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29화 (29/251)

# 29

29화 하필이면

라이스 버거.

세기말 1999년에 출시된 나름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햄버거의 빵을, 뭉친 밥으로 대신해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악평이 폭발했다.

잡으면 부서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났다.

소스가 조금만 많거나 적으면 맛이 엉망이었고, 그 때문에 밥이 녹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호불호가 극심했다.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못 먹겠다는 이들도 상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메뉴 중에서 가장 조리하기 까다로운 버거라 매장마다 맛 차이까지 존재했다.

심지어 알바들이 가장 싫어하는 메뉴라나 뭐라나.

그 때문인지 판매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걸 증명하듯 나왔다가 단종 되고, 또 나왔다가 단종 되고를 반복했던 것이다.

거기에 틈틈이 변형도 많았는데 강형우가 기억하기로 가장 최악은 짜장버거였다.

처음 먹을 때, 이게 무슨 맛이지 했다가 결국 끝까지 먹지 못했다.

얼마나 맛이 없었느냐?

강형우가 먹은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메뉴판에서 퇴장당했다.

일명 롯X리아에서도 포기한 메뉴.

나중에야 개선에 개선을 거듭해 나름 팬층을 형성한 게 라이스 버거였지만, 초창기에는 정말 암울했던 거다.

정덕수가 만든 버거가 딱 그랬다.

이걸 돈 주고 사 먹는다?

차라리 돈을 버리고 혀를 살려라!

거의 그 정도 평이 나올 정도로 이 밥버거는 끔찍했다.

“형, 이거 설명 좀 해 줄래요?”

“그러니까 일단…….”

고기 패티를 동그랗게 굽기 위해 넣는 틀이 있었다.

일단 밥을 거기에 꾹꾹 넣고 굽는다.

그런 뒤 마요네즈를 바르고 채 썬 양배추, 오이 피클과 고기 패티, 다져서 구운 양파를 올리고 바비큐 소스와 머스터드 소스를 바른다.

다시 위에 구운 밥을 올리면 끝이었다.

확실히 밥버거는 밥버거였다.

요즘 유행하는 것과 다르게 진짜 햄버거에서 빵을 밥으로 대처한 것이다.

때문에 맛이 이상요상했다.

고기 패티에나 어울리는 소스에 간이 더해진 밥. 그러니 이중으로 맛이 더해져서 짜게 느껴졌던 것이다.

대충 감이 왔다.

이 형은 최근의 밥버거를 먹어 본 적이 없는 거다.

알고서 이렇게 만든 거라면 정말 요리센스가 꽝인 건데 여태 음식집을 한 형이 그렇지는 않겠지.

강형우가 인상을 찌푸리자 정덕수는 조마조마했다.

“많이 문제가 있나?”

“그게…….”

먹어본 사람이 모를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그러다 강형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형님네 버거는, 나름 맛이 괜찮았다.

가격은 제일 잘나가는 형님 불고기 버거가 단돈 2,500원. 거기에 콜라, 감자가 추가되면 3,300원이었다.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져도 그럭저럭 팔리고 있었다.

왜냐?

이 동네 유일한 햄버거 집이었으니까.

쉽게 말하면, 좌우로 버스 두 정거장 이내로는 비슷한 음식조차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랬는데 하필 엄마 버거가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동네 입지가 롯X리아나 맥X날드가 들어올 상권이 아니라는 것 정도?

어쨌든 수익이 반 토막 난 상태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시도에서 그쳐서 다행(?)이었다.

돈 주고 이걸 사 먹었다면 애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흐음, 이상한데? 형! 그냥 버거 만들어 봐요.”

“알았어.”

넓은 철판을 달구고 마가린을 바른 빵을 굽는다.

동시에 고기 패티와 양파를 올린 뒤, 집개를 이용해 구워주면 1차는 끝이었다.

나머지는 밥버거와 비슷했다.

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채 썬 양배추에 오이피클, 구운 패티와 양파를 올리고 소스를 짜면 된다.

그런 뒤, 다른 빵으로 덮어 주면 끝.

“이게 완성이에요?”

“어!”

정말이지 심플하다면 심플한 조리 방법이었다.

하긴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당연하겠지.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육즙은 없지만 불고기 맛도 났고 적당히 씹히는 질감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구운 양파가 제법 좋았다. 진한 후추 향이 여기서 났던 것이다.

“맛있는데요?”

“당연하지. 얼마나 힘들게 배운 건데…….”

정덕수는 울컥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전과 달고, 취직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오라는 데는 조직 말고 딱 한 군데, 바로 노가다 현장이었다.

문제는 무릎이 안 좋다는 거였다. 폭행을 당했을 때 다쳤는데, 감옥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장사로 눈을 돌렸고 운 좋게도 업계 선배(?)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형님도 손 씻은 뒤에, 전과자 갱생이라고 청소부 일을 하셨거든. 그러다 일이 안 맞아서 가게를 차렸대.”

맛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코리아나 버거라고 나름 유명한 곳이 있었다.

롯X데리아나 맥X날드처럼 메이저급은 아닌 그냥 동네 버거집을 표방하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동네에서는 나름 잘나간다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빵에 패티, 불고기 소스에 양파, 피클과 수북한 양상추가 끝.

한때 유행했던 1,000원 버거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 감자튀김과 콜라가 800원에 추가되어 세트메뉴를 만든 것이다.

덕분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한테는 인기 폭발이었다.

정덕수는 이걸 조금 더 업그레이드 해서 500원을 더 받고 팔았다.

“진짜 무릎 꿇고 빌어서 겨우 배운 거야.”

정덕수의 표정을 보니 뻥이 분명했다. 어디 가서 절대 무릎 꿇을 사람이 아니니까.

“형, 근데 버거는 맛있는데, 왜 밥버거는 이래요?”

“그게… 이상해. 양념을 덜 한다고 했는데도 계속 그러네?”

정덕수는 먹다 만 밥버거를 아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뭔가를 떠올렸다.

“형은 일단, 최근에 생긴 밥버거집을 돌면서 최대한 많이 먹어 봐요. 저도 나름대로 알아볼 테니까.”

***

“후우, 머리 아프다, 머리 아퍼.”

일단, 지성분식의 봄 메뉴가 먼저였다.

기왕이면 상큼한 음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일단 익숙한 메뉴를 정해야 하고, 다른 음식들과 조화도 되어야 한다.

후보는 일단, 비빔국수와 밀면이었다.

“가성비를 따지면 비빔당면만 한 게 없는데…….”

일단 파는 집이 많이 없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남포동 일대에만 많지, 부산 전체로 봤을 때는 극소수였던 것이다.

문제는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깡통시장 근처로 가면 한 그릇에 1,500원에 팔았다.

전문적으로 파는 집도 2,000원을 넘지 않았고, 그래서 수익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그때였다.

띠링, 입금 200만 원.

띠링, 입금 100만 원.

“이게… 뭐야?”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입금자는 김창주와 정덕수였다.

강형우는 놀라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창주 형… 이거 뭐예요? 예? 수업료요?”

그건 정덕수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목적은 같지만 최소한의 비용 정도는 주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둘 다 협박했다.

돈 도로 돌려주면 인연을 끊는다나 뭐라나.

“하아, 이러면 더 부담되는데?”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괜히 차용증 이야기를 꺼냈나 하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일단 형들하고 이야기한 기간은 두어 달이었다.

아이디어를 찾아서 방법을 가르쳐 주면 자신들이 완성될 때까지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았다.

첫 번째는 종류를 정하는 것이다.

다행히 창주 형은 튀김을 선택했고, 지금 파는 것을 활용할 수 있는 걸 원했다.

정덕수도 밥버거로 정해졌으니 1단계는 통과였다.

그다음은 가격이었다.

일단 비싸면 안 된다. 둘 다 분식의 카테고리 안에 있기에 최대 3,000원을 넘어서면 곤란했던 것이다.

원가율은 최소 35% 정도.

다행이 그 부분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개발이 아닌 보강에 가까웠으니 약간의 금액이면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것이어야 했다. 그 안에서 새로움이 있어야 비로소 손님들한테 어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튀김과 밥버거는 접근성에서는 좋았다.

실제로 화끈 오뎅의 고추튀김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입소문이 어떻게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도 사러 올 정도라는 것이다.

하기야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음식이니 그럴 수밖에.

그것도 길어야 석 달 정도 될 거다.

육즙의 비밀은 좀 더 오래 가겠지만, 오징어는 머지않아 밝혀질 테니까.

그 전에 튀김을 하나씩 업그레이드 해서 단골을 꾸준히 늘리면 된다. 어느 정도 수준에만 올라도 절대 망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창주 형은 신났다.

덕수 형이 말하길 묘한 핑크빛 기류가 흐른다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반했다는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뭐, 확정되기 전까지 설레발은 금물이지만, 솔직히 부럽기는 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서두르자!”

***

정말 간만의 휴식이라고나 할까?

근데 어째 인질이 된 기분이었다.

왼쪽에 강영지, 오른쪽에 공지혜.

둘은 강형우를 사이에 두고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늘의 물주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영지야, 그 집 알바들 진짜 멋있다? 키도 크고 날씬한데 거의 모델이야, 모델!”

“나도 들었다. 근데 진짜 잘생겼어?”

“오히려 블로그 사진빨이 더 안 나온 거지. 전에 주문받는데, 목소리까지 너무 좋더라. 주애는 아주 심장 멎을 뻔했다는데?”

“그 정도라고?”

강영지는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긴, 못난 오빠를 둔 탓에 솔로 인생 21년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연예인에 관심을 가졌고, 남친 후보들을 물색하고 있었다.

일단 곰이나 고릴라 종류는 예선 탈락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강형우 때문이었다.

그런 남자들은 오빠 생각이 나서 연애감정이 들지 않는단다.

“아! 저기야 저기!”

공지혜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세상에나 대기자만 열 명이 넘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전부 여자였다.

“맛집은 맞아?”

“그럼요. 전에 제가 그랬잖아요. 파스타 맛있다고.”

맞다.

간만의 휴일에 여기 경성대까지 끌려 나온 건 그래서였다.

“헐, 간판부터 다르긴 하네.”

이름하여 ‘핸섬 파스타’였다.

그 옆에 곱상하게 생긴 쉐프 사진까지 걸려 있었는데, 솔직히 같은 남자가 봐도 질투 나게 잘 생겼었다.

“그나저나 민망하긴 하네.”

열세 명의 여자들 사이에 남자는 달랑 혼자뿐!

덕분에 시선 집중은 받는데,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마치 동물원의 고릴라가 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무려 30분을 기다리고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강영지와 공지혜가 앞장서고 강형우가 조심스럽게 뒤를 쫓았다.

가게 내부는, 한 마디로 샤방샤방이었다.

하얀 벽에 핑크로 창문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 시원한 자연 경관을 담은 사진들이 보였다.

확실히 나름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티가 팍팍 났다.

그래서 불안했다.

역시나 예상 적중.

“해물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이만 삼천 원! 비프 토마토 파스타가 이만 팔천 원!”

가격이 그냥 분식집 사장 뺨따구를 때렸다.

심지어 콜라 한 잔이 5,000원이라니.

강형우의 손이 떨리거나 말거나 강영지와 공지혜는 메뉴 고르기에 전념했다.

그렇게 나온 게 바로 세트 메뉴였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하나와 해물 까르보나라 파스타, 그리고 소고기가 올라간 토마토 파스타였다.

거기에 음료 세 잔인데, 무려 팔만 오천 원이었다.

그것도 부가세 제외.

“오빠도 이런 거 한 번씩은 먹어 봐야지? 그래야 여친하고 좀 다닐 거 아냐!”

강영지는 아직 차인 걸 모르나 보다.

그때 공지혜가 영지 옆구리를 툭 치며 눈치를 줬다.

“아! 깜빡!”

…아무래도 들었는데 까먹은 모양이었다.

하긴 하루 서너 시간의 강행군을 무려 석 달이나 했으니 잊을 만도 하지.

강형우는 개의치 않았다.

오늘은 모처럼의 휴일이었다.

우선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신메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파스타라니.

분식집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메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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