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4화 (14/251)

# 14

14화 오랜만에 오셨네요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음식점도 MSG나 조미료는 적당히, 혹은 조금만 쓸 거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검색창에 MSG를 치면 많은 게 나온다.

복잡하게 이야기 하면 길고, 쉽게 표현하면 우리가 쓰는 합성 화학조미료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때문에 오해를 한다.

미X, 맛다시를 음식에 적당히 넣으면 무조건 맛있어 진다고.

그건 정말이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이 화학 조미료의 역사는 무려 백여 년이 넘었다.

동시에 활용법 또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굉장히 많이 교묘해졌다.

밥 한 공기에 조미료 한 국자!

이렇게 만들어도 먹는 사람이 모를 정도로 기법이 대단해진 거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요리인의 도리였다.

사람을 해하는 음식은 만들지 않을 것!

이게 상식적인 기준이었다.

솔직히 강형우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은 요리인이라기보다 기능인에 가까웠다. 고급음식을 만들어 수익을 얻기보다는, 음식 장사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요리인이 아니라는 건 틀렸다.

TV에 나오는 유명 쉐프들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음식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지켰으니까.

때문에, 지성분식을 차리면서 꼭 결심한 게 있었다.

돈만 좇지 말자!

해로운 먹거리는 만들지 말자!

마지막으로, 내 가족에게 줘도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을 대접하자였다.

때문에 강형우는 최소한의 조미료를 사용했고, 가능하면 직접 만든 천연양념을 쓰려고 노력했다.

쉬는 날 사골 육수까지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김밥천왕의 육수는 그것과는 달랐다.

일명 혀를 속이는 맛이었다.

***

90년대 초반, 충격적인 기사가 났다.

비법 사기라고 크게 터진 거다.

실상은 이러했다.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하고 싶었다.

알아보니 냉면집이 무척 잘 된다더라. 여름 한철만 바짝 벌어도 일 년을 놀 수 있었고, 몇 년 만 장사하도 아파트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한 사람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XX면옥이라고 유명한 가게에서 십여 년을 일했다면서 사골 육수의 비법을 팔겠다고 했다.

가격은 무려 2,000만 원, 당시 시세로 작은 아파트 전세금 정도나 되는 거금이었다.

그 금액을 지불하고 넘겨받은 비법이 바로 이거였다.

업소용 대용량 소고기 맛다시를 커다란 솥에 넣고 두 시간을 끓인다.

침전물을 걸러 내고 동량의 설탕을 넣은 뒤, 다시 끓이는 걸 반복한다.

여기에 식초와 몇 가지 조미료, 강한 향신료를 넣고, 위장용 육수와 결합을 시켜 냄새를 빼면 된다.

그걸로 모자라다 싶으면 다진 양념을 진하게 만들어 냉면에 올리면 감쪽같단다.

이게 원가 달랑 500원에, 1인분 판매가격 6,000원짜리 냉면 육수의 정체였다. 맛다시다를 푸욱 고아 낸 것만으로 엄청난 폭리가 가능한 그런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걸 비법이라고 샀으니 산 사람은 화가 나 판 사람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판 사람은 그대로 해보면 된다고 주장했고, 결국 법원에서는 실제로 검증에 들어갔다.

여기서 반전이 벌어졌다.

해보니 놀랍게도 정말 사골 육수가 나왔다.

더욱 충격적인 건!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맛다시 사골로 만든 냉면 육수를, 더 깊은 맛이 있다고 평가했다는 거다.

“한동안 난리가 났었지.”

판매 가격이니, 사기니 하는 것들은 그냥 넘어갔다.

문제는 바로 조리법이었다.

당시 냉면은 저렴한 음식이 아니다.

어지간한 설렁탕보다 비쌌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팔렸던 이유는, 비싼 값어치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좋은 소뼈를 고르고, 비싼 한우 고기를 사서 정성스럽게 손질을 한다.

가게마다의 방식으로 뼈를 우려 육수를 내고, 그걸 다시 동치미 육수와 일정비율로 섞는다.

여기에 힘들게 메밀을 반죽하고 뽑은 면을 삶아서 차게 한 뒤에 말아 먹는 것!

그게 비싼 냉면이 가지고 있는 가치였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이미지이기도 했고.

그것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소비자들이 느낀 건 엄청난 배신감이었다.

거기에 여론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이제껏 고기 국물이 아닌 조미료를,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먹었구나.

속았다. 사기 당했다.

비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처벌해야 한다.

그 결과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때 아마 전국의 냉면집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걸?”

오랜 전통이 있거나 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해명한 가게들만 살아남았고, 조금이라도 의심받는 가게들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냉면의 위치는 이전 같지 않았다.

지금은 여러 분식체인에서 여름상품으로 파는 것, 고깃집에서 나오는 후식, 그리고 중국집 배달 음식 정도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바뀌기는 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 같은 무식한 방법을 쓰는 곳들은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있기는 했다.

설명하자면 참 긴데, 흐음…….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동네 분식집 메뉴에 갈비탕이 나온다.

제 맛 못내는 전문점도 많은데 분식집에서 만드는 갈비탕이 어떻겠는가?

맞다.

이건 공장제품이다. 그리고 공장에선, 원물이 아닌 맛다시를 끓여서 맛을 낸다. 게다가 이제는 기술 발전으로 보다 다양한 것을 섞어 맛을 끌어올렸다.

해서 강형우는 업소용 사골육수를 믿지 않았다.

왜냐?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바로 혀였다.

“그러고 보면 이 맛을 구분한 나도 참 대단하다…….”

자화자찬을 했지만 속마음은 씁쓸했다.

그토록 고민하게 만들었던 김밥천왕의 ‘비법 육수’가 바로 이거였다.

그냥 MSG를 쓴 게 아니었다.

이걸 장시간 끓여서 만든 육수에 9 대 1 혹은 8 대 2의 배합으로 다른 걸 섞어서 교묘하게 만든 거다.

그런 뒤, 지성분식의 조리법에 육수를 더해 고객의 혀를 자극해 본래의 맛을 속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맛다시 육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집밥 스타일의 부담 없는 음식을 추구하는 지성분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니 맛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김밥천왕이 좋다 나쁘다, 사기를 쳤다 안 쳤다를 논할 수는 없었다.

일단 불법이 아니었다.

비양심적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조리법을 모두 공개하는 식당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식당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손님을 더 받기 위해서!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

“그렇게 따지면 확실히 효율적이긴 하지. 비용도 적게 들고, 그러면서 맛은 맛대로 내고, 외식 느낌이 들게 자극적이기도 하고.”

강형우가 한 번에 알아내지 못하고 헤맸던 것도 당연했다.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런 방식으로 조리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요리사들이 이런 방식을 피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고객들이 여기에 길들여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맛을 느끼는 혀가 둔해지면서 점점 자극적인 걸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식당은 식당대로, 손님을 끌기 위해 경쟁하듯 조미료의 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단맛을 더 내기 위해 정량 이상의 설탕이 들어가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금이 더해진다.

당과 염분의 과도한 추가!

이게 인체에 해롭다는 건 익히 알려진 상식이었다.

또, 더 매운 맛, 더더 매운 맛을 내기 위해 캡사이신 같은 걸 쓸 수밖에 없었다.

이 화학조미료의 강렬한 자극은 굳이 내시경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화장실이 알려주는 거지.”

누군가 그러더라.

똥구멍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고.

어쨌든 자극의 악순환은 요식업계 전체로 봤을 때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재료 본연의 맛보다 양념이 우선이 되면 그게 결국 소비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물론 가끔 먹는 한 끼라면 크게 상관은 없었다.

기왕 먹는 것 맛있게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1인가구가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식의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도 조미료, 저기도 조미료, 사방이 조미료투성이라면 어디 가서 뭘 믿고 먹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런 음식들을 자주 먹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트림도 안 나온다. 속이 거북해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고, 변도 시원찮아지는 거다.

무엇보다, 음식에 금방 질리게 된다.

건물주님 박첨기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요즘 손님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고객들은 현명하다. 그리고 육체는 더 없이 정직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서빙 알바 공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조금씩 손님이 늘고 있었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큰 적자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공지혜의 목소리에 손님이 쑥스럽게 웃었다.

살짝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근처에서 학원 강사 한다는 바로 그 손님이었다.

잠시 저녁 먹으러 들린 것이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형우는 그 손님이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래, 결정했다.”

강형우는 오래 고민했다.

몇 가지 방법을 찾았고, 다양한 계획도 세웠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거지만 일단은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개미에게는 개미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어, 그래. 가게… 하려고.”

강형우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

“그게… 그렇다고. 그냥 알고 있으라고.”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딴소리가 들렸다.

-됐고, 일요일 알지?

“어.”

-그때 말해라.

“알았다.”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저녁 9시, 지성분식이 마칠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일은 휴일이니 조금 여유가 있었다.

강형우는 씨익 웃으면서 장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오늘의 중요한 일과는 이제 시작이었다.

‘배산회’라고 정기모임이 있었다.

회비는 월 2만 원.

하지만 매달 모이는 건 아니었고 정기 회식은 분기마다 한 번씩이었다.

평균 인원은 대략 마흔 전후.

구성원은 말 그대로 동네 형동생들이었다.

하지만, 회의 성격상 근처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강형우는 다른 건 몰라도 이 모임은 꾸준히 참석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게, 퇴근하면 집.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가 이런 코스였다.

때문에 잠시 쉴 때 TV 보는 것 말고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안 그래도 요즘 민감한 이슈가 대통령이었다.

방송에서는 연일 칭찬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연신 욕밖에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기 끝나면 콩 제조 회사에 투자까지 하겠다고 했다.

저 인간과 측근들 전부 깜빵 갈 테니 수요가 폭발하지 않겠느냐면서 말이다.

“여! 왔냐?”

홍태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보니까 그 주변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끈 오뎅집 형을 시작으로, 옆에 철물점 사장님과 중국집 3세 형님이 보였다.

반찬가게 동생도 있었고, 연미시장 정육점 친구도 보였다.

건너편 편의점 사장, 부동산 삼촌, 대패 삼겹집 매니저와 갈비집 주방장도 있었고, 학교 앞 분식집 동생에 형님네 버거 사장도 보였다.

대부분 동네 터줏대감들이라 제법 오래 본 사이었다. 적게는 사오 년, 많게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인사했던 지인들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형님들, 안녕하십니까?”

다가가서 인사를 하자 다들 강형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면서 아직 안 온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 앞에서 고급 승용차가 빵빵거렸다.

뺀츠, 무슨 클래식인가 하는 제법 비싼 모델이었다.

창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 건, 다름 아닌 조성기였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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