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연이은 위기 (61/70)

연이은 위기

국왕인 메르타니온과 로엔달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이라는 극단적인 형벌로 세상을 떠난 후 로엔 왕국은 극도로 긴장 상태에 빠졌다.

어쨌든 일을 그렇게까지 만든 귀족 파벌에서도 사태가 이 정도로까지 커질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분간 다들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네.”

프리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들 또한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너무나도 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당분간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힌다면 국왕 파벌에 의해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네.”

“잘 알겠습니다, 공작 전하.”

프리모 공작을 비롯한 귀족 파벌이 재상의 집무실에 모여 이러한 말을 하고 있을 때, 메르타니온에 이어 로엔 왕국의 국왕이 된 블리스 또한 도르첸을 중심으로 한 국왕 파벌에 속하는 귀족들과 회동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귀족 파벌의 힘을 확실하게 줄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에게 국왕 폐하께서…… 크흑!”

국왕으로 즉위한 블리스를 중심으로 국왕 파벌에 속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귀족 파벌을 성토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블리스의 마음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후…… 아버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믿으셨단 말인가?’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왕 파벌에 속한 자들은 대부분 변절을 한 자들이거나, 아니면 새롭게 귀족이 된 신흥 귀족들이었다.

이들 중 특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변절을 경험한 이들은 바로 귀족 파벌에 속해 있다가 그들로부터도 소외를 당하자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말을 갈아탄 이들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예전에 비해 국왕 파벌에 속하는 이들의 수가 많아졌어도 실상 큰 힘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훗…… 제 능력은 턱도 없이 부족하면서도 욕심만큼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더욱이 블리스로 하여금 실망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지금 목청 높여 메르타니온 국왕을 이단으로 몰아 결국 불명예스럽게 죽게 만든 귀족 파벌을 성토하는 이유가 바로 메르타니온 국왕과 함께 이단자가 되어 처형당한 로엔달의 영지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로 로엔달의 영지는 다시금 왕실의 직영지로 환수되었다. 따라서 로엔달의 친자親子임이 밝혀진 알마리온에게는 그러한 영지를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없었다.

이를 잘 알기에 로엔달도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였고, 자신이 남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남겨 이를 아들인 알마리온에게 전해지도록 한 것이었다.

한데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은 바로 그렇게 다시금 왕실의 직영지로 환수된 곳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 파벌에 대한 성토를 목이 터져라 주장하는 이들 그리고 힐긋힐긋 눈치를 보며 맞장구를 치는 이들 모두가 그 목적은 바로 영지였다.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를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였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그만…… 그만들 하세요.”

“하오나 폐하…….”

“그만! 그만하라지 않습니까! 피곤하니 모두 나가도록 하세요! 어서!”

블리스의 고함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지만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막스밀리언과 도르첸, 폰티악과 나르담 그리고 알마리온이 남아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폐하.”

막스밀리언이 화를 참지 못하는 블리스를 진정시켰다.

“후…….”

“폐하의 상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 소신들 또한 모두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나 지금은 상심을 하고만 있을 때는 아니라는 것을 폐하께오서도 잘 아실 것이옵니다.”

“안다. 하지만…… 그래, 막스…… 네 말이 옳구나. 어쨌든 지금은 상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

국왕이 이단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였다는 것은 외국의 침략이나 내란과 같은 직접적인 위험은 아니지만 신을 믿는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왕실 전체가 이단으로 비춰질 수 있는, 즉 백성들의 마음이 왕실로부터 완전히 떠날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러한 때에 왕실이 어떠한 행동을 보이는가에 따라서 왕국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큰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다.

“일단은 이반될 수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계속하여 왕실에 붙잡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막스밀리언이 블리스를 달래 놓자 도르첸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실상 단승이긴 하여도 그는 최고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지만 기반이 없었기에 부평초처럼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늘 안타까이 여긴 메르타니온 국왕은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기 직전까지 그에게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가지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공작님의 말씀처럼 지금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왕실이 결코 배척받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폰티악 또한 도르첸과 같은 생각임을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신전과의 관계를 다시금 이전처럼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도르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냈지만 유독 한 사람만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혼테르 후작은 동의하지 않는 것이오?”

실상 이 자리에서 블리스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이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알마리온이었다.

그가 이처럼 알마리온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실상 그가 왕국의 고위 귀족이기도 하였고 아울러 제국의 대귀족이기도 하였지만, 그 자신이 이미 일국을 건국하여도 충분할 정도의 힘과 역량 그리고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알마리온은 비밀리에 왕실을 수호하는 비밀결사의 수장이기도 하였으니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아니옵니다, 폐하. 다른 분들의 말씀처럼 일단 신전과의 관계는 돈독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하옵니다. 다만…….”

“……?”

말끝을 흐리는 알마리온을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번 일로 당분간 움츠러들 저들을 감안할 때,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적극적인 행보라……? 이를테면 어떻게 말입니까?”

“소신이 듣기론 전 국왕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이 이 자리에 계신 공작님에게 기반을 만들어 드리려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맞아요. 그러셨지요. 한데…….”

그렇긴 하였지만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그가 바로 메르타니온 국왕의 형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실 종친들에 대한 규제가 많이 풀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책을 마음껏 줄 수 있다는 것이지 영지를 챙겨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메르타니온은 도르첸에게 단순한 직책만이 아닌 영지까지 챙겨 주려 하였고, 그 방법을 찾다가 이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끝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한데 이를 다시 거론하는 것이 그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 듯 보였기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북동 지역을 하나나 둘로 묶어 이곳을 도르첸 공작님의 영지로 내리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나 그 일은 이미…….”

블리스가 뭐라 하기 전에 막스밀리언이 먼저 나서서 난색을 표했다.

“종친만 아니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뜻이오, 후작?”

“폐하, 왕실 종친에게 그러한 제한을 두는 것은 그들이 왕실을 적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물론 그러하오.”

“하면 종친을 어디까지 종친으로 인정하는가에 따라서는 종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뜻 아니옵니까?”

“무슨…….”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는 말이었기에 더욱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왕실 종친들에게 그러한 제한을 두는 것은 그것이 왕실의 전복을 꾀할 반역자의 무리가 왕실 종친에게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상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은 역사적으로도 여러 번 증명되었던 일입니다.”

“흠…….”

종친은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다. 아니, 오히려 힘이나 능력을 가지지 못할수록 좋은 존재들이 종친들이었다.

이유는 이들이 그러한 힘이나 능력으로 왕위를 넘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따지고 본다면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왕좌를 넘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고, 그 누군가란 바로 왕국을 구성하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로엔 왕국에서도 몇 차례 반정이 있었고, 그들은 반정을 일으킬 때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가의 혈통을 찾아 왕좌에 올리곤 하였다.

3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로엔 왕국 역사상 계승 서열에서 밀린 자가 반정을 일으켜 왕좌에 오른 경우는 단 두 번.

하지만 권신들에 의해 반정이 일어나 왕을 폐위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왕가의 혈통을 이은 자를 왕좌에 올린 반정은 무려 일곱 번이나 있었다.

실상 현 국왕인 블리스의 고조부 또한 그렇게 하여 왕좌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사위인 알마리온의 말에 폰티악 후작이 채근을 하였다.

“이처럼 어차피 명분이라는 것을 걸기 나름이라면 또 다른 명분을 내세운다면 굳이 옛 규정에 얽매일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족이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왕족이 아니란 뜻이지요.”

어차피 일정한 나이가 되면 다른 성을 가지고 왕궁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설사 왕궁에서 지낸다 하더라도 왕위 계승권이 없다면 그는 왕족이라 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막스. 듣고 보니 혼테르 후작의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구나. 왕가의 혈통을 잇고 태어났으되 왕위 계승권이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왕가의 일족이 아닌 셈이지. 아니 그렇습니까, 도르첸 공작?”

블리스와 도르첸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블리스가 이렇게 묻는 것은 도르첸에게 선택을 하라는 뜻이었다.

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왕위 계승권을 붙잡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왕위 계승권이라는 특권을 놓음으로써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으로 일가를 이룰 것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이런 블리스의 물음에 도르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내 대답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왕위 계승권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히려 평생을 짊어져야만 할 천형과도 같은 불편한 것일 뿐이었다.

이는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그러했다. 왕위 계승권이란 것이 그 자신은 물론 자신의 후손들에게도 결코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족쇄로 작용을 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니 이러한 족쇄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것을 풀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가의 혈통이라면 당연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왕가의 혈통이 아닌 일이옵니다.”

“막스야.”

“예, 폐하.”

“너는 어찌하겠느냐?”

“음…….”

“나는 너 또한 숙부님과 같은 결정을 하였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네 아이들 또한 그러한 족쇄에서 풀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동생인 막스밀리언의 능력 또한 자신과는 다른 쪽이긴 하여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블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그는 더 이상 왕위 계승권이란 족쇄에 묶여 옴짝달싹 못한 채 져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형님…….”

“내 뜻에 따라 주겠느냐?”

“형님께…… 도움이 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메르타니온의 마지막 유언은 모든 아비가 그러하듯 형제간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 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 분명한 블리스의 곁에서 그의 힘이 되어 달라는 당부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형님. 형님이 정히 그리 말씀하시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블리스의 판단으로는 숙부인 도르첸과 아우인 막스밀리언이 스스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새로이 작위를 받고 영지를 받아 자신의 뒤를 받쳐 줄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 것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것이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숙부님과 아우가 그런 결정을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느라 밤이 깊은 시간까지 함께하였다.

“확실한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황태자 전하. 이는 소신이 직접 확인한 일이기도 하옵니다.”

“물론 그대의 말을 증명할 증거 또한 충분하겠지?”

“예, 전하.”

“후후후! 그렇단 말이지? 후후후…… 하하하! 하하하하!”

프랑크의 통쾌한,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가 그의 집무실 안을 가득하게 울렸다.

“참으로 수고하였다. 내 네게 큰 상을 내리리라! 후후후!”

“황공하옵니다, 전하.”

큰 상을 내리겠다는 프랑크의 말에 40대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의 표정은 순간 확 밝아졌다.

“그만 돌아가라. 그리고 조만간 내 다시 널 부를 것이니라.”

“예, 전하. 하오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황태자의 부름. 그것은 곧 자신의 출셋길이 열리는 것이었기에 사내는 더욱 밝아진 표정으로 황자태궁을 떠나갔다.

“후후…… 감히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단 말이지? 후후후……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암!”

프랑크의 눈빛이 도착적으로 변하였다.

“후후! 한번 내 눈에 띈 이상 그 누구도 내 품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 주지. 후후후…….”

얼마 후 블리스는 제국의 황태자인 프랑크가 보낸 사람을 접견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프랑크에게 모종의 비밀을 알려 주었던 바로 그 사내였다.

“황태자 전하께오서 폐하께 반드시 전하라 하신 서신이 있사옵니다.”

“서신을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자신을 프랑크의 특사인 아론 폰 게인즈 자작이라 소개를 한 자가 프랑크가 보낸 서신을 블리스에게 건네주었다.

한데 제국의 황태자인 프랑크가 보낸 서신을 읽어 가던 블리스의 손길이 부르르 떨리더니 결국 그의 입에서는 당혹함이 가득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음…….”

프랑크가 전한 서신을 읽던 블리스가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서신을 가져온 게인즈를 바라보았다.

“정녕…… 정녕……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럴 수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이었기에 블리스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버님께서 어이하여 이러한 일을…….’

포넬 왕국과의 전쟁 당시 가공할 위력을 보였던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의 제작 방법을 습득한 것은 로엔 왕국에 있어서는 전쟁 중에 얻은 최대의 성과였다.

하나 이러한 성과는 프리모의 농간으로 인해 제국에도 알려졌고, 제국의 재상 가문이자 현존하는 모든 마법사와 마법사 가문 그리고 마법 학파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베르그 공작 가문에 의해 고스란히 빼앗기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대가를 주겠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약속한 대가는 아직도 지불되지 않고 있었다.

하긴 베르그 공작 또한 그 일로 인해 가문의 대를 이어 나갈 적자가 실종된 마당에 자신이 약속하였던 것을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하인리히 폰 베르그 백작의 실종 사건이 실상은 메르타니온의 명령에 의해 로엔달이 왕실을 수호하기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정령의꿈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것과 그에 대한 증거까지 있다니 블리스는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에 대한 해답은 프랑크가 보낸 서신에 제시되어 있었다.

“이런……!”

프랑크가 제시한 해법을 읽어 내려가던 블리스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가 제시한 해법이라는 것이 바로 자신의 막냇동생인 카산느를 두 번째 부인으로 보내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이런…….”

비록 양국의 관계를 위하여 그리고 공통의 적이 될 수 있는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친동생과 혼인을 하였던 카산느를 두 번째 부인으로 달라는 것이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혹시……?’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막내가 갑자기 귀국을 한 것도…… 그리고 그 아이의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도 모두? 그렇다면…….’

애초의 약속에 따르면 카산느는 귀국이 거의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황자와의 혼인으로 발락 공작 부인이 된 그녀는 양국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왕국이 아닌 제국에 머물고 있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카산느가 갑자기 귀국을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

‘이상한 것은 또 있다. 귀국한 이후에 그 아이의 상태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무엇인가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이 말이야.’

어려서부터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였었다. 그리고 한번 겁을 집어먹으면 좀처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여린 아이였다.

‘그랬구나. 분명 제국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이구나. 그런 아이를 그동안 방치해 놓고 있었다니…….’

알마리온과 함께 갑작스럽게 귀국을 한 카산느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이미 메르타니온의 신변에 큰 변고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황태자인 이자가 그 아이를…….’

예부터 제국의 황실의 남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은 늘 있어 왔다.

특히 변태적인 성격이라든지, 아니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소문조차도 아닐 정도였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일을…….’

왕국의 입장에서는 제국과 등을 지는 일을 감히 벌일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블리스의 고조부가 귀족들에 의해 로엔의 왕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당시 축출당한 국왕이었던 카마티안 국왕이 제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자 귀족들이 이에 반발하여 끝내 반정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이건 카산느를 제국으로 보내지 않을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경고다. 아…… 어이하여 이리도 계속하여 가족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겹친단 말인가?’

메르타니온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으로 확정된 그 순간부터 왕비였던 헬레나는 심신에 큰 충격을 받고 병을 얻어 거동이 힘들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동생인 엘리자베스 또한 제거 백작 가문으로 출가하였다가 메르타니온의 일로 이혼을 당하고는 지금은 카산느와 함께 어머니인 헬레나를 돌보며 왕궁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막내인 카산느의 일로 자칫 어수선한 왕국에 또다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면…….

‘그럴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할 수는…… 하지만 그 어리고 여린 것을…….’

왕국을, 아니 왕실을 지키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카산느를 다시 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도 명목상이긴 하여도 자신의 부군夫君이었던 자의 친형의 두 번째 부인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후…… 그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폐하.”

게인즈를 밖으로 내보낸 블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내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도르첸 공작을 들게 하라!”

블리스의 부름을 받은 도르첸이 들어오자 블리스는 아무 말도 없이 다짜고짜 프랑크가 보낸 서신을 내밀었다.

“으음…….”

“아셨던 일입니까?”

“소인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녕 숙부님도 모르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사옵니다, 폐하.”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메르타니온의 최측근인 로엔달은 자주 일정 기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전란戰亂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여 메르타니온에게 그의 부재에 대해 별도로 명을 내린 일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알 것 없다는 대답만을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하면 그때…….’

“그나저나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만약 이 일이 귀족 파벌, 아니 프리모 공작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일이 프리모의 귀에 들어갈 경우 심할 경우 반정이 일어날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었기에 이를 두려워하는 것임을 도르첸 또한 우려했다.

“폐하, 방법은 하나밖에 없사옵니다.”

“으음…….”

“공주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사오나…….”

도르첸도 이미 카산느 공주의 상태가 이전과는 다른 상태임을 알았으며, 그녀가 제국에서 머무는 동안 그녀의 신변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제국의 황태자인 프랑크에게 있음을 지금 본 서신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까?”

“폐하께오서도 이미 답은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으음…….”

“그것만이 최선이옵니다. 왕국과 왕실을 위해서이옵니다, 폐하.”

냉정하리만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는 도르첸의 목소리에 블리스는 마치 얼음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것처럼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그런 도르첸의 목소리에 우왕좌왕하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는지 블리스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상당히 침착해졌다.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까?”

“지금으로써는 그러한 방법밖에는 없사옵니다.”

최악의 경우 설사 이러한 사실을 제국의 재상인 베르그 공작이 알게 된다 하더라도 제국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기에는 블랙 대공의 세력이 너무 강성하였기에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로엔 왕국이란 존재를 곁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러한 사실을 프리모 공작이 알게 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그는 왕국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자신과 제국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이미 그는 왕국에서 전란 중에 입수한 마법 아이템 제작법을 제국에 넘긴 일이 있지 않은가.

이런 프리모에게 이러한 일이 전해져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한데 숙부님께서도 이 일에 대해 아시는 것이 전혀 없으시다면 누가……?”

메르타니온으로부터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였다. 아울러 그 일을 진행하였던 로엔달로부터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였다.

이처럼 중요한 일이 전해지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메르타니온은 물론, 로엔달까지도 종교재판을 받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형식적인 종교재판을 받고 풀려날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하나 갑작스럽게 이단이란 판정을 받게 된 이후, 이들 두 사람은 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직계가족들에게만 단 한차례 주어지는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신관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 모든 내용들이 기록이 되었다.

이는 만약에 이단으로 판명된 자들이 또 다른 자에게 죄가 전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렇게 기록된 것은 신관들과 증인으로 참석하게 되는 고위 귀족들에게 그대로 통보되었다.

그런 자리에서 마법 아이템에 관계된 일을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아니, 블리스는 메르타니온으로부터 아예 정령의꿈이라는 왕실을 수호하기 위한 비밀결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전해 듣지 못한 상태였다.

로엔달의 뒤를 이어 정령의꿈의 마스터가 된 알마리온 또한 자신이 로엔달의 뒤를 이었다는 것을 블리스에게 통보하지 않았는데, 이 또한 정령의꿈이란 조직이 가지고 있는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정령의꿈이란 조직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 마스터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심지어 정령의꿈이라는 조직의 주인인 국왕이라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령의꿈을 조직한 메르타니온 국왕이 귀족 파벌의 감시의 눈길에서 이러한 정령의꿈이란 조직을 지켜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던 것이다.

또한 정령의꿈의 규정에는 설사 마스터가 어떤 이유로 인해서 교체되었다 하더라도 이 비밀결사의 주인인 국왕이 마스터를 소환하기 전까지는 절대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로엔달에 이어 정령의꿈의 마스터가 된 알마리온도 자신이 로엔달의 뒤를 이어 정령의꿈의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을 밝힐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혹…… 혼테르 후작이라면 알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그는 어쨌든 로엔달 백작의 친자이니…….”

“아무래도 그에게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면 그를 들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 무렵 알마리온은 이미 어머니인 유르스나르 등을 데리고 영지인 혼테르로 돌아간 상태였다.

원래의 계획은 그 또한 시국이 진정될 때까지 소렌토에 남아 있기로 하였지만 갑작스럽게 그가 정복한 이스턴 지역에서 그가 직접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몇 가지 생겼기 때문이다.

한데 일이 틀어지려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왕궁 곳곳에 자신의 눈과 귀를 심어 놓은 프리모는 제국에서 온 게인즈 자작이란 자가 은밀히 블리스를 만났고 곧이어 도르첸이 국왕을 접견하였으며, 근위군 병사가 알마리온을 소환하기 위해 황급히 혼테르로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국에서 온 손님이라?”

왕국의 국왕이 교체되면 제국에 이를 통보하고 새로운 국왕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사절단이 내왕來往하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하나 아직 왕국에서 새로운 국왕이 즉위했다는 사절도 제국에 간 적이 없었으니 제국에서도 그러한 사절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알아보도록 하라. 제국에서 온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일로 온 것인지를.”

“예, 전하.”

프리모의 정보 수집 능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그가 제국에서 온 게인즈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블리스를 만나 프랑크의 친서를 전달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지 불과 반나절 만의 일이었다.

“제국에서 온 게인즈 자작은 제국의 황태자의 친서를 폐하께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친서의 내용은?”

“그것이…….”

프리모의 명령으로 프랑크가 블리스에게 보낸 친서의 내용은 물론 이후 블리스와 도르첸과의 대화 내용까지 확인을 한 프리모의 표정은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득의만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번 기회야말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준 최대의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또한 그의 머리는 이번 기회를 철저히 이용하기 위한 계책을 세우기 위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너는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폐하가 보낸 전령이 혼테르 후작에게 가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에게 전해지는 서신을 입수하도록 하라.”

“예, 전하.”

왕국의 최고위 귀족 중 한 사람이며, 또한 왕국에서 가장 부유하였으며, 아울러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알마리온이었다.

그런 존재가 소렌토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프리모라 하여도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그런 자가 국왕인 블리스의 신임까지 얻는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위치도 평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프리모는 이번 기회에 블리스가 그를 절대 신임하지 못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그렇게 알마리온에게 전할 블리스의 서신을 가지고 이동 중인 전령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린 후 그는 한 통의 서신을 적어 가기 시작하였다.

“흠……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자신이 쓴 서신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본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서신을 꼼꼼하게 봉하였다. 사람을 부르기 위해 조그만 종을 들어 흔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너는 본가에 사람을 보내 지금 즉시 이 서신을 제국의 재상이신 베르그 공작께 전하도록 하라.”

“예, 전하.”

시종이 물러나자 프리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훗! 때마침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왕족들에게 작위와 영지를 내릴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을 잘만 이용한다면…….’

얼마 전 국왕인 블리스를 비롯하여 국왕 파벌에 속하는 귀족들의 발의로 귀족원에 제출된 새로운 법안을 떠올린 프리모는 그 또한 이번 일과 연계를 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후후…… 그런 식으로라도 왕실의 힘을 키우겠다는 생각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왕실의 족쇄가 되게 만들어 주지. 후후후.”

그동안 귀족 파벌은 블리스를 비롯한 몇몇 귀족들이 공동의 명의로 발의한 법안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대를 하여 왔다.

귀족 파벌은 이런 식으로 왕실이 지지 기반을 다지는 것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하나 프리모는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도르첸 그자와 막스밀리언 공작이 왕위 계승 서열을 포기한다면 이제 왕위 계승 서열을 가진 자는 이제 불과 네 살인 체임버스 왕자만 존재할 뿐…….”

왕위 계승 서열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왕족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설사 그렇다 해서 하루아침에 핏줄이 더 이상 핏줄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들은 더 이상 왕족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작위를 주고 봉지를 내려 주는 것은 전적으로 국왕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만, 대귀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귀족원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우선은 폐하의 뜻에 따라 주도록 하지요. 하지만 폐하의 뜻대로 그들이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 것이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힘을 키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 후후후.”

프리모는 얼마 전 포넬로부터 양국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자며 포넬의 국왕이 된 고메즈로부터 온 특사를 떠올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 수년 동안 왕국을 피폐하게 만든 포넬이었다. 그리고 그 원흉이 바로 국왕이 된 고메즈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금 두 왕국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하자며 특사를 보내온 것이다.

당연히 블리스는 이러한 포넬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가 로엔에는 있었다.

비록 폰티악 후작이라는 존재가 있어 포넬이 바다를 건너 또다시 로엔을 침략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로엔의 경우, 모든 바다를 지켜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가진 해군 전력보다 최소 수십 배 이상 규모를 키워야 했는데 그럴 재력도, 능력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럴 능력이 된다 하더라도 소규모로 움직이는 포넬의 해적들을 모두 사전에 차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포넬이 특사를 보내면서 양국 간의 교역과 관계를 정상화하자고 하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이러한 해적들이 로엔 왕국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단속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왕국의 해안 지역은 이들 포넬의 해적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오죽하면 로엔 왕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왕국 주변의 섬들을 통째로 비워 놓고 있겠는가.

이처럼 해안가 주변 마을들이 지속적으로 포넬의 해적들에 의해 약탈당하는 것으로 인해 로엔은 심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하니 이러한 제안을 하며 양국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포넬의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잘되었어. 일단 국왕 파벌이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 후, 그 두 사람을 특사로 포넬에 보낸 후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도 좋겠지. 후후후…….”

자신이 세운 계획이 마음에 들었는지 프리모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하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프리모는 자신의 이러한 계획이 결국 로엔 왕국을 패망의 길로 가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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