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통합 (68/70)

통합

하이란족을 통합하기 위해 군을 움직인 알마리온은 거칠 것이 없이 하이란족을 몰아붙였다.

단순히 병력의 수만 따진다면 하이란족의 병력이 세 배 가까이나 많았지만, 전술은 물론 지휘자와 병사들의 능력 등 모든 점에서 하이란족은 알마리온이 지휘하는 이스턴족의 상대가 아니었다.

“항복하시오. 그것만이 그대는 물론, 그대 일족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일 것이오.”

“으음…….”

하이란족의 그레이트 칸인 붉은눈동자는 알마리온의 권유에 갈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 또한 거대 부족을 이끄는 그레이트 칸으로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대의 자존심이라면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오. 하니 부디 그것으로 인해 저 많은 이들을 주검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 진심이시오?”

“그대 또한 그레이트 칸. 당연히 그만한 대우는 받게 될 것이오.”

“…….”

한참을 서로 시선을 맞추던 붉은눈동자는 고개를 돌려 알마리온의 눈길을 피하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심을 한 듯 말에서 내려 무기를 내려놓고 땅에 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이란족의 칸인 저 붉은눈동자와 전사들은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위대하신 그레이트 칸께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붉은눈동자의 항복을 받은 알마리온 또한 말에서 내려 그의 앞에 서서는 담담한 표정과 어투로 말하였다.

“나 대이스턴족의 그레이트 칸인 알마리온은 그대 하이란족의 칸인 붉은눈동자와 전사들의 항복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소.”

“감사하옵니다, 그레이트 칸이시여!”

붉은눈동자로부터 항복을 받아 낸 알마리온은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초원에 운집해 있던 수만의 전사들의 귀에 분명히 들리도록 말하였다.

“들으라. 지금까지 대이스턴족과 하이란족은 서로 적이었다. 하나 지금 이 순간부터 두 부족은 하나가 되었으며, 형제가 되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그리 크지 않게 말하는 그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초원에 운집한 5만에 달하는 초원의 전사들의 귀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런 알마리온의 능력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감히 그를 거역할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였다.

“형제가 된 이 순간부터 그 이전의 모든 빚과 은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나를 무시하는 처사라 여기어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하이란족이 주변 부족들을 정복하는 과정 중에 몇몇 부족들로부터 원한 관계를 맺은 일이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앞으로 사흘 동안 우리 모두가 형제가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를 벌이도록 할 것이다!”

“와!”

이것이 전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초원에 모인 전사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것에 만족하였고, 그러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기에 수만 전사들에게서는 온갖 형태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을 더 준다면 그들은 다시 힘을 복구하게 될 것입니다, 주군.”

“레이 경의 생각이 옳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로엔에 정통한 후계를 세우는 것도, 그리고 그분들의 복수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멕테일러가 보내온 전령을 통해 로엔의 사정을 전해 들은 알마리온은 최종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지만 이미 결론이야 진즉부터 나 있는 것이었다.

“모두의 판단이 그러하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오. 하면 각 부족에서 최고의 전사 1천 명을 선발하도록 하시오. 그들에게 로엔의 복장을 갖추도록 하시오.”

결심을 굳힌 알마리온은 그 준비를 명령하였다.

“레이 경과 그나이제나우 경은 이곳을 부탁합니다.”

“충!”

안드라스와 그나이제나우에게 초원을 맡긴 알마리온이 각 부족에서 선발한 최고의 전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은 것은 때마침 한센이 코텐 성에 입성을 하였을 때였다.

“감축드립니다, 주군.”

“하하, 감사합니다, 대장. 대장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 수고랄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좀 많이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흠…… 피해가 많았던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장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지라…….”

“알겠습니다. 상단을 통해서 최대한 식량을 확보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저들이 대부분의 건물들을 파괴한 상태입니다.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주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것 또한 상단을 통해 최대한 지원토록 조치하겠습니다. 한데 치안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까?”

상황이 어려울수록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더욱 고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런 때일수록 치안이 더욱 확실하게 유지되어야만 그만큼 혼란을 수습하는 일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일단 주요 도시나 마을에는 병력의 일부를 남겨 놓았습니다만 그 이외의 지역까지는…….”

이곳에 오는 동안 한센은 가능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병력을 남겨 놓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경을 지키는 일이었기에 남겨 놓은 병력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여 그는 반드시 치안이 유지되어야 할 대도시나 주요 마을에만 일부 병력, 그것도 현지에서 치안대를 선발하여 이들을 지휘할 능력을 갖춘 이들을 주로 남겨 놓은 채 최대한 병력을 유지하여 코텐까지 온 것이다.

때문에 치안을 복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음을 알마리온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지요. 아무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텐에 입성하고 이틀 동안 알마리온은 당장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는 거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소렌토 인근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멕테일러와 합류할 때까지 알마리온은 거치는 모든 지역의 치안을 확립하는 데 주력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검은발족의 침략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지역들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

또한 그의 지시로 이루어진 물자 보급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와 마을 들에 대한 복구 또한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주군을 뵈옵니다.”

“그간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소렌토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있던 멕테일러 등이 알마리온을 마중 나와 있었다.

“현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보시는 것처럼 서로 대치 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보고도 받았고, 또 처음부터 한센으로부터 반정을 일으킨 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은 것이 있기에 특별히 다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지금 그다지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동안 몇 차례 전령들을 보내려 시도하였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검은발족이 물러난 직후 곧바로 혼테르군이 소렌토에 도착함으로써 소렌토는 이미 근 2개월 가까이 고립되어 버린 상태였다.

실상 반정에 성공을 한 이들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소렌토에 집결시켜 놓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알마리온의 세력이 워낙 강성하였고, 그가 반격을 시작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들로서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왕도인 소렌토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검은발족의 침략을 받게 되고 몇 차례 전투에서 패배하자 이들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예 항복을 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군요. 하면 며칠 더 지켜보다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병력의 규모라면 전부터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도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소렌토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 하지 못하였던 것은 반정군 인사 중에 더글러스 공작이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국 최고의 기사였던 그를 상대할 자는 왕국 내에서 오직 로엔달뿐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로는 대부분 더글러스가 왕국 제일의 기사라고 인정받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으로, 실제로는 더글러스보다는 로엔달이 좀 더 높은 수준까지 올라 있는 상태였지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이는 두 당사자와 그러한 두 사람보다 높은 수준에 올랐던 알마리온과 그나이제나우 정도였다.

“만약 반란의 수괴들이 포위망을 탈출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 일단 포위망을 굳히며 주군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멕테일러 경께서는 다시 한 번 군을 점검하시고, 이틀 후쯤 총공격을 감행토록 하겠습니다.”

“예, 주군.”

반정군을 총공격하겠다는 말에 다들 잔뜩 흥분해서 큰 소리로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각자가 맡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마스터를 뵈옵니다.”

“…….”

정령의꿈에 소속된 단원들이 모두 모인 것은 단원의 소집을 알리는 표식을 확인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한데 이들 중에는 자신이 부재할 때, 아니 그동안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온 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반정이 진행 중에 있을 당시 연회장에서 블리스를 호위하다 더글러스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을 당하였다.

반정이 있던 날 가장 치열했던 대결이었지만 칸과 더글러스의 대결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는 실력 차이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칸의 경우에는 국왕인 블리스를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었기에 자연 신경이 분산되어 예상보다 빨리 더글러스에게 제압을 당하였고, 블리스 등과 함께 그다음 날 곧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피해가 많군요.”

“……!”

기억하고 있는 정령의꿈에 소속된 대원들의 수는 3백 명. 하지만 지금 소환에 응한 자의 수는 모두 2백여 명이었다.

그 나머지는 근위군에 소속되어 있거나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다가 반정의 혼란 속에 사라져 버렸다.

“푸틴 경!”

“예, 마스터!”

“그대를 서브마스터로 임명하겠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틀 후 총공세가 있을 것이오.”

“이틀 후입니까?”

“그렇소. 그때 그대를 비롯한 남아 있는 대원들이 해 줘야 할 임무가 있소.”

“…….”

“저들이 내세운 국왕 일가를 비롯한 반정의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그대들에게 맡기겠소.”

“……!”

알마리온의 말에 푸틴 등은 크게 고무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두 번이나 주군인 국왕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치욕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경우야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그리하지 못하였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마음 깊이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또다시 주군인 블리스마저도 지키지 못하자 이제는 자괴감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규정 때문에 그런 것이었기에 내심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상태였다.

“그 임무는 푸틴 경이 잘 계획하여 실행토록 하시오.”

“예, 마스터!”

“그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놓친다면…… 그때는 그대들의 능력을 의심하게 될 것이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마스터!”

“기대하겠소.”

“저들이 조만간 공세를 시작할 것입니다.”

더글러스의 말에 반정에 가담한 자들 모두의 표정은 거의 울상에 가까웠다.

특히 이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칼리프 1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왕국의 최고 귀족인 프리모 앞에 불려 가 앞으로 왕국의 국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국의 국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무너진 것은 그가 반정 인사들에 의해서 난생처음으로 왕궁에서 열리는 연회라는 것에 참석한 자리에서부터였다.

전란 중에도 요행히 그는 일찍 피난을 떠나는 바람에 이렇다 할 위험이 없었다.

한데 그런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이 여럿 죽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고, 또다시 그다음 날 전 국왕이었던 블리스 등을 비롯한 숙청 대상자들 대부분을 처형하는 장면 등을 보면서 그는 언젠가 자신 또한 자신을 왕위에 올린 이들에 의해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 게르혼족의 침공으로 인해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고, 그 뒤를 곧바로 가장 우려하던 혼테르군이 모습을 나타내자 잠시도 불안감을 떨치질 못한 채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아니, 이러한 두려움은 비단 칼리프 1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정에 성공함으로써 잠시나마 꿈에 부풀어 있었던 대부분의 귀족들 또한 표현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 알마리온이 포넬에서 행한 일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공격해 오게 될 경우, 그는 여기 계신 더글러스 공작께서 맡아 줄 것이오. 하지만 모두가 합심하지 않을 경우 여러모로 불리한 우리가 저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는 없을 것이오.”

더글러스가 알마리온을 전담하겠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가 과연 알마리온이라는 존재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이들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나이제나우란 존재에 대해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고 그것이 큰 실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시오.”

“예, 주군!”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준비하고 있던 혼테르군이 사방에서 소렌토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향해 접근하였다.

“와아!”

“와!”

초반에는 쌍방 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이러한 상황은 얼마지 않아 일방적으로 혼테르군에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초반의 팽팽하던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팽팽하게 진행되던 것이 일방적으로 혼테르군에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 그 원인은 바로 그나이제나우로 인해서였다.

알마리온이 그나이제나우와 발락 기사단, 그리고 군에서 가리고 가려 뽑은 최고의 병사와 전사 들로 구성된 150명의 전위대에 내린 명령은 소렌토 성의 정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성문을 열면 알마리온에 의해 통합된 게르혼족 전사들로 구성된 기마대를 동원하여 단번에 돌파를 한다는 전형적인 공성 전술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은 알마리온이 보유한 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이기도 하였다.

마법에도 내성을 가지고 있는 두꺼운 철제 성문이었지만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나이제나우의 검 앞에서는 그러한 성문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얍!”

다른 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가장 먼저 성문에 도착을 한 그나이제나우는 단숨에 단단한 성문을 두 동강을 내 버렸다.

“성문이 열렸다!”

“성문이 열렸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성문이 열리고 그곳을 통해 그나이제나우를 앞세운 혼테르군이 물밀듯이 안으로 밀려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성을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족 파벌의 수장들인 프리모를 비롯하여 로보와 사뮤엘 등은 국왕인 칼리프 1세를 곁에 붙잡아 둔 채, 밖의 상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음…….”

이미 동원할 수 있는 힘은 모두 동원한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마지막 희망은 더글러스가 알마리온을 제거하고 그의 군세를 격파하는 것뿐이었다.

하나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서는 그것조차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였지 않습니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자칫 기회를 잃을 수가 있습니다.”

제국에서 지원키로 약속하였던 마법병단만 왔다면, 그리고 게르혼족의 침략만 받지 않았다면 이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상 이들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하여 은밀히 탈출로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은 그대로 왕국을 벗어나 제국으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제국의 도움을 받아 다시금 왕국을, 아니 권력을 되찾을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이미 왕실의 모든 창고를 깨끗하게 비웠으며, 아울러 자신들의 재산들 또한 모두 배에 실어 놓은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상황으로 보아 이미 적들이 성안으로 진입을 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불안한 시선으로 프리모의 결정을 기다렸다.

“후…… 알겠소. 하면…….”

프리모가 결단을 내리자 모여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그만큼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럼 가시지요, 폐하.”

“예? 예…….”

칼리프 1세가 온몸을 떨면서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났다.

자신들이 옹립한 국왕인 칼리프 1세와 함께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소렌토를 빠져나가기 위해 귀족 파벌의 수장을 비롯한 가족들과 측근들이 이동할 그 무렵.

귀족 파벌군을 지휘하고 있는 더글러스는 그나이제나우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성문을 단숨에 파괴해 버린 그나이제나우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그가 자신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더글러스였다.

“하인리히 그나이제나우. 알마리온 헤이그 폰 혼테르 후작 각하를 주군으로 모시고 있소.”

“으음…… 어떻게 그대와 같은 자가 그런 애송이의 밑에 있다니…….”

“주군을 모욕하는 발언은 삼가도록 하시오. 그분께서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훌륭한 분이시니.”

“후후! 그런가?”

“그렇소. 감히 그대 따위가 그분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보시오?”

“훗! 그렇군.”

누군가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인정하는 일은 더더욱 그러했다.

남을 굽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만큼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나이제나우의 눈빛이나 표정 그리고 행동에는 알마리온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저런 자에게 저처럼 절대적인 충성심을 끌어낼 수 있다니…….’

부러움이었다.

그에게도 많은 가신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상황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되자 저 살겠다고 모두 그의 곁을 떠나 버린 것이다.

하나 그러한 부러움은 이내 곧 질투로 변해 버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질투였다.

‘그래, 그리고 보니 그 아이도…….’

더글러스는 문득 레드로가 생각이 났다.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레드로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이지?”

“……?”

“무엇이 그대와 같은 자들이 그런 애송이한테 의탁하게 만드는 것이지?”

“후훗! 아직도 그것을 모르겠소?”

“…….”

더글러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더글러스의 모습을 보면서 그나이제나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였다.

“하긴 그대 같은 자는 죽어도 모를 것이오.”

“건방지군.”

“건방지다? 훗! 역시 오만으로 가득 차 있으니 발전이 없을 수밖에.”

“놈!”

그나이제나우의 말에 더글러스는 분통을 터뜨렸다. 벌써 10년 넘게 정체되어 있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 무던히도 노력하였던 더글러스다.

하나 그러한 노력이 아무런 부질없는 것이라고 단번에 폄하해 버리는 그나이제나우의 행동에 화가 치민 것이다.

“그대 같은 자가 어찌 알 수 있을까? 비어 있지 않은 잔에는 결코 포도주를 채워 넣을 수 없음을.”

“무슨 말도 되지 않는!”

‘훗! 역시 탐욕으로만 가득 차 있구나.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이기에 그 누구도 이를 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겠지.’

진리란 본시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하지만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진리였다.

하나 그러한 진리일수록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도 가까이 있기에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긴 나 또한 주군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과거 한때 유일하게 검의 주인이라는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그나이제나우다.

하지만 그런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에 오르자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정체되어 있었다.

이미 한때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하면 일천하기만 한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을 보이지 않은 채 정체되어 있었던 그는 그로 인해 고민하고 또한 괴로워하였다.

그때 그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이 바로 알마리온이었다.

‘주군께서 그러셨지. 자신을 잃지 말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라고.’

괴로워하는 그나이제나우에게 해 준 알마리온의 조언이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알고 있는 것들을 행하고, 그러한 행함에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하나 그러한 알마리온의 충고를 듣는 순간 그나이제나우는 그동안 자신이 발전이 없이 정체되어 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체되어 있던 그도 정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길이었기에 그나이제나우는 이내 다시금 과거와 같은 검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러지 못하였던 것은 그가 그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길만 따라가면 모든 것이 될 것이라는 가벼운 생각. 그리고 알고 있으니 난 될 것이야 하는 자만심.

이 두 가지가 그를 정체시켜 버린 것이었다.

아는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 그것이 또한 진리였음을 그나이제나우는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몰랐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대는 이미 나를 능가했겠지. 후후후.”

“이놈!”

그나이제나우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자, 그것을 자신에 대한 조소라 여긴 더글러스는 이미 상처 받은 자존심에 격분을 하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훗! 끝까지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는군.”

그런 더글러스의 행동을 보면서 그나이제나우는 비로소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망이군. 그래도 한때 왕국 최고의 기사란 자의 마음가짐이나 실력이 겨우 이 정도라니 말이야.”

몇 차례 더글러스의 공격을 받아 준 그나이제나우의 입에서 비난의 말이 나오자 더글러스는 더욱 격분하여 거칠게 달려들었다.

“지겹군. 이제 끝을 내지.”

미친 망아지처럼 달려드는 더글러스의 모습에 그나이제나우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자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도 없어졌다.

“으악!”

그나이제나우가 결심을 하고 몸을 움직이자 더글러스는 그의 공격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막지 못한 채 그대로 당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살려 두지. 하나 앞으로 그대는 많은 일들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남을 해한 대가일 것이야.”

“크흑!”

검을 드는 팔이 어깨 근처에서부터 잘려 나간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더글러스의 모습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자의 표정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자를 치료하고 가둬 두도록 하라.”

“예!”

“훗! 역시 이곳으로 나오는군?”

반정에 가담한 귀족들 전체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정령의꿈의 서브마스터인 푸틴은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상황이 불리해질 경우 이들은 필시 자신만 살겠다고 왕궁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어느 비밀 통로를 이용할지 몰라 미리 대원들을 모든 비밀 통로에 배치를 하여 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정령의꿈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이유가 국왕과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기에 이들은 왕궁 내의 모든 비밀 통로 모두를 잘 알고 있었다.

“대원들을 소집하도록 하게. 저들이 모두 빠져나오면 그곳에서 일망타진한다.”

“예, 서브마스터!”

명령을 내린 푸틴의 눈빛이 차갑게 빛이 났다.

“이쪽으로…….”

기사들을 선두로 하여 왕궁을 빠져나온 이들이 불안한 걸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황급히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모두가 비밀 통로를 빠져나와 미리 마련한 탈출로를 이용하여 한꺼번에 이동을 할 때였다.

“후후! 여기 쥐새끼들이 많기도 하군.”

이들 앞을 가로막아 선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바로 정령의꿈에 소속된 정령술사들이었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대열의 선두에서 귀족들을 인솔하던 기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일단의 무리에 잔뜩 긴장한 채 귀족들을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한데 이들의 행색은 이런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사들조차도 전투용 메일이 아닌, 예식용 메일을 걸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귀족들과 그들을 호위한답시고 나서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다 없어질 지경이었다.

“후후! 정말 어이가 없군. 도망가는 주제에 그런 복장들이라니 말이야.”

“놈! 네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뭐 하는 놈이기에 감히 이분들의 길을 막아서는 것이냐!”

“훗! 멍청한 놈들. 우리가 누구인지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것인가? 그리고 그대들의 신분이야 잘 알고 있지. 바로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반역자들이라는 것을.”

“뭐, 뭐라고!”

“후후! 구차하게 끌려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 주지. 하지만 그나마 체면이라도 차리고 싶다면 순순히 무기들을 버리고 투항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놈! 감히!”

“훗! 하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인가?”

앞서 인솔을 하던 기사가 검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에 푸틴은 살짝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들 사이에는 접전이 벌어졌다.

“아악!”

“으악!”

“컥!”

“아악!”

정령의꿈에 소속된 대원들의 공격은 거칠고 또한 강력했다.

이들 모두 정령술사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그동안 단 한 번도 세상에 그 진정한 힘을 내보이지 못하였다가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함인지 이들의 공격은 그만큼 거칠고 잔인했다.

“항복! 항복하겠소! 항복!”

칼리프 1세를 비롯한 프리모와 귀족 파벌에 속하는 귀족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워낙 거칠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정령의꿈의 대원들의 행동에 기겁을 한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는 무조건 항복한다고 악을 쓰듯 소리쳤다.

나중에야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이들의 이성과 행동을 지배하였다.

“모두 무장을 해제시키고 다시금 왕궁으로 데리고 간다!”

“예! 서브마스터!”

칼리프 1세를 비롯한 귀족 파벌의 수장들인 프리모 등 왕국의 최고위 귀족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이 모두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들을 제압한 자들에 의해 강제로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되돌아갔다.

이 무렵.

소렌토에 혼테르군이 대부분 진입을 하자 더 이상의 반격이나 저항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들을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그리고 이미 왕궁에 혼테르 영지를 상징하는 깃발이 내걸린 상태에서 혼테르군에 저항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희생이었다.

“충!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마스터!”

혼테르군이 왕궁에 접근을 하자 푸틴이 직접 나와 왕궁의 문을 열고 알마리온을 맞이하였다.

“수고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죄인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두 왕궁에 구금하여 놓은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그들에 대한 통제는 이제부터 군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예, 마스터.”

다른 때 같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차후에 있을 공로자들에 대한 포상에서도 많은 불이익을 당하였기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정령의꿈은 비밀결사 조직.

이들의 존재감은 가급적 드러나지 않는 것이 이들 스스로에게도 최선의 일이었기에 푸틴은 이러한 명령에 기꺼이 응하였다.

“웹 경.”

“예, 주군.”

“죄수들을 인수토록 하십시오.”

“예, 주군!”

“코넬 경.”

“예, 각하.”

“소렌토의 치안을 확보토록 하십시오.”

“예, 각하.”

“멕테일러 자작.”

“예, 주군.”

“군을 정비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지역들을 장악하도록 하십시오.”

“예, 주군.”

“모젠 자작.”

“예, 후작 각하.”

“쿠덴베르는 자작에게 맡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그리고 혼테르에 사람을 보내 공주님을 모셔 오도록 하세요.”

“예, 주군!”

“지금은 그러한 때가 아니오. 아니, 앞으로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오.”

카산느가 소렌토에 복귀할 시점에 왕국은 알마리온에 의해 완전히 병탄되었다.

그리고 카산느가 왕궁에 입성한 때부터 알마리온은 그녀를 여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카산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을 대신하여 알마리온이 왕위에 즉위할 것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당신이 왕국의 중심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전…….”

“…….”

카산느가 무슨 말을 하려 하였지만 알마리온이 그런 그녀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당신이라면 잘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 뒤에는 늘 내가 있지 않소?”

“정말로 늘 제 곁에 계실 것인가요?”

“하하.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소? 당신은 이제 온전히 내 사람이니 말이오.”

“아…….”

알마리온의 한마디에 카산느는 기쁨의 표정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알마리온의 작은 몸짓,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표정 하나에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하고, 불행해지는 그러한 여인이었다.

카산느가 로엔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한 것은 그녀가 소렌토에 복귀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오딘 신전의 대신관의 주도로 로엔 역사상 처음으로 여왕으로 즉위한 카산느는 모두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없도록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였고, 백성들은 그런 그녀의 약속을 지켜 주길 학수고대하였다.

하나 카산느가 여왕으로 즉위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구금되어 있는 반정 인사들에 대한 처결이었다.

“형을 집행하도록 하세요.”

“형을 집행하라는 폐하의 명이 내리셨다! 죄인들에 대한 형을 집행토록 하라!”

여왕이 된 카산느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하였다. 그리고 그녀에 의해서 혼테르 대공이 된 알마리온이 다시금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리도록 명령을 내리자 형리들이 형의 집행을 위해 죄인들을 하나씩 호명하여 끌어내고는 재판 결과를 모두에게 알린 후 처형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타의에 의해서 왕위에 올랐다가 또다시 타의에 의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칼리프 1세였다.

비록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는 못하였지만 그라는 존재는 어쨌든 함께 공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를 시작으로 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니 누대를 거치면서 왕국의 권력을 장악해 왔던 프리모와 더글러스, 사뮤엘, 로보 공작과 제거 후작과 같은 반정의 핵심 인사들과 그 직계가족들 중 사내들은 모두 처형을 당하였다.

이 밖에도 반정에 적극 가담을 한 귀족 파벌의 인사들 또한 마찬가지로 모두 처형을 당하였고, 죄질에 따라 감옥에서 평생을 수감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추방을 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했다.

아울러 이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들이 왕실로 환수되었다.

실상 이로 인해 왕국 전체 중 혼테르 영지 단 한 곳만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일시적으로 왕실의 소유로 되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이러한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앞서 이들이 반정에 성공을 하면서 국왕 파벌에 속한 인사들 대부분을 같은 방식으로 처형을 하였던 데다가 다시금 이러한 일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왕국을 이끌어 갈 인재들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 카산느는, 그리고 알마리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하나의 기회로 판단한 이들은 이러한 기회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는 기회로 여기고는 이를 위해 전념하였다.

이렇게 포넬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근 1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로엔 왕국은 비로소 안정의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는 훗날 사가들로부터 통합의 시기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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