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입성 (25/70)

입성

알마리온이 영지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쿠엔토가 영지의 경계 지역까지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주군을 뵈옵니다.”

“오랜만이오, 요하네스 경. 한데 어찌 그대 혼자만 나온 것입니까?”

“그것이……. 이곳에 머물던 왕실 관리들은 이미 열흘 전에 모두 철수를 하였습니다, 주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관리들이 모두 철수하였다니 말입니다?”

혼테르가 알마리온의 영지가 된 이후에도 당장 영지에 복귀할 수도, 그렇다고 대리인으로 내세울 만한 마땅한 인물도 없었기에 왕실부와 협의하여 자신이 복귀할 때까지 기존에 파견했던 관리로 하여금 영지를 대신 관리하도록 조치를 취하였었다.

따라서 이들은 알마리온이 도착한 이후에 인수인계를 마치고 난 후에야 철수키로 되어 있었건만 이미 열흘 전에 모두 철수했다는 말에 요들이 끼어들었다.

“그것이…….”

“훗! 그놈들 지은 죄가 많았던 모양이네. 인수인계를 하지도 않고 부리나케 도망간 것을 보니 말이야.”

안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

리처드의 말에 요들이 맞는가 싶어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그런 요들의 시선을 슬쩍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쿠엔토였다.

“하면 영지에 남아 있던 병사들까지 모두 함께 떠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드란 경. 그들 또한 중앙군 소속이니 관리들이 떠날 때 함께…….”

마중을 나온 쿠엔토 일행 중에 영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였다.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곤란해하는 쿠엔토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게 보일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그건 성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곳까지 함께 동행을 한 하얀이리와 꿈꾸는달에게 한 말이었다.

“일단은 부족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하면 후에 제가 사람을 보내 정식으로 초대를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고.”

“저 또한 일단 부족에 돌아가서 부족의 다른 대전사들과 소족장들과 함께 대족장님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족의 전사들은 대족장님을 계속해서 모시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일단은 부족으로 복귀하여 가족들과 만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차후 내가 그쪽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대족장님.”

그렇게 메코이족과 얄란족이 각자의 부족으로 돌아간 후, 이들 일행은 성으로 향했다.

“영지의 상황은 어떻던가요?”

“썩 좋지 않은 실정입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우선 최근 3년간 북부 지역 전체에 꽤 심한 가뭄이 든 상태였다고 합니다. 해서 그나마 조금 짓던 농사도 거의 제대로 지어지지 않아 식량 사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 이번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각 영지들, 특히 혼테르처럼 영주가 없이 국가의 관리가 파견 나와 관리하던 영지와 직영지 등에서 거의 수탈에 가까울 정도로 물자를 거둬 간지라 사정이 무척 어렵습니다.”

“가뭄이라고 했습니까? 혼테르에는 2개의 강이 있지 않습니까?”

알마리온의 말처럼 혼테르에는 북쪽 국경을 이루고 있는 두렌 강과, 혼테르를 관통하여 흐르는 글로리 강이라는 2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글로리 강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규모이지만 영지 중앙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이었기에 영지민의 식수와 농업용수로서 매우 귀중한 강이었다.

한데 가뭄이 계속되자 그나마 많지 않은 글로리 강의 수량이 강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영지민들은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농지에서조차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두렌 강 쪽은 모래톱과 자갈밭으로 된 지역인지라 농사를 지을 땅이 아예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군요.”

“처음 혼테르에 도착하였을 때의 그곳 영지민들의 상황을 보았다면 아마 주군께서도 크게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하네스 경?”

“이곳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질 때마다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오, 웹 경. 그리고 우리가 상단 본부를 처음 이곳으로 옮겼을 때에도 그런 소문이 극에 달했을 정도였고 말이오. 아마도 주군께서 군에서 쓰일 곡식 중 일부를 이곳에 풀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오.”

이어지는 쿠엔토의 말에 모두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관리들의 수탈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그들이 모두 떠나 버리자 영지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기꺼워하였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입니까, 아버님?”

“그래. 그렇단다.”

이처럼 임시로 관리를 파견하여 관리하는 영지일 경우에는 그 영지에 속해 있는 영지민들의 삶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직영지의 모든 관리들이 대부분은 직영지의 백성들을 돌보는 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영지민들을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승진을 하기 위해 현지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고 오로지 위에 바칠 뇌물과 실적만을 위해 영지민들을 쥐어짜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과 결탁한 지역의 유지들이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또다시 백성들을 쥐어짜 냈으니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면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부족한 식량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사실 모든 것이 다 부족하지만, 일단 식량부터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할 수 있습니다, 주군.”

“흠…….”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소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쿠엔토였다.

“무엇입니까?”

“주군의 영지에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린 세 가문이 있습니다.”

직영지의 관리는 왕실에서 파견하였고, 표면적으로 이들은 직영지의 사법, 행정, 세금 징수 등의 권한을 갖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왕실에서 파견된 관리를 보좌하기 위해 현지의 사정에 밝은, 말 그대로 그 지역의 유지이자 유일하게 교육을 받은 가문들이 실상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혼테르에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린 3개의 유력 가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영지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총관의 가문인 야덴 준남작 가문. 그리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무는 성의 살림을 맡고 있는 집사의 가문인 겔만 준남작 가문, 그리고 영지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테미온 준남작 가문이 바로 그들이었다.

“기본적으로 혼테르는 절대 풍요로운 땅이 아닙니다. 산물이라고 해 봐야 짐승의 가죽이나 몬스터의 부산물 정도고 그조차도 대부분 부족한 식량이나 소금과 같은 생필품을 사는 데만도 빠듯한 상황이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곳의 가문들이 쌓은 부는 아무리 보아도 정도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대의 생각은 무엇이오?”

“그들이 그동안 금지되어 온 북방 야만족, 아니 이민족들과 밀거래를 해 온 것이 확실합니다. 그것도 왕국에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는 품목들을 말입니다.”

“확실한 것이오?”

“예. 소관이 주군의 명에 따라 북방의 이민족들과 거래를 해 오면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또한 그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영지민들의 재산을 수탈해 온 것은 물론, 고리대금업으로 대부분의 영지민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기도 하였는가 하면, 사사로이 각종 명목으로 세금까지 징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처죽일 놈들이!”

쿠엔토의 말에 요들이 분개하였다.

“하면 그 세 준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어느 정도입니까?”

쿠엔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 세 가문은 척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한센이 그 세 가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은 것이다.

“현재 제가 파악한 바로는 그들 가문에 고정적으로 머물고 있는 용병들의 숫자는 불과 서른에서 쉰 명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들 모두는 기마 용병들입니다.”

그 정도의 수라면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었다. 하나 문제는 이들 모두가 기마 용병들이라는 것은 이들 세 가문의 힘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은 간혹 영지 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은밀히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영지에 들락거리다니 말이오.”

쿠엔토의 말에 한센이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다.

“간혹 영지에 외지인들이 들어오곤 하지만, 이들은 오래전부터 거래하던 상인들이거나 몇몇 게르혼 부족 중 은밀히 밀거래를 위해 변장을 하고 들어오는 자들입니다. 한데 제가 말씀드린 자들은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로 그들 또한 세 준남작 가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보였습니다.”

“혹시 그 세 준남작 가문이 행하고 있는 밀수에 동원된 또 다른 용병들 아닐까요?”

“웹 경의 말씀처럼 소관 또한 그 부분이 의심스러워 지난 몇 달 동안 영지로 드나드는 용병들에 대해서 관찰을 해 보았지만 아직도 정확히 그자들의 정체를 밝혀내진 못하였습니다.”

좀 더 조사하려 하였지만 이들 개개인의 능력이 상당히 높다는 것, 그리고 자칫 감시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들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어째 여기서도 재미난 일들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갑자기 전선에서 빠져야 하였기에 심드렁해 있던 리처드가 이곳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자 신이 나서 한 말이었다.

똑똑!

“영주님, 일어나셨습니까?”

“들어와.”

어제저녁 무렵에 자신의 영지에 도착을 한 알마리온은 간단하게 상견례를 겸한 만찬을 함께하는 것으로 영지에서의 첫날을 보낸 후 일찍 잠에 들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영주님? 아렌입니다. 세면과 의관을 갖추시는 것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어머?”

알마리온이 명령한 대로 7시에 찾아왔지만 이미 알마리온이 세면과 옷 입기를 마친 것도 모자라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낸 아렌이었다.

실상 알마리온의 기상 시간은 매일 새벽 5시였다. 이때가 마나의 기운이 가장 순수하고 충만할 때였기에 이때 마나 수련을 하고 있었기도 하였지만, 그 또한 노예 출신이었기에 이 시간이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잠에서 깨야 했던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어 있었기에 늘 이 시간이면 저도 모르게 잠에서 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녀인 아렌을 7시에 오게 한 것은 마나 수련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시중을 드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미 혼자서 의복은 물론 자고 일어난 침대까지도 깨끗하게 정리를 한 후 독서를 하고 있는 알마리온의 모습에 깜짝 놀란 아렌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알마리온에게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소녀가 그만 무례를 저질러 버렸습니다.”

“괜찮으니 그만 일어나렴.”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건 그렇고 앞으로 세면과 옷 입기는 나 혼자 할 테니 넌 이 시간에 오면서 미리 차를 준비해 와 주면 좋겠는데.”

“예? 예…….”

킁!

“아얏!”

어제 처음으로 잠깐 인사를 드린 신임 영주였던 데다가 처음 일을 시작하자마자 작지만 해서는 안 될 무례한 행동까지 하였기에 긴장한 나머지 서두르다가 다시금 가구에 무릎을 찧는 행동까지 하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괜찮으냐? 제법 세게 부딪친 것 같은데 말이다.”

“괘, 괜찮습니다, 영주님. 죄, 죄송합니다.”

지금 모습을 보니 평소에도 자주 덜렁거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성을 관리해 온 집사인 이반 겔만은 알마리온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지 제법 반반한 얼굴을 가진 하녀들을 수십 명이나 대기시켜 놓았다.

대부분 소렌토에서 본 여인들에 비하면 박색이긴 하지만 이런 벽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인물들이었다.

하나 그들 중 알마리온은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는 아렌과 아렌의 남동생인 노만이란 소녀와 소년을 자신의 직속 하녀와 하인으로 선택했다.

비록 두 남매 모두 성에 소속된 노예의 신분이지만 둘 다 천성이 밝은 편이었기에 그 몸에 쌓인 기운도 맑았고, 그러한 기운을 읽어 낸 알마리온이 둘만을 자신의 하인으로 두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니다. 다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이지 않으냐? 그러니 굳이 내게 죄송할 것까지야 없지. 그보다는 차를 마시고 싶은데?”

“예? 예. 그럼 곧 차를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참!”

“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8시쯤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렴, 그런 연후에 9시쯤에 총관과 집사, 그리고 치안대장 들로부터 영지 전반에 대한 보고를 들을 것이니 미리 연락해서 준비를 해 주도록 해 주렴.”

“예? 예, 영주님. 그럼…….”

여전히 허둥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아렌의 모습을 보면서 알마리온은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 부임한 영주로 인해 성안의 모든 이들의 일과도 무척이나 빨라지게 되자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군.”

“모두 편안한 잠자리였습니까?”

알마리온이 식사 준비가 모두 마쳤다는 소리에 식당으로 가니 집사인 겔만과 함께 한센과 요들, 쿠엔토와 알베르토 부자가 이미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 주군.”

“한데 형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식당에서 리처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겔만을 바라보며 물을 때였다.

“하암! 나 여기 있다. 다들 부지런한 것은 여전하네.”

“이 시간이 힘드시면 좀 더 쉬십시오, 형님.”

“아서라. 영주인 네가 이리 부지런한데 어찌 내가 게으름을 피우겠냐. 됐어.”

“하하. 그럼 식사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집사.”

“예, 영주님. 곧 식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집사인 겔만이 가볍게 손바닥을 치자 준비된 아침 식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함께 집무실로 자리를 옮기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야덴과 테미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해 왔다.

“두 분 식사는 하셨습니까?”

“예, 영주님.”

“아까 집사인 겔만 경에게도 말했지만 제가 군에서 있다 보니 기상 시간이 남들보다 빠릅니다. 하니 앞으로는 이 시간에 업무를 시작할 것입니다. 두 분도 참고하도록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일단 자리에 앉으십시다. 곧 집사가 차를 내오면 함께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예, 영주님.”

직영지에서 영지로 성격이 바뀌면서 오랫동안 케일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해 온 세 준남작 가문의 당대 주인들은 갓 부임한 알마리온을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럼 보고를 시작해 보시오. 야덴 경.”

“예, 영주님.”

보리스 야덴은 케일의 총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는 자였다.

그리고 제임스 테미온은 치안대장으로 케일 영지의 영지병과 경비대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반 겔만 집사, 보리스 야덴 총관, 제임스 테미온 치안대장이 바로 쿠엔토가 어제 거론한 세 명의 준귀족들로, 실질적으로 케일 영지의 핵심적인 권력자들이었던 것이다.

호명을 받은 케일 영지의 총관인 야덴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들척거리며 영지의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본 영지에 속한 마을의 수는 모두 6개입니다. 이들 6개 마을은 분지로 이루어진 본 영지 내에 존재하며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분지 너머에 한 곳의 촌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촌락?”

“예, 영주님. 파울만 촌락이라고는 하는데, 몬스터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한 요새 마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라클 오브 오딘 산맥은 예로부터 몬스터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몬스터였지만 유독 오라클 오브 오딘 산맥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몬스터가 많이 출몰하여 인간이 출입하기가 무척이나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처럼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오라클 오브 오딘 산맥 중 일부인 케일 또한 이로 인해 몬스터의 공격이 잦았고, 파울만 촌락은 몬스터가 몰려오면 이를 먼저 발견하여 연락하도록 세운 요새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모두 10가구가 살면서 몬스터의 이동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단지 10가구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드란 경.”

아무리 몬스터의 이동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하더라도 단 10가구만으로 마을을 구성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야덴의 설명을 듣던 알마리온 등의 눈빛이 서로 은밀히 마주쳤다.

“언제부터 그곳이 존재했던 것입니까?”

“꽤 오래된 마을입니다, 영주님. 30여 년 전부터 설치되었는데, 그곳에 마을을 설치한 이후 몬스터의 침입이 있으면 사전에 미리 봉화로 알려 주기 때문에 미리 몬스터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어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일단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야덴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현명한 방법이군요. 그들에 대한 지원은 어떻습니까? 게다가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과 가까운 곳이라면 자칫 위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그들에 대한 안전 대책은 무엇입니까?”

“죄송합니다. 워낙 영지가 영세하여 영지병의 수가 충분하지 않기에 별도의 안전 대책은 없는 실정입니다. 다만 그들에 대해서는 일절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있고 또 주변에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사냥을 통한 것이 전부이기에 소요되는 곡물을 영지에서 공급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하면 여섯 곳의 마을의 규모와 주민의 수, 그리고 거두어지는 세금의 액수 등은 어떤가요?”

솔직히 이런 곳에 이렇게 많은 마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던 알마리온이었다.

“먼저 6개 마을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지 내에 존재하고 있는 여섯 곳의 마을 전부는 영지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글로리 강을 중심으로 남과 북쪽 강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지의 중앙을 서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글로리 강을 중심으로 강 연안에는 영주 소유의 토지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이곳의 토착 유지 집안인 야덴가, 테미온가, 겔만가가 소유한 토지가 있었으며 그 너머가 바로 영지 내에 존재하고 있는 6개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들 마을은 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각각 3개 마을씩 나뉘어 있었다.

글로리 강의 남쪽에는 상류에서 하류 방향으로 각각 쟈크덴, 모일란, 하란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고, 북쪽에는 얀센, 토른햄, 차킨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각각의 마을에는 대략 50에서 80여 가구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파울만 촌락은 가구 수로 10가구가 존재하고 있어 총 가구 수는 387가구에, 인구수는 4,287명이었다.

이는 노예나 농노를 제외한 숫자이며 노예의 수는 3백 명, 그리고 농노의 수가 1천2백 명이었다.

‘농노와 노예의 숫자가 너무 많다. 이 영지에 그처럼 많은 농노를 보유하고 있다니 무척이나 이상하군.’

설명을 듣던 알마리온은 농노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농노는 노예보다는 지위가 높지만, 평민에 비하면 지위가 낮은 존재였다.

즉, 노예는 일종의 재산으로서 인신이 완전하게 구속된 상태로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인식되었지만, 농노에게는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토지가 대여되어 자립적 농업경영이 허용되었으나, 그에 대한 보증으로서 농노주에 대한 인신상의 예속 관계가 수반되어 노역을 비롯한 현물 및 화폐의 공조를 제공해야만 하였다.

특히, 농노주의 직영지直營地 경영에 노역을 바쳐야 하는 농민은 농노주에 대하여 강한 인신人身 예속隷屬의 상태였다.

따라서 노예와는 다른 존재들이 바로 농노로 이들의 비율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그만큼 뭔가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상황에 빠지면 안 되게 만드는 모종의 술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확실히 이자들 문제가 많은 자들이군.’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보고의 내용은 영지에서 생산되는 것들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영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농산물은 비록 양은 많지 않지만 밀과 옥수수, 감자 등이며. 사냥을 통한 짐승의 가죽과 몬스터의 가죽 등과 같은 부산물이 전부인 곳으로 주변에 널린 것이 산인데도 광물 같은 것은 일절 나오지 않고 있는 곳이 바로 케일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말이지.’

“그리고 이종족 노예가 한 명 있습니다.”

“이종족 노예?”

“예, 영주님. 우연하게 포획된 드워프인데 노예로 만들어 성 직속의 공방과 대장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드워프가 공방과 대장간의 책임자란 말이군요?”

“예, 영주님. 노예 신분이긴 하지만 드워프의 손재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하여 왕실에서 파견된 관리님께서 특별히 공방과 대장간을 책임지는 책임자 자리에 놓은 것입니다.”

“그렇군요. 어째 성의 가구들이나 식기들이 상당히 뛰어난 것들이라 했었습니다. 그리고요?”

확실히 성의 모든 가구와 기물 들은 벽지인 이러한 곳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것들이었기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연간 거둬지는 세금의 총액은 대략 4,500골드 정도입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전쟁과 가뭄이 몇 년째 계속된 상황인지라 작황이 좋지 못해 현재는 3,150골드 정도입니다.”

단순히 걷히는 세금의 총액만 보면 1,300골드가 조금 넘게 세금이 줄었다는 것은 상당히 많이 줄어든 셈이었다.

“세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세율은 다른 직영지들과 마찬가지로 80퍼센트입니다. 기존에는 70퍼센트의 세율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특별세가 많이 징수되고 있습니다.”

왕실의 살림살이가 나날이 궁벽해져 가면서 직영지 전체에 대한 세금 징수가 날로 더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더욱 힘들어진 왕실은 직영지마다 살인적인 세금을 징수하고 있어,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이 아니라 약탈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테미온 경.”

“예, 영주님.”

“영지의 치안대장이시죠?”

“예, 영주님.”

“그럼 보고해 주세요.”

“영주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왕실에서 파견된 관리님과 병사들 모두가 철수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케일은 왕실의 관리와 함께 파견되는 병사들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었는데 그들이 모두 떠남으로써 실상 영지의 치안을 유지할 병력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이곳에는 북부군 소속 병사들이 늘 1백 명 정도 상주하던 곳이었다. 한데 그들이 모두 철수하여 원소속으로 돌아가 버리자 갑자기 치안의 공백이 생겼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그동안 각 마을마다 자경대라는 것이 있어 임시로 그들을 규합하여 영지의 치안과 몬스터의 침입 그리고 국경인 두렌 강에 대한 감시 등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수고가 많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영주님.”

“하면 자경대는 어느 정도 수준이며 수는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자경대는 각 마을에서 적은 곳은 열 명, 많은 곳은 서른 명 정도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사냥꾼들로 활과 검을 다룰 줄 아는 자들입니다.”

“총수는 몇이죠?”

“예? 정확히 백서른여덟 명입니다.”

백서른여덟 명이나 되는 자경대라면 이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백서른여덟 명이라……. 하면 그들에 대한 지휘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소관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 성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알고 싶군요?”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의 살림살이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해 집사인 겔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영지에서 징수되는 전체 수입의 10퍼센트 정도가 성의 살림살이를 위해서 쓰인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이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잘 들었습니다. 하면 보고서들을 내게 올리고, 물러들 가도록 하십시오.”

“예, 영주님.”

총관과 치안대장 그리고 집사가 회의실을 나가자 알마리온은 리처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지시하기 시작하였다.

“단주.”

“예, 주군.”

“단주는 영지의 살림 전반에 관한 서류들을 살펴보도록 하세요.”

“예, 주군.”

“알베르토, 그댄 성의 살림살이에 대한 서류를 검토하세요.”

“예, 주군.”

“드란 경, 경은 파울만 촌락이라는 곳과 어제 단주가 말한 정체불명의 자들에 대한 것을 조사토록 하세요.”

“예, 주군.”

“웹 경은 치안대를 모두 소집하여 굴리세요.”

“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치안대를 모두 소집하여 실컷 굴리라는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치안대의 실력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얼래? 그럼 난 뭐 해?”

“형님은 따로 하실 일이 있습니다.”

“뭔데?”

“저와 함께 시찰을 다니죠.”

“하긴. 답답하게 성안에 있는 것보다 그것이 좋겠네. 그러자.”

“자! 그럼 각자 맡은 일을 하도록 하세요.”

“예, 주군.”

“이제 곧 영주란 자가 각 지역을 시찰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임스 테미온 치안대장은 심각한 어조로 다른 두 동료에게 물었다. 그의 다른 두 동료란 바로 보리스 야덴 총관과 이반 겔만 집사였다.

사실 서로 다른 성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 세 가문은 혈연이라 해도 좋은 관계였다.

이미 오랜 시간을 한 지역의 은막의 실력자로 군림해 오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지 못하게, 그리고 또 서로의 결속을 더욱 다지기 위해 몇 대에 한 번씩은 서로 혼인으로 묶인 관계인지라 이들은 서로 동료이자 친구요, 사촌이요, 사돈들이었다.

때문에 그만큼 더 확실하게 영주를 속일 수 있었고, 지금의 부와 권력을 쌓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모든 것을 은폐하기는 하였으니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만…….”

가장 연장자인 야덴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 하였다.

“한데 영주란 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겔만이 테미온에게 물었다.

비록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실상 이들은 알마리온이 노예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자신들 가문은 수대를 준귀족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도 편법까지 동원해서야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영주란 녀석은 나이도 어린 것이 노예의 신분에서 졸지에 자작이라는 작위는 물론, 영지와 국왕으로부터 성까지 하사받은 전쟁 영웅이란 점이 배알이 꼴려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그 앞에서는 정중하고 늘 성실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처럼 뒤에서는 그에 대한 존중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글쎄요. 알 수 없는 일이지. 하나 그가 전쟁 영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게다가 익스퍼트라는 것도 말이오.”

테미온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알마리온이 익스퍼트라는 것은 확실히 이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긴 했다.

하나 이들에게도 이들만의 방법이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익스퍼트라 해도, 마법사라 하더라도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어쨌든 하다가 정 안 되면……. 후후후!”

“그렇지요.”

겔만과 야덴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테미온은 처음부터 찝찝했던 기분이 영 가시지가 않았다.

“어쨌든 당분간은 서로 몸조심들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자경단이라는 그놈들 보통내기들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동안 자경단과 이제는 영지병이 된 병사들과 합동훈련을 해 본 결과 요들은 이들 자경단의 실력이 비록 의용군이었다고는 하지만 꾸준한 훈련과 실전 경험을 갖춘 영지병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자경단들 대부분이 사냥꾼 출신이라서 그런지 활솜씨가 대단한 것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본전도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주군.”

“그런가요?”

“예, 주군. 그리고 또 하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우리 아이들에게 놈들을 슬쩍 떠보게 하였더니 놈들 대부분이 과거 용병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입니까?”

“예, 주군. 또한 우리 아이들 중 하나가 우연히 옛 고향 친구를 만나면서 그를 통해 알아본 결과 자경대 모두가 이곳 출신자들도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랬군요. 수고했다, 요들.”

“훗! 야! 오랜만에 무게 좀 잡고 말하는데 갑자기 그렇게 물을 타면 어떻게 해?”

“하하. 솔직히 이게 더 편하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한껏 분위기 잡는데 물 타지 말라고. 그럼 난 나가 볼게.”

“그래. 수고해라.”

“아버님, 이것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류를 살펴보던 알베르토가 이상하다는 듯이 쿠엔토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냐?”

“주군께서 서둘러 군에서 예편을 하고 영지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죠?”

“그거야…….”

“정치적인 이유 같은 것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거야 북쪽의 야만족들의 약탈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해서 아니었느냐?”

실제로 다른 국경 지역에서는 게르혼족의 약탈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면 아버님께서 이곳에 오신 이후 게르혼족의 약탈이 이곳에 있은 적이 있습니까?”

“없었다.”

“하면 아버님께서 보시기에 이곳에 게르혼족의 약탈 행위가 있었던 적이 있어 보이십니까?”

“으음. 설마?”

북쪽의 국경 지역에 있는 모든 영지가 해마다 가을이면 북쪽 야만족들의 약탈에 계속해서 시달림을 받아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테르만은 전혀 그러한 흔적이 없었다. 왜? 이곳이 별 볼일이 없는 곳이라서?

그건 아니었다.

“예, 아버님. 자금 사용 내역서內譯書를 보게 되면 이곳도 매년 북쪽 야만족의 약탈로 인한 복구 비용과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수당과 위로금 등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더군요. 한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은 전혀 약탈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작년과 올해에도 말입니다.”

“흠…….”

그냥 보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약간의 허점 정도도 주변의 것들과 함께 놓고 본다면 이상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드워프가 책임지고 있는 공방과 대장간에서 생산되는 물품의 처리 과정도 무척이나 이상했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이 바로 드워프가 책임자로 있는 성의 공방과 대장간입니다.”

서류에는 노예 신분인 드워프가 생산하는 물품은 전부가 성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생산되는 물품의 양이 성에서 소비되는 것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세 준남작 가문에서도 사용하는 것이겠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아버님.”

“그 정도가 아니다?”

“예. 한 가지 예로 지난달에 공방에서 제작한 가구가…….”

알베르토의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공방에서도 많은 비리가 있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의심을 가지고 살펴본 때문인지 서류를 확인하던 두 부자는 서류 곳곳에서 잘못된 것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 두 부자가 상단을 운영하는 인물들이라서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것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은 관리들 출신이라면 아무리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류를 살펴보았다 하더라도 이처럼 쉽게 발견하지는 못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확인하였습니다.”

“제법 경계가 심하다더니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확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 봐야 전선에서 적진을 살피는 것만 하겠습니까?”

한센의 말처럼 전장에서 적정을 살피는 일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한센에게는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못 알아낼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한차례 시찰을 다녀온 뒤였지만 시찰 때에는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었다. 아니, 일부러라도 알아내려 하지 않음으로써 저들의 방심을 유도했던 것도 보다 용이하게 이곳에 감추어진 비밀을 낱낱이 캐내기 위해서였다.

“그래, 그곳에 뭐가 있었습니까?”

“광산 출입구였습니다.”

“광산? 이곳에는 광산은 전혀 없지 않은가요?”

모두가 알기로는 이곳 케일은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광산도 발견된 적이 없었기에 모두가 꽤나 의외로 받아들였다.

“확실한 것입니까?”

“예, 주군. 뿐만 아니라 이곳을 드나들던 정체불명의 자들은 바로 그 광산에서 나오는 철을 거래하던 다른 곳의 상인들과 게르혼족들이었습니다.”

“그랬군요.”

“휴∼! 이놈들 이거 아주 대단한 놈들인데?”

리처드가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말처럼 광산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가짜 마을까지 만들었다는 것에 다들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의 규모가 자신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것일 수도 있음을 확인하자 다들 굳어진 표정이 되었다.

“한 가지 확인하지 못한 것은, 그곳을 지키는 자들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 얼마이고, 어떤 상황인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내가 별도로 알아보도록 하지요. 하여간 그동안 수도들 많으셨습니다.”

케일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이었던 세 가문의 온갖 비리에 관련된 증거들을 모두 확보하였으니 이제 이들을 응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조만간 저들에 대한 응징을 가할 것이니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하십시오.”

“예!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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