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 비밀
“후후, 그 아이가 제대로 하고 있군?”
“지나치게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용맹한영혼의 말에 무거운돌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들이 뮬란족을 정복하는 동안 알마리온이 이룬 업적은 확실히 무거운돌의 심기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고도 넘칠 지경이었기에 잔뜩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반해 용맹한영혼의 경우에는 그저 자신의 선택이 제대로 된 것이라는 확신에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 놓고 계실 일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 상태라면 그가 나머지 절반의 초원을 모두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라고 하였는데 그게 뭐 어쩌라고?”
“칸! 그렇게 쉽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십니다!”
“후후. 자넨 그 아이가 날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는가?”
“…….”
지금까지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던 용맹한영혼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하게 돌변하자 무거운돌 또한 내심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친구이자 동지로, 그리고 주군으로 모셔 온 용맹한영혼이 이처럼 진지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초원 최고의 현자라고 칭송받는 그도 저도 모르게 잔뜩 긴장을 하게 되곤 한다.
“난 신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인정한 존재이네.”
오만함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광망하다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란 존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말을 하였다면 한마디로 미친놈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용맹한영혼 바로 그였기에, 그가 한 말이었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마치 그가 진실로 신들로부터 초원의 지배자로 인정받은 것처럼.
“내가 그 아이에게 그곳을 통합하라고 한 것은 내가 할 일을 대신케 함이라는 것을 자네도 잘 알 것이네.”
그랬다.
비록 갑작스럽게 알마리온이란 존재가 나타나서 계획을 수정하기는 하였지만 지금 이렇듯 알마리온이 정복행을 성공리에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은근히 밀어주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마리온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맹한영혼은 비단 초원의 주인만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 모든 곳의 주인이 되고 싶어 했다.
과거 해가 뜨는 곳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의 모든 땅과, 그 땅 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주인이었던 가론 폰 로드에릭 대제와 같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럴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비록 로드에릭 대제와 같은 대단한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마법사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익스퍼트라는 존재도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또한 이미 익스퍼트의 끝을 앞에 두고 있는 실력자였다.
하나 이러한 개인적인 능력보다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거대하면서도 강한 의지와,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포용력 그리고 절대자로서의 자질과 위엄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서서 그를 향해 당당하게 행동한 자는 이제까지 몇 되지 않았고, 그런 자들 중에 지금 살아 있는 유일한 자는 바로 알마리온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용맹한영혼은 알마리온을 자신의 적수로,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굴복하여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을 자신에게 바치게 만들 생각으로 그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한데 벌써부터 이렇게 조바심을 내서야 쓰겠나? 아직은 내가 그 아이를 상대할 때가 아니야. 그 아이는 아직 날 상대할 자격이 없어.”
“…….”
그걸 인정하면서도 무거운돌의 마음은 내심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도 이러한 자신의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초원의 절반을 정복하였고, 또 다른 초원도 3분지 1 가까이를 정복한 절대 패자인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알마리온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였다. 그나마도 용맹한영혼이 명을 내려 하알란족을 자극하여 주지 않았다면 그처럼 손쉽게 세를 불려 나가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돌은 알마리온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래, 아직은 그 아이를 건드릴 때가 아니야. 아직은. 하지만…….’
“하니 그 아이가 날 상대할 자격이 생길 때까지는 그 아이를 건드리지 말게나.”
담담한 말투였지만 감히 거역을 생각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
잠시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하나 역시 먼저 눈을 피한 것은 무거운돌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칸.”
그러마 하고 대답을 하긴 하였지만 순순히 승복을 하는 그러한 대답이 아닌, 어딘지 모르게 묘한 여운이 남는 그러한 대답이었다.
적막한초원이 그동안 조련을 한 쿠란족 전사들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원래부터 쿠란족 전사들은 무모하리만치 물불 안 가리는 용맹함을 자랑하는 부족이었다. 거기에 태어날 때부터 말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기마 실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여기에 이런 쿠란족 전사들을 단 두 달 만에 완벽하게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족으로 만든 적막한초원의 능력 또한 실로 대단하였다.
그가 자신을 감추었을 때, 그의 온전한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 알마리온이 그에게 3천이나 되는 쿠란족 전사들을 맡기자 반발하거나 우려하는 자들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나 단 두 달이 지난 지금, 그러한 알마리온의 선택이 탁월한 것이었다는 데 동의하지 않거나 의심하는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모두로부터 확실히 인정을 받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비상하였고, 이러한 적막한초원에 의해 쿠란족 전사들은 과거의 무모함이 아닌, 진정한 용맹스러운 전사들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콜빈족을 공략할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제국이나 왕국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들은 기마대에 해당하였지만 이들은 마치 기사단과 같은 움직임으로, 아니 오히려 중무장한 기사단이 보일 수 없는 빠르고 현란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콜빈족 진영을 누비며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그러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쿠란족이 어떻게 알마리온에게 그렇게 쉽게 당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들의 움직임은 현란하고 또한 파괴적이었다.
또한 이에 뒤질세라 그나이제나우가 훈련시키고 지휘한 하알란족의 전사들 또한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콜빈족의 마지막 저항 의지를 철저하게 분쇄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었다.
콜빈족과의 전투는 단 세 차례. 하나 이미 두 번째 전투에서 콜빈족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마지막 전투에서 이들은 전투를 하기보다는 항복을 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렇게 콜빈족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낸 알마리온은 그곳에 그나이제나우에게 하알란족과 얄란족 전사들을 지휘케 하여 완전히 콜빈족들을 제압토록 하고는 자신은 적막한초원과 함께 쿠란족 전사들을 지휘하여 나머지 부족들을 통합해 들어갔다.
이들 콜빈족과 콜빈족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른 10여 개의 부족들을 모두 통합한 것은 한 해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이로써 알마리온은 20개가 넘는 부족들을 통합한, 명실공히 초원 동쪽의 최강자가 되었고, 그가 정복한 지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나라를 충분히 세울 수 있을 정도였다.
“하면 북동군 사령부를 해체하자는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혼테르 후작이 폐하와 제국의 의도에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아국의 북동 지역에는 더 이상의 걱정거리가 없게 되었사옵니다. 하니 이제 더 이상 북동군 사령부는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할 것이옵니다.”
도르첸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였다. 알마리온에 의해 북동 지역의 모든 게르혼족들이 통합되면서 이제 더 이상 국경을 침범당하고 약탈을 당하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또한 구태여 프리모 공작의 공세를 받을 이유가 없는 일이옵니다.”
날로 강성해지는 알마리온의 위세에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귀족 파벌은 북동군 사령관이기도 한 그를 견제하기 위해 북동군 사령부의 해체는 물론, 직영지인 북동 지역까지 탐을 내기 시작하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하고 있었고, 또한 길을 새로이 만들어 각 지역들을 연결하는 한편, 최고의 골칫거리인 게르혼족들까지 알마리온에 의해 통합이 되어 모든 위험 요소가 사라지자 탐욕스러운 마각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프리모를 비롯한 귀족 파벌은 사실상 그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고 해도 좋을 북동군 사령관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이 구태여 북동군 사령관 자리를 노리는 것은 북동군 사령관이 북동 지역의 일곱 곳의 직영지 성을 관장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직영지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다가 차후 적당한 때가 되어 직영지를 자신들이 내세운 자들의 영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도 상당히 많이 벌어졌던 일들이었고 그런 식으로 왕실의 직영지는 크게 줄어 이제는 한두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불모지라 해도 좋을, 그러한 곳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왕국의 북동 지역 또한 과거처럼 척박한 환경이었다면 구태여 탐을 내지 않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에 이들도 이처럼 탐욕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었다.
이를 감지한 도르첸은 프리모가 더 이상 왕국의 북동 지역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빌미 자체를 주지 말아야 함을 고하는 것이었다.
“대신 북동군에 속한 병력을 북서군 사령부로 이동을 시킨다면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옵니다, 폐하.”
확실히 도르첸의 제안은 여러 가지로 괜찮은 내용들이었다. 게다가 메르타니온 또한 아무리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라고는 하지만 알마리온의 지나친 독주를 경계할 필요성에 대해 나름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아니, 실상 알마리온에게 후작의 작위를 내준 것도, 그리고 북동군 사령관 자리는 물론 일곱 곳의 성을 그의 관리하에 둔 것도 모두 알마리온을 키워 주기보다는 그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작위야 그동안의 관례가 있었기에 그만을 예외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북동군 사령관과 그 관할의 일곱 곳의 직영지 성을 그의 관리하에 둔 것은 군을 유지하기 위해 그에게 몰리기 시작한 재물을 탕진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군을 유지한다는 것은 많은 재물이 드는 일이었고, 메르타니온 국왕은 짐짓 엄살을 부려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재물로 북동군을 유지토록 한 것이었다.
한데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만드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을 따르는 파벌 속에서도 더욱 그에 대한 견제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만 강하게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알마리온을 더 이상 북동군 사령관 자리에 둘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알겠네. 자네의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현명한 결정이시옵니다, 폐하.”
이러한 메르타니온의 결정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이 소식은 이내 프리모에게도 전해졌다.
“그의 보직을 해임하기로 하였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후후. 그에 대한 견제를 시작하시겠다는 것이군? 하긴 너무 독주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시지.”
“…….”
“넌 이만 나가 보고. 더글러스 후작에게 내가 보자고 한다고 전하라.”
“예, 전하.”
국왕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시종을 돌려보낸 프리모는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시게, 후작.”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후작이 해 줘야 할 일이 있네.”
“무슨 일입니까?”
“북동군 사령관이 되어 줘야 할 것 같네.”
“북동군 사령관이라면…….”
“그래, 그 애송이가 맡고 있는 자리네.”
프리모는 조금 전 집무실에서 있은 일들을 더글러스에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폐하께서는 북동군 사령부를 해체하시기로 결정하신 것 아닙니까?”
“아직 공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네.”
프리모의 말처럼 아직 공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네.”
직영지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왕실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동 지역을 담당하는 북동군 사령관 자리는 반드시 자신들의 사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엄밀히 말하자면 이스턴 지역은 아국의 영토가 아니네. 제국의 영토이지.”
프리모의 말처럼 알마리온이 장악한 지역은 왕국과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제국과 왕국이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고 하지만, 아니 사실상 왕국이 제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엄연한 독립된 존재였다. 따라서 영토를 지키는 군대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도르첸은 프리모를 비롯한 귀족 파벌이 북동 지역의 직영지를 탐내는 것을 감지하고는 아예 이들에게 아무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북동군의 해체와, 북동군 병력을 북서군으로 이동 배치하자고 하였지만 프리모는 그러한 도르첸의 구상에 대한 허점을 파고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폐하께서는 그 애송이를 견제하려 하시고 있다네.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네.”
“후후. 폐하께서 그 애송이를 견제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지요.”
“후후후. 바로 그렇지.”
정작 당사자인 알마리온은 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이들 귀족 파벌은 물론 같은 파벌에 속하는 국왕 파벌, 아니 심지어는 국왕 본인인 메르타니온까지도 알마리온을 경계하고 있었다.
‘폐하는 그것이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후후.’
나름 예전에 비하면 국왕의 권력이 많이 강화되긴 하였지만 프리모가 볼 때 메르타니온 국왕은 끝내 어리석은 선택을 한 어리석은 자일뿐이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까지도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 애송이는 순수하게 폐하에게 충성하는 자. 그런 자를 굳이 시험한다는 것은 자칫 순수함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지.’
상대방이 순수하게 자신을 대할 때는 자신 또한 상대방을 순수하게 대하는 것만이 유일한 상대법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어설픈 계산된 행동은 오히려 순수함을 오염시켜 자칫 최악의 상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프리모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사람을 대하는 법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겐 다행한 일이지만 말이야. 후후후.’
본인이 스스로 원치 않아서 그렇지 알마리온은 어느새 국왕 파벌에 속하는 이들 중 골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같은 국왕 파벌이라 하여도 알마리온과 폰티악 그리고 로엔달, 쿤테르 같은 이들은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국왕인 메르타니온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알마리온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실상 이들 네 사람이야말로 진정하게 메르타니온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메르타니온은 이들을 자신의 세를 쌓는 데에 활용하고 있었다.
사실상 메르타니온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야말로 그의 최고의 검이자 방패인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정치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점이 메르타니온으로 하여금 이들 네 사람을 곁에 두면서도 더 많이 중용하지 않게 하는 원인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후작은 북동군 사령관이 될 준비나 하시게.”
마치 확정이 된 것처럼 말하는 프리모였다. 그동안 계속해서 수비적인 입장이었던 그는 이러한 국왕 파벌의 분위기를 잘 이용하면 충분히 다시금 귀족 파벌이 득세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요들이 국왕의 명령문에 울컥 화를 냈다.
“웹 경의 말이 옳습니다. 그래도 주군께서는 왕국의 후작이십니다. 그런 주군께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결정된 내용을 통보하는 것은 주군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도일 또한 요들과 함께 분통을 터뜨렸다. 내심 말들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다.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여러 게르혼 부족들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알마리온은 일단 이스턴을 그나이제나우와 적막한초원에게 맡긴 후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혼테르로 복귀를 하였다. 너무 오랫동안 영지를 비워 두기도 하였지만, 영지에 모셔 놓은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가 마치 영지로 복귀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왕궁으로부터 전해져 온 소식은 그를 북동군 사령관에서 해임한다는 것과 아울러 그에게 맡겨졌던 일곱 곳, 아니 메코이족과 얄란족의 거주하던 지역까지 모두 이번에 새로이 성주들을 임명하였다는 통보가 왔던 것이다.
“훗! 왜들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하나 안드라스는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는 다른 가신들을 보며 오히려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하였다.
“아니, 레이 경! 레이 경은 그럼 폐하께서 주군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이 정상적이란 말이오?”
“하하. 웹 경,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단 말이오?”
“후후. 웹 경, 그런 것은 정확히 기억만 하고 있으면 되지 굳이 화까지 낼 필요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당사자도 앞에 없는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살짝 비틀린 안드라스의 가는 입술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흠…… 그만들 하시오. 어차피 결정된 일이니 말이오. 그보다 멕테일러 자작이 당황할 것이니 일단 사람을 보내 그분과 이번에 보직이 해임된 분들에게 소렌토에서 내가 보자고 전해 주시오.”
보직이 해임된 때문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조만간 알마리온은 소렌토로 직접 가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예, 주군.”
“아울러 조만간 메코이와 얄란족이 살던 곳에 행정관이 도착할 것이라 하니 그들이 머무름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오.”
“예, 주군.”
혼테르의 총관인 요하네스가 고개 숙여 대답을 하였다.
“나머지 일들은 레이 경, 그대가 나머지 분들과 잘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시오.”
“예, 주군.”
회의실을 나온 알마리온은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하였다.
“아직도 수업 중이신가?”
“예, 그레이트 칸.”
별관을 지키는 쿠란족 여전사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유르스나르의 거처는 성의 본건물과는 떨어져 있는 별관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레드로의 어머니인 이멜다와 몇몇 여인네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알마리온과 함께 복귀한 샘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알마리온이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 그녀의 존재감은 이미 혼테르의 모든 이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면 그 사람은 어디 있나?”
“마님은 훈련을 나가셨습니다.”
훈련을 나갔다는 말에 알마리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비록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지만 이런 추운 날씨에 훈련을 한다는 것은 사내들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면 난 응접실에서 기다릴 것이니 어머니가 수업을 마치시면 좀 알려 주도록 하게.”
“예, 그레이트 칸!”
여성이고 또한 전사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마치 병사들의 절도가 느껴지는 행동이 어딘지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려 보였다.
유르스나르가 응접실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후였다. 샘을 가르치는 데 약간의 시간이 더 걸린 때문이었다.
“샘은 잘 따릅니까?”
“호호. 아주 영민한 아이더구나. 게다가 그가 샘을 참 잘 가르쳤더구나.”
샘의 마법 기초를 잡아 준 리처드에 대한 칭찬이었다.
“예. 참 대단한 분입니다.”
“곧 혼례를 올릴 것이라고 했지?”
“예, 어머니. 아무래도 이번 겨울이 아니면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씨씨란 그 아이도 참 착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인데 잘되었구나.”
“하하. 예.”
“한데 무슨 일이니? 날 찾았다고?”
“예, 어머니.”
“…….”
알마리온의 표정이 이내 굳어지는 것을 보아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 함을 알 수 있었기에 유르스나르는 조용한 얼굴로 그저 알마리온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저로서도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니.”
“후…… 네 아버지 이야기인가 보구나?”
알마리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유르스나르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난 아직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구나.”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비록 원망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로엔달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그 골이 너무나도 깊고, 넓었다.
“네가 전에 말한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죄를 참회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그를 용서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아버님께 일단 어머니가 이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려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 하겠니?”
“어머님이 먼저 연락하시기 전에는 그분이 이곳까지 오시지 않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후…… 알겠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감사합니다, 어머니. 한데 지내시는 데 불편하신 것은 없나요?”
“전혀 없단다. 모두 친절하고 좋구나.”
“훗! 어머니께서 편히 지내신다니 다행입니다.”
“한데 너희 부부는 언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니?”
“그건 아직…….”
갑작스러운 유르스나르의 질문에 알마리온은 헛기침을 하며 당황해했다. 사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인해 들에핀꽃과 동침을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 좀 거칠고 투박해 보이긴 하여도 참으로 고운 아이더구나. 그리고 널 무척이나 따르고 말이야.”
모든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잘하는 며느리를 최고의 며느리로 생각하는 법. 그것은 이들 엘프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네가 벌써 이렇게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다니…….”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유르스나르의 눈빛에서 또다시 슬픔의 기운이 느껴졌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하면서 아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인지 몰랐다.
하나 그런 느낌이 들면 들수록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아들이 한 고생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그녀였다.
“또 그러십니다. 이젠 옛 기억 같은 것은 버리세요. 그냥 이렇게 행복하게 살면 전 그것으로 족해요, 어머니.”
“흑…… 그, 그래. 미안하구나.”
“아, 한데 시장하시지 않으세요? 전 조금 시장하네요.”
“호호. 알았다. 내 곧 식사를 준비하마.”
“예, 어머니.”
“자네라면 저 사람들에게 충분히 꿈을 줄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후작님, 이분들은…….”
멕테일러를 비롯한 북동 지역 일곱 곳 성의 성주직에 있던 이들에게 그동안 여러모로 많은 고생을 한 것을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던 것뿐이다.
한데 이 자리에서 알마리온은 멕테일러를 비롯한 7명의 전직 성주들로부터 자신들을 가신으로 받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황하였다. 이들 8명 모두는 폰티악의 가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의 생각이었네.”
“…….”
“자네가 선뜻 저들을 받아 주지 않는 것이 혹 저들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짐짓 낯빛을 굳힌 채 묻는 폰티악의 질문에 알마리온은 내심 고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선수를 침으로써 알마리온이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후작님. 하지만 나중에 저분들을 보낸 것을 후회하시면 곤란합니다.”
“하하하.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게. 하하하.”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난 멕테일러를 비롯하여 행정가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이들을 한꺼번에 가신으로 받아들인 알마리온은 앞으로의 행보에 이들이 큰 활약을 해 주길 기대 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가급적 부족을 흡수 통합하는 쪽으로 행해 왔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말 그대로 정복, 보다 확실한 통합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초원의 서쪽에 비해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여러 소부족들이 난립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알마리온이 통합한 부족들이 동부 지역에서 그나마 큰 규모에 속하는 부족들이었고, 그 이외의 부족들은 대부분 고만고만한 부족들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첫 교역 선단이 떠날 것이네.”
“아! 그렇습니까?”
“그렇네. 그동안 몇 차례 확인을 해 본 결과 자네가 가져온 기록들이 대체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파악했네.”
“참으로 다행입니다.”
본격적으로 해상을 통한 교역을 시작할 것이란 말은 확실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해 왕국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네 잠깐 나와 개인적으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는가?”
“예. 그러시지요. 서재로 함께 가시지요.”
“그러지.”
서재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서재 안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하였다.
“자네…… 혹 내 딸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참을 머뭇거리던 폰티악이 결국 꺼낸 말은 자신의 딸인 일레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난 말이네, 솔직히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든다네. 하지만 자네가 이미 혼인을 한 상태이기에 그동안 자네를 마음에 담은 내 딸아이를 설득하여 자네에게 향한 마음을 접도록 하였다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왕국 최고의 전략가이자 후작이라는 최고의 작위를 가진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자신의 딸을, 그것도 아무런 흠결도 없는 딸을 남의 측실로 보낸다는 것은 불명예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
달리 뭐라 할 말이 없는 알마리온은 그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폰티악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하나 내 여식이 자네가 아니라면 안 되겠다 하더군.”
강제로 다른 좋은 혼처를 구해 혼인을 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부모가 혼처를 정해 주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다.
하나 폰티악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설사 자식들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준 상대와 혼인을 시키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죄송합니다.”
“하면 자네도 내 딸아이가 마음에 드는 것인가?”
“예, 후작님.”
처음부터 일레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그리고 만약 들에핀꽃과 상황이 그렇게 되어 먼저 혼인하지 않았다면 일레인과 혼인을 하기 위해 청혼을 하였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의 아내인 들에핀꽃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으며 괜한 쓸데없는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나마 다행이네.”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이 아픈 폰티악이었다. 그런 폰티악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 알마리온은 그를 조금이라도 위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하지만 따님을 늘 행복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믿겠네.”
알마리온이 결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역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하면 예식은 언제가 좋겠는가?”
“후작님께서…….”
“허! 아직도 후작인가? 앞으로는 장인어른이라 부르도록 하게나.”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주의였기에 서운한 마음, 부담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폰티악은 오히려 알마리온의 마음을 편케 해 주기 위해 짐짓 과장된 행동을 하였다.
“예, 장인어른.”
“하하. 것 보게. 그렇게 부르니 얼마나 좋은가? 안 그런가? 하하하.”
“하하…….”
“하긴 자네는 혼자이니 내 쪽에서 일정을 잡도록 하지. 그게 자네에게도 편하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인어른.”
“할 말이 있다니 무슨 뜻인가?”
“실은…….”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마리온의 말이 이어질수록 폰티악의 놀라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면 자네 부친이 로엔달 백작이란 말인가?”
“예, 장인어른.”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알마리온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왕실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폰티악은 그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면 일간 한번 자네 아버님과 함께 초대를 해야겠군.”
“예.”
알마리온과 일레인과의 혼례가 발표되자 귀족 사회는 다시 한 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두 사람은 왕국 최고의 실력자이자 최대의 군벌을 자랑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곧이어 터진 또 한 가지 소식은 이러한 두 사람의 혼인 발표는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폰티악의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에 의해 세상에 밝혀지게 된 알마리온의 출생에 얽힌 비사는 왕국 전체를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한때, 세상은 마법 실험이라는 명분하에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잔인한 실험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진 때가 있었다.
특히 흑마법사들에 의해 자행된 온갖 형태의 생체 실험으로 인해 무수한 무고한 이들이 이들 마법사들에 의해 실험의 대상이 되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원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키메라에 의해 세상이 크게 혼란에 빠진 일이 있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마법 실험이라는 명분하에 비인간적인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자 결국 신들은 분노하였다.
감히 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려 드는 인간들의 교만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신들은 인간들 중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명하여 이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명하였다. 신성 기사단의 출현은 바로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후 흑마법사들이 모두 제거되자 신들은 모든 인간들의 수장들에게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케 하여 그 증표를 오라클 오브 오딘 산의 정상에 있는 지혜의 샘이라는 거대한 담수호에 영원히 보관토록 하였다.
비록 메르타니온과 로엔달이 벌인 일이 과거 흑마법사들이 벌였던 것처럼 극악한 행동, 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이를 근거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미 프리모를 주축으로 한 귀족 파벌은 메르타니온과 로엔달을 열두 신전에 고발을 한 상태였고, 신전 또한 이러한 고발에 따라 두 사람이 과연 신과 인간과의 맹약을 어긴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검증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메르타니온과 로엔달 두 사람은 열두 신전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신전에 구금을 당했다.
아무리 강력한 군주라 하더라도 신전이라는 절대적인 위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 신전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신전의 결정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신과 인간의 맹약이 있은 후 처음으로 이를 어긴 죄로 일국의 국왕이 신전의 재판을 받기 위해 구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알마리온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또 한 가지 불거진 문제가 바로 정령술사라는 존재였다.
가론 폰 로드에릭 대제에 의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정령술사들은 마법사들에 의해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혀 제거되었고, 정령술사라는 존재는 그 이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존재였다. 한데 그런 정령술사가 다시금 세상에 존재하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로엔달과 알마리온이라는 사실에 왕국의 마법계에서는 이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연일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혼란.
알마리온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로엔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