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화 (프롤로그) (1/251)

# 1

프롤로그

인생 한 번 더럽게 꼬였다.

장사는 망하기 직전에 여자 친구한테 차였고, 친구는 원수가 됐다.

그런 나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난 결심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거침없이 살기로.

1화 그럼 잘 먹었네

“가게 접어야 하나?”

차가운 이성은 그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슴은 미련을 놓지 못했다.

군대 제대하고 공장 다니다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갔다.

하루 평균 네 시간 정도 자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고, 그러면서 알뜰살뜰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이천만 원이었다.

은행을 통해 청년 창업대출로 천오백을 받았고, 같이 동업하기로 했던 친구한테 차용증까지 쓰고 이천만 원을 더 빌렸다.

그 돈으로 권리금 천만 원, 보증금 이천에 월세 오십짜리 그럭저럭 장사 좀 되는 분식집을 인수했다.

위치는 썩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대로변 안쪽의 골목이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오 분 거리였다. 게다가 큰길로 나가는 길목이었고, 근처에 학생들도 많아 원룸 건물들도 즐비했다.

또, 역 근처 상권도 발달되어 있어 수요는 충분할 거라고 봤다.

무엇보다, 분식집 안쪽으로 재개발 호재까지 겹쳐 있어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강형우는 그렇게 얻은 분식집에 미래를 걸었다.

동네 구석의 오래된 가게, 때문에 많은 것을 손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내부공사와 인테리어에 천만 원을 투자했고, 직접 참여도 했다.

우선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주방 동선을 효율적으로 바꾸었다.

그 덕에 공사비가 올라갔지만 투자라고 생각했다.

바닥 타일부터 화장실 청결제품, 벽장식 소품과 집기들까지 직접 골랐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워 간판 디자인까지 스스로 만들었다.

이름은 지성분식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 말의 앞을 따와 지은 거다.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강형우의 분식집은 두 달 만에 동네 맛집에 등극했고 석 달째부터는 가끔 재료가 떨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넉 달째부터 야외 테이블에 파라솔 영업까지 시작했고, 직원까지 더 뽑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엄마나 여동생, 혹은 여자 친구가 도와주러 와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월매출 삼천만 원!

테이블 여덟 개의 동네 분식집치고는 실로 대단한 성과였다.

나이 스물일곱에 억대 연봉 사장.

그 꿈이 코앞에 있었다.

그랬는데…….

“거시기, 이 개새끼.”

후우, 욕이 안 나올라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장밋빛 미래를 망친 건 이십 년지기 친구 놈이었으니까.

지금 지성분식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아니,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해야 파리라도 날리는 법 아니겠는가?

그게 더 서글펐다.

“후우~”

나오는 건 한숨이요, 땡기는 건 담배였다.

원인은 단순했다.

***

지하철 출구 앞에 제법 큰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동시에 일 층에 여러 가게가 오픈했다.

대한민국 식당을 평정한 김밥 천왕.

차별화된 떡볶이와 튀김, 순대로 동네 분식을 쓸어버린 조가네 떡볶이.

중식당의 대중화를 이끈다는 홍화반점.

또 유명 프랜차이즈인 프랑스바게트와 엄마 버거, 심지어 번개치킨까지 한꺼번에 개업한 것이다.

그게 불과 넉 달 전이었다.

지하철역이 있지만 유동인구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근처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정도였고 주요 번화가들 중간에 위치한 그저 그런 지역이었다.

그런 동네에 대형 상가가 생겼고, 유명 가게들이 턱하니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동네 상권은 몸살을 앓았다. 마치 동네 구멍가게 입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선 격이었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불과 석 달 사이 동네 분식점 상당수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일단 업종이 겹치는 가게들이 첫 번째였다.

김밥 천국이 그 시작이었다.

IMF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 프랜차이즈는 당시 무수한 동네 분식점들을 잡아먹고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그저 그런 가게로 바뀐 상황이었다.

김밥 천왕은 김밥 천국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세련된 카페식 인테리어와 깔끔한 음식 맛, 그리고 오픈 주방을 통해 위생을 강조했다.

메뉴 역시 더욱 개량되었고 친절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까지 했었다.

그 결과 십 년째 역 앞에서 장사를 하던 김밥집 사장은 가게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동네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화끈 오뎅이었다.

처음 조가네 떡볶이에 손님이 몰릴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소위 말하는 오픈발이라 생각한 거다.

무엇보다 오뎅집 사장은 음식 맛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법 육수와 숙련된 경험으로 만드는 튀김은 많은 단골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승부는 의외의 곳에서 벌어졌다.

바로 청결과 서비스였다.

떡볶이집의 진공포장은 오뎅집의 튀김 포장을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했고, 예쁜 여자 알바들의 미소는 단골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화끈 오뎅은 술장사를 병행해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시간문제였다.

이후, 비슷한 업종들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가게를 내놨다.

시장 떡볶이, 학교 앞 분식, 동네 반점, 옆집 국수, 형님네 버거, 최고빵 제과까지 모두가 폭격을 당했던 것이다.

심지어 여러 번 방송출연까지 했던 삼십 년 전통의 우동집까지 조만간 닫는단다.

겉으로는 장사가 힘들어서 접는 거라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사를 계속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사실 강형우도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성분식은 일단 동네 맛집으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손님들도 꾸준했으며 단골들도 적지 않았기에 매출이 약간 주춤할 뿐일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문제는 대형 상가의 사기적인 공격이었다.

짜장면 두 그릇에 탕수육 작은 걸 묶어서 단돈 만 원을 받았다.

프라이드치킨 두 마리 포장 가격이 만 원이었고 떡볶이, 튀김, 순대 세트가 팔천 원에, 통닭다리 버거 세트가 오천 원이었다.

그런 오픈 기념 할인 이벤트가 무려 석 달씩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할인권과 서비스 쿠폰들이 무시무시하게 뿌려졌고, 매일매일 엄청난 전단지가 동네를 휩쓸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

동네 가게들 상당수가 사라져서 상권 독점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누구일까?

강형우는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고, 좌절하고 말았다.

이 같은 방식을 알려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술김에 했던 말인데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하아, 진짜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연신 한숨만 쉬고 있던 가운데.

딸랑.

“어서 오세요.”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손님이 왔으니 자동적으로 인사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순간 강형우는 멈칫하고 말았다.

“쯔, 다 죽어 가는구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피식 웃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두시 반.

저 노인은 항상 이 시간에 지성분식을 찾았다. 왜냐하면 이때가 자신의 점심시간이었으니까.

“어르신 오셨어요?”

“왜? 내가 못 올 곳에 왔느냐?”

“아, 아뇨.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강형우는 쓰게 웃으며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냈다.

백발노인은 당연한 것처럼 주방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한잔해라.”

“예? 아직 영업시간이…….”

“사장 얼굴이 죽을상인데 손님이 오겠느냐? 가게 입구부터 기운이 안 좋은데.”

백발노인은 가방을 열고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대충 봐도 소주병 크기였다.

그 안에 무슨 뿌리가 서너 개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딱 봐도 범상치가 않았다.

백발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산도라지다.”

“도라지요?”

“너처럼 또라이 같은 놈이지. 얼마나 악착같이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지, 잔뿌리까지 손상 없이 캔다고 고생 좀 했다.”

자세히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지간한 산삼도 저리 가라 할 만큼 길이가 엄청났다. 서너 개로 보였던 게 실제로는 한 뿌리였던 거다.

무엇보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강형우는 잠시 계산을 했다.

원래 일하는 시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비워도 멀쩡했지만 지난 일 년간 장사하면서 가능한 술은 피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점심 장사 타임은 끝났다.

조금 있으면 오후 알바 지혜도 올 테고, 아침처럼 저녁까지 손님 하나 없이 공칠 확률이 컸다.

그러니 한두 잔 정도는 괜찮으리라.

무엇보다… 조금 전 장사를 접기로 결심했기에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백발노인이 말했다.

“강 사장, 알지?”

“아! 예.”

강형우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백발노인이 좋아하는 건, 우리 가게의 간판 메뉴인 지성라면과 지성김밥이었다.

일단 조리용 육수부터 올린다.

둘이서 먹을 물 양을 맞추고 곧 바로 사리면 두 개를 깠다.

통을 열어 대용량 스프를 한 수저 크게 넣고, 특제 양념도 티스푼으로 두 개를 넣었다.

그 뒤 다진 야채 한 줌을 넣은 다음 입구로 가 김밥을 준비했다.

우선 김 위에 간이 된 밥을 펴고 깻잎을 깔고 우엉을 잔뜩 넣었다.

그 위에 양파 마요네즈 소스를 뿌린 후 기름 뺀 참치를 올렸다. 두툼한 계란지단, 시금치, 맛살까지 더한 뒤 손으로 스윽스윽 단숨에 두 줄을 말았다.

탕, 탕, 탕.

리듬 타는 듯한 칼질에 김밥이 깔끔하게 잘렸고, 이내 예쁘게 접시에 올라갔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바글바글 끓는 물에 사리면을 넣고, 절구에 생마늘을 빻았다.

두어 번 면을 들었다 놓는 사이 이 분 삼십 초가 지났다.

빻은 마늘을 넣고, 가볍게 저은 다음 적당히 익은 면부터 그릇에 덜었다.

그 뒤 계란물을 풀고 삼십초를 기다린 뒤 불을 껐다.

그릇 두 개에 국물과 야채를 나눠 담은 뒤 특제 향미유를 살짝 뿌리면 끝이었다.

습관처럼 타이머를 쳐다보는데, 팔 분이 지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웠다. 최근 손님이 밀리지 않아서인지 손이 많이 느려진 모양이었다.

“쩝,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지.”

김밥 두 줄에 라면 두 그릇이니 뭐 그럭저럭이었다.

라면과 김밥을 들고 테이블로 가니, 이미 백발노인은 세팅을 마친 상태였다. 수저를 놓고 노란 단무지와 김치를 먹을 만큼 덜어 놓은 뒤, 스텐 물컵을 소주잔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향이 퍼졌다.

“향이… 좋네요?”

“산삼보다 귀한 거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에이, 도라지가 좋아 봤자 도라지죠. 산삼에 비할 바가 됩니까?”

피식 웃자 백발노인의 어깨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는 게 분명했다.

“이런 또라지 같은 새… 아니, 요즘 산도라지가 얼마나 귀한데. 험험, 이거 부르는 게 값이야. 돈 천만 원도 우습다고.”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라지가 천만 원이라니.

“뭐, 한 백년 묵은 놈인가 보죠?”

“꼴에 눈썰미는 있구나!”

백발노인이 인정하니 오히려 머쓱해졌다.

“알겠습니다. 일단 배부터 채우시죠.”

라면이 앞에 놓이자 백발노인은 입맛을 다셨다.

젓가락으로 가볍게 휘휘 젖더니 일단 면발을 한 움큼 들었다.

후후 불어서 식힌 뒤, 다시 담그고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이내 입을 그릇으로 가져갔다.

후루루루룹, 후루룹.

순식간에 면발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런 뒤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켜는데, 꿀꺽꿀꺽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릴 정도였다.

쓰읍, 진짜 맛있게 먹네.

강형우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백발 노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

“지성 세트 나왔습니다.”

오후 알바 지혜가 지성라면과 지성김밥을 내려놓았다.

라면 3,000원, 참치김밥 2,000원.

이걸 묶어서 4,500원에 팔았고, 덕분에 지성분식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가 됐다.

백발노인은 젓가락으로 잠시 음식을 살펴보더니 이내 식사에 들어갔다.

대략 십 분이 안 걸렸을 거다.

다 먹고 일어난 백발노인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라면 아주 맛있구먼. 미슐랭 별 두 개도 아깝지 않을 정도야.”

강형우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백발노인을 쳐다봤다.

한때 인터넷에 돌던 벌칙인가, 뭔가가 떠올라서였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잘 먹었네.”

황당하게도 백발노인은 계산도 없이 그냥 가려고 했다.

“저 어르신. 사천오백 원입니다.”

“그래, 잘 먹었다니까?”

“예?”

대체 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백발노인은 당당했다.

오히려 태연히 손가락을 들어 벽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저거야.”

“예?”

“저거라고.”

“서, 설마요?”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는데, 백발노인이 말했다.

“하긴,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동안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맞으세요?”

“허허, 젊은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하여간 잘 먹고 가네.”

그렇게 백발노인이 사라졌고, 난 한참 동안 헛웃음만 흘려야 했다.

노인이 가리킨 벽에는 장난삼아 적어 놓은 문구가 있었다.

<100세 이상 음식값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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