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응징 그리고 새로운 시작 (26/70)

응징 그리고 새로운 시작

“오늘 밤 자정에 일제히 움직이도록 하지요.”

“오늘 밤 자정에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오늘 밤 자정에 전격적으로 세 가신을 체포하는 작전을 벌인다는 알마리온의 말에 모두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을 뿐, 긴장하거나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 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전은 별것도 아닌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즐거움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였다.

“일단 자경대 대원들부터 장악을 하겠습니다. 웹 경.”

“예, 주군.”

“언제든지 그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주군.”

이제는 영지병이 된 전 제1의용군 소속 병사들 3백과 자경대원들은 합동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의 목적은 최근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국경 지역에 대한 게르혼족들의 약탈 행위와, 오라클 오브 오딘 산맥에 자주 출몰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대응 훈련이라는 명목이었다.

“그동안 명령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수가 비록 아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 주군.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감을 나타내는 요들에게 한마디 충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이번 작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요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자경대야말로 저들 세 준귀족들이 이곳 케일을 장악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었다.

“드란 경은 상단의 용병들과 함께 성을 장악해 주십시오. 이후 자경대를 체포하고 돌아온 병사들과 용병들을 지휘하여 나머지 두 준남작들도 체포하여 주십시오.”

“예, 주군.”

“형님과 난 그 요새 마을을 장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마리온이 예상보다 빠르게 세 준귀족 가문에 대한 응징을 결심한 것은 바로 이 요새 마을이란 존재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이곳을 탐색하는 것이 용의치 않아 그 안에 과연 얼마나 되는 자들이 갇혀 지내는지,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방법이 없어 결국 알마리온이 정령을 이용하여 요새 마을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보았다.

그리고 알마리온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에 대해 크게 격분하였다.

요새 마을에 격리된 채 그 안에서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고 있는 영지민의 수는 무려 1천4백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키고 강제로 노동을 시키기 위해 투입된 용병들의 수만 해도 250여 명.

요새 마을 안에 갇힌 이들은 강제 노역은 물론 온갖 학대와 굶주림 그리고 폭행에 시달린 채, 하루 종일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 별도의 지시가 내려지지 않는 이상 각자 맡은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십시오.”

“그러지.”

“예, 주군.”

“뭐, 헉! 누, 누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움직이다가 자칫 네 녀석의 목이 베일 수도 있거든.”

이반은 잠결에 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차가움에 눈을 떴다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서 있는 검은 그림자에 너무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반 겔만! 너를 국가 재산 무단 점유와 갈취, 부당한 방법으로 영지민들의 인신을 구속하고 이들을 재판도 없이 처벌하여 노예 등으로 만든 것 등으로 너를 체포한다!”

담담하게까지 느껴지는 한센의 목소리였다.

“무, 무슨 소리요, 그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오! 게다가 그대가 누군데 날 체포한다는 것이오!”

갑자기 자신의 잠자리에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댄 채 묻어 두었던 일들을 거론하며 자신을 체포하겠다는 말에 놀라긴 하였지만 그래도 아주 못난 인물은 아닌 듯, 제법 강단 있게 나오는 이반이었다.

“후후. 그대를 체포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

어둠 속에서 한발 앞으로 다가서니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 흐릿하긴 하지만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반 겔만은 다시 한 번 놀라야만 했다.

“드란 경? 하면 영주가?”

“입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놈이 감히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한센의 차가운 목소리와 붉게 충혈된 그의 눈빛에 이반은 그만 살짝 오줌을 지려 버렸다.

“이자를 끌어내!”

“예, 드란 기사님!”

낮에 변장을 하고 성안에 들어온 테일러 상단에 속한 용병들이 한센의 명령에 따라 반항하는 이반을 포박하여 끌어냈다.

같은 시각.

“시작하자.”

“그러자구, 대장. 흐흐흐!”

전선에서 사선을 함께 넘어온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어려서부터 홀로 세상을 살아야만 했던 요들은 거칠게 살아온 요들은 대부분 죄수와 도망자 들로 구성되었던 병사들과 유난히 잘 통하였다.

“한데 괜히 잔뜩 술을 먹여 놓은 것 아냐? 죄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으니 재미가 없겠는데?”

오늘로써 지난 열흘간의 훈련이 끝나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의미로 알마리온은 이들에게 술과 고기를 잔뜩 내렸다. 물론 오늘 있을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영지병들이 계속해서 권하는 술에 자경대 대원들 대부분이 잔뜩 술에 취해 버렸다.

“뭐, 어쩌겠어? 이런 일에 괜히 너희의 귀중한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잖아?”

“하하. 그건 대장 말이 맞네. 어쨌든 놈들을 빨리 청소하자고.”

“그래.”

요들과 함께 각각 1백 명씩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백인대 대장들인 칼, 도일, 킴이 자경대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쳇! 역시 너무 시시하네.”

대부분 술에 취해 아무 데서나 잠들어 버린 자경대 대원들에 대한 체포는 순식간에, 거의 저항 없이 끝나 버렸다. 몇몇 자경대 대원들이 저항을 하긴 하였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냐. 킴! 너희 백인대가 이놈들을 데리고 성으로 이동해. 그리고 나머지는 요새 마을로 가서 주군을 돕도록 한다! 자! 가자고!”

“예!”

세 명의 백인대 대장 중 가장 어린 킴의 백인대로 하여금 체포한 자경대원들을 성으로 압송하게 하고, 나머지 2개의 백인대를 이끌고 요새 마을로 달려가는 요들이었다.

“쳇! 나이 어린 것이 이렇게 서러울 수가! 야! 뭣들 해! 어서 이놈들 끌고 성으로 돌아가자! 어서 이놈들 넘기고 오랜만에 이슬 피해서 늘어지게들 자 보자고!”

“하하! 알겠수다!”

이들이 자경대를 제압하여 성으로 끌고 갈 무렵 알마리온과 리처드는 단둘이서 요새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뭐하러 너까지 나서냐?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말이야.”

“그냥 성에 앉아 있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따라 나온 거죠, 뭐. 조금 후면 요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일단 나 혼자 시작할 테니까 넌 이곳에서 도망가는 놈들이나 잡으라고. 그럼 난 간다!”

“형님!”

그동안 쌓인 것이 좀 있었는지 리처드는 알마리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내 요새 마을로 달려가서는 곧바로 판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땡! 땡! 땡! 땡! 땡!

밤하늘을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잠들어 있던 요새 마을이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레오폴트 님이 벌써 시작하신 것입니까?”

“응. 한데 그쪽은 잘 마무리된 거야?”

“어. 뭐, 잔머리를 쓴 덕분에 너무 쉬웠지 뭐.”

“피해는?”

“전혀. 한데 우리도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냐?”

“그래야지. 병사들에게 마을 주변을 경계하여 도망자가 없게 만들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고.”

“그래.”

병사들로 하여금 마을 외곽을 포위하고 도망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알마리온과 요들이 리처드가 부숴 놓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요새 마을 안에는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동안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마리온에게 전해 들은 리처드는 작심을 하였는지 일절 동정심 같은 것을 보이지 않았다.

“으악!”

“컥!”

“아악!”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비명과 피 그리고 주검만이 남았다.

“레오폴트 님이 오늘 아주 작정을 하신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네.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듣고 화를 많이 내셨는데 그 때문인 것 같다.”

“하긴 나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들었을 때는 머리로 피가 확 몰려들더라.”

구타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갖 고문과 학대, 강간, 살인 등등. 그동안 이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저런 놈들은 당해도 싸지.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한 놈들이니 말이야.”

“…….”

여느 때 같았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상황이었다면 더 이상의 살육을 멈추게 하였겠지만 알마리온 또한 그동안 이들이 벌인 인간 이하의 행동에 이들이 리처드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음에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결국 요새 마을 안에서 그동안 신처럼 군림했던 용병들은 절반이 넘게 죽어 나간 후에야 이 살육은 멈춰졌다.

“병사들로 하여금 뒷정리를 하도록 하고 죄인들을 모두 체포하여 일단 이곳에 감금하도록 하세요. 또한 그동안 이곳에 갇혀 지낸 자들의 상태와 신원 그리고 이곳에 갇히게 된 동기를 파악하고 그동안 어떤 일을 당했는지 확인토록 하세요. 곧 지원할 사람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예, 주군!”

“가시죠, 형님.”

“그래.”

분노가 치밀어 많은 사람을 상하게 만들거나 죽게 만들어서 그런지 리처드의 목소리와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준남작들의 세력 모두를 제압하고 성으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이미 한센에 의해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군. 그리고 레오폴트 님.”

“이곳은 모두 정리가 되었습니까?”

“예, 주군.”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치안대장인 테미온 준남작 일가를 체포하는 데 약간의 충돌이 생겨 한 명이 중상을 입긴 하였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상태가 위독한가요?”

“한쪽 팔을 절단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군요. 잘 치료해 주고 보상 또한 충분히 해 주도록 하세요.”

“예, 주군.”

“하면 죄인들은 어떻게 처리하였나요?”

“일단 감옥에 수감하였습니다.”

“잘했습니다. 하면 내일부터 죄인들을 심문하도록 할 것이니 철저하게 준비를 하도록 하십시오. 아울러 모든 영지민들에게 죄인들의 죄상에 관련된 증언을 받도록 하세요.”

“예, 주군.”

다음 날부터 시작된 죄인들에 대한 심문과, 영지민들을 통해 받기 시작한 죄인들의 죄상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그동안 이들 세 가문에 의해 벌어진 죄상들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심문을 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단 하루뿐이었지만 케일을 장악하고 있던 세 가문에 의해 벌어진 죄상들은 더 이상 기록할 종이가 부족할 정도였다.

“또한 그놈들의 집에서 찾은 문서들만으로도 그놈들이 그간 얼마나 악독한 짓거리들을 해 왔는지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센과 요들이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는 듯이 분통을 터뜨렸다.

“알겠습니다. 하면 내일 그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형을 집행할 것이니 준비토록 하십시오.”

“하면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한센이 죄인들의 처벌 수위를 묻자 알마리온 대신 리처드가 나섰다.

“뭘 그런 것을 물어? 당연한 것 아냐?”

“맞습니다. 법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법대로 처리를 한다는 알마리온의 말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 리처드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표정이 꽤나 굳어졌다.

세 가문이 그동안 벌인 죄상 중 일부만으로도 이들 세 가문의 10세 이상의 모든 남자들은 교수형에, 그리고 10세 이하의 남자와 모든 여인 들은 노예로 팔려 나가는 신세를 면할 수가 없었다.

실상 법대로 처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리처드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표정에 다소 의외라는 표정이 섞여 있는 것은 알마리온의 평소 성격을 보면 이번 일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가혹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그의 성격이었다면 직접 일을 벌인 책임자에게는 이러한 처벌을 하여도 그 주변 사람들, 특히 직접 일에 가담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처벌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처벌을 하지 않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한데 이번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럼 드란 경이 내일 그들에 대한 판결과 형의 집행을 위한 준비를 해 주십시오.”

“예, 주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알마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에서 나가 버렸다.

“마음이 많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가는 알마리온의 모습에 한센이 걱정되어 한마디 하였다.

“많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주군께서 이처럼 강력하게 응징하는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그러게. 알베르토 말처럼 갑자기 주군께서 왜 이렇게 강하게 저들을 응징하시는 것이지?”

“훗! 정말 몰라?”

요들의 말에 리처드가 그 정도도 모르겠냐며 물었다.

“레오폴트 님은 아십니까?”

“당연하지.”

“갑자기 주군께서 저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그는 지휘관이 아니라 지배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행동도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리처드의 말처럼 알마리온은 이제 더 이상 군 지휘관이 아닌, 한 지역을 통치하는 지배자였다.

군 지휘관에게도 엄격함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만약 엄격함이 없다면 군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것이고, 이럴 경우 군은 더 이상 군이 아닌, 단순한 폭력 집단에 불과할 뿐이다.

역사상 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점령지에 대한 약탈 행위와 평상시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관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장할 때도 있었다.

하나 이러한 엄격함은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 특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통치를 위한 엄격함과는 또 다른 형태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지배자로서의 엄격함은 해서 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 짓는다는 면에 있어서는 군 지휘관이 갖춰야 할 엄격함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겠지만, 지배자의 엄격함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백성들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할 경우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것은 해서 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하는 것으로만 생각되겠지?”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지.”

“쳇!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어디 덧납니까?”

“하하.”

요들이 툴툴거리자 모두 웃음을 지었다.

“간단해. 선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그 선을 지키는 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 그러니까 우리가 군에서 재주껏 요령 피우는 것이랑 똑같군요? 그렇죠?”

“하하하!”

“하하하하!”

요들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유가 좀 격이 떨어지긴 하였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에 정확한 비유이기도 하였다.

“맞아. 바로 그것이지.”

리처드의 말과 요들의 비유처럼 지배자로서의 엄격함은 확실한 선을 제시함으로써 그 선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해 나가고, 이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도였다.

“아무래도 그대들 주군이 이제 제대로 군주의 길을 걸으려는 것 같네.”

욕심을 내라는 막스밀리언의 충고를 두고 나름 많은 고민을 한 알마리온은 그가 자신에게 왜 그러한 충고를 하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막스밀리언의 그러한 충고, 그것은 백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라는 뜻이었다.

2왕자인 막스밀리언은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다.

막스밀리언은 알마리온이 처음 익스퍼트임을 인정받고, 그가 작위를 받았을 때부터 알마리온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노예라는 신분에서 작위를 받아 정식 귀족이 되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알마리온이 보여 준 많은 놀라운 일들과 그러한 일들을 가능케 하였던 알마리온의 능력을 보면서 막스밀리언은 감탄하였으며, 또한 부러워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 또한 알마리온처럼 마음껏 나래를 펴고 저 창공을 날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한 마음을 담은 충고가 바로 욕심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가 욕심을 내어 그의 품에 든 백성들만큼은 더 많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했던 말이었다.

“앞으로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겠어.”

‘그리고 나 또한 말이야.’

그가 바라는 것은 고메즈 대공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복수. 그것을 위해서도 알마리온이 성장하는 것은 그만큼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반 겔만, 보리스 야덴, 제임스 테미온과 그 직계혈족들 중 10세 이상의 남성들에 대해 앞서 거론한 죄목을 들어 교수형에 처한다! 아울러 10세 이하의 남아와 모든 여성 들은 그 신분을 노예로 한다!”

집사인 이반 겔만, 총관인 보리스 야덴, 그리고 치안대장인 제임스 테미온을 비롯한 세 일가에 속한 자들 중 10세 이상의 모든 남자들에 대한 교수형과, 10세 이하의 남자아이들과 모든 여성들을 노예로 한다는 형이 발표되자 성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케일의 영지민들에게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그만큼 이들에게 쌓인 감정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 세 준남작가의 모든 10세 이상의 성인 남자들에 대해서 교수형이 내려졌는데 그 수가 무려 마흔세 명이나 되었다.

그밖에도 이들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재산을 갈취하거나 불법적인 행동을 한 자에 대해서도 일고의 여지없이 모두 참수형에 처했는데, 그 수가 쉰두 명으로 이번에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언도받은 자들은 모두 아흔다섯 명이나 되었다.

“죄질이 가벼운 자들에 대해서는 모두 5년에서 10년간 노역형에 취한다. 아울러 이처럼 형이 확정된 자들의 모든 재산은 압수되며 이는 모두 영주님에게 귀속된다!”

여기까지 이번에 검거한 죄수들에 대한 판결이 끝나자 성 밖 광장에 모였던 영지민들은 춤을 추며 환호했다.

“아! 모두 조용! 조용하라!”

아직 발표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세 일가에 의해 억울하게 인신이 구속되어 강제로 노역을 하였던 모든 자들에 대해 즉각적인 귀가 조치와 함께 소정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영주님의 명령이 있으셨다!”

웅성! 웅성! 웅성!

한센의 발표 내용에 영지민들은 물론 요새 마을에 갇혀 짐승처럼 살아온 자들까지도 모두 크게 놀랐다.

솔직히 이들 모두 자유만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지배자들이란 과거나 지금이나 두려움과 수탈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그러한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무엇인가를 보상한다는 것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이들의 놀라움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시간부로 오늘 형이 확정되어 처벌받는 자에게 갚아야 하는 모든 빚을 감면하며, 지금까지 체납된 모든 세금 또한 완전히 감면한다!”

임시로 총관직을 맡게 된 한센의 발표에 지금까지 조용하던 성 앞 광장에 모인 모든 영지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크게 일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센은 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럼 지금부터 형을 집행하도록 하겠다.”

이미 교수형을 위한 형틀은 모두 준비된 상태였다.

“형을 집행하라!”

두둥! 두둥! 두두둥!

아흔다섯 명이나 되는 자들에 대해서 교수형과 참수형을 집행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한데 이들의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는 그저 수군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던 영지민들 중 일부가 이들의 형이 집행되면서부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딸을 살려 내! 내 딸을 살려 내라고! 이 나쁜 놈들아! 아악! 내 딸을 살려 내란 말이야! 흑흑흑……! 살려 내……!”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도 살려 내! 살려 내라고!”

“누나……!”

“형……!”

아마도 딸아이를 저들에 의해 잃게 된 어느 중년 부인의 울부짖음으로 시작된 이 소란은 이내 커다란 소란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원망과 통곡의 소리만이 높았다가 이내 또 다른 누군가가 주변에 있던 돌을 집어 들어 던지자 저마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이나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을 집어 들더니 형이 집행되기만을 기다리던 죄인들에게 던져 대기 시작했다.

“병사들로 하여금 소란을 막도록 하라!”

“아니! 멈추세요. 단지 병사들이 다치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서도록 하세요.”

“예? 여, 영주님!”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저들은 죽을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차라리 저렇게 해서 그동안 당한 이들이 조금이라도 분을 풀 수 있다면 그도 좋겠지요.”

“하지만…….”

“내버려 두도록 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예? 예…….”

알마리온 곁에 있던 모두는 다시 한 번 그의 이러한 결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리처드도 알마리온의 이러한 단호한 명령에 크게 놀랐을 정도다.

어쨌든 알마리온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자신들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한쪽으로 물러나자 성난 군중은 저마다 달려들어 죄인들을 무참히 때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손과 발로, 또 어떤 이들은 몽둥이로, 또 어떤 이들은 돌로 죄인들의 몸을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소란이 좀 진정되면 죄인들의 목을 전부 효수하여 광장에 메달아 놓도록 하십시오.”

“……예.”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알마리온은 성벽 위에서 내려가 성안의 자신의 집무실로 가 버렸다.

그 뒤를 따라 리처드와 쿠엔토 그리고 요하네스와 요들이 따라 들어갔다.

형을 집행한 이날 밤 늦게까지 성 밖 광장에서는 이들에게 당하여 억울함이 쌓인 영지민들이 이들 죄인들의 시신에 그동안 쌓인 울분을 푸느라 소란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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