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배자의 길 (30/70)

지배자의 길

“그렇게 갇혀야만 하는 영들이 불쌍하지 않나요?”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당돌한여우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꽉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날이 저물면서 결계를 설치하는 작업을 일단 중지하고 마을로 돌아온 알마리온은 자신에게 배정된 게르 안으로 돌아와서는 세수를 한 후 유식을 취하려고 하였다.

한데 그의 이러한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 버렸다. 앞으로 자신의 책임하에 놓인 당돌한여우가 다짜고짜 결계를 만들기 위해 지박령을 봉인하는 것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따져 물었기 때문이다.

“오전에도 그런 말을 하더니, 혹시 너는 영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냐?”

오전에 있었던 사건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지나치게 당돌하기까지 한, 그 이름까지도 당돌한여우인 이 소녀는 주술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을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난 봤단 말이에요. 대족장님이 그 불쌍한 영혼을 어둠만이 있는 이상한 곳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했던 것을 말이에요!”

“볼 수 있었다고?”

“그렇다고요! 왜 내 말을 아무도 안 믿는 거죠?”

아마도 부족의 주술사이자 대족장이었던 푸른하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례 세상에 존재하는 영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 누구도 당돌한여우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던 모양이었는지 반문하는 알마리온에게 큰소리를 쳤다.

“후훗! 그건 말이야, 그들이 네가 가진 재능이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란다.”

“예? 하면 대족장님께서는 제 말을 믿는단 말인가요?”

“물론이지.”

“왜죠? 전대 대족장님께서도 제가 영들을 볼 수 있다고 하면 그저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하실 뿐 믿진 않으셨단 말이에요.”

믿지 않는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믿는다고 하면 왜 자신을 믿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당돌한여우의 행동에 알마리온은 그저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라 하더라도 영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영적인 존재들에 대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개중에는 여러 형태의 영들 중 하나인 정령이란 존재들을 단지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들, 그러니까 정령술사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정령술사들 또한 정령 이외의 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네 말을 믿을 수 있는 것이란다.”

“예? 대족장님도 영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요?”

“글쎄. 나 또한 일반 영들은 눈으로 볼 수 없단다. 다만 정령들만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뿐이지.”

“정령?”

정령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듯 당돌한여우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알마리온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런 것이지.”

“아!”

알마리온이 소환한 운디네를 보자 당돌한여우는 수줍어하는 운디네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며 바짝 다가왔다.

“이 아인 누구죠? 와! 너 정말 예쁘다! 안녕? 난 당돌한여우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가뜩이나 부끄러움이 많은 운디네가 갑자기 달려들어 혼을 빼 놓듯 수다를 떠는 당돌한여우의 행동에 크게 당황해하며 알마리온의 몸 뒤로 숨어 버렸다.

“힝! 나랑 친해지기 싫은 거야?”

운디네가 놀라 숨어 버리자 당돌한여우는 이내 슬픈 표정이 되어 칭얼거렸다.

“하면 이 요정도 눈에 보이니?”

선택받은 자의 신물에 봉인되어 있는 요정들 중 하나인 드리아데스Dryades를 소환하여 보여 주자 운디네를 소환하여 보여 주었을 때와 똑같은 표정이 되어 호들갑을 떠는 당돌한여우였다. 한데 운디네와는 달리 오랜만에 봉인에서 풀린 드리아데스는 호들갑스러운 당돌한여우의 장난질에 호응을 하며 게르 안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확실히 저 아이는 모든 종류의 영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구나.’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서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정령술사이자 주술사인 자신 또한 정령을 제외한 다른 영들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고,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능력을 보이고 있는 당돌한여우란 존재가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신께서 신탁을 통해 나란 사람을 이들의 영도자로 지목하신 후 곧바로 나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선택하신 것은 아마도 나로 하여금 저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치라는 의미인 것 같구나.’

신의 계시로 다음 대의 메코이족의 대족장으로 점지를 받은 당돌한여우가 대족장으로서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익혀 나가야만 했다.

‘아무리 신탁이 있었다 하더라도 네 스스로 강해지지 않는다면 넌 결코 내 뒤를 이어 메코이족의 대족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신탁에 의해 뽑힌 지도자들의 자질이 떨어지면서 삶의 터전까지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메코이족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알마리온은 그동안 관례처럼 되어 버린 대족장을 비롯한 소족장들의 선출을 신탁이 아닌 강자만이 족장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개선함으로써 이들 메코이족이 강한 부족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더욱이 네 경우에는 더더욱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내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넌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너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네 부족과 전체 메코이족을 위해서도 최선일 것이니 말이다.’

훗날 모든 정精과 영靈 들의 지배자인 소울 마스터Soul Master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먼 훗날의 이야기. 미래의 위대한 여전사이자 소울 마스터이며 또한 대주술사가 되는 이의 현재는 철부지의 당돌한 소녀에 불과할 뿐이었다.

“여우야.”

“예? 왜요?”

드리아데스와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부르자 다소 짜증을 내는 당돌한여우의 행동을 보면서 꿈꾸는달이 이 어린 여동생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이거 혹시 내가 짐 덩어리를 하나 맡은 것 아닌지 모르겠네.’

“어떠냐? 넌 그 나무의 요정인 드리아데스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지 않으냐?”

“정말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그래.”

“알려 주세요! 예? 드리아데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어서 알려 주세요.”

마치 맡겨 놓았던 물건을 다시 내 달라고 하는 사람처럼 알마리온을 다그쳤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알려 주는 2개의 주문을 꼭 외우도록 하렴.”

“주문요?”

“그래. 하나는 드리아데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주문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주문이란다.”

알마리온이 가장 먼저 당돌한여우에게 알려 주려 한 것은 로엔달 백작이 전해 준 마나 수련법을 가장한 주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감交感의 술’이라는 주문으로 마법의 패밀리어 마법과 유사한 술법이었다.

이 교감의 술이라는 주문은 영적인 존재와의 교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주문으로, 주술사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매일같이 정성을 들여 수련을 해야만 하는 그러한 술법이었다.

“그 두 가지 주문을 외우면 정말 드리아데스와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물론이란다.”

“와! 알려 주세요! 어서 알려 주세요!”

“먼저 이것을 네 목에 걸렴.”

아공간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는 선택받은 자의 신물에서 알마리온이 꺼낸 것은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모양의 목걸이였다.

“이것은 드리아데스가 머무는 집이란다. 그리고 드리아데스를 이 집에 넣을 때의 주문은…….”

나무의 요정인 드리아데스의 봉인물의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 준 알마리온은 마나 수련법과 교감의 술법에 대한 주문을 천천히 불러 주었다.

“모두 기억할 수 있겠니?”

“예!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단 세 번 읊어 준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길다고 하면 제법 긴 2개의 주문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 알마리온은 내심 크게 놀랐다.

주술의 주문이라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도통 그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이었다. 또한 그중 상당 부분은 발음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들으면 들을수록 기괴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주문을 처음 듣게 되면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알마리온의 주인이었던 로뎀 자작 또한 알마리온의 천재성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을 정도다. 한데 그런 알마리온보다도 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당돌한여우였다.

2천 자에 달하는 마나 수련법과 5백 자에 달하는 교감의 술에 대한 주문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당돌한여우는 그 존재 자체가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원형 룬어를 단 세 번만 듣고 모두 기억을 하다니…… 어쩌면 이 아이,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한데 이 이상한 말들이 무슨 뜻이에요?”

“그건 원형 룬어라는 것이란다.”

메코이 부족의 대족장이 된 이후, 선택받은 자의 신물을 통해 전해진 지식이 아니었다면 알마리온 또한 주문들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게 로엔의 말인가요?”

“아니란다. 이 주문들은 모두 주술사들이 신께 무엇인가를 바랄 때 쓰는 신의 언어란다.”

“와! 정말 신들이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인가요?”

“후훗! 그렇단다.”

“알려 주세요.”

“그래.”

두 주문에 대한 해석을 해 주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손을 마주 잡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고개를 쳐들어 알마리온을 똑바로 바라보며 알마리온의 설명을 마치 할아버지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경청하였다.

“이상해요. 어떤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겠고 말이에요.”

“그렇지?”

“예.”

“하지만 네가 좀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하게 된다면 주술이 가진 의미를 알게 될 것이란다.”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단다. 왜? 넌 공부하는 것이 싫은 것이냐?”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족장님이 알려 주신 주문들이 어떤 말들인지 알고 싶기는 해요.”

“하하. 그렇다면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구나.”

“예!”

“앞으로 이 두 주문은 틈이 날 때마다 외우도록 하렴.”

“예!”

드리아데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말에 신이 나 껑충거리는 당돌한여우의 모습을 보면서 조끼 속에서 종이 뭉치와 마법 펜을 꺼내서는 어릴 때 주인이었던 로뎀 자작가에서 자작가의 도련님인 지크와 함께 처음 글을 배우게 되었을 때 익힌 것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돌한여우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20일 정도를 칸 부족의 영역에 머물면서 결계를 설치하고, 병들어 있거나 아니면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부족민들을 치료해 준 후 칸 부족을 떠나 다시금 붉은이리 부족의 영역으로 향했다.

마을에 대한 축복의 의식을 행한 후, 이들 부족이 준비한 술과 음식으로 한바탕 축제를 벌인 후 일단 영지로 복귀하였다.

“그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렌.”

“예, 영주님.”

“앞으로 이 아이도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거처를 마련해 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도록 해.”

“예, 영주님.”

“일단 방에 돌아가서 짐을 풀고 있으렴.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렌이나 여기 있는 집사인 요하네스 경에게 부탁하든지, 아니면 아렌이나 노만에게 말하면 필요한 것을 구해 줄 것이다.”

“예, 대족장님.”

“그럼 다들 집무실로 가도록 하지요.”

“예, 영주님.”

총관인 한센, 집사인 요하네스, 그리고 군사부장인 리처드와 치안대 대장인 요들이 알마리온의 뒤를 따라 집무실로 따라갔다.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예, 영주님.”

“그럼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보고하세요.”

원래는 2개월 정도를 예상하고 영지를 비웠던 것이 예상보다 길어져 3개월이나 되어서야 영지로 돌아왔기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었다.

“우선 농지에 대한 재분배 작업을 시작할까 합니다.”

대대로 이곳을 장악하고 있던 세 준남작 가문은 영지의 농지 중 5분지 4 정도를 교묘한 수법을 통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왔고, 이렇게 소유하게 된 농지를 자신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농노들을 동원하여 농사를 짓게 하였다.

하나 이들 모두가 여러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고 이들의 소유였던 농지들이 다시금 영주인 알마리온에게 귀속됨으로써 영지 내의 농지에 대한 재분배가 필요했었다.

“조건은 기존에 정했던 대로 한 것입니까?”

“예, 주군.”

메코이족의 영역을 방문하기 전에 농지의 재분배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하였고, 그때 재분배에 필요한 기준을 마련해 놓았었다.

“한데 아무래도 계획을 다소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기존에 정했던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다는 한센의 말에 알마리온이 그 이유를 물었다.

“주군의 명에 따라 기존에 노예의 신분이었던 자들을 농노로 격상시키긴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이곳 혼테르는 농지가 적은 곳입니다. 하여 기존의 농노들만으로도 재분배를 위한 농지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농지로 개간할 만한 땅도 없는 것입니까?”

“있기는 하지만 일단 몬스터의 출몰이 워낙 잦은 상태인지라 당장 개간을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웹 경.”

“예, 주군.”

“치안대와 병사들에 대한 훈련은 어느 정도입니까?”

“언제든 출동이 가능합니다, 주군.”

원래대로 하자면 이미 한 달 전에 몬스터 토벌 작전을 시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알마리온의 복귀가 늦어지면서 토벌 작전 또한 지금까지 연기가 된 상황이었다.

“현재 동원이 가능한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늘 주군께서 대동하여 온 메코이족 전사 예순 명까지 포함하여 총 660명의 병력 중 부상 등의 이유로 동원이 불가능한 마흔 명 정도의 병력을 뺀 620명이 동원 가능합니다.”

“병사들의 부상 정도가 심한 것입니까?”

“흠! 심한 정도는 아니고 단지 골절 같은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주군.”

골절을 당한 병사들의 수가 무려 사십여 명이나 된다는 요들의 말에 알마리온은 그가 얼마나 심하게 병사들을 굴렸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제대로 굴려 놨나 본데?”

“그거야…… 아무래도 실전은 훈련같이, 훈련은 실전같이 해야 된다는 주군의 말씀도 있었고, 에 또…… 맞습니다! 놈들이 너무 약해 빠져서 그런 것이지 결코 제가 심하게 굴린 것은 아닙니다. 리처드 님, 안 그렇습니까?”

“하하,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병사들의 훈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웹 경에게 맡겼으니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변명을 하는 요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면 일단 6백 명의 병사들을 셋으로 나누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편의상 이를 1대와 2대 그리고 3대라고 부르겠습니다.”

“…….”

“1대는 형님께서 맡아 주시고, 2대는 웹 경이 맡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3대는 임시로 총관이신 드란 경이 맡도록 하십시오.”

“…….”

“이 3개 대로 하여금 몬스터 토벌과 국경 방비를 교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1대가 먼저 몬스터 토벌 작전을 실행하면 2대는 이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3대는 국경을 수비하는 임무에 투입됩니다.”

“하면 영지의 치안 업무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영지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요들이었기에 치안 문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아 있는 예순 명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내가 영지에 있을 때에는 이들을 내가 직접 지휘토록 하겠지만, 내가 영지에 없을 경우에는 총관이신 드란 경이 그들을 지휘토록 하십시오.”

“예, 주군.”

“알겠습니다.”

“그리고 작전에 필요한 물자의 공급은 테일러 상단을 통해서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총관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세요.”

“예, 주군.”

“아!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게르혼족 출신 전사들 중 병사로 지원한 자들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미 6백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로 팔려 온 게르혼족 출신 노예들에게서까지 병사를 뽑으려 한 이유는 지속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하고 국경을 방비하기 위해서는 6백 명의 병력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들 중 자의로 주군의 병사가 되겠다고 나선 자들의 수가 무려 5백 명이나 됩니다. 그것도 추리고 추린 숫자가 그 정도입니다.”

영지 내에 존재하는 게르혼족은 그 수가 무려 2천2백 명에 달했다. 사실 이 정도의 숫자는 알마리온을 따르기로 한 6개 부족 전체 인구의 절반이 조금 못 되는 숫자로 이들만으로도 아예 1∼2개의 부족을 만들 수 있는 정도였다.

다만 이들 중 대부분은 남자들이었기에 알마리온은 테일러 상단을 통해 게르혼족 여자 노예들을 사들이도록 지시를 내려 놓은 상태였고, 여자 노예들이 유입되면 이들과 짝을 지워 2∼3개의 새로운 마을을 만들 계획이었다.

“너무 많군요.”

확실히 기존의 병사들의 수 또한 다른 영지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상태에서 5백 명이나 되는 또 다른 병사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지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가 될 수 있었다.

“하나 선별된 자들 모두가 당장이라도 전장에 투입하여도 좋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들입니다, 주군.”

알마리온이 5백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새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눈치를 보이자 이내 요들이 그들을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였다.

“게다가 어차피 몬스터 토벌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치려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6백 명이라는 병력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아니, 보통의 영지 같았으면 아예 이 정도로 많은 병력을 보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또다시 5백 명이나 되는 병력을 추가한다면 그것은 영지를 보호하는 차원이 아닌, 아예 반란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훗! 웹 경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요들의 말처럼 몬스터 토벌 작전은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소 3∼4년 동안은 몬스터의 활동이 극도로 줄어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세 계절 내내 지속적으로 몬스터 토벌 작전을 수행해 나가야만 몬스터들로 하여금 인간들이 사는 지역에 침입하는 것이 곧 죽음을 뜻한다는 학습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자면 6백 명 정도의 병력만으로는 지속적인 몬스터 토벌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하여 게르혼족 노예들 중 1∼2백 명 정도를 추가로 더 뽑으려 했던 것이니 굳이 이유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하면 다른 분들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소관 또한 웹 경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소관 또한 그렇습니다.”

“작전 수행 도중 손실되는 병력까지 고려한다면 확실히 6백 명은 너무 적은 숫자이긴 하지. 게다가 어차피 그들 중 일부를 기병대로 쓸 계획이었잖아?”

“재정 문제는 없겠습니까?”

“충분합니다.”

어차피 재정이라면 충분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저 땅거죽만 벗겨 내면 퍼낼 수 있는, 매장량이 얼마인지조차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인 철광산이 존재하고 있고, 산지의 일부를 개간하면 얼마든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지를 추가적으로 개간할 수도 있었고, 국경무역을 통해 얼마든지 필요한 재정을 만들 여건도 충분했다.

“그리고 몬스터를 토벌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하여 또 얼마간의 재정을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들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부산물들 중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도 상당히 많았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 몬스터 중 하나인 오크의 경우만 하더라도 오크의 가죽은 소가죽보다 더 두꺼우면서도 질긴 가죽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두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당히 고급의 가죽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에게 지급할 물품들은 준비된 것이 있습니까?”

“충분치는 않습니다. 일단 3백 명 정도를 무장시킬 수 있는 방어구와 무기는 창고에 보관된 것이 있습니다.”

요들의 대답에 알마리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남아 있는 무기류의 전량이 그것입니까?”

“예? 예, 주군.”

“하면 당장 작전에 들어간 병사들에게는 어떻게 필요한 보급품을 지원할 계획인 것이죠?”

“그건…….”

“테일러 상단을 통해 나중에 사 오면 된다는 생각이신 것입니까?”

“…….”

솔직히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필요한 무기들을 확보하는 것은 치안대장인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 군사부장인 리처드와 총관인 한센이 해야 할 일이었기에 요들은 그것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웹 경.”

“예, 주군.”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질책을 당한 요들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아졌는지 그의 목소리에는 그러한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웹 경의 공식적인 지위가 치안대장이긴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웹 경에게 일임을 하였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주군.”

“그리고 웹 경이 게르혼족 출신자들을 병사로 받아들이자고 내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비록 임시적으로 맡긴 업무였기는 하여도 추후 어떠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판단까지 한 후 내게 조언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 내가 웹 경의 조언만을 듣고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는 무기들을 모두 꺼내어 그들을 무장시키는 것까진 그렇다 해도, 당장 몬스터 토벌 작전 중에 손실되고 파손되는 장비들은 어떻게 보수하고 충당할 계획인지, 그리고 그 밖의 추가적인 보급 계획도 내게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실수하였는지를 확실하게 안 요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끝이 난 상태이지만 로엔 왕국 차원에서 본다면 여전히 전쟁 중에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무기와 같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한다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군대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 보급 물자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그동안 군에서 잔뼈가 굵어 온 인물들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것은 이들이 많이 나태해져 있음을 그대로 알게 해 주는 대목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란 경.”

“예, 주군.”

“드란 경 또한 영지의 총관으로서, 그리고 우리 중 가장 경험이 많은 분으로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지적하고 보완해 주어야 할 분까지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주군.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하네스 경.”

“예, 주군.”

“그동안 이러한 일은 요하네스 경이 주로 하였으니 가장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

“경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것은 분명 나무랄 것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 드란 경이나 웹 경은 바로 요하네스 경의 동료입니다. 동료가 아직 자신의 일에 서투르다면 당연히 요하네스 경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전달해 주고 조언을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주군.”

“그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해 왔고, 신의 가호를 받은 때문인지 지금 이 자리에까지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점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 지금부터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일들은 그동안 우리가 해 왔던 일들과는 전혀 다른 일임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전장에 나아가 어떻게 하면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지만을 연구하면 되었지만, 영지를 경영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일들이었다.

‘이곳은 나의, 나만의 왕국인 셈이다. 하나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혼테르라는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충성과 의무를 다하게 한 만큼 나 또한 나만의 왕국에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이 이 땅에서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통치자에게는 권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권리에 따르는 의무 또한 존재했다.

통치자가 권리만을 주장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을 때, 백성들은 그를 자신들의 통치자가 아닌 독재자나 수탈자라 말한다.

그리고 권리도, 의무도 다하지 못한 통치자를 백성들은 어리석은 군주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의무만을 죽어라고 이행한다고 해서 백성들이 그를 과연 성군聖君이라고 말해 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는 통치자로서 지켜야 할 권위라는 것이 또한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가 무너지게 되면 통치자의 곁에서 기생을 하는 기생충들에 의해 세상은 또한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처음 영지를 받게 되었을 때, 알마리온은 자신이 어떠한 영주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냉정하면서도 권위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분명히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며 평안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군주가 내가 가고자 하는 군주로서의 길이다.’

성군이나 명군,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이나 바람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영지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이들 또한 자신들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아니, 비단 자신의 직분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또한 나와 함께 이곳을 통치하는 통치자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결정이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어야만 한다.’

“전장에서 나를 비롯한 여러분의 결정은 곧바로 전투의 결과로 나오는 일이었기에 모두 긴장하고 또 긴장하여 치밀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한데 지금의 여러분에게는 그때와 같은 긴장감도, 그리고 치밀함이나 냉정함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의 일이 그때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

계속되는 질책에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반성을 하는 모습들이었다.

“앞으로는 좀 더 다른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기대가 실망감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주군.”

‘훗! 녀석이 이젠 제법 군주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군.’

가신들을 질책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알마리온을 보면서 리처드는 비로소 군주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와 이곳 혼테르란 영지가 어떻게 변해 나갈 것인지 잔뜩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번 일에는 나의 미숙한 점도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웹 경.”

“예, 주군!”

질책을 받아서인지 요들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확실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웹 경을 치안대장 겸 군사부 부부장으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나의 잘못된 인사로 빚어진 일로 애먼 웹 경을 질책한 것 사과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주군. 그것은 분명 소관의 잘못입니다. 하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하는 알마리온의 행동에 요들은 당황하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그런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의 입가에 조용히 미소가 어렸다.

“어쨌든 그들 전원을 일단 영지의 병사로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단, 일단은 2백 명의 병사들에게 무기와 방어구를 지급하고 나머지 1백 명분의 무기와 방어구는 예비로 남겨 두도록 하십시오.”

“예, 주군.”

“그리고 총관께서는 테일러 상단뿐만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메코이족과 얄란족을 통해서도 늘 일정 수준의 물자를 비축해 놓도록 하십시오.”

“예, 주군.”

“형님.”

“왜?”

“형님께서는 웹 경과 함께 부대 편성과 몬스터 토벌 작전은 물론, 국경을 지키는 병력의 운용에 대한 계획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러지.”

“아! 그리고 그들의 충성도는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그들을 무장시킨 후 그들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을 취한다든지 아니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염려하여 물은 것이었다.

“걱정하시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 모두 주군과 리처드 님께서 자신들을 구하였을 때 두 분의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서 그런지 주군에 대한 충성도가 무척이나 높습니다.”

강자를 따르는 게르혼족들이었다. 또한 생명을 구해 준 이들에게는 평생을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었기에 알마리온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그들과 기존의 영지민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하니 기존의 영지민들과 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미 제1의용군 시절에도 충분히 겪었던 일들이다. 처음 제1의용군이 결성되고 제1의용군 안에 로엔 출신 병사들과 게르혼족 출신 병사들이 함께 존재하면서 일어났던 많은 문제점들을 기억하고 있기에 한 말이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주군. 하여 제1의용군 시절에 써먹었던, 아니 썼던 방법을 사용할까 합니다.”

잘 나가다가도 순간순간 예전의 말버릇이나 행동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요들이었다.

“이미 경험했던 일이니 잘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주군!”

예전 같았으면 한센이 큰소리나 뻥뻥 친다고 한마디 농담을 하였겠지만 조금 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제는 이들 모두 준귀족이 됨으로써 행동들을 조심해서인지 더 이상 그러한 농담은 없어졌다. 한데 그러한 옛 행동들이 한편으로는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잠시 이전의 허물없이 지내던 때를 그리워하며 아쉬움을 느꼈던 알마리온이 이번에는 다른 사안에 대해 한센에게 물었다.

“그리고 다른 상단을 유치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국경무역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알마리온이었다. 다른 상단을 영지 내에 유치하여 이들과 게르혼족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자는 테일러 상단의 쿠엔토 단주의 요청을 받아들여 외부의 상단을 유치하는 작업의 진행 정도를 묻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6개 상단이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에 대한 명단입니다.”

한센이 건네준 명단에는 모두 국왕파에 속하는 귀족 가문들이 운영하고 있는 상단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상단들이 영지에 지점을 설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점을 말인가요?”

“예, 주군.”

“훗! 나중에 독자적인 거래를 하겠다는 뜻이군?”

“소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주군.”

리처드는 물론 오랫동안 테일러 상단에서 자라 온 요하네스 또한 지점 설치를 요청한 상단들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드란 경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소관 또한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차피 이러한 특권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게르혼족과의 중계무역을 해도 좋다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 외부에도 알려지게 되면 국경 지역에 위치한 영지들은 물론 다른 곳의 영지들 또한 이러한 중계무역을 위한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얼마 동안은 국왕이 이러한 다른 귀족들의 요청을 막아 주겠지만, 결국 이를 빌미로 국왕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양보받으려 하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알마리온에게 부여한 특권을 회수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주군께 부여한 특권을 회수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왕 폐하께서는 그러한 특권 자체를 없애 버리는, 그러니까 모든 국경무역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국경무역을 한다 하더라도 주군에게 주어진 특권은 길어야 4∼5년 정도만 유지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곳에 더 많은 상단들의 지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흠!”

과연 한센의 예측대로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비밀을 약속했다 하더라도 밀무역을 하고 있는 자들이 존재하는 한, 결국은 그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하오면…….”

“지점 설치를 허락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주군.”

이후에도 알마리온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영지에서 진행된 일들에 대해 꼼꼼히 따지느라 제법 긴 시간 동안 회의를 하여야만 했다.

“결국 그동안 각 부족의 족장들이 강하지 못하였기에 그와 같은 분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으음…….”

알마리온을 따라 혼테르에 온 다섯 명의 족장들은 흰꼬리 부족을 비롯한 6개의 부족의 이탈은 결국 자신들 내부의 문제로 인해 벌어진 것이지 이방인인 알마리온이 대족장의 신분이 되었기에 빚어진 일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5명의 소족장들의 경우에도 가장 연장자인 차분한심장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각 소부족의 대전사들에 비해 강한 자가 없었다.

“결국 지금의 분열된 부족을 다시금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게르혼족의 전통에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하오나 저희는 신탁에 의해 선출된 자들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 또한 다르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술사들이 자신의 뒤를 이을 계승자를 신탁을 통해 찾는 것이지 부족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신이 점지해 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억지십니다.”

“아니. 대족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따뜻한봄바람 님.”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큰날개 그대는 내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전통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 메코이 부족 또한 다른 게르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자들이 정당한 대결을 통해 부족을 이끌어 가는 족장을 선출하던 때가 있었음을 잊으신 것입니까?”

검은매 부족의 족장인 큰날개의 말에 따뜻한봄바람은 반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족장들 모두가 큰날개의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해서 난 그대들에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벌어 주려 합니다.”

“그 말씀은?”

“1년 후, 난 모든 부족들 앞에서 공표할 것입니다. 전통에 따라 강자가 부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임을 말입니다.”

“…….”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하나 이들에게 있어서 1년 안에 지금보다 더 높은 실력을 쌓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내일부터 사흘 동안 성의 지하에 있는 수련장에 여러분의 수련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설치할 것입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여러분은 그 안에 머물면서 수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

“그 안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는 모두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가 될 것입니다.”

“…….”

할 말을 마친 알마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나간 이후에도 이들 5명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묵묵히 각자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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