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어라, 되는데
“생각 좀 정리하자!”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주변을 살폈다.
가까스로 참고 있던 담배가 무척 땡겼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갑을 쪼개 피는 걸로 욕구를 달랬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머리가 혼란스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강형우는 방에 불을 컨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쪽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갔다.
평상 아래, 나무다리 틈 사이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었다.
미진이가 볼까 봐 감춰 놓은 건데 다행히 몇 개비가 만져졌다.
치익. 칙, 치칙.
“가스가 다 됐나?”
재수가 없으려니 라이터까지 말썽이었다.
결국 주방 가스레인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레버를 돌렸는데…….
펑!
“앗뜨!”
강형우는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털었다.
냄새를 보니 머리카락이 그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닥에 떨어진 담배가 무사하다는 거.
“하아, 이런 걸로 안심하다니… 나도 참!”
강형우는 떨어진 담배를 주운 뒤, 가스레인지를 쳐다봤다.
이전 자취방 주인이 그 전 주인에게 물려받았다는 놈이었다. 물려준 그 전 주인도 중고로 샀다는 녀석인데, 한 번씩 앙탈하다가 이번에 한번 심통을 부린 거다.
돈 많이 생기면 저놈부터 갈아 치우던가 해야지.
아니… 이사가 먼저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근사한 놈으로 바꿔주고 갈 거다.
소박한 상상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킨 강형우는 다시 옥상으로 나갔다.
연산3동 공영주차장 옆 마을버스 정거장.
거기서 더 올라간 위치에 자취방이 있었다. 그만큼 지대가 높아 아랫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아! 경치만 봐도 취하겠다.”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지하철 배산역을 중심으로 여러 상가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불빛들은 하늘에 뿌려진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문득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마치 이 광경이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산동네 옥상에서 보면 도심의 네온사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치열하게 발버둥 쳐야했다.
그랬기에 강형우도 엄청난 노력을 했다.
농담 삼아 자서전을 쓰면 백과사전 두께는 되지 않을까 했을 정도니까.
실제로 지성분식 오픈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얻은 레시피와 각종 자료들을 참고로 했다. 그걸로 무수히 많은 테스트를 했고 몇 달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메뉴 하나하나를 완성해 나간 것이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았다.
묵은지나 숙성 고추장 같은 건 시간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후우.”
몇 모금 빨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담배가 다 타들어 갔다.
이럴 때 나오는 건 푸념이었다.
“쳇, 남들은 이럴 때 무슨 기연 같은 게 생긴다는데…… 난 뭐냐?”
가끔 소설들 보면 그런 것들이 나온다.
옥상에서 한탄하고 있는데 벼락을 맞는다든가, 아니면 유성 같은 게 떨어진다거나, 무슨 신인지 신발인지, 씨발 놈인지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이후 특별한 능력이 생기거나, 무슨 시스템 창 같은 것들이 나타나 주인공의 성공을 돕기도 했다.
특히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은 만능이었다. 못하는 게 없었고, 뭘 해도 술술 잘 풀렸다. 심지어 현대에서, 슈퍼맨급의 초능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나 요즘 인기 있는 글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거였다.
모든 걸 알기에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였다. 마치 맵핵을 켜고 게임하는 느낌이랄까?
강형우는 그런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 이 주인공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번은 옆에 있던 태구라고 작가 지망생 친구 놈이 비웃음을 날렸다.
“병신, 인마! 다시 돌아갔다 와도 의미 없어. 결국 너라는 놈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현실은 똑같이 흐를 거고, 지금 이 시간이 되면 똑같이 이 자리에서 소설이나 보고 있을 거라고.”
여기까지야 장난기 가득한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태구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쩌면 우린 몇 번이나 회귀했을 수도 있어. 단지 그 기억이 떠오르기 전에 출근하고, 밥 먹고, 정신없이 일해서 잊어먹은 거일지도 있지.”
역시나 작가 지망생다운 환상적인 개소리였다.
현실에 치여서, 먹고 살기 바빠서 까먹는다니.
태구 녀석은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말했다.
“이 형님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라. 소설은 그냥 재미로 보는 거야.”
“누가 뭐래?”
“다들 처음에는 너처럼 아니라고 하지. 그러다 중증이 되면 이게 현실에서도, 아니,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겼으면 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그런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거고.”
이놈 눈빛이 정신질환 초기 환자를 보는 의사처럼 바뀌었다.
여기서 실수하면 안 된다.
태구 녀석의 입은 소문의 근원이었다.
수시로 친구 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얻어먹는데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라나?
그러면서 어디 집에 수저가 몇 개고, 누구하고 누가 연애를 하고, 누구 집이 차를 바꿨는지까지 샅샅이 꿰고 있었다.
심지어 옆집 아저씨네 개 복순이가 덜컥 새끼들을 낳았는데, 단번에 애들 아빠까지 맞춰버린 적이 있었다.
자칭 암행어사.
타칭 홍반장, 혹은 홍셜록이 이놈이었다. 희한하게도 동네일마다 안 끼는 데가 없는 거다.
홍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회귀니 뭐니 하는 상상은 딸딸이 칠 때 생각하는 거 하고 비슷해. 거기선 이상형이란 이상형은 다 불러올 수 있잖아. 문제는 그 이후다. 현자타임이 오면 더 서러워. 다시 모쏠의 서글픔이 화악~ 이렇게 가슴을 치는데…….”
새끼, 비유 한 번 기가 막히다.
이래서 작가 지망생인가.
“어쨌든 여친이 없다는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거지. 남는 건 사라진 내 후손들과 구겨진 휴지뿐인 거고. 그러니까… 그런 상상은 딱 책 볼 때만 해!”
태구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제목은 ‘십만 년 살다 회귀한 SSS급 남자가 유명 작가가 되어 재벌 되다!’였다.
하여간 말과 행동이 다른 녀석 같으니라고.
솔직히 태구 녀석의 말대로 그런 소설들은 재밌다. 게다가 잠시 그런 상상들을 하면 즐겁기도 했다.
실제로 손님 뜸한 시간에 잠시 쉬면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간간이 보는 소설만큼 꿀잼은 드문 것이다.
그랬기에, 새벽의 꿈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인건가?”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 약했다.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힘이 세진다거나 체격이 커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덩치는 여기서 더 커지면 곤란하다.
안 그래도 주방이 좁아서 불편한데.
“문제는… 하필이면 그 기억이라는 건데…….”
다른 사람들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삶은 짧았고, 특히 마지막은 화끈하게 불태우고 불나방처럼 끝이 났다.
선명하지 않은 건 그래서 같았다.
하지만 장백호는 달랐다.
화전민으로 살다가 우연히 사부를 만났고, 무공의 기초라는 내공을 배웠다. 그러다 삼세방이라는 사파가 쳐들어와 마을을 약탈했고 그 와중에 가족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장백호는 먹고 살기 위해 큰 도시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길 몇 년이 지났다.
자신이 수련하는 내공이 불과 관련 있다는 걸 깨닫고 주방 일을 시작했으며, 그 가게에서 나중에 사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게 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지.”
강형우는 그 처절한 복수극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마을을 약탈했던 삼세방이었다.
삼세방은 지방 도시 몇 곳을 장악한 세 개의 문파가 합친 거였다. 대부분 지방 호족들로 백여 년의 역사를 자랑했지만 무너지는 데는 불과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장백호의 무공이 세 명의 방주와 장로들, 호위 무인들까지 단숨에 불태워버렸으니까.
이후, 삼세방이 약탈한 재물들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서 장백호는 본격적으로 무인의 길을 걷게 된다.
팔무존.
당대의 최고수 여덟을 그렇게 물렀다.
염황수라 장백호는 그 중의 한명이었으며 그의 신분은 녹림의 총채주였다.
“대단하긴 대단했지. 무공도 무공이지만, 말발이 정말…….”
흔히들 십만 마교, 백만 개방이라 그랬다.
하지만 장백호는 녹림의 숫자가 천만이 넘는다고 했다. 평범한 민초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도끼를 들면, 전부 녹림도가 된다는 것이다.
다분히 뻥이 심하긴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영락제 사후, 한왕 주고후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역모를 준비하던 바로 그때였다.
역병이 돌면 수십만이 죽고, 흉년이 들면 수백만이 죽었다.
탐관오리들이 강호의 무뢰배들과 결탁해 축재를 일삼았으며 살인과 약탈이 횡횡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전란의 시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이들이 산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니 화전을 일구고 목피로 명을 이어가던 민초들의 숫자는 천만으로도 부족하리라.
“이렇게 기억한다는 건…… 확실히 기연이긴 기연인 모양인데.”
중요한 건, 어디 써먹을 데가 없다는 거다.
육백 년도 훨씬 전의 인물이니, 그에 대해 알아봐야 뭘 하겠는가?
“아니지. 아니야.”
강형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장백호가 처음 사부를 만났을 때, 그때의 기억이 무척이나 선명했다.
바로 내공이었다.
***
“쓰, 이거 되는 거 맞나?”
기초적인 토납법이라고 했나?
기초는 개뿔.
지금껏 읽은 무협소설이 수백 권이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 존재하는 호흡은 책에 나오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호~ 하면서 숨을 내쉰다. 그것도 폐를 쥐어짤 정도로 무식하게 공기를 내뱉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최대한 참는다. 숨이 막히고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핑 돌 때까지 무작정 버티는 거다.
대략 이십에서 삼십 초 정도였다.
그다음 목구멍을 조금씩 열어 가며 흐읍~ 하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무려 일 분에 걸쳐서 천천히.
이것도 온몸에 나른함이 퍼질 때까지 해야 한다.
가슴이 부풀고 배가 빵빵하게 나오고 손발이 저릿저릿할 때까지.
그다음 억지로 침을 삼키면 평소보다 몸속 움직임을 잘 느낄 수 있단다.
그때 아랫배가 찌릿하다는데… 씨발, 어지러워 죽겠다.
강형우는 결국 오 분도 하지 못했다. 하프 마라톤을 한 시간 삼십 분대로 끊는 강철체력인데도 말이다.
결국 실패의 원인을 다른데 돌렸다.
“후우, 담배를 끊어야 하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27년을 살면서 단전호흡 한번 해본 적 없었다. 게다가 난이도 역시 훨씬 높으니 한 번에 된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그 인간은 잘만 하던데.”
장백호는 고작 여섯 살의 나이에 단번에 성공했다.
타고난 무재라나 뭐라나.
“역시 이것도 재능이 필요한 건가?”
강형우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서둘 일은 아니었다.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고, 그 방식과 내공의 흐름까지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직접 장백호의 인생을 살아 봤기에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 보자!”
남자가 가오가 있지!
한 번 했다고 포기하면 뭐가 되냐?
무엇보다, 조금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
그냥 삽질을 할 때는 모르지만, 일단 한 번 파서 뭔가 푹 하고 흔적이 남으면 괜히 뿌듯한 거.
문제는 그 전까지는 삽질의 연속이라는 거지만.
“호오오오, 흐으으읍.”
우선 숨을 내쉬어서 몸속의 찌꺼기를 뺀다.
그다음 들이마셔서 기운을 채운다.
그러라고 말 자체가 ‘호흡’이라 했다. ‘호’ 하고 내쉬고, ‘흡’ 하고 들이마시는 게 맞다고.
근데, 이게 뭐냐?
갑자기…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