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28화 반성 많이 했다
치이이익. 촤아아악.
반죽을 입은 커다란 고추가 기름에 튀겨지고 있었다.
색이 노랗게 되고 십여 초가 더 지나자 김창주는 고추튀김을 꺼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튀김은 보는 것만으로 군침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탁탁 쳐서 기름을 털어 낸 고추튀김이 키친타월 위에 놓여 적당히 기름이 빠지고 식을 때쯤에 접시로 옮겨졌다.
김창주는 반신반의하면서 한입 깨물었다.
파사삭 소리가 먼저였고, 그다음은 고소한 기름 맛이었다.
여기까지는 여타의 튀김과 큰 차이가 없었다.
두부에 당면에 야채가 어우러진 맛이 났는데, 놀랍게도 육즙이 나오고 있었다.
결정적인 건 식감을 자극하는 탱글탱글한 무엇이었다.
그렇게 한 개를 먹고 나니, 또 땡겼다.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 혀를 유혹했던 것이다.
“형만 먹어요?”
“어? 아, 잠시만.”
김창주는 고추튀김을 강형우에게 내밀었다.
파사사삭.
천천히 맛을 보던 강형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전체적으로 비슷한데, 아직 비율이 안 맞네요.”
“그래? 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아뇨! 맛에 타협은 없죠.”
강형우는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남은 고추튀김을 단숨에 먹어 버렸다.
그런 뒤, 또다시 연구에 들어갔다.
애초에 강형우의 레시피는 대략적이었지 완벽하진 않았다.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기억속의 맛에 근거해 짰던 것이니만큼 수십 번의 테스트는 필수였던 거였다.
***
전설의 고추튀김.
이름 그대로 강형우의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음식이었다.
원래 부산 진경찰서 철길 옆 주택가 담벼락에 분식집이 있었는데, 근처를 정비하면서 가게가 사라졌다.
메뉴는 걸쭉한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몇 개의 튀김이 전부였다.
하지만 직접 손질해서 만드는 튀김이 예술이었다.
다른 가게보다 두툼한 오징어 튀김과 파사삭 하는 야채튀김. 그리고 손바닥만큼 큰 고구마튀김에 오묘한 맛을 내는 전설의 고추튀김까지.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다.
문제는 쉽게 먹기 어렵다는 거였다.
영업시간은 2시부터 7시까지. 다 팔면 장사 땡이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그 집을 갔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이후에도 근처 들릴 때면 가서 먹고는 했는데, 군대 갔다 오니 없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집의 음식맛은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튀김집을 해 볼까 고민할 때 대충이나마 조리법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추튀김이었다.
다행인 건, 몇 년 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수제 튀김집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 때문에 부산에도 한두 개씩 생기는 추세였고, 조금 고급스러운 튀김에 대한 부담도 덜해진 것이다.
동네 분식집 튀김 가격은, 현재 세 개 1,000원 수준.
오뎅도 떡볶이도 그러한 상황이었다.
강형우는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일부러 고급 오뎅을 500원에 팔았다.
때문에 수량이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꾸준히 찾는 손님들이 생겼고 그걸 어묵국밥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김창주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 스타트는 바로 고추튀김이었다.
때문에 충분히 공을 들여서 남들이 못 따라하게 해야 했다.
압도적인 맛의 풍미가 필요한 거다!
“역시 이번에도 비계가 적은 것 같은데요?”
“뭐? 그럼 너무 느끼할 텐데?”
김창주의 걱정은 평범한 사람한테는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강형우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형, 솔직히 제가 추가하라는 대로 안 했죠?”
“아니, 그게 아니라…… 섞다 보니까 조금 한쪽으로 뭉친 게 아닐까?”
변명하는 게 티가 나자 강형우는 한숨이 내쉬었다.
결정적인 맛의 완성.
그 한 포인트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게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고추튀김도 훌륭했다.
이 정도면 젓가락으로 분해해서 뒤적거려야 맛의 포인트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게 김창주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형! 제 말 믿고 한 번만!”
“하아, 알았다. 해보자.”
결국 두 사람은, 고추 한 자루 정도를 먹고 나서야 궁극의 맛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와! 튀김 하나가 오백 원?”
제법 크기는 했지만, 선뜻 손이 가는 금액은 아니었다.
같은 돈으로 튀김 두 개와 세 개는 엄연히 큰 차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학생은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능적인 끌림이랄까?
튀김 가판대 가장 중앙에 탐스럽게 쌓여 있었고, 눈에 띄게 베스트 메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 시선이 안 가는 게 오히려 이상할 터.
거기에 김창주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다.
“맛없으면 돈 안 받을게. 아니면 오뎅 하나 서비스 어때?”
“진짜죠?”
“당연하지.”
학생은 곧바로 고추튀김을 선택했다.
결과는, 맛과 식감의 폭발이었다.
일반적인 고추튀김은, 그 속을 뭐로 채우느냐?
두부, 당면, 고추, 야채 같은 게 들어간다.
부산에선 사투리로 정구지, 바로 부추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걸 넣는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만두소를 넣기도 했다. 고추가 피가 되는 튀김 만두가 되는 것이다.
전설의 튀김집도 그렇게 만들었다.
돼지 살코기+비계.
비율은 2대1에서 3대1 정도였다.
그걸 육절기에 넣어 간 다음, 두부를 으깨어 넣고 부추와 야채를 넣어서 비비면 된다.
여기에 간을 하고 큰 고추에 넣어서 튀긴 게 바로 이거였다.
물론 그걸로는 전설이라는 이름에 맞지가 않았다. 추가되는 재료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오징어 자투리였다.
튀김집 할머니는 부전시장에서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었다.
네모반듯하게 튀김용으로 오징어를 자르고 나면 남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걸 어디 써 볼까 고민하다가 고추튀김 속에 한번 넣어 보기로 했단다. 자투리 오징어를 살짝 물에 데쳐서 다진 뒤, 기존 속에 섞어 버린 거다.
그랬더니 맛과 식감이 배가 되었단다.
분명 먹는 건 고추튀김인데, 만두 맛이 난다.
그러면 만두인가 하는데,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오징어가 또 다른 맛을 준다. 거기에 알싸한 고추향이 더해지니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 탄생한 것이다.
역시 좁은 동네라 입소문은 빨랐다.
무려 500원이란 가격임에도 불티나게 팔렸고, 그 덕에 매상까지 껑충 뛴 것이다.
이후 김창주는 강형우에게 부탁을 했다.
메뉴 업그레이드를 좀 도와달라고!
***
“그러니까 네 생각은 그렇단 말이지?”
정덕수의 말에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성기가 노리는 건, 지성분식만이 아니었다. 입점 시킨 가게들을 보면 주요 목표가 명확한 것이다.
이유는, 요즘에 와서 대충 짐작이 되었다.
문제는 지성분식이 왜 포함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제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시비를 걸어왔으니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비록 자금이나 덩치에서 비교가 되진 않지만, 발악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우선은 이 형님네 가게들이 망하는 걸 막을 생각이었다.
지성분식의 경우처럼 메뉴를 보강하고 손님들을 더 끌어들인다면, 조성기가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과다한 운영비용이 발생하는 프랜차이즈의 특성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네 사람은 두 패로 갈리었다.
김창주와 정덕수는 찬성을 표시했고, 이혁기와 김현우는 반대했다.
“형우야. 나도 너 음식솜씨는 인정한다. 하지만 치킨은 그렇게 쉽게 손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주방장은 우리 아버지거든. 내 수준에서 음식에 손댈 수 있는 건 없어. 그랬다간 쫓겨날지도 몰라.”
김현우와 이혁기의 반대도 나름 이유는 있었다.
그때 김창주가 나섰다.
“나는 한번 해 보려고 해! 이번 고추튀김도 그렇고, 사실… 조금 안일했다 싶다.”
“뭐?”
“덕분에 이번에 반성 많이 했다.”
김창주는 말을 이어 나갔다.
30년 전통!
그래서 음식들을 크게 손보지 않았다. 오뎅 국물을 제외하고 그대로라는 것이다.
“솔직히 조가네 음식 먹어 봤는데 나름 노력한 게 보이더라고. 순대도 야채 많고, 찹쌀하고 선지 비율이 미묘하게 다른데, 난 그냥 업체에서 받아 쓰기만 했거든.”
괜히 전국급 프랜차이즈가 아니었다.
그걸 무시하고 장사를 강행한 게 문제였다.
나름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이기에 여전히 잘될 거라 생각했다는 거다.
“홍화반점도 맛에서는 크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야. 무엇보다 음식 나오는 시간도 빠르고 짬뽕도 깊이는 떨어지지만, 요즘 애들이 좋아할 맛이더라고. 매콤하고 자극적이고…….”
김창주의 분석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번개치킨은 저렴한 가격만이 무기가 아니었다.
일단 요즘 유행한다는 맛은 다 있었다.
매콤 달달한 양념치킨에, 단짠단짠 간장치킨. 화끈한 순살 깐풍기에 윙이니 봉이니 하면서 부위별로도 팔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몰랐던 다양한 소스의 조합까지 추가되었다.
칠리, 갈릭, 크림, 카레, 머스터드, 핫 스파이시까지.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장사 잘되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는 거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손볼 거야.”
본격적으로 메뉴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직원 한 명을 더 뽑았단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알아! 이번에 고추튀김 만들면서 많은 걸 느꼈거든.”
오랜 전통이 만든 습관.
그랬기에 강형우의 말을 조금 무시했다. 지방을 기름에 튀기는 방식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괜한 걱정이 앞서 몇 번이나 따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한번 해 보고 나니, 깨달았다.
“정작 겁먹은 건, 바로 나였더라고.”
그 말에 이혁기와 김현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정덕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난, 한번 해 보련다. 까짓 거 지금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인데 뭘 가리겠냐? 난 무조건 고다! 고!”
***
원래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일이 살짝 꼬였다.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지성분식이었다.
일과는 이러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수련한 뒤, 출근한다.
아침 시간에 장사 밑준비를 마치면 점심 장사 전에 두어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이때 식사를 하고 토납법을 수련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후 저녁 9시까지, 무려 10시간을 논스톱으로 달린다. 오후에 한가할 때 잠깐 쉬는 걸 제외하면 마칠 때까지 가게를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오전에는 창주 형과, 야간에는 덕수 형과 지내게 되었다.
“이게 밥버거란 말이죠?”
강형우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시중에 파는 밥버거와 비슷하면서 달랐다.
문제는, 여기서 나는 탄내였다. 게다가 모양도 균일하지 않았고, 찰흙을 쥐었다가 놓은 것처럼 손자국까지 나 있었다.
쉽게 표현하면, 이건 내놓을 음식이 아니었다.
“어! 내 나름대로 고민해서 만든 건데…… 일단 먹어 봐.”
“예. 맛은…… 봐야죠.”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시식을 했더니, 역시나.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밥을 주먹으로 뭉쳐서 낸 느낌?
확실히 야채도 많고, 들어간 것도 많아서 정성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손님은 냉정하다. 그것만으로 평가가 올라가는 일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금이 뭉쳐 있었다.
“으~ 짜!”
강형우는 재빨리 찬물로 입을 행군 뒤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형.”
“왜?”
“이거 벌칙 음식이죠?”
“그, 그럴 리가…….”
정덕수는 혹시나 싶어 한입 베어 물더니 정수기 앞으로 달려갔다.
“하아~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주먹밥 만들 듯이 밥을 뭉쳐서…….”
설명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간도 맞질 않고, 모양도 엉망이었다. 게다가 특색이라 내세운 건 밥을 살짝 굽는 거였는데, 일부가 생각보다 더 가열된 것이다.
그 때문에 딱딱했고 향도 좋지 않았다.
이걸 보니 딱 생각나는 게 있었다.
예전에 롯X리아에서 만들었다가 망했던 라이스 버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