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3화 (13/251)

# 13

13화 내가 뭘 봤어

“하아~”

입에서 나오는 건 긴 한숨이었다.

김밥천왕의 맛을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열흘이었다.

강형우는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서 장사 준비를 마치고, 김밥천왕이 오픈하면 바로 달려가 두 종류 이상을 시켰다.

김치볶음밥과 해물짬뽕 라면, 스페셜 김밥과 김치찌개,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먹어보면서 대략적인 양념 비율과 맛의 패턴을 파악한 것이다.

그런 뒤, 가게로 돌아와 장사 준비를 하면서 몇몇 메뉴의 맛을 재현해 봤다.

먼저 김밥의 밥이었다.

“확실히 밥 지을 때, 육수가 조금 들어갔어. 아무래도 육류 쪽 같은데 소 사골치고는 깊은 맛이 없고, 돼지 사골이라 하기에는 진득한 맛이 안 나.”

일반적인 조리법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이었다.

이 육수는 밥이 가지고 있는 탄수화물의 당성분을 끌어내긴 한다.

그 적절함을 맞추기 위해 물에 희석해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 정체가 파악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닭 육수나 해물 쪽은 아니야.”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봤지만 결국 맛의 비밀은 알아내지 못했다.

짐작하기로 소고기 쪽에 가까운데, 아무래도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덮밥 소스는…….”

고급 요리집에서는 덮밥 하나에도 다양한 베이스가 존재했다. 재료를 볶은 뒤 미리 만들어서 숙성시킨 소스를 더해서 완성하는 것이다.

김밥천왕은 여기에도 정체불명의 육수가 들어가 있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잖아!”

울컥 화가 났다.

뭔가 알 것 같은데, 짐작은 되는데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아슬아슬함이 성질을 나게 만들었던 거다.

사실, 강형우는 김밥천왕에서 식사를 하면서 맛의 구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치볶음밥의 김치는 저렴한 중국산이었다.

10㎏에 5,900원 하는 업소용 같았는데 이걸 참기름으로 볶으면서 소량의 감식초와 설탕, 맛술을 더해 묵은지 비슷한 맛과 향을 낸 거였다.

각종 찌개류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멸치 육수에 정체불명의 육수를 추가함으로 더 깊고 진한 맛을 만든 것이다.

강형우가 이걸 깨닫게 된 이유는 이거였다.

첫째가 호흡법을 통해 섬세해진 감각이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몸이 건강해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직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도, 하늘을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육체의 변화를 체감할 정도는 됐다.

그다음은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이었다.

지난 몇 년간, 지성분식을 준비하면서 엄청나게 공부를 했었다.

학교 다닐 때 이 정도 했으면 한국대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터.

그만큼 쉬지 않고 지식을 찾았으며 주방 직원들의 노하우까지 빠지지 않고 배웠다.

전부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것도 사실.

마지막으로 장백호의 관록이 더해졌다. 그 세 가지가 합쳐지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특수한 육수가 들어간 건 사실이야. 그걸 파악하기에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지.”

일단 현실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절망감이 찾아왔다.

“하아~ 아주 철저하게 계산된 맛이구나.”

조성기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밥천왕의 메뉴와 조리법은 지성분식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그런 맛이었다.

“빌어먹을!”

쾅.

홧김에 내리친 주먹이 도마를 때렸다.

동시에 그 밑의 스테인리스가 웅웅웅웅~ 진동하더니 묘한 충격파를 만들었다.

와장창창.

갑자기 조리기구가 우르르 쏟아졌다.

국자, 뒤집개, 가위같이 벽에 걸어놓은 것들이 떨어졌고, 후라이팬 하나와 작은 냄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 시발!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강형우는 곧이어 닥쳐올 재앙을 확인했다.

고춧가루와 비법 양념통이 코앞에 쓰러지면서 매캐한 가루가 푸확 하고 피어올랐던 것이다.

“쿠헉, 쿨럭, 컥. 씨발! 크헉. 컥컥. 에잇~. 끄어억.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

“확실히 성기는 몰라.”

그걸 안다면, 자신을 보고 저렇게 환하게 웃어줄 리가 없었다.

아니, 알고도 저런다면 정말 상종 못 할 천하의 개새끼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김밥천왕의 맛을 기획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강형우는 무려 보름 가까이 출근도장을 찍으면서 살폈지만 가게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김밥천왕을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원래 조성기는 점심 때 카운터만 보고 퇴근했다.

그다음 코스는 근처 드럼PC방이었는데, 요즘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우리 길드장이 나 좀 꼭 보고 싶데. 그러면서 장비 좀 빌리면 안 되냐고 사정사정하는데…….”

너 그러다 전에도 몇백만 원짜리 칼, 사기당하지 않았었나?

“내가 인성 하나는 좋잖아. 그래서 이름도 그렇게 바꾼 거구. 에이, 걱정하지 마! 요즘 나 챙겨준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널 챙기는 거냐? 네 지갑을 챙기는 거지?

호구 예약한 녀석이 걱정돼서 몇 마디를 해주긴 했다.

돌아온 건 정색한 표정으로 따지는 차가운 말투였다.

“너, 나 무시하냐? 하긴 옛날부터 그러긴 했지. 야! 나 그때의 조인성이 아니야. 지금 한창 잘나간다고.”

대놓고 가슴을 툭툭 치는데, 정말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하지만 참았다. 며칠 전의 그 일 이후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조성기가 살짝 변한 내 얼굴을 봤는지 갑자기 말투가 달라졌다.

“다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아니거든? 하여간 나 바쁘니까 간다! 그리고 너 오면 신경 써서 음식해 주라고 황 주방장님한테 말해놨으니까. 맛있게 먹고 가고. 그럼 다음에 보자!”

조성기는 그렇게 후다다닥 사라졌다.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사실 보름 가까이 김밥천왕을 들렸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뭔가 깊은 이야기를 하려 하면 조성기가 눈치껏 피했다.

조금 기분이 풀렸다 싶으면 밥맛 떨어지게 자기 자랑만 늘어놨고, 그러다 예쁜 여자 손님이 오면 잽싸게 달려가서 주문을 받았다.

때문에 녀석과의 관계는 지금도 겉돌기만 하고 있었다.

“만두백반 하고, 김밥 나왔습니다.”

서빙 알바가 그릇을 놓고 가자 강형우는 수저를 들었다.

저번에 갈비탕을 시킨 건 실패였다.

냉동 레토르트 식품을 데워서 약간의 비법육수를 더한 것으로 맛을 냈다. 해서 복잡 미묘한 맛을 분리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두백반이라면 다를 터.

후루룹, 후릅.

만두백반을 모조리 들이키고 천왕김밥까지 아작을 낸 뒤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지성분식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어쩔 수가… 없구나.”

외식이란 콘셉트에 맞게 만들어진 김밥천왕의 맛은 편안한 가정식을 추구하는 지성분식보다 약간 더 강했다.

짜고, 달고, 시고, 맵고 하는 자극이 그만큼 진했던 것이다.

만약 김밥천왕에 먼저 들렸다가 지성분식을 오게 되면 당연히 맛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터!

역시 분석이 형의 말이 맞았다.

내 가게만 보지 말고 남의 가게도 봐야 한다!

그 말대로, 김밥천왕이 먼저 지성분식을 살핀 게 분명했다. 먼저 선수 쳐서 미묘하게 강한 맛으로, 내 가게의 맛을 죽여 버린 것이다.

단골손님들조차 등을 돌린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어떤 음식도, 김밥천왕보다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하하. 하하하.”

너무 어이가 없으니 헛웃음이 다 나오네.

하지만 이걸로 결심이 섰다.

미련이 남으면 후련할 때까지 해보라고 했다.

이제 후련해졌으니 깔끔하게 정리할 수밖에!

그때였다.

-카오카오.

혹시나 싶어서 폰을 봤는데, 놀랍게도 상대는 순이 이모였다.

저녁에 잠깐 볼 수 있느냐는 톡이었다.

***

“형우야! 미안해.”

순이 이모는 손가락만 보면서 어색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 뭔가가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저기서 일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야. 전에 일하던 사람이 아프다고 그만둬서 자리가 났길래…….”

“아뇨, 이모. 괜찮아요. 한동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죠.”

지성분식이 바쁠 때는 퇴근까지 미뤄 가면서 일을 도와준 이모였다.

그간의 정과 도움을 생각하면 이런 걸로 감정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나 오해를 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정순이 이모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건, 절대 지성분식의 요리법을 알려준 적이 없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이모나 주방장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요?”

“그게…….”

이주 넘게 강형우가 가게에 찾아왔다.

뭔가를 찾는 눈치였는데, 조성기와 대화하는 모습에서 어색함을 느꼈단다.

“정말 조 사장님하고 친구 맞아?”

“예. 아직은… 요.”

원래 지성분식을 같이 하기로 했었다는 이야기는 모르고 있었다.

녀석이 잠수 탄 뒤로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둘이서 같이 음식을 한다거나… 아니지. 조 사장님은 라면 하나 끓이기 싫어하는데.”

“예. 걔 원래 음식 잘 못해요. 제가 예전에 몇 번 가르치긴 했는데, 소질이 없는 건지 노력을 안 하는 건지 실력이 안 늘더라고요.”

“그, 그렇지?”

순이 이모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그게 사실은…….”

순이 이모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김밥천왕의 조리법은 지성분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육수와 양념이 더해져서 나간다고 했는데, 그 비법은 황 주방장만 알고 있단다.

“따로 있는 뒤쪽 조리실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거든. 그런데… 내가 뭘 봤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설마했다.

아! 내가 아는 바로 그거였다.

“하! 똑같구나. 똑같아.”

만들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비법육수란 게, 고작 이거였다니.

“아! 짜증 나.”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걸렸다면 꼼짝없이 당했겠지.

문제는 알고 있음에도 답이 없다는 거?

“호오, 호오. 흐으읍, 흐으읍.”

억지로 호흡을 이어 나가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럼에도 성질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노력하고 준비했는데, 고작 이런 거에…….”

지성분식을 차리기 전까지의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오픈 이후에도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쉬는 날마저 가게에 나와서 준비하면서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 모든 건 오직 하나였다.

언젠가는 손님들이 자신의 진심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내 음식의 맛을, 내 삶의 방식을, 내 노력을 격려하고 박수 쳐주지 않을까?

살아왔던 인생이 가치 있다고 해 주지 않을까?

그게 음식을 하고, 이 가게를 차린 거고, 잠을 줄여 가며 노력한 이유였다. TV에 나오는 달인이나, 명장들처럼 한 분야에서 노력을 해 인정 받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분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수많은 부침과 시달림, 고생을 겪고도 뜻과 의지를 꺾지 않았기에 지금에 자리에 올랐을 테니까.

강형우 역시 각오를 했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후우~”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붙잡았다.

그제야 몇 가지 퍼즐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천경 어르신의 응원과 박첨기의 이해할 수 없는 제안, 그리고 조금씩 다시 늘기 시작하는 손님들까지 말이다.

어쩌면 정분석도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강형우는 허무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육수를 쳐다봤다.

그 정체는 고작, 소고기 향을 담은 맛다시다였다.

이제는 업소용 공장에서도 쓰지 않을 그런 방식으로 육수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사실 MSG가 나쁘니, 화학조미료가 문제이니 말은 많았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거 하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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