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2화 (12/251)

# 12

12화 붙어보자. 김밥천왕

연한 갈색의 선글라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핏의 회색 세미정장.

신발은 아침에 닦고 나왔는지 반짝반짝 광이 났고, 슬쩍 보이는 손목시계는 못해도 백만 원은 훌쩍 넘어 보였다.

나이는 정확히 가늠하긴 힘들지만 깔끔하게 올백머리 때문인지 대충 서른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 남자가 김밥천왕의 문을 열고 나왔다.

멈칫.

강형우와 눈을 마주친 건, 정말이지 찰나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태연히 옆을 그냥 지나쳐 갔다.

만약 강형우가 아니라면, 아니, 장백호의 기억을 얻기 전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흐으음. 뭔가…….”

왜, 느낌이란 게 있지 않는가?

살다 보면 경험에서 나오는 그런 거.

왠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힐끗 뒤를 쳐다봤는데, 남자는 태연히 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예. 박 실장님. 일은 잘…….”

목소리가 급격히 줄어들어 대화내용은 알 수 없었다.

단지 말투에서 느껴지는 경쾌함만이 있을 뿐.

고개를 갸웃거린 강형우는 일단 심호흡을 했다.

저 남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려 넉 달 만에 조성기와 마주하는 자리였으니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한번 붙어보자, 김밥천왕!

딸랑~

맑은 종소리가 들리고 강형우가 기린빌딩 김밥천왕에 입성을 했다.

“어서 오세… 오! 형우야~”

조성기의 표정이 확 살아나는 게 보였다.

너무도 반가워하는 걸 보니 감정이 복잡 미묘했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좋게 웃으면서 얼굴 볼 사이가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십 년을 한동네에서 살았던 친구였다. 상황이 거지 같았지만, 그 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조성기는 가장 친한 친구로 내 이름을 떠들고 다녔다.

그게 가끔은 부담이 되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문제들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솔직히 우리 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

“성기야… 오랜만이다.”

강형우는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새끼, 성기라니… 나 이름 바꿨잖아. 몰라?”

앵?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조금 황당해하는데, 조성기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팔을 툭 쳤다.

“아! 그래. 그거 이야기하려고 전화했는데, 너 안 받더라? 바쁜가 싶어서 몇 번 하다 말았는데…….”

“그랬… 나?”

일부러 피한 건 맞지만 조성기의 말을 들으니 살짝 짜증이 났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직접 찾아오기라도 할 것이지.

녀석에게는 고작 그 정도 의미밖에 없었나 싶어서였다.

조성기가 꺼낸 건, 반짝반짝한 주민등록증이었다.

“짠! 봐라.”

“이게 뭐…….”

녀석을 쳐다보는 순간 멍~ 해졌다.

친구 외모를 따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도와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170㎝이 안 되는 키였는데, 어라? 조금 커졌다.

슬쩍 보니 무려 7㎝ 정도나 되는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거야 많은 남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이템이니 그렇다 치자.

저 얼굴은 또 뭐란 말인가?

중학교 때 일진들한테 잘못 맞아서 약간 휘어진 코가 바로 섰다.

딱 그 정도면 좋았을 뻔했는데, 눈 사이에 뭘 집어넣었는지 콧등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쌍꺼풀도 과하게 하는 바람에 오히려 느끼해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거슬린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속눈썹 연장술이었다.

나름 자연스럽게 한다고는 한 것 같았다.

문제는 녀석의 얼굴이 개구리를 닮았다는 거다. 그러니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남자친구들끼리 생긴 거 따지면 뭘 하겠는가?

오십보백보요, 거기서 거기지.

오히려 본인 좋다면 그만이란 생각을 했었다. 게다가 자신감이 생겨서 매사에 당당해지면 훨씬 보기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였다.

하필이면 개명한 이름이 조. 인. 성. 이라니!

“그래, 조인성. 앞으로 날 연산동 조인성이라 불러.”

그러면서 조성기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데 진심으로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얼마 전 제대한 조인성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리고 얼굴 좀 손 봤다? 어때 괜찮지? 조금은 조인성 닮지 않았나?”

그러면서 깐죽거리는데, 하아~ 진짜 생각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원래 이런 놈인 줄은 알고는 있었는데, 거의 넉 달 만에 본 친구한테 이게 할 소린가 싶었다. 밥 먹기도 전에, 식당입구에서부터 속을 박박 긁어 버린 것이다.

이런 기분이라면 정말이지 뭘 먹어도 토할 것 같았다.

“야~ 근데, 진짜 오랜만이긴 하다. 나도 장사한다고 바빠서 정신이 없었거든. 그래, 밥은 먹었어? 내가 뭐라도 하나 해줄까?”

“아니, 그게…….”

조성기를 보니, 여길 파악하러 왔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때였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로 들어왔다.

“어유, 조금 늦었어요. 사장님.”

시계를 보니 9시 25분이었다. 아무래도 주방 이모가 출근할 시간인 모양이었다.

“이모, 늦어도 십오 분 전에는 오라고 했잖아요.”

“그게, 유치원 차가 늦는 바람에…….”

“그래도 그렇지. 어째 매번 시간을 못 맞춰요. 에이~ 됐어요. 들어가세요.”

조성기가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하자 아주머니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다 강형우와 눈이 마주쳤다.

“어? 형우?”

“아! 순이 이모?”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성분식에서 같이 일하던 사이였다. 가게 그만두고 김밥천왕에서 일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시간에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때 눈치 없게도 조성기가 깐죽거렸다.

“아! 맞다. 순이 이모가 그러더라고, 전에 니 가게에서 일했다던데?”

“어… 맞아!”

“그래서, 내가 바로 뽑은 거야. 다른 아주머니들도 몇 분 오셨는데…….”

조성기의 쫑알거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순이 이모는 많이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식당 일을 오래해서 그런지 사람 대하는 게 능숙했고, 어르신들의 농담도 적당히 받아칠 줄 알았다. 또, 단골이 오면 눈치껏 적당히 넉넉하게 주는 법도 알아서 자신이 없을 때도 주방을 믿고 맡길 만했다.

그런 순이 이모는 같이 일할 때와 다르게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어딘가 피곤한 기색도 보였고, 어색해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미안해서일지도.

“오늘 황 주방장님이 조금 늦는데요. 먼저 재료 손질부터 하시고…….”

“예, 사장님.”

“아! 맞다. 형우야, 뭐 먹을래? 그래도 이모 음식 솜씨는 좋다?”

같이 주방에서 일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순이 이모는 다른 가게 몇 군데에서도 연락이 온 걸로 알았다.

하지만 애들 때문에 집 근처에서 일하길 원해 지성분식에서 함께했던 거다.

“그러니까 우리 가게에 잘 나오는 음식이…….”

조성기는 정말이지, 태어날 때부터 눈치는 빼먹고 나온 게 틀림없다.

***

우선 메뉴판부터 살폈다.

김밥만 무려 열 종류였다.

두툼한 천왕김밥이 2,000원에 김치, 참치, 치즈, 계란, 땡초가 2,500원. 떡갈비, 돈까스, 새우가 3,000원에 스페셜 김밥이 3,500원이었다.

이건 일반적인 수준인데, 500원 할인을 생각하면 정말 저렴한 편이었다.

라면 역시 여타 다른 분식집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외에도 김치, 된장, 순두부를 비롯한 기본 찌개에 고추장과 묵은지가 추가되어 있었고 꽁치와 고등어찌개에는 별표까지 그려져 있었다.

또, 각종 덮밥에 돈까스까지 추가되었고, 만두, 라볶이, 칼국수, 돌솥 비빔밥, 육개장, 갈비탕 등등해서 가짓수만 6, 70개는 넘어보였다.

이 많은 걸 누가 다 만드는지, 실로 경이로울 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슬쩍 주방을 쳐다봤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조성기가 말한 황주방장에, 순이 이모와 다른 이모 한 분, 그리고 주방 보조가 한 명이였다.

홀 서빙 알바도 둘이었다.

20대 초반, 여리여리한 체형의 여자들이었는데 약간 달라붙는 폴로 셔츠에 짧은 치마를 입고 일했다.

조성기 이 새끼는 카운터에 앉아서 계산만 하면서 그걸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가게는 참 넓긴 넓었다.

지성분식은 테이블 여덟 개를 빡빡하게 채웠다.

반대로 김밥천왕은 간격에 여유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4인 식탁만 열두 개였다. 거기에 밖과 벽 쪽에 있는 자리까지 치면 한번에 60명 이상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이 넓은 가게가 다 찰 수 있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서서히 손님이 오더니 10시가 넘자 절반 넘게 차버린 것이다.

원래 식당은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저녁 장사는 5시부터가 피크였다.

그걸 감안하면 장사가 아주, 아니 엄청 잘된다고 볼 수 있었다.

당황스러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성분식의 단골들 얼굴만 벌써 대여섯 명이었다. 인근 PC방 야간 알바에 편의점 직원, 학원 강사까지 강형우와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린 것이다.

솔직히 미안했고, 이 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는 적진이었다. 상대를 분석하고 파악하기 위해, 그럼으로 다시 가게를 살리기 위한 전초전인 것이다.

“우선 기본이 되는 라면 세트부터.”

강형우의 주문에 조성기가 손뼉을 쳤다.

“맞아. 기본이 중요하지. 기본이…….”

기본도 안 된 새끼가 말하니까, 기분이 참 뭐 같았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자 반전이 펼쳐졌다.

후루룹, 후룹.

잘 익은 탱탱한 면발, 라면치고는 깊은 국물.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더기까지 일반 분식집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김밥 역시 퀄리티가 높았다.

일단 천왕김밥이란 이름답게 두툼했다.

그럼에도 밥에 적당한 간이 되어 있어 싱겁지 않았고, 야채가 많지만 식감도 적당했었다.

강형우는 천천히 음식을 분석하려 했다.

“어때? 맛있지?”

눈앞에 자칭 조인성 개구리가 훼방만 놓지 않았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강형우는 가볍게 라면 세트를 비우고 주위를 돌아봤다.

많은 손님들이, 다양한 메뉴를, 가볍게 즐기고 있었다.

평균 식사시간은 10여 분 내외.

음식 나오는 시간까지 치면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시간당 삼회전이고 지성분식을 기준으로 평균을 계산하면…….

퓨슉~

순간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세상에 분식집 월 매출이, 일억이라니.

게다가 지성분식을 기준으로 플러스 마이너스를 넉넉하게 계산하면…….

조성기의 월 수익은 무려 삼천만 원에 가까웠다.

***

하아~ 돌겠다.

정말이지 답이 보이질 않았다.

김밥천왕은 완. 벽. 했다.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절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유일한 단점은 사장이 조성기라는 것.

그것만 빼면 정말이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일단 라면을 보자.

지성분식은 저렴한 사리면에 대용량 스프를 쓴다. 거기에 각종 야채를 더하고 특제 비법 양념과 계란을 추가한다.

원가는 대략 500원 선이니 3,000원에 팔아서 2,500원 정도가 남는 셈이었다.

여기에 인건비나 가스비 같은 기타 비용을 포함하면 순수익은 800에서 1,000원 정도였다.

하지만 김밥천왕은 달랐다.

일단 기본재료가 ‘씬라면’이었다.

유통업체를 통해 대량으로 받아도 개당 550원 수준이니 원가부터 웃돌았다.

여기에 야채가 100원 정도고 고춧가루를 비롯한 양념이 100원, 계란까지 더해지면 거의 900원 선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푸짐한 건더기였다.

씬라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표고버섯, 이걸 외국 수출품 기준보다 더 넣은 것이다.

건표고 가격이 있으니, 한 그릇에 대략 100~150원 수준.

하지만 이것 하나가 더해짐으로 일반적인 분식집 라면 수준을 탈피한 것이다.

정말이지 놀랄 노 자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조성기가 이럴 줄은 상상 밖이었다.

그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뒤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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