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6화 (16/251)

# 16

16화 그래, 그러자

“으음, 흠.”

조성기는 몇 번이나 몸을 꿈틀거리다 게슴츠레 눈을 떴다.

“형우야. 물 좀…….”

강형우는 큰 맥주잔에 물을 받아와 조성기한테 내밀었다.

조성기는 목이 탔는지 한 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아~ 하. 좀 살겠네.”

크게 눈을 뜬 조성기는 주위를 둘러봤다.

동네 작은 호프집이었는데,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있었고 칸막이 너머로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었다.

“와. 내가 좀 많이 취한 모양이다. 야, 근데 왜 이렇게 아프냐?”

“어, 내가 때렸다.”

“뭐?”

“너 정신 차리라고 한 대 쳤다고.”

강형우가 담담하게 말하자, 조성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좀 살살 때리지. 졸라 아파. 씨발, 이빨 다 나간 것 같은데.”

“새끼야. 안 죽은 게 다행인줄 알아라.”

솔직히 강형우도 놀라긴 했다.

홧김에 뺨을 한 대 쳤다.

조성기의 머리가 휙 돌아가더니 마치 전원 꺼진 TV처럼 푹 나가는 게 아닌가?

멱살 잡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한참을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위력적이었고 보는 사람들도 다들 놀랐다. 190㎝에 가까운 거구가 싸대기를 내리쳤으니 조성기가 죽은 줄 알았던 것이다.

“미안하다, 형우야. 아 내가 진짜, 너무 간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좀 자제가 안 됐다. 사실 쌓인 것도 있고. 근데… 내가 실수 많이 했냐?”

“너 진짜, 큰 실수 했다. 일단 화는 풀렸으니까 사과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누, 누구?”

“연희.”

“하아! 씨발.”

조성기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나 쓸었다.

자기도 쪽팔리는 건 아는가 보다.

어쩌면 평생 이불킥 할 기억일지도 몰랐다.

“사실… 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뭐라고 했는지 들었냐?”

“어. 니가 연희한테 같이 자자고 그랬다. 그러면 카페 하나 내준다고 했어.”

“하아. 내가 돌았구나, 돌았어. 아아, 씨발. 미쳤지. 아오~ 병신 새끼.”

조성기는 벽에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박으면서 자해를 했다.

“그래서 태구가 너 아가리 날렸다.”

“아, 씨발. 맞을 짓 했네. 아. 내가 미친 모양이다. 니들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데. 진짜 내가 왜 이러지?”

조성기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괴로워했다.

적어도 지금 순간은 진심이었다.

사실 오연희는 조성기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상대였다.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고등학생 때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오연희는 무척 예뻐졌고 당당한 성격 때문에 인기도 많았었다.

쭈구리 취급 받던 조성기에게도 잘해줬는데, 그걸 오해해서 고백했다가 차이기도 했다.

오연희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놀랍게도 홍태구였다.

홍반장 홍셜록, 잡학박사가 오연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실 태구도 그녀를 좋아하긴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의 그는 데뷔도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이런저런 알바들로 생활을 유지하는 입장이라 선뜻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

이걸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고, 조성기도 순수하게 두 사람을 돕겠다고 했다.

우린 친구였으니까.

“씨발. 내가 미쳤지. 애들 얼굴 어떻게 보냐?”

그때였다.

홍태구가 불쑥 들어오더니 차갑게 말했다.

“정신 차렸냐?”

“어? 어.”

풀죽은 조성기의 행동에 홍태구는 한숨만 내쉬었다.

“너, 알지?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정도가 있다.”

“미안. 내가 진짜 미안하다. 다른 건 몰라도 니들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하아, 씨발 죽을죄를 졌다.”

조성기는 누가 말리기도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홍태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섭고 섬뜩했다.

원래 홍태구는 화를 잘 안 낸다. 그런 사람이 한 번 성질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만큼 단호하고 칼같이 끊었기에 홍태구가 정색하면 강형우조차 긴장할 정도였다.

“누가 무릎 꿇으래? 그걸 왜 나한테 하냐고? 그리고 나도 잘못한 거 있다. 너 때린 거!”

“아냐. 잘못했으니까 때렸겠지. 내가 널 아는데…….”

“그럼 됐어. 일단 일어나.”

조성기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홍태구가 말했다.

“니가 실수한 건 연희야. 남이라도 해선 안 되지만, 친구한테는 더더욱 안 되지. 연희네 어려운 거 약점 잡아서… 그건 정말 악질적인 행동이었어.”

“진짜 미안하다.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 상투적인 표현은 됐고. 연희한테 사과해.”

홍태구가 손짓을 하자 오연희와 단짝친구인 수민이가 들어왔다.

말린다고 말렸는데, 아직 젖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걸 본 조성기는 화들짝 놀랐다.

오연희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말했다.

“기억나?”

“그게… 미안.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내가 잘못했어.”

조성기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자 오연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맥주 맞은 것부터 해서 아까 이야기도 기분 좋지는 않아. 나도 지금 내 감정이 확신한 건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말할게. 이번은 화나고 성질나도 한 번은, 참을 거야.”

오연희는 심호흡을 한 뒤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실수라고 생각할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판단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아직 몰라. 당연히 이전처럼 널 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강형우의 예상보다 훨씬 무서운 말이었다.

이건 계속 기억하고 있겠다는 뜻 아닌가?

“사과는 받아들일게. 하지만 내 말 명심해. 니가 변했다면, 우린 더는 볼일 없는 거야. 하지만 계속 친구로 남는다면 오늘 일은 그저 실수가 되겠지.”

“고마워. 앞으로 진짜! 잘할게.”

조성기의 사과에도, 그걸 받아들였음에도 오연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솔직히 감정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여자 입장에서 조성기의 행동은 정말이지 용서하기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그걸 이해했기에, 강형우는 홍태구에게 오연희를 부탁하고 내보냈다.

***

“하아, 씨발. 나 왜 이러냐?”

조성기는 허벅지에 머리를 묻고 괴로워했다.

3차라고 하면 3차였다.

홍태구는 당당하게 조성기의 카드로 1, 2차 계산을 마쳤다.

그런 뒤, 어떻게 할까 물어 봤는데 강형우가 잠시 둘이서 이야기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사실 이게 오늘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했으니까.

조성기는 맥주를 한 잔 들이켠 뒤 말했다.

“그냥, 좀 잘해보고 싶었다고. 나도 인정받고, 좀 멋지게 살고. 어? 그런 거 있잖아.”

“그래서 지금 멋지게 사는 거냐?”

슬슬 술이 깨는 건지, 조성기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건 없잖아? 다 잘하자고… 아, 씨발 졸라 아프네.”

코피는 바로 닦아서 흔적이 없었고, 턱도 흔들리지만 치아가 나간 건 없었다.

게다가 태구가 때린 것조차 티가 나지 않았다.

왜냐?

얼굴에 남은 건 커다란 손바닥 자국 하나였다. 강형우의 싸대기 한 방이 다른 흔적들을 다 덮어 버린 것이다.

“성기야.”

“야! 나 인성이라고, 조인성. 너 자꾸 형들처럼 나 무시하고 그러는데, 너는 그러지 마라.”

“말 돌리지 말고. 그래서 너 지금 사는 게 잘사는 거냐?”

“당연하지. 나! 가게 주인에다 건물주다. 벤츠 몰고 다니고, 엉? 통장에 억 꼽혀 있어. 너 그런 생활해 본 적 있냐?”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강형우는 단숨에 맥주 500㏄를 비웠다. 정말 하고 싶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티셔츠를 걷었다. 그리고 선명한 복근 옆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보이지?”

“어? 어…….”

“이거 여덟 바늘이다. 기억하냐?”

조성기는 그대로 굳어졌다.

자신이 왕따를 당할 때, 강형우는 일진들과 패싸움을 벌였다. 그때 당한 놈들이 양아치 형들을 불러내서 복수를 시도했던 것이다.

결과는 양아치들 단체 입원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형우도 부상을 당했고, 흉터가 남았다.

“그때 뒤처리 누가 해 줬는지도 알지?”

“그, 그야 덕수 형이…….”

형님네 버거 사장이 정덕수였다.

진짜 전직 조폭으로, 한 번 학교 다녀온 뒤 착하게 살자고 장사를 시작한 거다.

그러다 사건을 접하게 되고 손을 써 줬다.

고소로 번지지 않은 게 그래서였다.

“너 고등학교 졸업식 날. 너네 아버지 출장 중이라 나한테 부탁했다. 그때 우리 어디 갔냐?”

“그게…….”

“태성 반점. 그날 혁기 형네 집에서 탕수육 먹었잖아. 그때 형네 아버님이 뭐라 그랬냐? 우리 성기 졸업했으니 자기가 쏜다면서 한 푼도 안 받았지?”

조성기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너 수능 망쳤을 때. 창주 형 집에서 우리 모였잖아.”

강형우는 천천히 이름 하나하나를 말했다.

홍태구, 오연희, 박정수, 최기성, 이지애.

가장 친한 동네 친구들, 동시에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지내왔던 이들이었다.

“그날 우리끼리 모였을 때, 창주 형이 뒷방에서 몰래 오뎅탕에서 소주 해줬잖아. 그거 마시면서 너 얼마나 울었는지…….”

“씨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누가 몰라!”

“그런데? 아는 놈이 그래? 니가 형들한테 그럴 수 있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새끼야.”

강형우는 처음으로 조성기의 눈에서 살벌한 독기를 느꼈다.

“알아! 다 안다고. 씨발. 그래. 그래서 좆같다는 거야. 뭐, 말만 하면 옛날이야기하고, 내가 맨날 개새끼고 씹새끼고. 뭘 해도 내가 잘못한 거고 내가 나쁜 놈이야!”

잠시 씩씩거리던 조성기는 거칠게 말했다.

“아씨! 좆같다고. 거지 같은 새끼들한데 그런 얘기 듣는 거. 그게 언제 적인데… 그냥 솔직히 확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강형우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날린 싸다귀에 정신이 돌아 버린 건가?

아니면, 아직 술이 안 깨서 헛소리를 하는 거?

만약 저게 진심이라면… 저 새끼를 두들겨 패서 사람 만들어야 하나?

“나 바보 아니다. 지금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 아니라고. 그리고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줄 알아?”

조성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사이 강형우는 심호흡으로 복잡했던 머리를 정리했다.

“니가 형들하고 사이 풀려고, 이제 할인 그만하고 정상적으로 장사 하면 안 되겠느냐고, 그 말하려고 부른 거잖아.”

“그건… 맞아.”

“그럼 됐어. 내가 알아서 하니까 간섭하지 말고…….”

그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강형우가 손을 들었다.

“그래. 그러자.”

“뭐?”

“그러자고. 너도 형들 안 보고 싶어 하고. 그럼 된 거지. 사실 고민 많이 했다. 그래도 친구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거든.”

강형우는 손을 들어 조성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친구야. 열심히 살아라. 나도 이제 정말 열심히 살 거다. 이전 보다 더 열심히. 아주 피똥 싸도록.”

***

구질구질한 것도 지겹고, 친구라고 봐주는 것도 끝이었다.

사실, 강형우는 김밥천왕의 맛을 파악하자마자 계획을 세웠다.

그걸 확실하게 하기 위해 조사도 했고, 대략적이나마 많은 걸 알아냈다.

“간단하지. 메뉴를 바꾸면 되는 거잖아.”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해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답이었다.

프랜차이즈의 약점!

바로 본사에서 정해준 메뉴를 판다는 것에 있었다.

사실 조성기의 김밥천왕은 많이 수상하기는 했지만 굳이 정면승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

시간은 지성분식의 편이었으니까.

고객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들리는 가게였으니, 당연히 그 맛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진다.

문제는 점점 질려진다는 거다.

특히 식사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면 속이 거북하고 불편했다. 화장실을 가도 개운하지 않았고, 뭔가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성분식에서 먹고 나면 달랐다.

“일단 메뉴부터 확 정리하자!”

강형우는 아주 심플하게, 꼭 필요한 것만 팔기로 했다.

라면, 김밥 세트.

덮밥 삼종에 야채, 김치 볶음밥.

사골육수를 사용하는 몇 가지 메뉴.

이건 심혈을 기울여서 완성시킨 음식들이었다. 맛으로도 꿀리지 않았고,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종류였던 것이다.

여기에 신 메뉴 하나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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