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19화 됐다. 먹자!
기본 베이스는 돈까스 소스로 시작한다.
펜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서 열심히 저어주면 루가 완성이 된다.
여기에 물과 우유를 적당히 넣어주고 다진 양파 한 사발에 사과도 두 개나 다져 넣었다.
이걸 약한 불에서 저어가며 이십여 분 넘게 졸인다.
“요즘 유행이 단짠이라고 했지?”
걸쭉한 베이스에 간장과 설탕이 들어가고, 굴 소스 약간, 케찹이 한 국자가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얼려 놨던 사골 육수까지 넣고 자박자박할 때까지 끓이면 끝!
“슬슬 핏물도 다 빠진 것 같은데…….”
강형우는 등갈비를 꺼내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삶기에 들어갔다.
통에 등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간장을 세 국자, 마찬가지로 양파를 세 개나 넣었다.
그 외에 파와 마늘을 한 움큼 집어넣은 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소주, 맥주, 콜라, 그리고 ‘갈아 먹는 배’였다.
아까 시장에 들렸을 때 물어보니 배가 너무 비쌌다.
이 정도 양을 삶아 내려면 최소한 두 개는 들어가야 하는데, 무려 칠천 원이나 했다.
결국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이 음료를 사온 것이다.
솥에 요리용으로 쓰고 남은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넣었다. 거기에 배 음료까지 투하한 후 커피믹스 두 개까지 넣으면 끝이었다.
“이정도면 잡냄새는 확실하게 잡겠지.”
강형우는 바글바글 끓는 등갈비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확실히 요리하는 건 재밌었다.
비록 정규코스로 배운 건 아니지만, ‘내 밥상 니 밥상’에서 일하면서 어지간한 음식들은 거의 다 만들어 봤다. 그러면서 메뉴 상당수를 업그레이드까지 시켰던 것이다.
원래라면 일개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조리 과정에 큰 차이가 없는데다가 맛을 보며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게 더 좋았다.
심지어 불필요하게 들어가던 과다한 양념을 줄일 수 있어 원가도 더욱 저렴해졌다.
이걸 본 정분석이 엄지 척 했다. 괜히 강형우를 아끼는 게 아니었던 거다.
“학원 다니던가 해서 본격적으로 배워 볼까?”
그런 생각도 여러 번 해 봤다.
어지간한 건 다 따라 할 수 있고, 맛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창주 형의 오뎅 국물처럼 깊이 있는 음식은 아직 어려웠다.
쉽게 표현하면 내공 부족.
그걸 다양한 경험으로 커버하고 있었지만, 정면승부 하기에는 아직 경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정식으로 배워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거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슬슬 다 됐으려나?”
추가로 조리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히 다 삶을 필요는 없었다.
냄새가 빠지고 표면만 익으면 끝!
거의 족발처럼 삶긴 등갈비는 윤기가 자르르르 해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강형우는 고깃덩어리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뜯기 좋게 뼈 사이를 절반 정도 잘라 냈고, 양념이 스며들게 표면에 X자로 칼집을 내었다.
고깃덩어리를 네 개의 비닐에 나눠 넣고, 만들어 놓은 소스를 부었다. 그리고 진공포장기에 넣은 뒤 하나씩 압축시켜 버렸다.
그걸 솥에 넣고 뭉근한 불에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진짜 고기 맛은 이렇게 내야 하는데.”
고기는 굽거나 튀겨먹는 게 맛있기는 하다.
하지만 살코기 덩어리를 가장 촉촉하게 먹을 수 있는 방식은 바로 이거였다.
수비드 조리법.
강형우는 나중에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치킨집도 차릴 계획이었다.
물론 그 전에 돈부터 벌어야겠지만.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강형우는 시계를 확인한 뒤, 씨익 웃었다.
이걸 먹고 좋아할 동생들이 생각나서였다.
***
“아들 왔습니다.”
강형우는 양 손에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망미 초등학교 옆의 작은 주택 이층.
방 두 칸에 복도식 통로가 있고, 가운데 주방이 있는 작은 전셋집이었다.
강형우는 여기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워낙 시세가 싼 동네인 것도 있지만, 주인집 아저씨가 아버지의 고향선배라 십 년 동안 전세금을 올리지 않아서였다.
“형어엉~”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쌍둥이 막내들이었다.
강인우, 강정우.
둘 다 고삼이었는데, 며칠 뒤 수능이었다.
다행인 건 성적이 아주 저수지 밑바닥이라 강영지가 이뻐(?)한다는 거다.
적어도 대학 보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나 뭐라나.
어차피 우리 인우, 정우 쌍둥이들도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택한 것도 그래서였고, 성인이 되면 군대 바로 갔다 와서 취업하려 한단다.
“혀어엉~”
“이리 오너라~”
강형우가 두 팔을 벌려 동생들을 안으려 했다.
뭔가 허전하다 싶었더니, 비닐만 쓱 빼들고 주방으로 가려는 게 아닌가?
“야! 니들! 형이 왔으면 인사부터 하고 그래야지.”
“에이, 우리가 이산가족인가? 달에 서너 번씩 보는데 뭐가 반갑다고……”
“그니까. 볼 때마다 끌어안는데, 이젠 징그럽지.”
인우의 말을 정우가 받았다.
하여간 이럴 때는 죽이 착착 맞는다.
“이젠 다리털도 형보다 내가 많을걸? 그렇지?”
“헤헤, 난 거시기 털!”
둘이 히죽이죽 웃는데, 주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야! 둥이들! 어디서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올려! 죽을래?”
그 한마디에 인우와 정우는 바로 움찔 했다.
이 집안의 절대 권력자 강영지였다.
“빨리 들어가 청소하고 정리하고 있어! 엄마 올 거니까.”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인우와 정우가 움직였다.
아마 갓 입대한 신병도 쟤들보단 빠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뒤에야 얼굴을 내미는 강영지였다. 다행인 건, 그래도 반갑다고 웃어 주기는 한다는 거다.
“오빠 왔나?”
“그래, 니 오라버니 이제 행차시다.”
“뭐해 왔는데?”
“고기!”
“고생했다. 방에 드가 쉬고 있어라.”
강형우는 비닐 하나를 영지에게 주고 남은 하나를 들었다.
“이거 밑반찬인데, 냉장고에 넣고…….”
“내가 하께. 드가라.”
남은 비닐까지 강탈당한 강형우는 떠밀리다시피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행이 애들이 방청소를 하고 있었다. 바닥을 뒹굴면서 옷으로 말이다.
“영지 부른다?”
강형우의 한마디에 인정둥이들이 답했다.
“옙, 청소 시작하겠습니다.”
“전 벌서 빗자루 잡았습니다.”
“어휴,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박혜숙은 방에 들어오는 밥상을 보곤 깜짝 놀랐다.
상의 절반이 커다란 고깃덩어리였다.
그 외 강형우표 밑반찬들이 있었고, 상추와 깻잎이 한 바구니였다.
강형우는 가위를 들고, 비닐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쫙 벌어진 두꺼운 비닐 사이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데 동시에 달콤한 향이 훅 퍼졌다.
“오오, 은혜로운 고기님이시다.”
“이건 바롯! 만화에서나 나오는 고기지 않는가?”
인정둥이들이 ‘요리왕 비룡’ 을 바로 재현해 버렸다.
미미!(美味) 미미!(美味) 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강영지의 등짝 스매싱이 채널을 바꿔 버렸다. 만화에서 시식회 프로그램으로 말이다.
“시키서 데우기는 했는데, 이거 뭔데?”
강영지가 묻자 박혜숙도, 인정둥이들도 강형우를 쳐다봤다.
“돼지 등갈비.”
“소는 아니네?”
박혜숙을 제외하고, 다들 실망한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자신이 있었다.
“다른 말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온다는. 무려 일인분에 이만 원이 넘는다는 바비큐 폭립님이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정둥이들이 손을 들었다.
“오오! 형님을 찬양하옵니다.”
“찬양하라! 찬양하라!”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이거, 나가서 사 먹으면 이십 만 원도 넘는 거다.”
대충 10인분 양은 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제야 강영지가 피식 웃었다.
“됐다. 먹자.”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
“커피? 녹차?”
“난 커피. 믹스로.”
“알았다.”
강영지의 말이 끝나자, 인정둥이들이 손을 들었다.
“누님마마, 소인은 커피로 부탁드리옵니다.”
“저도, 같은 걸로 해 주시길 바라마지 않사옵니다.”
“쓰~ 어린 것들이 커피는 무슨. 녹차나 마시라.”
날카로운 눈빛에도 인정둥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누님마마, 저는 벌써 머리에 피가 다 말랐사옵니다.”
“예. 저도 민증 잉크가 다 마르다 못해 신검 신청까지 마친 몸이옵니다.”
엎드려 절까지 하는 인정둥이들의 재롱에 강영지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녹차나 무라~”
후식 메뉴가 강제로 결정되자 인정둥이들이 푹 고개를 숙였다.
하여간 내 동생들이긴 하지만 정말 재밌게들 논다.
어쩌면 사막에 던져 놔도 심심하지 않을 지도.
그러고 보면 피는 속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강형우도 장난기가 많았다.
최근에는 장사가 안 돼서 침울했던 거지 성격자체는 밝았고, 활기찼다.
그때, 박혜숙이 슬쩍 말을 꺼냈다.
“니들은 나가서 영지랑 뒷정리 하는 거나 도와. 설거지거리 많더라.”
“태비마마 저도 그 생각했습니다만, 누님마마가 부르시지 않기에…….”
“어차피 누님마마께서 곧 과외 가시면 어차피 저희들이 다 치웁니다. 마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인정둥이들이 촐싹대며 다시 절을 하자 박혜숙도 장난을 쳤다.
“우리 막내들이 용돈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수능 끝나면 우리 국밥집으로 귀향을 명하겠다!”
말 끝나기도 전에 인정둥이들이 후다닥 도망을 쳤다.
가끔 박혜숙은 인우와 정우를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갑자기 사람이 부족하거나 급하게 힘쓸 일이 생기면 알바를 시켰던 것이다.
그걸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랬다.
시급 일 만 원, 대신 초고강도 중노동!
묵직한 국밥 뚝배기를 몇백 개씩 설거지하고 소독한다거나, 김장에 들어갈 배추 몇백 포기를 나른다거나, 무 수백 개를 깍둑썰기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강형우도 시간 빌 때, 그리고 군대 휴가 나와서 몇 번 해 봤다.
용돈 벌 겸 사회 경험 차원에서 하는 건데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먹고 살기가 참 힘들다는 거, 그리고 내 몸의 근육이 이렇게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는 거였다.
박혜숙이 강형우의 손을 잡았다.
“그래, 우리 큰아들. 장사는 좀 돼?”
“어, 그럭저럭 되는 것 같아. 몇 달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을 것 같거든.”
솔직히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하기는 싫었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박첨기와 정분석의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계획을 넌지시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잘 풀릴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보였다.
“그래, 아들이 잘 된다면, 잘 되겠지.”
“그런데 당분간은 좀 시간이 필요하거든.”
말을 하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장사를 시작해 돈을 벌면서 제일 먼저 한 건, 창업 대출부터 갚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수익이 적지 않아 매달 백여만 원씩 집에 가져다줬는데 최근에는 전혀 그러질 못했던 것이다.
대신 생활비 겸 용돈 하라고 영지한테 틈틈이 몇십만 원씩 쥐어 주고 있었다.
박혜숙은 그것만으로도 장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아들, 장사에만 집중해.”
“그래도…….”
“내가 국밥집 아줌마라고 무시하는 모양이데, 가만히 앉아서도 세상 돌아가는 거 다 알거든? 앞으로 나라가 점점 어려워질 거야.”
“그런가?”
“가게 손님들이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흐름이 그래. 이럴 때는 빨리 자리부터 잡는 게 우선이야.”
박혜숙은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더니 강형우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맞잡은 손은 따뜻했다.
전해지는 마음까지 뜨거워서 잠시 울컥하는 기분도 느껴졌다.
솔직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부나 마찬가지인 분석이 형도 있었고, 천경 어르신과 건물주님도 그랬다. 친구들도 이웃 형들도, 동네 동생들도 전부 남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가족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