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