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이스턴족 (54/70)

대이스턴족

쿠란족을 격파하고 그들의 근거지를 장악한 알마리온은 그곳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막대한 전리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쿠란족이 주변의 여러 소규모 부족들의 족장의 자제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그렇더라고.”

초원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약탈을 주업으로 하는 쿠란족이 최근 들어서는 지금의 위치에서 정착을 한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특별한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쿠란족이었기에 이러한 쿠란족의 정착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나 이들이 이곳에 정착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로엔 왕국과 인접해 있으며 주변에는 이렇다 할 강자가 없는 고만고만한 부족들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있다면 지금 이들 쿠란이 차지하기 이전에 이 땅의 주인이었던 슈토족이 가장 큰 부족이었다.

원래 쿠란족이 이곳에 정착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슈토족이라고 하는, 차트란족보다 오히려 부족의 규모가 더 큰 부족의 영역이었다.

하나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쿠란족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들에 의해 부족장을 비롯한 부족의 지도자들 모두가 처형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나가면서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후 슈토족은 이들 쿠란족의 노예가 되어 상당 부분 외부로 팔려 나갔는데, 그들 중 일부는 로엔 왕국에도 팔려 나갔다.

하나 대부분은 이웃하고 있는 차트란이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농사를 짓는 기술이 떨어지는 초원의 서부 지역으로 팔려 나갔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슈토족은 그 수가 과거에 비하면 4분지 1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들은 여전히 노예의 신분으로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뼈가 부러지도록 노동을 하며 마지못해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하나 쿠란족은 더 이상 주변 부족들을 점령하여 그 부족들 전부를 노예로 팔아 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들에게는 손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을 통제하며 그들로부터 그들이 생산한 대부분의 것들을 상납을 받아 오고 있었다.

쿠란족은 주변의 여러 소규모 부족들을 공격하여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많은 재물을 상납받아 왔으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들 소규모 부족들의 족장의 직계 혈통을 비롯한 부족 수뇌부의 후인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그러한 부족의 수가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조사를 해 보니 모두 7개 부족이나 되더구나.”

“7개 부족이나 된다는 것입니까?”

부족의 크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7개 부족이나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뭐, 차트란의 빛나는별의 말에 의하면 그들 7개 부족은 이 부근 지역에 흩어져 사는 소규모 부족들로 전체 부족민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은 부족들이라고 하더라고.”

“하지만 7개 부족 전체를 묶어 놓으면 어지간한 부족들 규모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한데 어떻게 할래? 어차피 정복행을 계속할 생각이니 그들 부족들 또한 통합시켜야 하겠지?”

“그래야지요.”

“하면 곧 그들 7개 부족들에게 네 뜻을 전할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그래 주십시오.”

“그리고…… 넌 아무래도 재물 운은 타고난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묘한 웃음을 지으며 던진 리처드의 말에 알마리온은 무슨 말인가 싶었다.

“이놈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약탈을 했는지 창고들이 아예 보물들로 가득하더구나.”

“…….”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심지어는 차트란 또한 이놈들에게 매년 적지 않은 조공을 바친 모양이더라. 그리고 너희 왕국에서도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건 심문 과정에 들은 건데…….”

쿠란족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로엔 왕국은 이들의 약탈로 인해 전례 없는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물론 과거에도 게르혼족들에 의해 꾸준히 약탈을 당했던 터였지만 쿠란족이 나타난 이후에는 그 규모가 더욱 커졌고, 그런 만큼 피해는 심각해졌다.

심지어는 포넬과의 전쟁 중에도 왕국 최강의 북부군이 꼼짝하지 못한 채 북쪽 국경을 방비해야 했던 이유도 이들 쿠란족이 수시로 약탈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왕국이 최대 위기에 처하자 이들 쿠란족과의 협상을 통해 이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난 뒤에서야 북부군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리처드의 이야기를 들은 알마리온은 절로 기가 막혀 왔다.

왕국이 약탈을 주업으로 하는 일개 부족조차 감당하지 못해 가뜩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이후에야 북부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왕국과 주변 부족들로부터 약탈과 기타 여러 방법으로 쌓아 놓은 재물은 로엔 왕국의 5년 치 수입에 맞먹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그 모든 재물들과 쿠란족 부족민들 중 살아남은 3천여 부족민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노예가 된 슈토족과 기타 여러 부족 출신의 6천여 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고스란히 그의 소유가 돼 버린 것이었다.

쿠란족에 의해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6천여 명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부족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이들 초원 부족들 중에서도 최고의 기마술을 자랑하는 쿠란족이 보유한 말의 수만 하더라도 거의 5만 필에 달할 정도였다.

그동안 혼테르에서 기마병을 육성하기 위해 사들인 말들 또한 대부분 이들 쿠란족에게서 나온 말들이었다.

최고의 기마술과 조련법을 알고 있는 쿠란족들의 말은 과연 대단한 것들이어서 그 값어치가 매우 높았다.

한데 그런 쿠란족을 정복하면서 그들이 보유한 5만 필에 달하는 말들도 모두 그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번 정복행으로 그가 얻은 이득은 계산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이로써 자신의 영지인 혼테르에서 육성하고 있는 기병대에 필요한 말들은 물론, 발락 기사단에서 필요한 말들까지 단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한데 쿠란족과 이들에게 노예로 잡혀 있던 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들을 일단 영지로 보내도록 할 것입니다.”

“하긴 네 영지는 넓이에 비해 영지민이 턱없이 부족하지.”

알마리온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슈토족과 기타 여러 부족들 출신 노예들 전부를 혼테르로 보내려고 결정한 것은 리처드의 말처럼 영지의 넓이에 비해 인구수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과거 슈토족의 영역이었던 이곳을 자신의 또 다른 근거지로 삼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혼테르가 위치해 있었지만 그곳은 그곳이고 이곳에도 또 다른 근거지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게다가 쿠란족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혼테르에 비해 그 영역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넓은 곳으로 알마리온은 이곳과 혼테르의 일부를 자신들의 가신들에게 나누어 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혼테르로 전령을 보내 케일 경을 소환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지. 하면 쿠란족 전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들을 노예로 만들 생각이냐?”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제압하긴 하였지만, 그리고 그들이 약탈을 일삼는 거친 무리이긴 하여도 그들은 뛰어난 전사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병 전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알마리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 쿠란족 전사들은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었다.

“다루기 쉽지 않을 것이다. 워낙 드센 놈들이 되어 놔서 말이야.”

“후훗! 그 일에 적임자가 있습니다.”

“그래? 누군데?”

“형님도 아는 자입니다. 적막한초원이라고 말입니다.”

“흠…… 하지만 그는 네 밑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했잖느냐?”

“결정을 기다렸을 뿐이지요. 하나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그가 널 주군으로 인정할까?”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를 내보낼 생각입니다.”

“너 많이 변했구나?”

“하하. 이렇게 변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형님이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건 그러네.”

대충 상황을 정리한 알마리온은 곧 하얀이리와 꿈꾸는달 그리고 빛나는별 등을 비롯하여 이번 전투에 공이 있는 모두를 불러 그들이 세운 공에 맞게 포상을 하였다.

워낙 얻은 것이 많아서이기도 하였지만 알마리온은 공을 세운 이들이나 전투 중에 전사한 전사들 그리고 부상당한 전사들 모두에게 이들이 놀랄 정도로 많은 보상을 하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알마리온이 쿠란족을 정벌함으로써 얻은 것들에 비하면 그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어 모두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쿠란족에게 반복속당한 7개 부족의 족장들과 부족의 지도자들이 알마리온에 의해 이스턴이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곳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전령을 보낸 지 열흘 정도 후였다.

이들 7개 부족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지배자인 알마리온에게 혹여 밉보이지 않을까 싶어 지난 10여 년 동안 쿠란족에게 수시로 많은 것을 상납하여 왔기에 이제 거의 남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박박 긁어 가져와서는 알마리온에게 바쳤다.

“저희 일곱 부족이 약소하나마 그레이트 칸께 바치는 예물이옵니다. 부디 적다고 나무라지 마시옵소서.”

그동안 쿠란족에게 복속된 상태에 있던 일곱 부족 중 그래도 가장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마할족의 족장인 카드만 문이 연방 알마리온의 눈치를 보며 말하였다.

마할족의 족장인 카드만 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선조들은 바로 로엔 왕국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어 게르혼족들 틈에서 정착을 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지금 그대들은 나를 일컬어 그레이트 칸이라 하였는가?”

“그러하옵니다, 그레이트 칸이시여!”

알마리온의 말에 일곱 부족의 족장들과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땅에 숙이며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이는 그를 자신들의 영도자로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두 고개를 들라. 그리고 몸을 일으켜 저들과 함께 서라.”

알마리온이 가리킨 곳은 이미 그의 휘하에 든 세 부족의 대족장들과 소부족의 족장들 그리고 대전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이었다.

이들 일곱 부족의 족장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에게 그곳에 서라고 한 것은 이들 부족들을 휘하에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일곱 부족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알마리온의 결정에 다시 한 번 거창한 칭송의 말들을 나열하며 이미 그의 휘하에 든 부족들의 지도자들과 함께 자리했다.

“이제 그대들 일곱 부족 또한 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왔다. 나 알마리온 혼테르 폰 이스턴은 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그대들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또한 이 땅에 이스턴이란 이름이 존재하는 한 그대들 모두는 그 이름과 함께 모든 것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와! 대이스턴족 만세!”

“대이스턴족 만세!”

알마리온의 선언이 있자 그의 밑에 든 10개 부족의 지도자들과 주변을 가득 메운 10개 부족의 전사들의 입에서 거대한 함성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어 댔다.

그는 또한 그동안 인질로 붙잡혀 이들 7개 부족의 후계자들과 지도자들의 후예들을 풀어 주어 다시금 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라 명하였다.

“그들을 데려오라.”

그들이란 바로 포로가 된 쿠란족의 족장을 비롯한 쿠란족의 지도자들 중 일부였다.

이미 대부분의 쿠란족 지도자들은 전투 중에 전사를 하였지만 쿠란족의 족장인 뜨거운피를 비롯한 몇몇의 지도자들이 살아서 포로가 되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알마리온은 이들을 추방하거나 했겠지만 그는 자신의 단호함을 보이기 위해 이들 모두를 처형하기로 하였다.

이들을 처형한다고 해서 좀 더 단호함이 돋보이게 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 받아들인 7개 부족들은 이들 쿠란족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아니, 이들보다는 이제는 소멸된 슈토족 사람들과 타 부족 출신이긴 하여도 이들에 의해 노예가 된 이들에게는 지난 시간 동안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달래 줄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을 채워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불만을 갖게 될 것이고, 앞으로 이들을 영지로 보낼 알마리온에게는 이들이 불만을 가진 채 자신을 원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포로가 된 쿠란족 지도자들을 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하는 것으로 그들의 원망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계획이었다.

끌려온 쿠란족 지도자는 모두 20명. 이미 이들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 모두가 체념한 표정들이었다.

이들을 처형하기 위해 선발된 자들은 슈토족을 비롯한 노예 생활을 하던 이들 중 그나마 지도자 측에 들어가는 자들이었다.

“처형하라!”

“우와아악!”

알마리온에게서 이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미리 선발된 20명 집행인들의 입에서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단번에 머리가 잘려 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쌓인 원한이 풀리지 않았는지 집행인들은 여러 차례 시신을 훼손하였다. 하나 그 누구도 이들이 지쳐 그만둘 때까지 이들의 행동을 만류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원한을 풀었는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신들 옆에서 한참을 목 놓아 울부짖던 집행인들이 어느 정도 진정하자 알마리온이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트 칸이시여!”

“그동안 저들에 의해 쌓인 그대들의 원한이 풀렸다면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대들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알마리온의 말에 이들은 모두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몸을 떨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완전히 몸에 배어 버린 노예근성이 또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알마리온은 자신의 옛 모습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영지에는 상처받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비롯하여 혼테르에는 타인의 노예로 살아온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알마리온이 몰라서 그렇지 혼테르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의 지배자인 영주라기보다는 자신들을 억압과 굴종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구해 준 해방자로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대들은 나의 또 다른 영지인 혼테르로 이주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그대들 모두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대부분 슈토족 출신인 노예들은 비록 노예가 되긴 하였지만 자신들의 고향인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 내키진 않았다.

하나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이 그걸 명하였기에 결국 이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들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보다는 조금 전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이 한 말이 더욱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 이들의 심정을 알았는지 알마리온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이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 모두 이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닌, 로엔 왕국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나 알마리온 헤이그 폰 혼테르의 영지민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레이트 칸이시여!”

자유를 약속하는 알마리온의 말에 이들은 모두 고개를 깊이 숙여 그의 자비로움에 예를 다하였다.

슈토족과 기타 여러 부족 출신 노예들을 물러나게 하고 처형당한 시신들을 치우게 한 알마리온은 다시금 성대하게 축하연을 베풀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알마리온의 게르 안에 들어온 이는 적막한초원이었다.

“그쪽으로 앉도록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잠시 두 사람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하나 그러한 침묵은 이내 알마리온에 의해 깨져 버렸다.

“오늘 이렇게 그댈 오라 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

적막한초원도 그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 그가 무엇을 원하며 자신을 소환한 것인지 이내 짐작하였다.

전에도 이미 한차례 그는 자신에게 그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오늘도 거절을 한다면 난 떠나야 하겠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섞이지 않을 사람이라면 차라리 내보내는 것이 좋은 일이었다.

그것은 비록 소부족이긴 하였어도 한때 한 무리의 부족을 이끌었던 적막한초원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젠 그 답을 들을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나지막한, 그리고 생각보다는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적막한초원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두 사람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마주쳤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 진정으로 자신을 원하기는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알마리온의 눈빛은 그저 한없이 담담하기만 하였다.

‘두렵다.’

문득 적막한초원은 그런 알마리온의 모습에서 심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처음 그가 자신에게 수하가 될 것을 제안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열정을 가진 젊은 군주의 모습일 뿐이었다.

하나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 지금. 그의 모습에서는 절대자의 모습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적막한초원은 알마리온이 공주 일행을 호위하며 제국으로 향하는 동안 그나이제나우에 의해 작은 깨달음을 얻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그의 이러한 변화가 너무나도 생경했던 것이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실상 적막한초원은 이미 알마리온에게 마음속으로 굴복해 있는 상태였다.

과거의 그는 자신의 주군으로 삼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해 보였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하나 지금의 그는 자신이 그의 기대를 제대로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다.

알마리온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런 그가 부족해 보여 망설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해 보여 망설이고 있는 적막한초원이었다.

“부족한 제가 필요하신 것입니까?”

어렵게 말문을 여는 적막한초원이었다.

“내가 완전한 사람이었다면 그대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대가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난 그대와 함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알마리온의 이러한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적막한초원이었다.

하나 그의 말뜻을 이해한 순간 적막한초원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묘하게 치솟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 그리고 희열을 그로 하여금 느끼게 만들었다.

“저 뮬란의 말보른족 적막한초원이 주군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뮬란 출신이었군요?”

적막한초원이 또 다른 끝이 없는 초원에 살아가고 있는 초원의 부족 출신임을 처음 알게 된 알마리온은 조금은 놀라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주군.”

자신이 뮬란 출신이라는 것에 관심을 보이자 적막한초원은 자신이 왜 고향을 떠나 이 먼 낯선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보른족의 여덟 명의 소부족장 중 한 사람인 그는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왔다.

때문에 말보른족의 족장은 어린 그를 늘 경계하였고,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을 지시하거나 하였다. 그런 과정 중에 그가 자연스럽게 도태되거나 아니면 사라져 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하나 그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질수록 그는 더욱 그러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하나의 시련을 극복할 때마다 더욱 강해져 갔다.

결국 말보른족의 족장은 더 이상 그를 곁에 둘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고, 그와 그의 소부족 전체를 제거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를 우연히 들은 족장의 아들은 그러한 사실을 친구인 적막한초원에게 알려 주었고, 아버지의 뜻을 배신한 친구의 요청대로 조용히 홀로 부족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댄 신이 그대에게 준 재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오. 만약 그대가 그대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지 않는다면 난 오히려 그대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오.”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주군.”

“그대에게 쿠란의 전사들을 맡기겠소. 그들을 나의 최강의 전사들로 만들어 주시오. 그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하지만 나의 말이라면 그 무엇이든 듣는 그러한 창으로 만들어 주시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주군.”

이로써 적막한초원은 온전히 알마리온의 또 한 명의 가신이 되었다.

쿠란족을 정복하고, 쿠란족에 의해 제압당하였던 7개 부족을 받아들인 알마리온은 일단은 한숨을 돌리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영지에서 도일이 백여 명의 치안대 대원들을 인솔하여 이스턴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이스턴에서 노예로 생활하고 있던 슈토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 출신의 노예들 수천 명을 혼테르로 이주시키는 힘든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충! 주군을 뵈옵니다.”

“하하.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수고라니 당치않습니다. 그보다 저희 모두는 진심으로 주군의 건승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래, 영지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영지민들도 평온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도일의 말에 알마리온은 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영지민들이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어 나가고 있다는 말은 알마리온에게 있어 가장 듣기 좋은 말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많은 이들이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은은하면서도 어지간해서는 느낄 수 없는 충만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 내가 존재함으로써 나의 그늘 아래 들어온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야.’

이렇듯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알마리온은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알아야 할 것들을 물었으며, 필요한 조치들을 지시하였다.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이주시킬 수는 없었다. 하여 순차적으로 이주시키도록 하였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던 영지의 관리들이었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에 대처를 보다 잘할 수 있었다.

한센은 이미 알마리온의 서신을 받았을 때부터 테일러 상단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구하도록 알마리온의 이름으로 지시를 내렸으며 영지에 남아 있는 관리들을 통해 적절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주하는 이들이 남긴 지역에 마할족 사람들을 이주시켜 오기 시작했다. 원래 이들의 조상들이 로엔 왕국 출신이었기에 그런지 이들은 알마리온이 하나씩 잡아 가는 체계에 쉽게 적응을 하였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알마리온은 자신 휘하에 들어온 10개 부족의 부족민들 중 일부를 이스턴에 정착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이들 10개 부족의 족장들은 그의 이러한 지시를 기꺼워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그레이트 칸과 한 공간에 있는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제도帝都나 왕도王都에 사는 백성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갖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것이 그만한 대가를 더욱 많이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마리온은 이스턴을 자신의 영지인 혼테르보다 더욱 큰 곳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굳이 처음부터 이곳을 이스턴이라 정하고 혼테르보다 더욱 번성한 곳으로 만들려고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 근방에는 언제 지어졌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상당한 규모의 버려진 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록 버려진 지 오래된 곳이라 손봐야 할 곳이 상당히 많기는 하였지만 새로운 성을 건축하는 것에 비하면 그 시간이 훨씬 단축될 수 있었다.

또한 그 폐성은 대지의 정령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기단부는 튼튼하여 손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간은 더욱 줄어들 수 있었다.

그 일은 타고난 장인들인 얄란족의 하얀이리에게 맡겼다. 당연히 전장에 나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을 잔뜩 쏟아 냈지만 결국 자신이 맡은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계속하여 설득한 후에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아들였다.

아울러 하얀이리에게는 이스턴에 대한 도시계획까지 맡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리처드에게는 10개 부족 전사들 전체의 훈련을 맡겼으며, 적막한초원에게는 쿠란족 포로들로 구성된 전사들의 훈련과 조련을 맡겼다. 재미난 일은 쿠란족의 남은 구성원들 중 여인들로만 구성된 별도의 부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쿠란족 자체가 뛰어난 전사의 집단이었고 이는 쿠란족 여성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들 또한 당당한 여전사들이었다.

그런 쿠란족의 특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들에핀꽃은 알마리온을 졸라 결국 쿠란족 여전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부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쿠란족을 정복하고 그들의 남은 부족민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알마리온의 군세는 훌쩍 수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다.

쿠란족까지 합해 11개 부족, 아니 슈토족까지 계산한다면 12개 부족이라고는 하지만 그중 7개 부족은 메코이나 얄란의 절반 정도의 규모였으며 차트란에 비하면 3분지 1정도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전체적으로 따진다면 6개 부족의 하이란족에 비해 아직도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게다가 단기간에 여러 부족들이 하나로 뭉친 때문에 결속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알마리온과 리처드는 많은 논의 끝에 일단 현재의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이들 모두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데 주력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울러 알마리온은 다시금 발락 영지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물론 그냥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사람을 보내 발락 기사단에서 필요한 말들을 배편으로 싣고 가기로 하였고, 그에 따른 대금은 통상적인 가격으로 계산받기로 하였다.

또한 왕실에도 이번에 2천 필의 말을 헌상하기로 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자기과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말 2천 필이라면 그 가격만 따져도 왕실의 1년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왕국에서도 왕실 차원에서 말을 키우고는 있었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말이라는 짐승이 사육을 한다 해서 모두 다 전장에서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였지만 그만큼 말을 키우는 데는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여의치 않은 왕국에서는 늘 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2천 필이나 되는 말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왕실에 헌납한다는 것은 확실히 다시 한 번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이처럼 왕실에 헌납할 2천 필의 말과, 발락 기사단을 위해 준비한 1천 필의 말이 이동을 시작하자 이러한 광경을 처음 본 로엔 왕국의 백성들은 저마다 이 거대한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길가로 모여들었다.

왕도인 소렌토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테일러 상단의 쿠엔토와 알베르토 부자 그리고 근위근 사령관인 로엔달이 몇 명의 근위군 지휘관, 병사 들이, 그리고 북서군 사령관인 막스밀리언 왕자와 북서군 지휘부와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 알마리온이 헌납한 2천 필의 말 중 5백 필은 왕실 근위군에서, 그리고 나머지 1천5백 필은 북서군에서 사용키로 하였기에 이를 인수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하하! 오랜만이오, 혼테르 후작!”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다른 이들의 이목도 있었기에 오랜만에 알마리온을 만나는 막스밀리언도 예법에 따라 그를 대하였다.

“후작 각하를 뵈옵니다.”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그리고 아직 세상에는 단 몇 사람만이 아는 일이었기에 로엔달 또한 평소의 무뚝뚝함을 가장하며 알마리온에게 인사를 해 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알마리온은 내심 마음 한편이 찌릿하게 아려 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하나 세상에서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인 로엔달은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고 있었다.

결국 알마리온의 입에서도 담담한, 아니 담담함을 가장한 아픔이 가득 담긴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로엔달 백작.”

“오랜만에 문후드립니다, 주군.”

로엔달과의 인사가 끝나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쿠엔토와 알베르토가 인사를 해 왔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수고들이 많았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옵니다.”

두 부자가 동시에 대답하였다. 알마리온이 몰고 온 3천 필의 말은 소렌토로 들어갈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었다.

“훗! 너 대단한 일을 했더구나?”

“하하, 형님도 참…….”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던 막스밀리언이 아까와는 달리 평소 그와 하던 말투로 말을 건네 왔다.

“아냐. 네 덕분에 부족한 기병 전력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고맙다.”

늘 만성적인 말 부족으로 인해 기병 전력이 크게 부족한 왕국이었다. 특히 기마민족인 게르혼족을 상대하자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병 전력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필요성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1천5백 필, 그러니까 대략 500기 정도의 기병 전력을 육성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이긴 하여도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막스밀리언이었다.

“게다가 네가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말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네가 이번에 한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왕국의 입장에서는 알마리온의 이번 정복행은 두 가지 면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나는 쿠란족을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북동부 지역에서 왕국의 안전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 세력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바로 쿠란족이었다.

그런 쿠란족을 제압하였다는 것은 왕국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담을 크게 줄였다는 의미였다.

다음으로 쿠란족을 제압하면서 얻게 된 5만 필에 달하는 말이었다. 비록 이 모두가 왕국의 소유가 아닌 알마리온 개인의 것이었지만 안정적으로 우수한 말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왕국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일임에 분명하였다.

“그나저나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막스밀리언의 계속된 칭찬에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 알마리온이 대화 내용을 바꾸기 위해 한동안 보지 못한 유일한 친구인 레드로의 안부를 묻자 막스밀리언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막스밀리언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며 알마리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딱히 무슨 일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 다만…….”

“…….”

“개인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 보이더라.”

상세한 내용까지야 막스밀리언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레드로와 그의 친부인 더글러스 후작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레드로가 제 능력을 발휘할 심적 여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막스밀리언은 그런 개인적인 일들을 남에게 전하기는 싫었는지 대충 얼버무렸다.

“개인적으로 말입니까?”

“그래.”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막스밀리언의 말에 알마리온 또한 표정이 굳어졌다.

유일한 친구인 레드로의 운명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나면 한번 그 친구를 만나 보는 것이 어떻겠냐?”

“알겠습니다. 이번에 제국에 다녀온 후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는 것이 좋겠다.”

“형수님과 조카들은 잘 지냅니까?”

“하하, 그래. 안 그래도 아이반이 늘 네가 언제 오느냐고 물어본단다. 하하하.”

막스밀리언의 큰아들인 아이반은 유난히 알마리온을 잘 따랐다. 그래서인지 아이반은 글을 깨친 이후에는 수시로 알마리온에게 서신을 보내 안부를 물어 왔다.

그런 아이반의 서신을 받을 때마다 알마리온 또한 답장을 하였고, 작지만 꼭 선물을 함께 보냈다.

“그건 그렇고 엘리노아가 많이 아쉬워하고 있단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수님이 제게 아쉬워하시다니요?”

“하하. 네게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네 혼인 소식에 아쉬워하는 것이지. 실은 아내가 네게 참한 레이디를 소개하려 하였거든.”

“아…… 예…….”

“하긴 여러 부인을 두는 것이 흉도 아니고 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니…… 어떠냐? 한번 추진해 볼까?”

“하하. 아닙니다, 형님. 전 실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호! 그래?”

“후후. 예.”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소렌토에 도착을 한 이들 일행은 곧바로 왕궁으로 향하였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복구를 위한 노력을 해서 그런지 소렌토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지만 예전에 비해 가난한 이들의 수는 더욱 많아져 빈민가의 규모 또한 더욱 커져 있었다.

왕궁에 도착하자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또다시 달라져 있었다.

그가 제국으로부터 백작이라는 작위를 받고, 그것으로 인해 왕국에서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긴 하였지만 인정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나 지금의 그는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었기에 이제 더 이상 그를 무작정 폄하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그는 여러모로 왕국 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영웅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기에 그를 대함에 있어서 무척이나 조심했다.

“이스턴의 대군주이시며 혼테르의 대군주이신, 그리고 북동군 총사령관이며 북동 지역 7개 성의 성주이심과 동시에 이스턴족의 그레이트 칸이신 알마리온 헤이그 폰 혼테르 후작 각하 입궁이시오!”

막스밀리언 왕자의 입궁을 알리는 근위군 병사의 외침 소리에 이어 알마리온의 입궁을 알리는 병사의 목소리는 오히려 앞선 막스밀리언 왕자에 비해 더욱 장황하고 또한 힘찼다.

한데 특이한 점은 그를 소개함에 있어서 이스턴족이라는 그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부족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왕국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스턴족은 역사에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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