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화 정신 좀 차려라
“마! 저 새끼 왜 왔는데?”
“또라이 새끼 용기 폭발이네. 배때지에 철판 깔았나? 무슨 염치로 여 왔냐?”
저마다 불평하는 가운데 비쩍 마른 남자가 소주병을 들고 불쑥 끼어들었다.
“아따. 형님들 한잔 드세요. 그리고 회비도 냈으니 술 팍팍, 고기 팍팍. 아시죠?”
특유의 과장된 행동에 형님들은 자동반사로 술잔을 내밀었다.
쪼로로록. 쪼록.
“자! 한잔 드시고, 몸 상하지 않게 안주도 드셔야죠. 오늘은, 쏘고기 아입니까. 쏘고기.”
순식간에 소주잔 네 개를 채운 남자는 살짝 눈치를 본 뒤, 소곤거렸다.
“형님들. 성기 부른 게 형우예요.”
침묵은 무려 5초였다.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의 입이 열렸다.
“뭐?”
“진짜가? 태구야?”
홍태구는 첩보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예에, 그리고 오늘 모임 1차도 성기 지가 미안한 게 많다고, 자기가 산다고 여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맞나? 어째 웬일로 한우인가 했다.”
“그러게. 평소에는 삼겹살이 1차였는데…….”
형님들은 재빨리 젓가락을 움직였다.
“쏘고기는 타면 안 되지.”
“핏기만 가시면 먹으면 되는 기라.”
“무식한 새끼들. 레어 모르나 레어?”
셋이 동시에 입에 고기를 넣자, 홍태구가 한마디 했다.
“형님들, 그냥 육회 시키까요?”
세 형님들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알았다. 천천히 묵으께.”
“근데… 형우는, 점마랑 풀었나?”
“그야 뭐…….”
홍태구가 적당히 넘기려는데, 그걸 오해한 모양이었다.
“와~ 형우 씨발, 존나 착하다. 내라면 그냥 보는 순간 죽빵 날리가 아가리 탈곡기에 탈탈 털고, 염라대왕하고 쎄쎄쎄 만들어 버릴 텐데.”
“일단 짠! 한잔하시고. 예에. 그렇죠. 쭈욱 쭉. 캬아아아~ 이 맛입니다. 이 맛!”
강제 음주모드를 시전한 홍태구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그게… 친구끼리 그런 거 아닙니까? 뭐 같아도 또 보는 거고. 한동네 거진 삼십 년 살았는데 풀 건 풀어야죠.”
“그게 말이가? 빵구가? 똥이가!”
“맞다. 통수 후린 건 거시기 아이가?”
“영화 친구 못 봤나? 성기 새끼가 푹 쑤신 거잖아. 형우는 고마해라. 졸라 묵으따. 이러는 거고.”
홍태구는 다급히 손을 저었다.
“형님들, 형우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그냥 오늘은 모른 척하시고…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우가 불렀다잖아. 일단 좀 보자고!”
“아이고 알겠습니다. 우리 덴뿌라 성님.”
“야. 니도 많이 사람 됐네. 오뎅 팔아가 도인 된 거가?”
“일단 알았다. 근데, 하는 거 봐서 한다. 알지?”
세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애써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사실, 이 테이블이 제일 문제였다. 조성기가 건물을 올리고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이 여기 다 모였던 것이다.
순서대로 치면 우리 통닭, 중국집 3세, 형님네 버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화끈 오뎅이었다.
그걸 알기에 홍태구는 또다시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형님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았다! 니가 욕본다.”
나름 정상참작(?)이 되려는 듯한 대화였다.
마지막으로 화끈 오뎅집 사장이 말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고만 가봐라.”
“옙! 형님. 잠시 옆에 다녀오겠습니다.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홍태구가 사라지자 형님네 버거가 말했다.
“세상 좆같네. 거시기 새끼 졸라 맞고 다니는 거, 내가 어째 해 줬는데. 와~ 진짜! 형우 생각하면 저 새끼는 저러면 진짜 안 된다.”
“알지. 내도 그렇다. 닭다리 몰래 줘가면서 챙겨줬는데, 진짜 이럴 줄은 몰랐다.”
“마, 니들은 조용히 해라. 창주는 어떻겠냐?”
순간 세 사람이 동시에 오뎅집 사장을 쳐다봤다.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화끈 오뎅 사장인 김창주는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었다. 그래서 동생 친구인 강형우와 조성기를 친동생처럼 챙겨 줬고, 다른 애들보다 더욱 이뻐했었다.
따지면 여기 테이블에 모인 이들이 다 그랬다. 어릴 때부터 조성기를 잘 알았고, 같이 놀기도 했으며 어려울 때 돕던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됐다. 마음 비웠다.”
김창주의 말에 다들 놀랐다.
“뭐?”
“대갈통에 오뎅 꼬지가 쳐 박혔나? 그게 할 소리가.”
김창주는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잔을 탁하고 내려놨다.
“생각해 보니 틀린 건 아니더라. 뭐, 떡볶이 오뎅 파는 집이 한두 개도 아니고, 장사 못하면 망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도 그렇지. 저거는 완전 노리고 한 거잖아.”
“맞다. 바로 옆집인데… 그리고 거시기가 나가라고 한 거잖아.”
원래 화끈 오뎅은 조성기가 사들인 건물에 있었다. 건물 새로 짓는다고 쫓아내듯이 나가라고 하고는 그 위치에 떡하니 조가네 떡볶이를 차린 것이다.
그것도 김창주가 바로 옆에 가게를 얻어서 새로 장사를 시작한 직후에.
“우리가 애냐? 새로 생기면 서로 경쟁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도… 씨발 아닌 건 아니잖아.”
부동산 삼촌이 고민 끝에 일러준 거였다.
원래, 그 자리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로변이고 지하철역과 버스 정거장 입구였다. 뭘 해도 평균 이상을 벌어가는 자리라 서로 웃돈을 주더라도 들어가려 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조성기는 직접 ‘조가네’를 찾아가 체인점 계약을 해버렸다. 화끈 오뎅 바로 그 자리에 내겠다고 했고, 뒷돈까지 써 가며 입점을 시켰다는 것이다.
홍화반점과 엄마 버거, 번개치킨도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전부 조성기가 사장인 상황.
우리 통닭 형이 짜증을 냈다.
“야! 정상적으로 경쟁하면 누가 뭐라 하나? 지금 오픈 할인만 넉 달째다 넉 달째! 어떤 미친 새끼가 장사를 저렇게 하냐고!”
프랜차이즈와 경쟁하기 위해 피똥 싸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나름 동네에서 자리를 잡았고, 다른 건 몰라도 치킨 맛은 좋다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무개념 손님들은 만 원짜리 통닭집에 와서 여긴 왜 할인 안 하느냐고 따지더란다.
그다음은 짜장면집 3세였다.
“나도 우리 음식 자부심 있다. 울 아버지가 얼마나 노력해서 지금의 맛을 만든 건데, 사실 남들은 모르지만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 줄 아냐?”
그런데 홍화반점은 오픈 기념으로 짜장면을 2,000원에 팔았다.
가격으로는 전혀 경쟁이 안 되는 상황.
형님네 버거도 마찬가지였다.
“씨바! 나도 프랜차이즈가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다들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근데 저런 방식은 아니잖아!”
전단지 알바가 일부러 그러는 건지, 버거 집에 버거 집 할인 쿠폰을 매일 가게 입구에 붙였단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정말 너무했다.
홧김에 성질 한번 냈더니 애가 울더란다.
사장님이 시켰는데요 하면서.
미안해서 햄버거도 주고 하면서 달랬는데, 속이 터질 뻔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알아!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새 가게가 생기면 매출이 주는 건 어쩔 수 없어. 울 아버지도 이해하는 편이고. 하지만 정도가 있는 거다.”
“그래. 방식이 문제지. 저거는 우리더러 죽어서 나가라 하는 거잖아!”
김창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장이 싸게 팔겠다고 하는 걸 무슨 수로 말리겠는가?
김창주는 잔에 소주를 채우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됐고, 형우가 성기 데리고 오면, 너무 얼굴 붉히진 말자. 태구 말대로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하이고, 군자 났네. 군자 났어.”
“조만간 등선하시겠다.”
세 친구는 그렇게 툭탁거리면서도, 끝내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
“형님들, 오랜만입니다.”
조성기는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한두 잔씩 받아마셨는데, 벌써 꽤 취했다.
강형우는 조성기를 말렸다.
“취했다. 적당히 마셔.”
“알았다. 알았다고!”
조성기는 매몰차게 대꾸하고 다시 옆 테이블로 움직였다. 한창 기분 좋은데 옆에서 딴지를 거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형님들 오늘은 제가 사는 겁니다. 많이 드십시오.”
“야! 가게 한번 놀러오라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다 해 줄게.”
“에이. 우리사이에 구질구질하게 왜 그래? 그래. 내가 나이트 한번 쏜다니까.”
대놓고 돈질, 자랑질하며 돌아다니는데 강형우는 한숨이 나왔다.
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 봐주지, 저건 정말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를 변명해 주는 테이블만 다니면서 으쓱거리는데 참 꼴 뵈기 싫었다.
사실 배산회 모임 내부에서도 말이 좀 있기는 했다.
조성기의 장사 방식은 주변에 많은 피해를 준다. 그러니 정상적인 영업을 했으면 좋겠다.
아니다. 덕분에 옆 동네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고, 싸게 먹어서 좋지 않으냐?
그래도 저건 아니다.
아니, 사장이 하고 싶은 대로 장사한다는데 뭐라 하면 되느냐?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전자는 근처에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이고, 후자는 지하철 모임이라고 몇 년 전 3호선이 개통된 뒤 새로 정착한 이들이었다.
사실 그 전에도 약간의 툭탁거림이 있기는 했는데 최근에는 눈에 띄게 사이가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웃끼리 주먹다짐이 오갈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럴 뻔하기도 했었고.
해서 강형우는 조성기가 직접 인사하고 그러면서 적당히 다독여 줬으면 하는 마음에 불러낸 거다.
다행이 태구가 밀린 회비도 받아냈고, 오늘 자기가 산다고 해서 불만은 피했다.
그런데 하는 짓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형우야. 저거 너무 마시는 거 아니냐?”
“그러게. 적당한 순간에 데리고 튀어야겠다. 분위기 안 좋아!”
하지만 두 사람이라고 조성기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홍태구는 총무여서 사방을 돌아다녀야 했고, 강형우는 형우대로 따로 목적이 있었다.
“그렇지. 원래 계약이라는 게 집주인 마음이긴 한데…….”
“원래는 말도 안 되지. 기본 비용이라는 게 있는데…….”
“그래. 요즘 날씨 생각하면, 그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뭐, 형우 네가 한다면, 도와주마.”
그런 식으로 알아볼 건 알아보고, 도움까지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던 중, 기어코 사고가 났다.
“꺅.”
갑작스러운 비명에 가게가 조용해졌다.
“씨발. 뭐. 내가 어쨌다고!”
조성기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맞은편 오연희 역시 조성기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카락과 옷이 젖어 있었고, 옆자리 사람들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조성기는 들고 있던 맥주잔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잔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터져나갔다.
사람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데, 조성기는 피식 웃었다.
“씨발,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어?”
“너 변했어!”
오연희의 목소리는 예상과 다르게 차분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너네 가게 자리 안 좋아서 장사 안 된다며. 내가 싸게 해줄 테니까, 우리 건물 들어오라는 게 잘못됐냐?”
“니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
“내가 뭘? 뭘 잘못했는데?”
조성기가 씩씩 대는데, 오연희도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새끼야~ 꼴리면, 사창가라도 가! 넌, 친구한테 그러는 게 쪽팔리지도 않냐?”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조성기는 울컥하는지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리고 오연희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넌 좀 맞자.”
빡!
조성기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씨발 놈아!”
또다시 주먹이 휘둘러지고, 조성기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친구라고 봐 줬더니, 완전 개네! 새끼야 니가 인간이냐?”
홍태구가 조성기의 멱살을 잡았다.
연이어 주먹이 날아가자, 조성기의 이빨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 참사를 막은 건 강형우였다.
“그만해.”
“형우야. 저 새끼가…….”
“알았어. 진정해라, 친구야.”
강형우의 침착한 눈빛에 홍태구는 이를 악물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조성기가 와락 달려들었다.
“씨발 놈아. 니가 나 쳤어? 홍태구! 이 새끼야.”
그때였다.
조성기는 자신의 몸이 훅 딸려간다고 느꼈다.
멱살을 잡은 건 강형우였다.
“친구야!”
조성기는 덜컥 겁이 났다.
“정신 좀 차려라.”
짝!
딱 싸대기 한 대였다.
조성기는 그걸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