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9화 식당이라
이직을 생각했기에 좀 더 알아봤다.
이름 정분석. 나이 서른여섯.
출장급식업체 ‘내 밥상, 니 밥상’ 대표이자 연매출 20억이 넘는 알짜 회사 사장이었다.
실제로 큰 공장 두 곳의 식당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었으며, 배달도 제법 많이 했고, 공단 내에서도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했다.
난, 두말없이 회사를 옮겼다.
거기서 삼 년을 일했다.
바닥 청소부터 시작해 조리부를 거쳐서 영업까지 했고 그제야 세상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요식업, 외식업계, 식품산업. 그리고 창업과 프랜차이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이 세계의 뒷편은 엄청났다.
분석이 형이 그랬다.
연 매출 20억이 넘는 자기 회사는, 전체 시장으로 봤을 때 고작 구멍가게라고.
무엇보다…….
“맛집 골목 하나 성공하면, 그 일대 연매출이 몇십억이야. 한 동네에서 제대로 자리 잡으면 이년 만에 아파트를 살 수 있고, 구역 급으로 올라서면 반년 만에 외제차 몰아.”
“정말요?”
“속고만 살았냐?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밀면 가게가 하루에 손님만 천오백 명을 받는댄다. 오천 원 잡고 곱하면 월 매출 이억이 넘어.”
자투리 자르고, 옵션 붙이면 연 매출 이십오억이다.
메뉴는 밀면에 만두가 전부인데도.
보석이 형이 설명하길 방금 말한 밀면집은 도시급이었다. 부산에서 삼대 밀면, 오대 밀면 하면 빠지지 않는 가게라는 것이다.
여기서 전국구급으로 가면, 아예 매출의 급이 달랐다.
가족 단위의 직영점으로 최소 다섯 개 이상의 대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적게는 연 매출 수십억에서 많게는 백억 대에 이른단다.
“그 정도 되면 거의 기업이라고 봐야지. 쉽게 설명하면 프랜차이즈들이 그래.”
그럭저럭 자리 잡은 치킨 체인이 백억 대 초반에서 후반까지였다. 거기에 조금 고급지다 싶으면 연 매출이 천억이 넘는다는 것이다.
업계 1위라는 미스터 보스 피자가 본점 연 매출만 이천억이 훨씬 넘는다나?
“중요한 건, 한 번 자리 잡으면 어지간한 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십년 장사한다 생각해 봐. 사고만 안 치면 사돈에 팔촌까지 삼대가 먹고 살아.”
집안 소유의 회사가 있으니 취직은 걱정 없고, 월급은 적어도 복지가 확실하다. 아들딸, 시집 장가 갈 때 못해도 집 한 채는 기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끼리 함께 일할 수 있는 거지.”
그 한마디가 가슴에 확 박혔다.
엄마 박혜숙은, 고향 친구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동생 강영지는 고등학생이고, 그 밑으로 쌍둥이들은 중학생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진로조차 정하지 못한 상황.
만약 자신이 식당을 해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동생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시킬 수도 있었고.
“식당이라…….”
이건 가장이기에 해야 하는 고민이었다.
당장 월급이 세서 이 회사에 있는 거지만, 천날 만날 죽을 때까지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고 독립을 해야 한다면 음식장사도 나쁘지 않을 터.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내게 새로운 지향점이 생겼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눈앞에 성공적인 롤 모델이 있지 않는가?
***
“나도 처음에는 작은 분식집부터 시작하긴 했어. 물론 어머니가 하시던 가게를 물려받은 거지만.”
정분석의 과거는 험난 그 자체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분식집을 물려받았는데, 하필 옆 골목에 쌔끈한 최신식 김밥 가게가 들어섰다.
깔끔한 인테리어, 친절한 서비스, 차별화된 맛.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단골들이 빠지기 시작하자 매출은 반의반 토막이 났다.
“정말 죽을 것 같았지.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더라고. 마치 밤바다 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우울증이 불러온 건, 자살시도였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월세가 밀려서 보증금 절반을 까먹은 상황, 혹시나 해서 집주인이 찾아왔다가 연탄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마 열흘 정도 입원했을 거야. 퇴원하고 다시 가게에 와보니까, 막 눈물이 나더라고. 정말 별것 아니었는데.”
쇠그릇 하나였다.
설거지 할 때마다 수세미로 박박 긁어서 온갖 흠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얼마나 오래됐는지 약간 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그릇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더라고. 근데, 갑자기 울컥하는 거야.”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어린 자신을 업고 포대기로 감은 채 설거지 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 그릇에 담긴 라면과 국수를 먹고 자랐고, 손님들에게도 내갔다.
고작 쇠 그릇이지만, 가게의 역사였고 어머니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정분석은 그 그릇을 붙잡고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단다.
그런 후에야 가게부터 살리자고 결심을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별수 있나? 몸으로 때워야지.”
정분석은 하루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자며 배달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새벽 한시에도 도시락을 만들어서 날랐고, 단 한 그릇도 정성껏 배달했다.
동시에 배달에 맞게 음식에 변화를 주었다.
몇 분이면 면이 퍼지고 맛이 바뀌는지, 또 음식이 안 식게 어떤 포장재를 써야 하는지, 온도에 따라 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한 것이다.
그런 노력 때문일까?
두 달이 지나자 손님들 전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넉 달째가 되자, 밀린 월세를 갚아나갈 수 있게 됐고, 반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직원까지 뽑았다.
정분석이 말하길, 그때 처음으로 확신을 가졌단다. 이 길에서 성공의 빛을 봤다는 것이다.
“한 일 년 정도 그렇게 하니까, 단체 주문이 들어오더라고. 그것도 수시로. 결국 가게 하나를 더 얻었지.”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 지점이 생기면서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정분석은 이때 공격적인 경영을 결심했다.
아침 여섯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하루 네 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든지 주문을 받았다.
반경 10㎞ 이내 혹은 10분 거리면, 5,000원짜리 단 한 그릇도 배달을 갔다. 산복도로 끝에 계단 오십 개를 올라가야 하는 집도 빼먹지 않고 말이다.
그 덕에 단골들이 생겼고, 단골이 단골을 소개시켜 주는 일들이 이어졌다. 심지어 이사를 가도 분석이 형네 가게 근처로만 간다는 거다.
“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니고. 양정동 일대 야간 영업 하는 술집은 우리가 거의 배달했지.”
그렇게 오 년이 지났다.
어느덧 배달전문 식당이 되었고, 가게만 여섯 개가 되었다. 부산진구, 연제구에서 야식하면 첫 번째로 꼽히는 가게가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인연이 생겼다. 정분석의 성실함을 눈여겨보시던 분이 스카우트를 제안한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서 불꽃이 번쩍 튀는 거야. 이건 된다. 확신이 서더라고.”
그 회사가 지금의 회사였다.
내 밥상, 니 밥상.
정분석은 삼년을 운영한 뒤, 그분에게서 정식으로 회사를 사들였다.
“처음으로 외제차를 산 것도 그때였지. 남들이 음식장사니 뭐니 하면서 무시하기에 비싼 걸로 확 뽑았던 거야.”
당시, 무지개 공단에서 좀 되는 공장 사장이나 탈 수 있는 차였다.
그걸 몰고 밥배달을 갔더니 공장장들이 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BMW.
그 값비싼 외제차는 지금에 와서 장식용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스타렉스로 출퇴근을 하고 일을 보면서, 어디 갈 때나 한 번씩 모니까.
맞다. 날 꼬실 때도 일부러 그 차를 타고 온 거다.
당시에는 속은 게 억울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제대로 타고 다니면 한 달 유지비만 내 월급 정도가 든다는데 별 수 있나.
“이 업계도 나름 괜찮다. 학벌이니, 인맥이니 하는데, 여긴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당시 분석이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며 무척 잘해 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날 매제로 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여동생이 회사에 들렸다가 날 보고 반했단다. 이상형이 나처럼 남자답고 듬직한 스타일이라나?
사실 꽤 괜찮은 누나였다.
챙겨주기도 잘했고, 한때는 진짜 친누나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때문에 여섯 살 연상이더라도 정식으로 사귀어 볼까 고민도 많이 했다.
물론 나중에는 크게 뒤통수를 맞게 되지만.
“형! 저도… 형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요?”
“왜? 자살 시도 해보게?”
정분석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각오가 섰느냐는 뜻이었다.
“죽을 각오로 한다면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맞아.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하고 싶으면 해 봐라. 도와주마.”
이때까지 분석이 형은 미래의 매제를 도와준다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처음으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지성분식을 고민한 게 이때부터였다.
***
“너, 표정이 음흉하다?”
“예?”
“무슨 생각 하는데?”
“아뇨, 별생각 안 하는데요?”
잠시 옛날 생각이 났지만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정분석의 눈치는 장난이 아니었다.
“너 똑바로 말해. 이상한 생각 하고 있었지?”
“에이 무슨… 형, 엘리베이터 왔어요.”
마침 타이밍이 좋아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15층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이 열렸다.
동시에 짐승 조카 셋이 튀어나왔다.
“삼촌~ 선물! 선물 없어요?”
“이것들이 맡겨 놨나?”
장난치듯 역정을 내었지만 조카들은 집요했다.
첫째는 키가 180㎝에 몸무게가 세 자리였다. 그건 둘째, 셋째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뚱뚱한 게 아니라 듬직해 보인다는 거?
심지어 이제 중학교 3학년인 첫째는 어째 나보다 수염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았다.
벌써 면도기가 필요한 성장이라니, 후우~ 두렵다.
“형우 왔어?”
“옙, 형수님. 저 왔습니다.”
난 짐승 조카들에게 선물로 사 온 운동기구를 던지다시피 주고는 잽싸게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유전자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형수는 키가 170이 훌쩍 넘었다. 그것도 나이 들어서 2㎝가 줄은 거라나?
체중은… 숙녀의 무게를 묻는 건 실례였다.
연애 시절에 분석이 형이 실수로 물었다가 가벼운 팔꿈치 치기에 갈비뼈가 나갈 뻔했었으니까.
어쨌든 이 집 식구들은, 분석이 형을 제외하고 전부 둥글둥글했다.
“들어왔으면 씻고, 샤워하고 싶으면 해도 돼!”
“옙. 감사합니다.”
정분석도 그렇고, 강형우도 음식 장사를 한다. 몸에 냄새가 배는 게 당연하니 형수는 항상 집에 들어오면 씻는 거부터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장애물이 존재했다.
“이놈들아 떨어져라!”
조카 셋이 달라붙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보나마나 용돈 달라고 조르는 건데, 다행이 형수의 등짝 스매시가 사태를 종료시켰다.
후다닥 씻고 나오니, 한 상 거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손이 큰 형수답게 아주 뷔페를 차려 놨다.
달달한 간장 갈비찜에 콩나물이 잔뜩 올라간 고추장 불고기, 명절에나 볼 수 있다는 커다란 생선조림도 보였다. 거기에 밑반찬만 여덟 개가 넘으니 조카들이 왜 쑥쑥 자라는지를 알 것 같았다.
“배고플 텐데, 일단 먹어!”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형수 배승희는 내 밥그릇에 고기를 넉넉하게 올려줬다.
그런 뒤, 분석이 형과 내 잔에 소주를 채웠고 본인은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따 버렸다.
간만에 만남이었지만, 나름 즐거운 자리였다.
소주 빈 병이 하나씩 늘어나고 조카들도 슬슬 졸려 하고 있었다.
“어머? 벌써 열시 반이 넘었네? 형우는 오늘 자고 갈 거지?”
“아! 아뇨. 내일 일이 있어서 이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 아침 해 주려고 해장국도 준비해 놨는데… 그럼 조금 싸줄까?”
저 조금이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4인분이 기본에, 조금이란 말이 더해지면 6인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집 식구 기준으로는 한 끼였지만.
하지만 나는 아니다.
혼자 자취하고, 대부분의 음식을 가게에서 해 먹는 걸 생각하면 사양하는 게 맞았다. 전에도 그렇게 받았다가 일이 바빠 깜빡했더니 냉장고 한구석에서 곰팡이 꽃이 피었던 것이다.
“어휴, 형수님 괜찮습니다.”
눈웃음으로 애교까지 부려가며 배승희를 달래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정분석이 눈치를 줬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이야기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