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화 아버지는 괜찮아
네버, 담에, 고골 순서대로 검색창에 이름을 쳤다.
화면이 뜨는데, 이씨!
네버 인물 검색에는 이상한 아저씨 하나만 떴다.
환갑 넘은 얼굴이 강주혁일 리가 없지.
그래서 블로그를 뒤졌는데, 광고에 광고, 또 광고에 광고만 보였다. 요즘 바이럴 마케팅인지 뭔지가 유행하면서 비슷한 내용만 계속 반복해서 나왔다.
“네버는 넘기고, 담에는…….”
이놈이나 그놈이나 쉽게 되는 법이 없었다. 여전히 비슷한 그 광고들이 여기서도 떴으니까.
마지막으로 고골이었는데, 무슨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겨우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전설의 강실장’이라!
일부러 카메라를 피했는지 얼굴 정면이 나온 건 없었다. 멀리서 실루엣이 나올 정도로만 찍힌 게 전부였던 것이다.
헌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대는 걸 보니 확실히 뭔가가 있었다.
낯설지 않은 이끌림이라고나 할까?
한참을 검색하니 강주혁의 연관검색어로 두루 컴퍼니, 황룡, 희망국수, PC방 체인 등등이 떴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 희망국수?”
몇 년 전일 거다.
-tvM 특별 기획, 다시 시작합니다.
케이블 방송이고 다큐멘터리였다. 흔한 연예인 하나 나오지 않는데, 시청률 5%를 찍은 희대의 명작이었던 것이다.
기억하기로, 20년 무사고 택시기사가 사고로 팔을 다쳤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한 번씩 마비가 와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취직 못한 아들이 있으니 일은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평생 운전만 하던 분이라 세상 물정에 많이 어두워서였다.
그렇게 몇 번의 사기를 당하고, 인간 불신에 걸렸다는 걸로 첫 회가 시작됐다.
이후의 내용은 택시기사 아버지의 고군분투기였다.
설거지의 가치를 깨닫고, 음식을 배우고, 작은 국수집을 열기까지의 치열했던 과정들이 하나씩 방송되었다.
무엇보다 강형우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장면이 있었다.
아들이 공부를 포기하겠다고, 아버지하고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제야 이루어지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진솔한 대화!
“아버지는요? 아버지도 힘들잖아요.”
“네 엄마 만나고, 너 낳고, 결심한 게 있어. 남들처럼만 살자고, 그러고 싶은데, 내가 배운 게 없다. 무식하고, 아는 것도 없고. 그나마 평생 했던 게 운전인데, 이제 그거마저 못하게 됐어.”
택시기사 아버지는 사고로 다친 팔을 들었다.
“회사에서도 계속 일해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차마 말이 안 나오더라. 택시 기사는 손님을 태우고 달리잖니. 그런데, 갑자기 이게 말을 안 들어서 괜히 사고라도 난다고 생각해 봐.”
아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십 년 무사고? 쉬운 게 아니다. 남이 박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니, 그걸 알면서도 손님 태우고 다니는 건, 내 욕심이지. 목숨이 걸린 일인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니.”
아버지는 힘겹게 고백을 이어나갔다.
“나 하나 잘못되면 그만이지만, 그 손님도 가족이 있을 거고, 나처럼 아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하니까, 운전대 잡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더라고.”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에서, 그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형우를 울린 건 이 한마디였다.
“아버지는, 힘들어도 괜찮은 거야.”
“흐읍.”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 했다.
그때, 이 방송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공장 기숙사만 아니었다면 소리 내서 엉엉 통곡을 했을 거다.
그건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아버지 강호민이 사고가 났다.
음주운전자의 불법 좌회전 때문이었다.
그 결과 강호민과 음주운전자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유를 알게 된 나는 한참을 울어야 했다.
아버지는 내 등록금 때문에 무리하신 거였다. 회사 마치고 대리운전을 하시다 사고가 난 것이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깟 돈이 뭐라고!
아버지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그렇게 고함을 내질렀었다.
결국 난,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군대로 도망치고 말았다. 더는 대학을 다닐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철이 들고,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가장으로써의 책임을 느끼면서야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방송이 나왔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후우우~”
가슴 먹먹하고, 답답하고, 아련해지고, 미안해지는 기억이 잠시 눈물을 불렀다.
감정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꼭 대학은 가라고 하시면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던 게 떠올라서였다.
“아버지는 형우를 보면, 다 괜찮아.”
***
♪~ ♪♪
박차고 태어나서, (아싸, 아싸, 아싸)
겁날 게 뭐가……
오늘도 박차고 일어나, 열심히 일하라고, 알람이 열일하고 있었다.
제길 휴일인데 조금만 더 자게 놔두지. 새벽까지 생각이 많아서 뒤척이는 통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말이다.
매정한 알람 같으니라고.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몸은 정직했다.
평소대로 일어나 옥상에 나간 강형우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심호흡을 하다가보니, 자연스럽게 토납법으로 이어졌다.
호오오오~
미친 듯이 숨을 내쉬고.
흐으으읍~
폐가 터질 것처럼 들이마셨다.
그 긴 과정에서 아랫배가 찌릿찌릿 거렸다.
한참을 반복하자, 차가운 초겨울 바람도 무시할 정도로 몸에 열이 났다.
“계속 반복하면 몸속에 노폐물이 빠진다고 했지?”
그래서인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어제의 알콜이 날아가고, 밤새 뒤척이면서 쌓인 피로까지 단숨에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자자! 출근하자~!!”
휴일이라 해도, 강형우는 쉬지 않았다.
평소에 준비하기 어려웠던 걸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할 게 없네.”
양념도 충분했고, 사골 육수도 남았다.
담가 놓은 간장과 숙성고추장, 묵은지도 맛을 내려면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또, 어제 꼼꼼히 걸레질을 했기에 청소도 필요 없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출근한 건 부지런히 움직이는 습관을 만들려고 해서였다.
음식 장사는 꾸준함과 성실함이 필수였으니까.
“그래,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 생각했던 걸 정리하는 거다!”
강형우는 입구 쪽 테이블을 책상 삼아 메모노트를 꺼냈다.
어제, 밤새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도 떠올랐고 그래서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장남이고 성인이었다.
어머니는 아직 괜찮다고 했지만 집안의 가장이라는 책임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절실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이어져 가게를 살릴 방법에 대해 밤새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분석과 강주혁의 말이 돌파구 같았다.
내 가게만 보지 말고 남의 가게도 봐야 한다!
개미에게는 개미만의 싸움 방식이 있다!
아직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 먼저 성기 놈 가게에 한번 가 보자!”
지금까지는 일부러 미뤄왔다.
먼저 피한 것도 사실이었다. 조성기의 전화도, 녀석 동생과 아버지의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았던 것이다.
막상 만나게 되면 주먹부터 날아가는 걸, 못 참을 것 같아서였다.
홍태구의 신신당부도 떠올랐다. 만약 조성기를 보러 가게 되면 무조건 자신을 불러 달라고, 절대 혼자 가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야 사람 목숨 하나 살린다나 뭐라나.
“일단 이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검색을 하다가 유독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프랜차이즈!
말 그대로 김밥천왕은 프랜차이즈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지성분식이 살아날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직감이었다.
강형우는 카운터 아래 서랍에서 가장 큰 공책을 꺼냈다. 분식집을 차리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면서 틈틈이 메모한 것들을 옮겨 적어 모아놓은 것이다.
삶의 달인, 생생한 특공대, 잘 먹고 살자.
그 같은 방송에 나온 맛집들의 노하우가 상당수 있었다.
물론 실험해 본 건, 전체의 백분의 일도 안 된다.
하지만 이걸 참고로 한다면 음식 맛내기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남은 건 무수한 시행과 반복으로 나만의 비율과 맛을 찾아가는 것뿐!
공책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못 할 건 없고, 안 하는 게 있을 뿐이다.
그 외에도 주옥같은 말들이 있었는데, 강형우는 다짐하듯 천천히 읽어나갔다.
“스스로 만든 게 없다면, 언젠가는 따라잡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 일어난다고 해야 하나?
몸이 짜릿하게 떨리더니 흐릿하게나마 머릿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아!”
강형우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복잡한 실타래도 결국 실마리가 있는 법, 그걸 시작으로 풀어 나가면 언젠가는 풀 수 있었다.
“그래, 시작은 일단 부딪혀 보는 것부터다!”
***
“으리으리하구나.”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일층에 식당들 간판이 달리고 나서 일부러 피해 다녔다. 횡단보도 앞임에도 괜히 빙 돌아갔고 근처를 지날 때도 시선을 돌려 버렸다.
기린 빌딩.
조성기가 로또 걸려서 지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처음에 홍태구한테 건물 이름을 듣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기린이랑 자기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듣고 나니 기가 막혔다.
기린은, 조성기가 하던 게임에 있는 성 이름이었다. 그걸 가져와서 건물 이름으로 붙여 버린 거다.
온라인에서 못 이룬 성주(?)의 꿈을 현실에서나마 이루겠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바뀌긴 확 바뀌었구나.”
강형우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살폈다.
듣기로 그때 로또 1등 당첨자는 셋이었다. 세금을 제하고 받은 실수령액은 십오억이 조금 넘는다는데, 녀석 성격답게 전 금액을 여기에 몰빵해 버린 것이다.
원래는 낡고 오래된 3층 건물이 있었다.
70년대에 2층으로 지어진 걸 증축해서 3층 일부를 창고로 썼는데, 실제로는 거의 방치 상태였다. 게다가 시설이 낡고 오래 되어서 2층 절반 정도는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가격이 시세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조성기는 건물을 사자마자 담보 대출을 끌어왔고 곧바로 공사를 시작해 버렸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어진 5층짜리 빌딩.
“허, 이게 원래는 내 어릴 때 꿈이었는데.”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다.
젊은 남자들의 경우 한창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돈 많이 벌어서 건물을 지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를 주고 싶다고.
지하에는 노래방을 넣고, 1층에는 음식점, 2층에는 주점, 3층에는 PC방, 4층에는 당구장…….
이렇게 되면 하루 일과가 쉽게 정해진다.
느지막이 일어나 1층에서 점심을 먹고, 3층, 4층 가서 놀다가 저녁에 2층에서 술 마시고, 심심하면 지하로 내려가 노래 좀 부르다가 5층 집에 와서 자는 거.
이게 동네에서 좀 산다는 형님들의 여유 있는 생활 패턴이었다.
나중에 철들고 나서는 그게 결코 좋은 게 아닌 걸 알았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강형우의 눈에는 그것만큼 멋있는 삶은 드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 벌어서 건물을 사자는 그런 꿈을 꿨었는데…….
“하아~ 성기 녀석, 다 이뤘네.”
방식이야 어찌 됐든, 눈앞에 5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아직 지하하고 3, 4층은 입주가 안 됐지만, 2층에는 호프집 간판이 하나 걸려있었다.
홍태구 말로는 세가 많이 비싼 편이라 상가가 거의 안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입지가 좋으니 다 차는 건 시간문제란다.
때문에 월세를 비싸게 부른 거고, 실제 부동산 문의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문제는 조성기였다.
지하에는 무조건 PC방이란다. 게임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들어오는 조건이 자기 전용 자리를 마련해주는 거였다.
그러니 가게가 빨리 안 나갔겠지.
“아니지,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긴 해!”
강형우라면 직접 PC방을 차렸을 거다.
대학 입학 초기에 잠깐 알바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 매니저 형 말로는 사장이 매달 이천만원 이상 벌어간다고 했었으니까.
“어?”
그때 강형우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김밥천왕의 중간에 조성기가 있었다.
그 맞은편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딱 봐도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알던 조성기가 행동하지 않을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침 정장 사내가 바깥으로 나오다 강형우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