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화 만들자!
“사람들이 오뎅 먹으러 오지, 국물 마시러 오냐?”
“그런… 가요?”
“당연히 뻥이지. 생각해 봐. 국물이 맛있어야 오뎅도 맛있어지잖아.”
그러고 보니 화끈 오뎅의 오뎅은 다른 집하고는 맛이 달랐다. 좀 더 깊은 맛이 있었고, 탄력도 향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육수의 성분들이 스며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김창주는 피식 웃으며 오뎅 몇 개를 빼들었다.
“육수를 따로 따로 끓이는 건, 그래야 맛을 더 깊고 진하게 뺄 수 있어서고. 마셨을 때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나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말 그대로 섞이면 구별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란다.
세 육수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맛의 균형이 엉망이 된다나 뭐라나.
“하나하나 맛을 보고 다 괜찮게 나오면 그때 섞는 거지. 그것도 그거지만, 결정적으로 오뎅 맛이 다르게 나온다.”
김창주는 오뎅을 각각의 육수에 담갔다가 몇 분 뒤에 접시에 올렸다.
“하나씩 먹어 봐.”
긴가민가했는데, 정말 먹어 보니 확실히 달랐다.
멸치 육수에 담갔던 오뎅은 미묘하게 일식 느낌이 났고, 홍합 육수에 담갔던 건, 술집 어묵탕 맛이었다.
마지막으로 해물 육수 오뎅은 진짜 해물탕 맛이었다.
“헐, 황당하네. 이게 말이 되는 맛이에요?”
“험, 삼십 년 전통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김창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원래 국물에 있는 오뎅을 빼서 줬다.
“근데 이게 더 맛있어.”
강형우는 또다시 오뎅 한 개를 해치웠다.
그런 뒤,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맞다.
각각의 국물에 따로 먹어보고, 파는 걸 먹어보니 확실히 차이가 존재했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사실 평소에 오뎅을 먹을 때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뎅이 오뎅이지, 뭐 별게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하나 육수 맛을 보고, 그에 따른 오뎅 맛도 확인한 결과 좀 더 섬세한 맛이 숨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정하자.
이 집 오뎅국물은 예술이라는 걸.
“분명 오뎅은 오뎅인데, 오뎅끼데스까?”
“에라~ 넌 개그하지 마라. 재미없으니까.”
“죄송합니다.”
강형우가 사과를 하자 김창주는 피식 웃더니 싱크대 밑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제 우리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화끈 오뎅을 가르쳐 주마.”
맞다.
이 가게의 베스트셀러, 아니 밀리언셀러가 남아 있었다.
흔히 불오뎅이라 알려진, 매운 오뎅이었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냥 고춧가루만 넣는 건 아닐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랬다면 깊은 맛이 나지는 않을 테니까.
“이게 가장 힘든 작업인데, 오늘 니가 할 일이다.”
김창주의 설명을 들은 강형우는 기겁했다.
“이걸… 다요?”
“어. 배운 값은 해야지?”
“제가 만약에 저기 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서, 다 까먹으면 안 해도 되죠?”
“당연히 아니지. 자! 시작해!”
강형우가 받은 건, 자루 하나였는데, 그 안에 있는 건 청양고추였다.
대충 봐도 천 개는 넘을 것 같았다.
이걸 전부 고추씨만 따로 빼야 한다는 거다.
***
누가 그러더라.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고.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부모를 잃었을 때.
그리고 나라를 잃었을 때 말이다.
개 뻥이다.
청양고추 수백 개, 아니 수십 개만 까 봐라.
우나, 안 우나.
사실 작업 자체는 그리 힘든 건 아니었다.
중앙을 칼로 가르고, 고추씨만 따로 긁어내서 모은다.
문제는 몇백 개 정도가 아니라는 거다.
심지어 한 자루를 다 해치우자 김창주는 두 자루를 더 꺼내 주었다.
끄어어어.
막 거품 물고 기절하려고 하는데, 이걸 다해야 비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끝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오늘 작업한 양이 무려 한 달 치라는 걸.
어쨌든 김창주가 일러 주길 남은 고추는 바짝 말려서 가루로 만든 뒤 다른 음식에 쓴다고 했다.
그럼 모아 둔 고추씨는 어디 쓰느냐?
으깬 홍시, 호박과 함께 망에 넣고 우린다고 했다. 이게 깔끔한 매운 맛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진짜 반전이었다.
맵게 보이는 뻘건 색상은 뜻밖에도 홍시가 원인이었다.
정작 매운맛을 내는 고추씨 국물은 오히려 훨씬 맑았던 거다.
거기에 단호박이 들어가 맛의 중심과 농도를 잡아 준다.
강형우는 진심으로 물었다.
“형,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해요?”
대답은 한 마디였다.
“맛있으니까.”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아~ 맵네. 매워.”
손을 몇 번을 씻었는지를 모른다.
그런데도 손가락 끝이 화끈거렸고, 뭔가를 만지면 따갑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가만?”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장백호의 무공은 장법이었다. 말 그대로 손바닥으로 상대를 후려쳐서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아찔했다.
조성기의 싸다구를 날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무공을 펼쳤다면?
재수 없으면 살인자가 됐을지도 몰랐다.
“후아!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한 번 수련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기억속의 장백호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창칼이 날아와도 맨손으로 텁.
검기가 찔러와도 맨손으로 텁.
말 그대로 무쇠 손이었다.
장법을 수련한 뒤 못 잡는 게 없었고, 불속에 있는 고기도 그냥 뒤집었던 것이다.
“급한 건 아니니까, 시간 날 때 한번 해 보자.”
만약 생각대로 된다면 제법 괜찮은 방편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제법 맛은 비슷한데.”
지금 강형우 앞에는 세 개의 솥이 끓고 있었다.
처음에는 김창주에게서 얻어 온 재료로 만들어 봤다.
몇 번 반복한 끝에 비슷한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이번에는 내가 시장에서 직접 산 재료들로 끓여 본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재현율은 90%가 넘네.”
이 정도면 기본은 되는 것 같았다.
남은 건 여기에 자신만의 맛을 더하는 것.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사실, 처음 오뎅 국물을 떠올렸을 때 이미 하고자 하는 음식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김창주에게 부탁한 거고, 덕분에 상상 이상의 국물 맛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튀김집을 차릴까 생각하면서 시험해 본 몇 가지 레시피를 넘겨줬다.
그중에는 정말 피눈물 나는 아까운 조리법도 있었는데, 전설의 고추튀김이 그거였다.
지금은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없어져서 사라졌지만,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갔던 분식집에서 했던 방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랑 참 많이 다녔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당시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안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오직 입소문만으로 알려진 집들을 다녔고, 비법 같은 걸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게 실례가 아닐까 싶었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장님들이 먼저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 가게는 뭐 넣고, 뭐 넣고 해서 무슨 맛을 내고, 그래서 더 맛있고 그러니…… 다음에 또 오세요!
“큭큭. 확실히 그땐 그랬지.”
대단한 비법을 알려 주는 것처럼 했는데, 결국에는 가게 홍보였다.
하지만 그 또한 재미 아니던가.
“그건 그렇고. 이제 시험해 봐도 되겠는데.”
화끈 오뎅의 육수 퀄리티라면, 자신이 생각한 국물도 훨씬 잘 나올 것 같았다.
일명 밥 말아 먹는 오뎅 국물 말이다.
강형우는 대략적인 장사 계획까지 전부 세워 놨다.
그전에, 추구한 맛만 나오면 된다.
♪~ ♪♪
박차고 태어나서…… 짠짜잔, 짠짜잔.
겁날 게 뭐가 있나~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더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엉.”
“뭐하는데?”
“그냥 뭐한다.”
전형적이라 알려진 부산 남매의 대화법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세 마디가 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알지?”
“아! 안다.”
“시간 맞춰 와라.”
“알았다.”
“맛난 거 싸들고.”
뚜우~ 뚜우~
그러고 전화가 끊겼다.
여동생 강영지, 이 괘씸한 지지배 같으니라고.
언제부턴가 가족 모임음식을 은근슬쩍 떠넘기고 있었다.
원래라면 집에서 이것저것 음식해서 먹었는데, 지성분식을 연 뒤로 자꾸 해서 가져오라는 거다.
사실 그러는 게 편한 부분도 있었다.
일단 엄마 박혜숙과 강영지는 입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하필이면 내 손맛이 딱 그 중간지점이었던 것이다.
그건 어쩔 수없는 일이었다.
대학생인 강영지는 빵집에서 알바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버터와 생크림, 달달한 초콜릿을 좋아했으며 자극적이고 비린내를 극히 싫어했다.
박혜숙은, 친구가 사장인 국밥집에서 일하고 계셨다.
무려 40년 전통인데, 거기 스타일이 약간 올드 해서 묵직하고 찐이인한 국물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 같이 나오는 김치와 깍두기, 밑반찬들도 많이 맵고 달달하고 자극적인 편이었다.
박혜숙이 일한지는 대충 6, 7년 정도였으니 입맛이 변하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나만 개고생이었다.
실제로 집에서 먹는 반찬들 대부분을 만들어야 했고, 수시로 음식해서 가져다 바쳐야 했으니까.
마침 카오톡이 연달아 울렸다.
지지배: 엄마! 오늘 뭐 먹고 싶어요?
사랑하는 울엄마: 우리 딸이 해주는 건 다 맛있지
둥이 1호: 엄마, 누나가 라면에 자꾸 우유하고, 버터 넣어요.
둥이 2호: 누나 해주는 거, 개 맛없음.
갑자기 톡이 끊겼다.
잠시 후.
지지배: 오빠가 맛있는 거 해가지고 온데요.
***
살면서 독박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이런 경우가 딱 그랬다.
강영지의 톡 이후, 뭐라고 보낼까 고민하는데 박혜숙이 그랬다.
그러면 가져오는 걸로 먹자고.
예상해 보면 답이 나왔다.
아무래도 그사이에 강영지는 두 동생의 입과 손가락을 막았을 거다.
“하여간, 약아 가지고.”
그럼에도 저절로 씨익 웃음이 나왔다.
말투와 행동과는 다르게 속정이 있는 동생이였으니까.
사실 강영지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군대에 있을 때나 공장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분석이 형 밑에 있을 때.
날 대신해서 가족을 지킨 건 강영지였다.
고등학생인데도,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살림을 하고 두 동생을 챙겼다. 그러면서 장학금까지 받았고 서둘러 취업을 하려 했던 것이다.
영지를 대학 보내겠다는 건, 나와 어머니의 결정이었다.
당시 수익이 꾸준히 들어왔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강영지는 공부를 잘했다.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머리가 장난이 아니게 비상했다.
고3이 중3들 과외해서 돈을 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심지어 그 수익이 내 월급보다 많을 때도 있었다. 가르치는 애들이 전교 10등 대를 유지하면서 부모님들한테 보너스까지 두둑이 받았던 것이다.
근데 우리 막둥이들은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강영지가 말하길, 애들 성적 올리는 것보다 돌에 수학공식 새기는 게 빠르다나 뭐라나?
어쨌든, 우리 집안에서 나보다 더 든든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강영지였다.
그랬기에 모임 있는 날도 먼저 통화를 했고, 넌지시 가게 바꿀 거라는 이야기를 알려 준 거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그걸로 밑밥은 끝났다.
강영지는 나름 특유의 말빨로 어머니를 안심시켰을 거고, 두 동생의 걱정도 날려 버렸을 테니까.
“가만있어 보자. 영지가 뭘 좋아했더라?”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고기, 고기, 오로지 고기였으니까.
여기에 박혜숙의 입맛을 생각하면 적당히 달짝지근한 양념이면 된다.
잠시 생각하던 강형우는 재빨리 가게를 나왔다.
바로 아래 연미시장에서 친구가 하는 정육점을 들렸고, 마트를 갔다 온 뒤 주문해서 손질된 고기를 받아왔다.
바로 돼지 등갈비 2.5㎏ 이었다.
제일 먼저 찬물로 고기 덩어리를 행군 뒤, 뼈 부분을 가볍게 솔질 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네 등분으로 나누어 큰 냄비에 물을 채워 넣어 놨다.
“핏물이 빠지는 동안 소스를 만들자!”
사실 간단하게 만들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분식집이지만 어지간한 소스는 다 있었다.
특히 업소용 소스의 조합이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일반 가정용보다 훨씬 진하고, 감칠맛 내는 조미료가 엄청 들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들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솜씨를 부려 보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 가족이 먹을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