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멘탈 갑
아랫배가 뜨끔하다.
막 어디라고 표현하긴 그런데, 왜 거 있잖아.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참았던 오줌 때문에 바짝 올라온 내 튼실한 물건(?)이 닿는 부분.
딱 배꼽 아래 거기가 단전이었다.
“호오오오~”
아주 온몸을 쥐어짜듯 숨을 다 내뱉었다.
그 상태에서 멈추고 억지로 뭔가를 삼키는데, 정말 찌릿 하게 느껴지는 게 있는 거다.
공가공(空可供) 공가만(空可滿)이라 했나?
비우는 것이 곧 이바지하는 것이요.
그러하기에 채워지는 법.
사실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비웠는데, 그 빈곳이 그냥 비워지는 게 아니라 뭔가로 차서 비운 것처럼 느껴진단다.
사실,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만 할 뿐.
“흐으으으읍.”
다시 숨으로 채우니, 있었던 게 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토납법이구나.
강형우는 다시금 호흡에 집중했다.
비우고, 비운만큼 모르는 뭔가가 채워지고.
다시 숨을 들이마셔서 채우면, 차 있던 뭔가가 빠지면서 아랫배가 충만해지고.
이게 무아지경이라 그러면 맞을 지도 모른다.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은, 아무런 잡념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호오오오, 흐으으읍.”
하면 할수록, 처음에는 살짝 짜릿하던 느낌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정리를 했는데.
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이거… 맞는 건가?”
확실히 했다는 느낌은 맞았다.
왜냐? 장백호의 기억이, 경험이, 터득한 깨달음이 그게 옳다고 하고 있었다.
근데 왜… 뭐가 없지?
내공 수련하면,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막 날아다니는 거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음이 떠올랐다.
아! 이 지랄을 몇십 년 해야 그렇게 되는 구나.
“하, 그럼 그렇지. 첫술에 배부를 리가 있나?”
솔직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미 절대고수에 오른 장백호의 경험과 기억 때문에 기초를 빠르게 느낀 거였다. 아니라면 평생을 해도 모를 그런 감각이었던 것이다.
“하다 보면 되겠지.”
길게 보기로 했다.
솔직히 현대인이 무공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는가?
그저 조금 튼튼해지고, 더위를 덜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다.
장백호의 경험으로 느끼길 현대의 도시에서 내공을 모으기는 실로 어려웠다.
일단 공기가 탁하고, 잡기가 많이 있었다.
쉽게 표현하면 매연이라 보면 된다. 그러한 것들이 순수한 축기를 방해하기에, 잡기를 배제하는데 더 많은 호흡의 힘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정말 신기하네. 이게 된단 말이지?”
일단 된다는 게 놀라웠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하다 보면 알게 될 일.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얻은 건, 호흡법이 전부가 아니었다. 장백호의 인생을 겪으면서 훨씬 더 값진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건,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머지는 부가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솔직히 장백호의 인생은 대단했다.
항상 거침없이 살면서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한테나 당당했다. 동생을 아꼈고, 식구들을 사랑했으며, 최후에는 만인들의 존경 속에서 눈을 감았다.
무엇보다, 그가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거다.
그런 장백호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멘탈 갑!”
이게 최고였다.
실제로 장백호는 젊은 시절, 아주 그냥 다 씹어 먹어 버린다.
발에 걸리면, 다 파헤쳐 버리고.
앞을 막으면, 밟아서 뭉개고 지나가고.
뒤통수 때리면, 맞아주고 통수부터 묻어 버렸다.
거기다, 그렇게만 사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꼬인 일도 간단히 해 버렸다.
왜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 풀다가 짜증 나서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장백호는 거의 그런 인간이었다.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왜 복잡하게 머리를 쓰냐?
험험.
그렇다고 그렇게 머리가 나쁜 인간이란 건 아니었다.
장백호는 정당하게 통행세를 받기 위해 무식하게 힘으로 산을 뚫어서 길을 만들었다.
산을 돌아가면 열흘, 하지만 그 길로 지나가면 사흘이었다.
장사치들 입장에선 통행세를 내는 게 오히려 나은 상황.
여기에 맛들인 장백호는 다양한 사업(?)까지 벌였다.
사람 몸통만한 나무를 수십 개씩 뽑아와 계곡에 다리를 만들었고, 커다란 호수 밑을 파서 땅굴을 만들기도 했었다.
계곡 사이를 날아다니며 줄을 연결해 다리를 놓기도 했고, 늪지대 중간에 바위 수십 개를 던져 넣어 메워 버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통행세를 받기 위해 아주 길 자체를 새로 만들어 버렸던 거다.
그걸 지방 호족들이 인정을 해주었고, 무림맹주한테 인증까지 받았다.
마지막으로 황제도 허가를 내줄 정도였다.
뒷감당이 무서워서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살다간 장백호가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한번 후련하게 잘 살았다.
“진짜 멋진 삶이었지!”
한번 사는 인생!
이상하게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동시에 장백호처럼 남자답고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 나도 성공하자!
우선 지성분식을 살려서 돈도 벌고,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확장부터 해보자.
멋지게, 거침없이 살아보는 거다.
지금이야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살면서 했던 말 중에 이게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미련이 생기면 후련할 때까지 해 봐라!
딱,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 말이었다.
그래, 후련할 때까지 일단은 달려보는 거다. 부딪히고 깨져도 뒤는 돌아보지 말고.
“후우~”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토납법은 효과가 있었다.
일단 호흡 집중하는 동안 복잡했던 머리가 맑게 비워졌다. 한동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머리에 걸렸던 과부하가 풀렸던 것이다.
그러자 최근의 일들이 하나하나 돌아볼 수 있었다.
“하! 내가 참…….”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멘탈 갑! 이었다.
덕분에 관조 비슷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
얼마 전 지하철 역 입구에 큰 상가건물이 들어서면서 많은 가게들이 생겼다.
특히 김밥천왕이 제일 문제였다.
마치 노린 것처럼 지성분식과 대부분의 메뉴가 겹쳤다. 원래 체인점에 없는 세트 메뉴가 생겼고, 심지어 가격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오픈 이벤트로 할인이 들어갔다는 거다.
메뉴 하나당 오백 원씩이니 세 개 시키면 천오백원이 저렴했다.
학생들 용돈이야 뻔한 상황이고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방문한다 치면 한 달에 몇 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대부분의 단골들이 가게를 옮긴 이유가 그거였다.
이후 매출은 바닥을 쳤고, 같이 일하던 주방 이모 두 분이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 장사 안 되는 거 뻔히 보이니 미안해서 월급 못 받겠단다.
그렇게 두 분을 보내고 열흘 뒤에, 이모 한 분이 김밥천왕에서 퇴근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이 쓰렸다.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이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태구를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같이 동업하기로 했던 친구가 있었다. 무려 이천만 원이라는 돈을 빌려줬던 바로 놈이었다.
조성기.
그 녀석이 로또를 맞았단다.
그것도 무려 20억짜리를.
연락이 끊긴 게 그래서였다. 그 돈으로 낡은 건물을 사고, 담보 대출에 지인들 돈까지 무지막지하게 끌어들여 건물을 새로 올렸던 것이다.
거기까지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았으니, 건물주가 돼서 신나게 살고 싶었겠지.
문제는 이후의 행보였다.
조성기는 자신이 술김에 떠들었던 이야기대로 사업을 진행시켰다.
상권 독점!
이 미친놈이 정말 그 짓을 시작한 것이다.
황당한 건 첫 번째 목표가 나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의 일이 그래서 벌어진 것이다.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 게다가 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 준 건 자신이었다.
물론 방식은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도심 외각의 작은 마을.
인구 오천 명도 안 되는 작은 동네에 네 개의 편의점이 동시에 생겼다.
회사 브랜드도 다르고 서비스나 판매 제품도 미묘하게 달랐다.
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파격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자 동네 구멍가게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입구에 있던 마트 하나도 결국 장사를 접기로 결정했다.
이후 이 동네는 편의점 네 곳만 남았다.
변화는 이때부터였다.
마트에서 800원에 팔던 소주 한 병이 편의점에선 1,300원이었다. 과자 값도 15%가 올랐고, 휴지와 생리대를 비롯한 생필품은 20%를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은 편의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마트가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었으니까.
이때서야 밝혀지는 사실이 있었으니, 편의점 네 곳의 사장이 동일인이라는 거였다.
심지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비율까지 올린 상황.
본사는 물건을 대주는 역할만을 할 뿐 가게 운영에 전혀 간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사장에게 남은 건 버는 족족 쓸어 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네 곳의 편의점들 때문에 어떤 가게도 마트도, 체인점도 이 동네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소주 한 병은 1,900원까지 올랐고, 아직 이 마을에는 편의점 네 곳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완벽한 상권 독점이었다.
한 다리 건너서 듣기로, 사장은 투자금의 다섯 배 이상을 벌어갔다고 했다.
아무런 투자도, 경쟁도, 노력도 없이.
그건 말 그대로 독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만이 많든 적든, 어차피 살 사람은 다 사게 되어 있었으니까.
당시에는 흘리듯이 이야기하고 말았다.
조성기도 대충 듣다마는 듯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랬는데, 정말 그 같은 방법을 실행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건가?”
한참을 생각하던 강형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배산역을 중심으로 연산 3동과 연산 6동, 망미동이 겹쳐 있었다.
여기서 지역 상권이라 함은 버스 두 정거장 이내를 말했다.
사람이 걸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가 딱 그 정도기 때문이다.
인구수는 대략 삼만 명 전후였다.
편의점 세 군데, 분식집이 열, 치킨 집이 다섯에 중국집이 네 군데였다.
배달하는 가게들과 식당, 술집을 치면 더 되기는 하지만 전부 합해서 서른 곳이 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먹는 쪽으로는 정말 뭐가 없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로가 동서로 나 있는데, 북쪽과 남쪽은 산으로 막혀 있었다.
택시 기본요금 거리에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유흥가인 연산로터리가 있었다.
반대쪽도 차로 5분만 가면 수영교차로, 광안리, 해운대가 나온다.
가격 싸고, 청결하고, 서비스 확실한 가게들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왜 이런 동네구석에서 놀겠는가?
때문에 배산역은 반쯤은 죽은 상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점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
지하철역이 있고 학교가 여러 곳이었다. 학원도 있었고, 원룸도 많아서 최소한의 수요는 존재했던 것이다.
그걸 조성기가 장악한다면?
가격을 마구 올리는 짓은 못하겠지만, 최소 사오 년간은 경쟁 없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 터.
무엇보다 그 자금을 발판으로 상가들을 늘린다면 다른 가게들이 상권에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이후, 동네 안쪽 재개발만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무려 일천 세대가 넘는 대단위 아파트가 그곳에 생길 테니까.
“설마 거기까지 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