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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27/70)

새로운 시작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먼저 총관인 한센 경이 그 일에 대한 최종 보고를 해 주십시오.”

그동안 영지를 지배해 왔던 세 준남작 가문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 버린 이후, 한센에게는 영지의 살림살이를 맡는 총관의 직책을, 그리고 알베르토에게는 성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집사의 직책을, 리처드에게는 영지병을, 요들에게는 치안대 대장을 맡겼다.

“예, 영주님. 그럼 가장 먼저 지난번 형 집행을 통해서 처형을 당한 인원은 모두 아흔다섯 명입니다. 또한 노예로 신분이 강등당한 10세 미만의 남아들과 여인들의 총수는 모두 백마흔여덟 명입니다. 현재 이들은 성내의 지하 감옥에 감금 중이며 이들의 처분은 테일러 상단에서 맡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에 노역형을 받은 자들의 수는 총 백마흔네 명으로, 이들은 현재 파울만 광산에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형을 언도받은 자들 전원의 재산을 압수하여 영지의 재산으로 귀속시켰습니다. 그 금액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며, 단지 보유한 금전만을 계산하였을 때 총 65만 4,325골드 정도입니다. 이 금액은 그들에게 속한 노예들이나 각종 귀중품이나 보석류 그리고 가구와 예술품, 부동산 등을 제외한 금액입니다.”

“저, 정말 그 정도나 된단 말입니까?”

치안대 대장이 된 요들이 한센의 보고에 놀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지난번 알마리온이 영주로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 보고받은 대로라면 현재 영주의 총재산은 금전만 따질 경우 겨우 1,300골드 정도가 전부였다.

이것도 실상 이들에게는 엄청난 거금이라 여겨졌는데 오히려 열흘 전, 처형당한 죄인들의 압수한 재산 중 단지 금전만 계산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오백 배가 넘는 금액이었으며, 케일의 영지의 연간 총 세수가 4,500골드이고 이 중 4,300골드 정도가 매년 다시 지출되었으니 거의 영지의 145년 치 세수와 맞먹는 금액이었기에 그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단지 금전만을 합산한 금액일 뿐, 그 외의 재산은 아직 제대로 정리조차 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한데 이 모든 것을 알마리온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 영지의 재산으로 귀속시킨 것이다.

따라서 만약 세 가문에서 토지와 저택 등 압수한 모든 재산을 처분할 경우 대략 350년 정도는 세금을 걷지 않아도 좋을 정도였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단지 금전만을 계산한 것만 그런 것이고, 그 이외의 것들까지 모두 합할 경우 추정되는 금액은 거의 150만에서 160만 골드 정도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배, 배, 150만에서 160만 골드요?”

“그렇습니다.”

“…….”

이 정도 금액은 상단을 운영하느라 큰돈을 움직이는 데 익숙한 쿠엔토에게도 확실히 놀라운 금액이었다.

“현재 그 재산들 모두는 철저하게 분류하여 성으로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노예들 또한 우선은 성으로 이동시켜 성안의 일을 맡도록 하였습니다.”

“노예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다 합해서 7백 명이나 됩니다.”

“7백 명?”

“그렇습니다. 한데 그들 중에 로엔 왕국 출신은 일흔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게르혼족 노예였습니다. 이는 파울만 광산의 사정 또한 비슷해서, 광산에서 일하던 1천2백 명가량의 노예들 중 1천 명 정도가 게르혼족 출신이었습니다.”

이처럼 게르혼족 출신의 노예들이 많은 것은 이들이 최근 초원 지대에서 일어나는 부족들 간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노예로 팔려 온 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를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주군.”

“일단 게르혼족 출신은 모두 별도로 관리하도록 하세요. 웹 경.”

“예, 주군.”

“웹 경이 그들을 맡도록 하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드란 경에게 요청하도록 하십시오.”

“예, 주군!”

“그리고 드란 경, 내 생각엔 더 이상 우리 영지에는 노예란 신분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하면 게르혼족 출신들을 제외한 자들을 일단 농노의 신분으로 격상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알마리온이 이런 지시를 내릴 것이란 예상을 하였기에 한센은 알마리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단 노예였던 자들 모두를 농노로 신분을 격상시키겠다며 나름 생각한 후속 조치를 말하였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아무래도 노예들을 농노로 만들게 되면 그들이 거주할 집과, 그들이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게르혼족 출신자들 또한 별도로 지낼 공간이 필요한 상태이고, 군사부장님의 요청에 따라 성의 방어 능력 향상을 위한 개축 공사 또한 실시하여야 합니다.”

“일단은 게르혼족 출신들의 거처는 그들 스스로 건설하도록 하세요. 단, 필요한 것들은 충분히 지원토록 하시고요. 그리고 성의 방어 능력을 위한 개축 공사는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본 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곳에도 필요한 요새나 방어 거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니 그것과 함께 추진하도록 하지요. 일단 며칠 후에 저와 함께 같이 주변을 살펴본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요.”

“예, 주군.”

“그러지 뭐.”

영지의 병사들을 맡기로 한 리처드가 대답을 하였다.

“다음으로 세율 문제를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현재 영지 전체 인구의 5퍼센트 정도만이 자유민이었고, 나머지 95퍼센트가 농노였다.

“그 전에 가신들인 그대들의 장원을 먼저 정해야겠지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가 의논을 한 것이 있습니다.”

“의논을 말입니까?”

“예, 주군.”

“어디 들어 보죠.”

“다른 것이 아니라, 이곳에는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저희에게 장원을 내주시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한센의 말에 알마리온이 놀란 표정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주군.”

“난 아냐. 어차피 난 네 부하도 아니니 장원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겠어?”

“형님도 참…….”

한센과 요들, 쿠엔토와 요하네스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후에 달리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율 문제 또한 일단 다시 한 번 왕실과 재상부와 협상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추후 결정하도록 하고, 일단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십시오.”

알마리온의 영지는 그 사정이 어렵고, 또한 병력을 유지하여 국경을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 세금을 일절 면해 주었다.

하나 영지 내에서 광산, 그것도 상당한 규모의 광산이 발견되었기에 이에 대해 왕실과 재상부에 재협상을 해야만 하였는데, 모든 광산은 그 소유가 왕실의 것으로 해당 광산이 위치한 영지의 영주와는 생산에 소요된 비용을 제외하고 생산량을 절반씩 나누어 갖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것이었고, 협상에 따라 그 분배의 비율이 달라질 수가 있었다.

“예, 주군.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주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가요?”

“어차피 그 세 놈들로부터 압수한 재산도 엄청난데 구태여 영지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건 웹 경의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오, 요하네스 경?”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세금은 징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한다는 것이오?”

“그건 저들이 지켜야 할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무는 부여하지 않고 권리만이 주어진다면, 저들은 결코 영주님과 영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율은 조정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 권리와 의무는 철저하게 서로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맞는 말이지. 암! 바로 그거야! 권리와 의무를 서로 분명하게 이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지를 위해 최선인 것이지.”

“그, 그런가요? 전 그냥…….”

“하하, 웹 경이 영지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모두 잘 알고 있으니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 물론이지.”

“하하, 그렇죠? 하하하.”

“하하하.”

“더 이상 없습니까?”

“예, 영주님. 이상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군사부장께서 보고해 주십시오.”

“그러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영지의 총병력은 6백 명이다.”

이처럼 단번에 영지의 병력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은, 제1의용군에서 영지병으로 흡수한 3백의 병력과 이곳 케일의 자경대와 요새 마을에서 신분을 위장한 채 영지민들을 감시하고 괴롭혔던 용병들 모두에게 5년 동안의 군 복무를 조건으로 형을 면해 주었다. 하여 이처럼 병력이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한 관리는 어떻습니까, 형님?”

“후훗! 그건 웹 경이 아주 잘하고 있지.”

“흠! 흠!”

리처드의 말에 요들이 목에 힘을 주었다.

“하하, 안 봐도 알 것 같군요.”

다들 웃으며 요들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요들은 거친 병사들을 다루는 것에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1의용군 시절에도 그랬고, 단 며칠뿐이었지만 이곳에서 자경대 대원들과의 합동훈련(?)에서도 요들은 이내 이들과 친숙해졌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웹 경.”

“걱정 마십시오, 주군! 놈들이 주군 명령이라면 불구덩이 속으로도 거리낌 없이 뛰어들도록 만들겠습니다.”

“하하, 그래 주십시오.”

“그리고 말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기병을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거기서 구한 게르혼족들 있잖아? 내 생각에는 그들 중 일부를 군에 끌어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파울만 요새 마을에서 노예로 살던 게르혼족들은 대부분 전사 출신이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르혼족들이라면 모두 말들을 잘 다루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그들이 주변의 다른 민족보다 말을 훨씬 잘 다루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면 어느 정도를 생각하십니까?”

“100기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략 300에서 350마리 정도의 말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지.”

“흠…….”

기병대가 존재한다면 상당히 강력한 전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매장량이 풍부한 광산이 존재하고 있어 이를 유지할 여력 또한 충분했다.

“단주, 가능하겠습니까?”

회의에 참석해 있는 쿠엔토에게 그 정도의 말을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어렵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쿠엔토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상단 쪽에서 필요한 말들을 구매하도록 하십시오.”

“이왕 구할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구해 줘라.”

“들으셨죠?”

“예, 주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까?”

“없는 것 같네.”

어차피 제1의용군에서 사용하기 위해 테일러 상단에서 끌어 모은 물자들이 충분히 있었기에 다른 것들은 필요한 것이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고……. 군은 앞으로 2개월 후에 대대적인 몬스터 사냥을 할 것이니 그에 따른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해 주십시오.”

“2개월 후에? 그러지.”

“그럼 다음은 상단 쪽 일을 보고해 주세요.”

“예. 테일러 상단은…….”

쿠엔토의 보고 또한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제대로 상단을 돌보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청을 드릴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주군.”

“무엇인가요?”

“영지 내에서 다른 상단들도 상업을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상단을 말이오?”

“예, 주군.”

조금 뜻밖의 요청이었기에 다들 그가 왜 갑자기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그동안 저희 상단이 게르혼족과 거래를 해 온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이를 알게 된 다른 상단들이 저희 상단에 압력을 넣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상단이 이곳에 상주하게 되면 아무래도 물자가 많이 오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세수 증대도 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르혼족과의 교역은 상당한 이익이 남는 일이었다. 때문에 테일러 상단은 그동안 왕실에서 제때 대금을 결제해 주지 않아도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상인들이라면 이처럼 게르혼족과의 교역이 큰 이익이 남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기를 쓰며 이들과 밀교역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큰 부담을 안고 하는 일이었기에 로엔 왕국에서 활동하는 상단들은 꾸준히 게르혼족과의 교역을 공식화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제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때문에 이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가 알마리온에게 처음으로 그러한 교역에 관한 권리를 내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다른 상단들 또한 이러한 권리를 얻기 위해 꾸준히 왕실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한편, 테일러 상단과의 연계를 통해 이익이 많이 남는 게르혼족과의 교역을 추진해 오고 있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테일러 상단은 그러한 상단과의 중계무역만으로도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주군.”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총관인 드란 경과 먼저 의논하여 세부적인 계획안을 올려 주십시오.”

“예, 주군.”

“또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이후에도 쿠엔토는 몇 가지 제안을 더 했는데, 그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교역의 확대를 위해 길을 내 달라는 것, 꾸준히 몬스터를 토벌하여 안전을 확보해 달라는 것 등이 그러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영지에 필요한 일들을 돌보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 알마리온은 약속대로 메코이족을 방문하기 위해 리처드와 단둘이 메코이족의 영역으로 향했다.

메코이족이 자리 잡은 지역은 알마리온의 영지인 케일이 위치한 곳에서 서남쪽으로 말을 타고 이틀 정도 이동을 해야 했다.

상대적으로 평야가 많은 남쪽의 경우에는 이처럼 이틀 정도나 말을 타고 이동을 할 정도의 영지라면 공작의 영지를 제외하고는 없었지만, 산맥 지역이 많은 북쪽, 특히 산세가 가장 험한 곳인 오라클 오브 오딘 산맥의 경우에는 직선거리로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워낙 길이 험해 이처럼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왜 쿠엔토라는 자가 메코이족과 얄란족의 거주 지역을 교체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한 것인지 알 만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농사를 주로 짓던 메코이족이 살아가기에는 이곳 지형은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다.

“누군지 머릴 아주 잘 썼어. 농사를 주로 짓는 메코이족에게는 이런 산악 지형을, 그리고 드워프의 피를 이은 얄란족에게는 그나마 이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땅을 개척하기 쉬운 곳을 내주다니 말이야.”

메코이족과 얄란족을 받아들이긴 하였지만 이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들이 강성해질 수 없도록 아예 이들에게 내준 지역 자체가 이들 두 부족의 특성과는 정반대되는 곳을 내주었던 것이다.

“일단 이곳과 얄란족의 거주 지역을 살펴본 후에 국왕 폐하께 두 부족의 거주 지역 교환을 요청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국왕이 거절을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두 부족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도록 해야겠지요.”

간단하게 대답을 하긴 하였지만 그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건 그렇고 네가 메코이족의 대족장이 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알리지 않았지?”

“아직 알리진 않았지만 이번에 광산 문제로 다시금 왕도에 가게 되면 곧바로 알릴 생각입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 아닐까?”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알릴 것은 알려야 뒤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흠!”

말은 맞는 말이지만 구태여 알릴 필요성이 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인 리처드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메코이족의 거주지 경계까지 도달한 두 사람이었다.

“훗! 마중 나온 사람이 있군.”

“그러네요.”

살던 곳에서 다른 부족들에게 쫓겨난 메코이족이었기에 주변에 대한 경계가 상당히 강화된 모양인지 메코이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최외곽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기 위해 몸을 숨긴 메코이족 전사가 이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이쯤해서 멈추도록 하죠.”

“그러지 뭐.”

말을 멈춘 알마리온이 몸을 숨기고 있는 메코이족 전사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것을 알아보겠소?”

웃옷을 살짝 풀어 보이자 그곳에는 선택받은 자의 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족장님의 신물? 하면…….”

선택받은 자의 신물을 단번에 알아본 메코이족 전사가 몸을 드러내며 말하였다.

“이것을 알아보았으면 연락을 취하도록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대족장님.”

모든 메코이 부족인들에게는 이미 대족장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전해져 있었다. 새로 선택받은 대족장은 메코이족 출신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미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새로이 선택받은 대족장이 조만간 도착할 것이라는 전언도 모두 받은 상태였다.

삐이익∼! 삐익! 삑! 삑!

아마도 신호를 보내는 특별한 규칙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한 번은 길게, 두 번째는 조금 짧게,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짧고 강하게 호각을 불자 곳곳에서 똑같은 형태의 호각 소리가 울려왔다.

“잠시만 그늘에서 기다리십시오. 곧 대족장님을 모시러 모이란 부족 부족장님과 대전사님께서 모시러 오실 것입니다.”

메코이족이라 통칭을 하고 있지만 메코이족에는 11개 소부족이 존재했다. 뿌리는 모두 하나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 독립된 소부족을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하나 이들 소부족 또한 원류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여 소부족장은 사제로서의 역할을, 그리고 대전사는 부족의 전사들을 지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대 이름은?”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대족장님.”

“푸훗!”

수통에 담은 물을 마시던 리처드가 메코이족 전사의 이름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물을 뿜어냈다.

“아! 미안! 미안하오.”

“흠!”

대족장의 신물을 지닌 자와 함께하고 있는 자였기에 자신을 모욕한 리처드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서늘해진 것이 화가 많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모르고 한 실수이니 웃으며 넘겨 주면 어떻겠소?”

“알겠습니다, 대족장님.”

“고맙소. 한데 그대를 보니 곧 좋은 일이 있는데 어떤가요? 내가 그 일을 축복해 주고 싶은데 말이오?”

“예? 아! 지, 진정이십니까?”

“하하. 그래요. 이렇게 그대 어린양을 처음 만난 인연도 있고 또 내 형님의 실수도 너그러이 넘겨 주었으니 그 사례라고 해 두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족장님!”

어린양이 좋아하는 모습에 리처드가 슬쩍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훗! 저 전사에게서 곧 혼인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여 그것을 축복해 주는 의식을 해 주려고 말입니다.”

“축복 의식?”

“예.”

축복 의식이란 신생아나 혼인을 하는 젊은 남녀에게 해 주는 의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신에게 이들의 축복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쳇! 뭐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저렇게 좋아하지?”

“그게……. 명예죠.”

“명예? 그러니까 대족장에게서 축복 의식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명예스러운 일이라 그것이냐?”

“그렇죠.”

“뭐, 각 신전의 교황이 혼인식을 직접 주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네?”

“하하. 맞아요. 그거와 같은 의미죠.”

“하긴 교황이 직접 혼인을 주관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힘든 일이니 저처럼 기뻐서 날뛸 만도 하겠네.”

얼마 후 산등성이를 넘어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모이란족의 부족장인 차분한심장이라고 합니다.”

“모이란족의 대전사 달리는발입니다.”

“반갑습니다. 알마리온 헤이그 폰 혼테르라고 합니다.”

이미 대족장이 로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들과는 생김새는 비슷하여도 다른 머리, 다른 복장,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알마리온을 대하자 마음이 썩 편하진 않은 이들이었다.

“일단 부족의 땅으로 가시지요.”

“그러죠.”

푸른하늘로부터 대족장의 지위를 물려받은 알마리온이 제1의용군에서 함께한 전사들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메코이족과 대면하게 된 알마리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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