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국의 위기 (65/70)

왕국의 위기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녀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 풍랑을 만나 실종되었다는 것입니까?”

“그, 그러하옵니다, 황태자 전하…….”

바다에서의 실종이라는 것이 사실상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아무리 평생을 단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프랑크였지만 모르지 않았다.

“찾으시오! 반드시 찾아내시오!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찾아오도록 하시오! 알겠소?”

“저, 전하…….”

광기에 찬 프랑크의 눈빛을 접한 태자궁의 총관인 다렌 자작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는 그의 처사에 곤란해진 때문이었다.

“무엇 하시오! 어서 명을 실행하지 않고!”

“며, 명을 받자옵니다.”

워낙 추상같은 명령인지라 일단 명에 따르겠다고는 하였지만 현실적으로 풍랑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을 되찾는 경우는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확률보다 적은 일이었다.

“그 아이는 혼테르에 잘 도착하였소?”

근위군 사령관인 칸 자작이 들어서자마자 막냇동생인 카산느의 안부를 묻는 블리스였다.

“예, 폐하. 조금 전 공주님이 혼테르 후작 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사옵니다.”

“아…… 그렇군요.”

자신이 내린 명이었지만 그것이 이처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일말의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던 차였다.

그런 차에 카산느가 무사히 혼테르에 도착을 하였다는 소식이 최종적으로 전해지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블리스가 그간의 공을 치하하고 그를 내보낸 블리스는 이 소식을 엘리자베스에게도 전하였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오라버니.”

“그래. 정말 그렇구나. 혼테르 후작이 귀환하면 그 아이도 더 이상 슬프거나 힘들진 않을 것이다.”

“예. 그럴 것이에요. 분명.”

동생이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엘리자베스 또한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그렇게 카산느가 정령의꿈이란 비밀결사에 의해 무사히 알마리온의 영지로 이동되었지만 공식적으로 그녀는 막스밀리언 왕자에 이어 제국으로 향하던 중 풍랑으로 인해 또다시 실종되었음이 왕실의 발표로 공식화되었다.

한데 이때에 포넬로부터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이 블리스에게 전해졌다.

“뭐라고요? 하면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단 말입니까?”

“그렇다 하옵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나르담 후작이 전해 준 말에 블리스는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녕 그 소식이 사실이겠지요? 정녕?”

“하하. 그러하옵니다, 폐하. 조만간 폰티악 후작이 왕자님을 모시고 오기 위해 직접 포넬로 향할 것이라 하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하하!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하하!”

블리스는 동생인 막스밀리언이 생존해 있다는 말에 연방 웃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하나 이어지는 소식에 그의 표정은 다시금 굳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오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도르펜 자작은 끝내…… 그리고 왕자님의 상태 또한 그리 좋지는 않은 상태라 하옵니다.”

“음…… 결국 숙부님께서는……. 한데 그 아이의 상태가 어느 정도이기에 그러는 것입니까?”

“혼테르 후작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왕자님이 탄 배가 풍랑에 의해 좌초되면서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하옵니다. 그로 인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이며…….”

“으음…….”

“아울러 자주 심한 두통에 괴로워한다 하옵니다.”

“이런!”

막스밀리언이 머리를 크게 다치면서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었으며, 아울러 그로 인해 잦은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에 블리스는 마음이 다시 아파 왔다.

“당장! 당장 그 아이를…… 그 아이를 데려오도록 하세요. 당장!”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폰티악 후작이 이미 혼테르 후작을 만나기 위해 떠났을 것이옵니다.”

“후…… 알겠습니다.”

머리를 크게 다침으로 해서 옛 기억을 모두 잃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잦은, 그리고 심각한 두통을 앓고 있다지만 그래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장례까지 치렀던 막스밀리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은 분명 희소식이었다.

‘그래, 되었어. 비록 숙부님께서는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나셨지만 막스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소식이란 말인가.’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블리스는 짐짓 침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하였다.

“후…… 그렇게라도 막스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폐하, 분명 공주님도 무사할 것이옵니다.”

나르담 후작은 블리스의 곁에서 그의 조언자로서 충실하였지만 아직은 그를 온전히 신임하지 않는 블리스였다.

아니, 설사 그를 신임한다 하더라도 비밀이란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적게 아는 것이 비밀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일이었기에 나르담 후작은 카산느가 거짓으로 조난을 당한 후 실종 처리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비밀이라는 것은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때론 너무나도 쉽게 남에게 전달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아…… 미안……. 한데 그게 정말이야? 카산느 공주님께서 풍랑 때문에 실종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래. 그렇다니까. 내가 분명히 들었다니까?”

“하지만…….”

“소냐도 내가 엘리자베스 공주님의 하녀인 것은 잘 알지? 내가 분명 엘리자베스 공주님이 알리안 백작 부인과 나누시는 말씀을 들었다니까?”

“그렇다면?”

“맞아. 카산느 공주님이 갑자기 왕국으로 돌아오신 후 내내 신전에서만 요양하고 계신 것이 제국의 황태자가 카산느 공주님을 겁탈하려 했기 때문이었대. 한데 제국의 황태자가 공주님을 계속 원하자 어쩔 수 없이 제국으로 보내야 했는데…….”

왕궁에는 여러 다양한 일들을 하는 하녀들이 존재하였다. 그중에서 데보라는 엘리자베스 공주의 궁에 소속되어 있는 하녀였으며, 소냐는 근위군 소속 기사들의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였다.

이 둘은 원래 한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절친한 사이로, 우연히 왕궁에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기에 서로 많이 의지하고 있는 사이였다.

비록 서로 속한 곳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치게 되면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을 나누며 수다를 떠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고 있었다.

데보라는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소냐를 만나자 최근 왕국에 전해진 또 하나의 비보悲報인 카산느 공주의 사고 소식이 실상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비밀을 발설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면 국왕 폐하와 혼테르 후작님께서……?”

“그래. 분명 그렇게 들었다니까?”

워낙 엄청난 비밀인지라 한껏 소리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는 않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도 있듯 이들 두 여인이 나누는 은밀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한 여인이 있었다.

“알았지, 소냐? 절대 이런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만약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나와 너는…….”

“알았어. 걱정하지 마. 언제 내가 네게 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본 적 있어?”

“하긴…… 하지만 그래도 워낙 엄청난 일이라서 말이야. 하니까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해. 그래 주겠지?”

“응. 그렇게 할게.”

“그래. 그럼 이만 가자. 너무 오랫동안 자릴 비웠다.”

“그래, 나도. 서둘러야겠다.”

데보라와 소냐라는 여인이 저마다의 일자리로 황급히 돌아간 이후 어둠 속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훗! 그랬단 말이지? 좋아.’

세상에 밝혀지지 말아야 할 비밀을 아주 우연히 듣게 된 한 여인은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뭐라! 그렇다면 로엔의 왕이란 자가 그녀를 빼돌리기 위해 그러한 짓을 일부러 벌였다는 것이오?”

로엔 왕국에는 비록 하급이긴 하여도 제국의 관리가 파견 나가 있었다.

이는 왕국과 제국 사이에 오가는 교역을 관리하고 감독하기 위한 조치로, 반대로 제국에도 왕국의 관리가 파견되어 있었다.

고든 남작은 제국이 로엔 왕국에 파견한 관리로, 그가 왕국에 머물다가 갑자기 제국으로 일시 복귀한 이유는 황태자인 프랑크에게 급히 전할 말이 있어서였다.

“그렇다 하옵니다, 황태자 전하.”

“그것이 어찌 가능할 수 있단 말이냐! 세상에 풍랑을 자기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자들이 있단 말이오!”

그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천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매우 특별한 존재만이 그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사실상 세상에서 한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

하니 그러한 일을 인위적으로 벌였다는 것이 믿기기보다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혹시……? 혹 베르그 공작이 개입하였던 것이오?”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하온데…….”

“뭔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는 것이오?”

“그러한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있을 것 같사옵니다.”

“알 수 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오?”

“바로 이스턴 백작이옵니다, 전하.”

“이스턴 백작? 그는 익스퍼트가 아니오? 그런 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이오!”

“황태자 전하, 얼마 전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익스퍼트가 아닌, 정령술사라는 것이 밝혀졌사옵니다.”

“정령술사?”

“그렇사옵니다, 전하.”

“하면 그자가?”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공작 부인이 혼테르로 간 것만 보아도 처음부터 이스턴 백작의 계획이었던 것이 분명하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아니, 듣고 보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좋아……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후후, 날 너무 쉽게 보았군. 하면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게 해 주지. 후후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집요하리만치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프랑크는 그것을 갖지 못하게 방해를 한 자들에 대해서 그만큼 철저한 복수를 하여 왔다.

“지금 폐하를 알현토록 할 것이다. 차비를 하라.”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로엔의 국왕을 바꿔야 한다는 칙령을 내리시다니!”

제국 황제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재상인 베르그 공작은 크게 당황하였다.

형식적이긴 하여도 로엔 왕국은 제국의 제후국이었다. 따라서 제국의 황제에게는 로엔 왕국의 국왕의 자리를 폐위시키고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로엔 왕국 역사상 두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로엔 왕국은 반정이 일어나 결국 국왕이 교체되었다.

따라서 전례에 따르면 이번에도 결국 로엔 왕국에는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국왕이 교체될 확률이 높았다.

“그것이…….”

로엔 왕국의 국왕을 교체하라는 갑작스러운 명령이 어떤 경위를 통해 내려진 것인지 사정을 알게 된 베르그 공작은 낭패감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재상이라 하더라도 내려지기 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내려진 명령에 대해서는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황제의 명령은 지엄한 것이었다.

‘막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용맹한영혼은 이미 게르혼족의 절반은 물론, 또 다른 초원의 부족인 뮬란족까지 모두 통일을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조력자가 바로 로엔 왕국이었다.

한데 그러한 로엔에 커다란 변고가 생긴다면 제국의 입장에서도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스턴 백작을 자극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한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아무리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라 하여도 로엔 왕국을 자극하는 것만큼은 막으려 할 찰나였다.

“전하, 사촌이신 프리모 공작님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하였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사촌인 프리모가 보낸 서신이 왔다는 말에 베르그는 의문이 들었다. 평소 꾸준하게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으며, 또한 무슨 일이 생길 때에도 서신을 별도로 주고받아 왔다.

하나 어쩐 일인지 지금과 같은 때에 프리모가 보낸 서신이 도착하였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가져오라.”

“예, 전하.”

프리모가 보낸 서신을 건네받은 베르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서신의 겉봉에 붙은 밀랍을 떼어내고는 봉투 안에 담긴 몇 장의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한데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몸이 순간 크게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수행원들이 황급히 그의 몸을 붙잡았다.

“이럴 수가…….”

“전하?”

“되었으니 물러서도록 하라.”

다들 어떤 내용이기에 베르그가 이처럼 놀라는 것인지 그 내용이 궁금하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허허…… 그랬던 것인가? 그 아이가…… 내 아들이 그렇게 당했단 말이지? 허허허…….”

노회한 베르그 공작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또한 자신보다 더 빠른 성장을 보이면서 장래 더 위대한 마법사로, 그리고 더 위대한 정치가로 세세토록 이름을 전해 줄 기대주였다.

그런 아들이 미처 제 꿈을 온전히 펼쳐 보이기도 전에 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 아들이 실종되었다. 4서클 마법사의 실종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아직도 아들이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호위하는 병력까지 존재하고, 그 모든 병력 또한 한꺼번에 실종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당했고 그로 인해 전멸을 당했다는 이야기 말고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베르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원흉을 베르그 공작은 블랙 대공, 그러니까 용맹한영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가 아니고서는 그러한 일을 저지를 만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일을 저지른 것들이…….’

배신감이 온몸을 휘돌고 지나갔다.

“후후…… 좋아. 네놈들이 그리했다면 그에 대한 뒷감당도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은 도무지 베르그가 갑자기 무슨 일로 이렇게 분노해 있는지 그 영문을 몰라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황태자에게 내가 보고자 한다고 전하라.”

“예, 전하.”

‘후후. 감히 나와 내 아들을 건드린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아주 뼈저리게.’

아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베르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이 났다.

“로엔 왕국에 사신을 보내도록 하지?”

“사신을 말인가?”

용맹한영혼의 말에 무거운돌이 반문을 하였다. 하나 굳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무거운돌은 그가 왜 로엔에 사신을 보내자고 하는 것인지 그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 자네가 로엔을 그토록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알고 있지 않나?”

용맹한영혼이 이처럼 로엔에 대하여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그의 외가가 로엔에 뿌리를 둔 상인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외가 때문인가? 하지만 자네 외가는…….”

“훗! 날 인정하지 않았지.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 말이야. 뭐, 하긴 그런 이유로 어머니께서는 평생 아버님을 차갑게 대하였지만 말이야.”

원래 용맹한영혼의 어머니는 용맹한영혼의 부친이 로엔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한눈에 반하여 납치를 해 온 여인이었다.

이후 용맹한영혼을 임신하고 평생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초원의 부족과 함께하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웃음을 지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강간으로 생긴 아들인 용맹한영혼에게조차도 젖 한번 물려 본 적 없었을 정도다.

평생을 그렇게 아들에게조차 정을 주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아들에게 미안한 심정을 토로한 것은 그녀의 죽음이 임박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또 당부하였다. 외가가 있는 로엔을 공격하지 말라는 부탁을.

“만약 자네가 이처럼 로엔을 배려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로엔이 제국의 편을 든다면 그때는 어찌하겠는가?”

“훗!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군.”

무거운돌의 물음에 용맹한영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물었기 때문이다.

“난 말이네. 아직도 배가 고프다네.”

“…….”

그 한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한 용맹한영혼을 바라보는 무거운돌의 표정은 밝게 웃음이 퍼졌다.

“제국과 게르혼족의 칸인 용맹한영혼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사신이 도착을 하다니…….”

블리스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직면을 하였다. 제국과 용맹한영혼으로부터 사신이 거의 동시에 도착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국의 사신은 군대를 일으켜 게르혼족을 함께 정벌하자는 제국 황제의 명이 전해졌고, 용맹한영혼으로부터는 제국으로부터 이탈하고 자신을 섬긴다면 로엔 왕국을 친형제의 나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제국을 버릴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

나르담의 말처럼 로엔은 제국을 버릴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하나 제국은 이미 과거의 제국이 아니었다.

“제국은 지금 늙고 병들어 있습니다. 그런 제국이 젊고 패기만만한 그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블리스의 질문에 나르담은 선뜻 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 또한 제국의 상황이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오나 제국과 왕국은 늘 함께하였사옵니다. 또한 제국과 힘을 합친다면 설사 용맹한영혼이라는 그자가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쉽게 상대할 수만은 없을 것이옵니다.”

“…….”

“무엇보다도 혼테르 후작이 있지 않사옵니까? 그라면…….”

알마리온이 썩 마음에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능력을 외면하거나 하지는 않는 나르담이었다.

“후작,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국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블리스의 말에 나르담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제국의 재상인 베르그 공작이 용맹한영혼이 제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미 모든 것이 약해져 버린 제국이었다.

그런 제국을 믿고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블리스는 다음 대의 제국의 황제가 될 황태자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었다.

그런 상대를 믿고 왕국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오시면……?”

“무응답.”

“양쪽 모두에게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철저한 제3자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현명할 수도 있는 결정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붙어야 하는 일이었다.

바로 그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제3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약자의 부질없는 희망일 뿐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르담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께서는 혼테르 후작을 지나치게 신임하시고 계시다. 하지만 전쟁은 그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알마리온이 분명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한 사람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북서군에서 국경 방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느끼게 된 용맹한영혼이란 자는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또한 게르혼족들은 그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그런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로 하여금 용맹한영혼이 이끄는 게르혼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

“하오나 폐하, 프리모 공작 등은 분명 폐하로 하여금 제국의 요청을 따르도록 만들 것이옵니다.”

“분명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당장 우리의 사정으로는 군대를 일으킬 여력이 없습니다.”

연이은 왕실의 불행과 포넬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엔은 다시금 군대를 일으킬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국에서 그러한 아국의 사정을 모르지 않음에도 이러한 요청을 해 온 것임을 감안하였을 때…….”

“그만! 일단은 시간을 최대한 끌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연후에 상황을 봐 가면서 다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꾸만 자신의 뜻에 반하는 발언을 하려고 하는 나르담의 말을 도중에 끊어 버리는 블리스였다.

하나 이러한 블리스의 의도는 얼마지 않아 중대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국왕께서 제국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실 의도인 것이 분명합니다.”

더글러스의 말에 모두가 긍정의 표시를 나타냈다.

“이러다 제국 측으로부터 분명 여러 곤란한 주문이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인데 폐하께서는 왜 이를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거의 말에 더글러스가 비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훗! 그거야 폐하께오서 제국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판단을 한 때문 아니겠소?”

“…….”

“하지만 폐하께서는 크게 착각하시고 계신 것이지요. 제국이 비록 과거와는 달리 많이 약화되긴 하였지만 적어도 게르혼족에 당할 정도로 허약하진 않다는 것이지요.”

더글러스의 말처럼 제국은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약화되긴 하였어도 아직은 여전히 강대한 나라였다.

“더글러스 후작의 생각에 나 또한 동조하는 바입니다. 제국은 여전히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제국 황제 폐하의 명을 피하는 것은 자칫 왕국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사뮤엘의 말에 다시 한 번 모두의 표정이 걱정이 된다는 듯 우려스러운 표정들이 되었다.

이렇게 한참을 블리스의 판단에 대한 성토를 하는 모습들을 지켜만 보던 프리모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이 서자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군?”

“어찌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흠…… 하긴 왕국의 안녕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찌 다를 수가 있겠나. 해서 말이지만…….”

프리모는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말끝을 잠시 흐리고는 슬쩍 함께하고 있는 귀족 파벌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프리모가 말끝을 흐리자 더글러스, 로보, 사뮤엘 그리고 제거는 더욱 그가 어떠한 말을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였다.

“제국의 황태자와 베르그 공작으로부터, 아니 제국 황제 폐하로부터 또 다른 명령을 내리셨소.”

“또 다른 명령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제국의 황제로부터 또 다른 명령이 내려진 것이 있다는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제국의 황제 폐하께오서는 만약에 국왕이 제국의 명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왕위를 다른 왕족에게 맡겨도 좋다 하셨네.”

“으음…….”

프리모의 말에 다들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렸다.

제국 황제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명분일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국 황제의 이러한 명령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기에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폐하의 의중을 파악한 이후에 제국 황제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소?”

“역시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리모의 의견에 가장 먼저 동조한 이는 더글러스였다. 하나 그가 동조하기가 무섭게 나머지 세 사람도 프리모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이들로서는 자국의 국왕보다는 제국의 황제의 명령이 더욱 중요하기도 하였지만, 앞선 메르타니온 국왕이나 현재의 국왕인 블리스가 모두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제국 황제의 명령을 명분으로 국왕을 교체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를 왕위에 올리는 것이 여러모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이었기에 적극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로엔에는 또다시 어두운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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