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공작의 음모
2년 만에 소렌토에 돌아온 메르타니온의 가슴에는 분노만 가득했다.
그가 이처럼 분노하는 것은 적들이 퇴각을 하면서 소렌토 전체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분노는 소렌토 수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6군단 군단장 갈리와 25군단 군단장인 로엔달에게 퍼부어졌다.
“그대들이 좀 더 서둘러 적을 공격했다면 적들이 이처럼 왕도를 파괴하진 못하였을 것이다!”
메르타니온의 입장에서는 단숨에 적을 몰아치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상 그의 이러한 생각 또한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처럼 만약 6군단과 25군단이 다른 군단이 강을 건너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여세를 몰아 적군을 강력히 공략하였다면 이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꼴들 보기 싫소! 다들 나가시오!”
2년 만에 왕도를 되찾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왕도가 철저하게 파괴된 것에 분노한 메르타니온에게 박대를 당한 채, 쫓겨나듯 물러나는 갈리와 로엔달이었다.
“폐하, 그래도 저들은 2년 만에 왕도를 되찾는 큰 공을 세운 자들이옵니다. 그런 저들을 이리 대우하시는 것은 옳지 않사옵니다.”
로엔달과 갈리가 물러난 후 도르첸이 메르타니온의 행동이 과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아네. 하나 너무나도 화가 나서 그런 것이네. 내 따로 저들 두 사람을 불러 노고를 치하할 것이니 너무 걱정 말게나.”
“예, 폐하.”
왕도가 파괴된 것이 갈리나 로엔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분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메르타니온이었다.
한데 이때 그의 분노를 조금은 풀어 줄 만한 소식이 도착하였다.
“폐하, 제1의용군의 알마리온 헤이그 폰 혼테르 남작이 올린 서신이 도착하였사옵니다.”
“혼테르 남작이? 가져오도록 하라.”
“예, 폐하.”
보통 정규군단에서 보내는 보고서는 당연히 국왕에게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 원수부에 보내지고 이것이 다시 국왕에게 전달되지만, 제1의용군은 국왕의 직속으로 모든 것을 국왕에게만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제1의용군 사령관인 알마리온으로부터 온 서신을 펼쳐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짜증이 묻어나던 메르타니온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더니 서신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에는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폐하의 표정이 그리도 밝아지시는 것이옵니까?”
“하하하, 아무래도 내가 얻은 그 두 젊은 남작들이 큰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그나티우스 남작이 롬 강을 건너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더니 이번 소렌토 수복에서도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지 않은가. 한데 제1의용군의 혼테르 남작 또한 동부에서 대단한 전공을 세웠다는군. 하하하.”
“대체 어느 정도의 전공을 세웠기에 폐하께서 그리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옵니까?”
“하하, 이것을 읽어 보도록 하게. 그럼 내가 왜 이리 기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네. 하하하.”
메르타니온으로부터 알마리온이 올린 서신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한 도르첸의 표정 또한 이내 크게 좋아졌다.
“참으로 대단한 전공이옵니다, 폐하.”
알마리온의 서신에는 제1의용군에 소속된 기록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제1의용군이 중장보병 1개 천인대, 1개 기사단 그리고 서머셋 백작의 영지군으로 구성된 1개 군단과 제2친위군단 등으로 구성된 제7군을 상대로 언제,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또 어떤 전과를 올리게 되었는지, 또 부대의 어느 누가 어떤 공을 세우게 되었는지가 별다른 수사 없이 단지 알아보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네 생각도 그렇지?”
“그러하옵니다. 단 3천의 병력으로 2만이 넘는 적을 상대로 이와 같은 대승을 거두다니 참으로 대단한 전공이옵니다. 게다가 적의 지휘관 일부와 기사들 그리고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포로로 잡았다는 것도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솔직한 도르첸의 생각이었다.
소렌토를 하루라도 빨리 되찾고 싶었던 메르타니온은 제1의용군을 버리는 패로 쓰거나 아니면 시간을 끄는 용도로 쓰려고 하였다.
이는 과거 알마리온이 속해 있던 노예들로 구성된 12군단이 롬 강 북안에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시간 벌기용으로 롬 평원 전투를 치를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차피 죄인들과 도망자들 그리고 야만인인 게르혼족들로 구성된 제1의용군이니 버리는 패로서는 노예로 구성되었던 12군단이나 다를 바 없이 딱 좋은 패였다.
그가 구태여 로엔달을 제1의용군에서 25군단 군단장으로 빼낸 것도, 버리는 패였던 12군단에 이어 또다시 버리는 패로 쓸 제1의용군의 지휘를 계속해서 맡길 경우 실제로는 그것이 자신의 명령에 의해 그러했던 것이지만 자신이 가장 믿는 신하인 로엔달의 평판이 극도로 좋지 않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제1의용군에 남겠다는 로엔달의 의견에도 그를 25군단 군단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로엔달 자작이 워낙 강력하게 추천하여 혼테르 남작을 제1의용군 군단장에 임명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사옵니다, 폐하.”
“맞네. 처음 우리 생각은 그 또한 25군단 부군단장에 임명하여 좀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려 하였는데, 로엔달 자작이 강력하게 요청하여 그를 제1의용군 군단장에 임명한 것이 참으로 잘했던 것 같네. 하하하!”
레드로를 6군단 부군단장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후에 자신이 충분한 힘을 쌓았을 때,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군부를 장악하게 되면 로엔달과 갈리 그리고 알마리온과 레드로를 군의 주축으로 만들 생각으로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는 메르타니온이었다.
한데 알마리온도 그리고 레드로도, 관리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자신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대단한 활약을 보이자 소렌토의 일로 기분이 크게 상하였던 메르타니온의 마음은 어느새 활기를 되찾았다.
“자네는 이번에 공을 세운 자들 모두에게 그 공적에 따라 포상을 준비하라고 재상과 원수에게 내 뜻을 전하도록 하게.”
“예, 폐하. 하온데 혼테르 남작의 요청은 어떻게 하시겠사옵니까?”
“흠……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알마리온이 요청한 것은 조른에 주둔하고 있는 제1의용군을 최소한 블랙스톤까지 남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남작의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 실상 소렌토를 생각보다 쉽게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복합적이긴 해도 제1의용군의 활약 또한 크게 작용하였다고 봅니다.”
“그건 그렇지.”
소렌토의 적군이 쉽게 물러난 이유, 그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폰티악 백작에 의해 포넬의 5차 지원군 병력이 패퇴한 때문이었다.
하나 제1의용군이 포넬의 제7군을 격파함으로써 당장 포넬의 정벌군 총사령부가 위치한 쿠덴베르에 대한 방어가 취약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결과적으로 소렌토를 쉽게 되찾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였다.
“따라서 혼테르 남작의 요청처럼 제1의용군을 좀 더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흠, 하면 그 문제는 그렇게 하지. 그리고 이왕이면 제1의용군의 규모 또한 키우도록 지원하고 말이야.”
“그러자면 자금이…….”
이제는 병력을 충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소렌토의 백성들이라면 충분히 제1의용군을 정규군단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바로 자금이었다.
“우리에게는 마법 아이템이 있지 않나? 조만간 더글러스 후작에게서 마법 아이템 구입을 위한 연락이 올 것이네.”
“알겠사옵니다. 하면 곧 폐하의 명령을 실행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메르타니온의 생각처럼 원수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마법 아이템의 매입을 위한 왕실과 원수부의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계약에 따라 메르타니온은 단번에 백만 골드라는 거금을 손에 넣게 됨으로써 그동안 꽉 막혔던 왕실 재정에 커다란 숨통을 틔워 주었다.
“하하하! 하하! 됐어! 이젠 됐어!”
오랜만에 크게 웃는 모습을 보이는 프리모 공작이었다.
포넬이 침공한 이후 귀족 파벌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국왕이 수차례 포넬의 움직임이 이상하니 이를 확인하고 병력도 양성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이 바로 프리모 공작을 필두로 한 귀족 파벌이었다.
하지만 정작 포넬의 침공을 받은 이후 가장 먼저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것도 귀족 파벌이었고, 전란 중에도 제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잇속을 챙기는 것 또한 버리지 않고 있었다.
오죽하면 노예군단을 만들 때에도 귀족 가문들은 왕실로부터 적정가격 이상의 보상을 받아 내었으며, 군자금이 모자라 억지로 끌어모은 병력을 입히고 먹이고 무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을 빌려 주면서도 높은 이자를 챙기는 등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국왕과 국왕을 따르는 상당수의 현역 군단장 등의 활약으로 귀족 파벌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한데 이러한 일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확실한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면 언제쯤 지원군이 도착을 한다고 하던가?”
“조만간 도착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단 하인리히 폰 베르그 백작께서 사신단을 이끌고 곧 오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하. 그래? 조카가 직접 온단 말이지?”
“예, 주군.”
“알겠다. 제국에 다녀오느라 고생했을 것이니 그댄 그만 가서 쉬도록 하라.”
“예, 주군.”
“그러면 곧 제국이 개입을 할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재상인 프리모의 집무실에는 귀족 파벌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각 계파의 수장인 로보 후작, 사뮤엘 후작, 더글러스 후작, 제거 백작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하하,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전하.”
“하하, 이제야 폐하의 독주를 견제할 제대로 된 수단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하하하!”
카빌란 제국이 곧 개입할 것이란 프리모의 말에 모두 반색을 하였다.
포넬이 로엔을 침공한 이후 국왕은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카빌란 제국의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번번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해 온 카빌란 제국이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병력은 물론 상당한 자금까지 지원하겠다고 하니 분명 반가운 일이긴 했다.
“한데 갑자기 제국이 우리를 돕겠다고 나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들 그 점이 궁금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지원을 거절하던 제국이 뭔가 바라는 것 없이는 이처럼 전격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흠! 그렇게 걱정할 것 없네. 우리가 피해를 입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니 말이네.”
“하지만 저들이 상응하는 대가 없이 지원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제국이 아국과 긴밀한 관계라고 해도 그동안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은…….”
“후후!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가 피해를 입을 것은 전혀 없다네. 다만…….”
말끝을 흐리며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프리모 공작이었다.
“하하, 다들 무척이나 궁금한 것 같군. 알겠네. 내 속 시원히 말해 주지. 실은 이번에 제국이 움직이게 된 것은 마법 아이템 때문이라네.”
“마법 아이템 말입니까?”
마법 아이템 때문에 제국이 움직였다는 것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이들이 놀라는 것은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제국에서 그것을 어떻게 알고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혹시? 그렇군. 공작은 이미 전부터 그것에 대한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군.’
더글러스를 비롯하여 함께 자리하던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더글러스 후작 등의 생각을 읽은 프리모는 내심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동지이지만 내일까지 결코 동지일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불과하였지만, 이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후후, 그래서 그대들이 최고가 될 수 없는 것이야.’
짐짓 표정 관리를 하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모의 표정에 이들을 깔보는 기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 아이템은 왕실의 것입니다. 폐하께서 이를 순순히 제국에 넘기려 하시겠습니까?”
“훗! 이보게, 제거 백작.”
“…….”
“자넨 잊었는가? 제국이 기침만 해도 우리 로엔이 몸살을 앓는다는 것을?”
“으음…….”
현실이었다.
로엔 왕국은 건국 때부터 철저하게 카빌란 제국에 종속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왕조의 뿌리가 워낙 깊었기에 이를 새로 개국한 로엔의 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카빌란 제국이라는 이름을 빌려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철저하게 카빌란 제국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관계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몇 차례 있었지만, 이럴 때마다 제국을 등에 업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귀족들의 반정으로 인해 국왕이 교체되면서 마치 수렁에 빠진 것처럼 로엔은 제국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제국의 군대가 국경에 도착하게 되고 또 적당한 대가만 준다면, 국왕도 결국 마법 아이템을 제국에 건네줄 수밖에 없을 것이야.”
“하나 그렇게 되면 당장 군에서 필요로 하는 마법 아이템을 입수하기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걱정인가, 더글러스 후작? 제국이 대군을 보내 주기로 하였는데 말이야. 설마 후작은 제국군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그건…….”
제국이 비록 이 지역의 최강자이긴 하지만 이미 지는 태양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다면 제국을 끌어들인 프리모 공작 한 사람 정도?
‘솔직히 제국군보다는 마법 아이템이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이거늘. 게다가 이제는 더 이상 제국군의 도움이 필요치 않게 된 상황이지 않은가.’
폰티악 백작의 연이은 대승으로 바닷길이 완전히 차단되고 육지에서도 연이어 적을 대파하면서 곧이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된 상태에서의 제국의 참전은 실상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히려 제국군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될 경우 군의 전략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군을 지휘하는 입장인 더글러스의 경우에는 오히려 때늦은 제국군의 도움이 전혀 반가울 것이 없었다.
제국의 뒤늦은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제국을 끌어들인 것은 지나친 일이다. 언젠가 이번 일로 공작이 큰 화를 입게 될 것 같구나.’
“사신? 제국의 사신이 도착하였다고 하였소?”
제국으로부터 사신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프리모 공작의 전언에 메르타니온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 폐하. 제국의 재상인 베르그 대공의 장자 하인리히 폰 베르그 백작이 제국 황제의 특사 자격으로 곧 아국에 도착할 것이라 연락을 취해 왔사옵니다.”
“그들이 왜 갑자기 사신을 보낸다는 것이오?”
메르타니온의 말투가 곱지 않게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포넬의 침공을 받고 병력과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하였을 때에는 냉정하리만치 단호하게 거절하더니 이제 곧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된 마당에 사신을 보낸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혹시? 그렇구나. 저자였구나. 저자가 그때 그 일을 벌인 당사자였어! 이놈!’
문득 제국의 사신으로 온다는 베르그 백작과 프리모 공작의 관계가 떠오른 메르타니온은 이번 사신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프리모 공작 가문과 제국의 베르그 대공 가문의 당대 가주들은 서로 고종사촌 간이었다. 또한 베르그 대공 가문은 제국 최고의 마법사 가문이기도 하였다.
‘체임버스 남작의 마법 실험실에서 마법 아이템을 훔쳐 낸 것이 바로 저자였어. 그것을 제국에 넘긴 것이야. 그것 때문이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제국이 사신을 보낼 리가 없다. 프리모 공작, 이제 그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감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다니! 결코 그댈 용서치 않을 것이다! 결코!’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재한 프리모 공작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는 메르타니온이었다.
하나 프리모에 대한 문제는 나중의 일. 지금 당장은 곧 도착할 제국의 사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가 급했다.
“알겠소. 제국에서 사신이 온다니 소홀할 수가 없는 일. 공작이 직접 제국의 사신을 접대토록 하시오.”
“예, 폐하. 하면 신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세요.”
쾅!
프리모가 물러나자 메르타니온은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저놈을! 저놈을 내 당장…….”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참으라고? 자네는 저놈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아옵니다. 이제는 프리모 공작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옵니다. 하나 그럴수록 더욱 냉정하셔야 하옵니다. 폐하께서 냉정을 잃으신다면 지금까지 해 오신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옵니다. 하오니…….”
도르첸의 만류에 화를 조금 가라앉히기는 하였지만 메르타니온은 당장이라도 프리모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려야만 분이 풀릴 것만 같았다.
“후…….”
“폐하…….”
“되었네. 하니 이제 그만하게.”
“망극하옵니다, 폐하.”
스스로 분을 삭인 메르타니온이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제국은 분명 마법 아이템을 요구할 것이네.”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결국 내줘야 하겠지?”
“…….”
차마 대답할 수가 없는 도르첸이었다. 그리고 메르타니온 또한 제국이 대놓고 요구를 한다면 결국 마법 아이템에 대한 것을 모두 제국에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물은 것도 아니었다.
“좋아. 원한다면 주지. 하지만 네놈들도 그것을 온전히 갖지는 못할 것이다.”
메르타니온의 눈빛이 독하게 빛이 났다. 그런 메르타니온의 눈빛은 지금껏 그의 곁에서 그를 보좌해 온 도르첸 또한 처음 본 것이었다.
“폐하?”
“자네는 사신을 상대하여 얻을 것을 최대한 얻어 내도록 하게.”
“예, 폐하. 하오면…….”
“그 뒤에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폐하?”
“더 이상 묻지 말게. 자네도 너무 많은 것을 알면 후에 다칠 수도 있으니 말이네.”
“예, 폐하.”
메르타니온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는 도르첸은 그가 제발 분에 겨워 섣부른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메르타니온은 카빌란의 사신으로 온 하인리히 폰 베르그 백작의 빙글거리는 얼굴을 당장이라도 난도질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지만 안간힘으로 그러한 마음을 참고 또 참았다.
역시나 사신으로 온 베르그의 요구는 마법 아이템에 관련된 모든 것이었다.
“제국의 사정이 그러하다니 어찌 모른 체할 수 있겠소. 하나 아국의 사정 또한 백작이 알다시피 너무 좋지 않소. 그리고 이러한 아국의 사정을 호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그 마법 아이템이라오.”
“아옵니다. 하여 황제께서는 이번에 5개 군단과 1천만 골드를 지원하여 전하의 왕국을 도우라 하신 것이옵니다.”
확실히 5개 군단과 1천만 골드를 지원받으면 로엔의 입장에서는 당장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하나 장래를 생각한다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법 아이템을 지켜야만 했다.
하나 그 대가라는 것이 왕국의 멸망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달라졌다.
이미 국경 지역에 제국군이 거의 도착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사신의 제안을 거절하게 되면 제국군은 곧바로 왕국을 침범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북부군마저 국경에서 대부분 끌어다 전선에 투입하여, 국경을 지키는 군대는 없다시피 하였다.
그나마 게르혼족들 사이에 주기적이다시피 하는 패권 다툼이 없었다면 로엔은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북부군을 빼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제국의 제안은, 아니 제안이 아닌 협박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짐이 오늘은 피곤하니 더 이상 사신을 접견할 수 없겠구려. 미안하오. 공작, 공작이 제국의 사신을 숙소로 안내하고 모시도록 하시오.”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니었기에 급할 것이 없었다. 아니, 급한 것은 오히려 제국이 아니라 로엔 측이었으니 베르그는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하면 소관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러시오. 그리고 편히 쉬도록 하시오.”
프리모 공작과 사신으로 온 베르그 백작 등이 도르첸의 안내로 접견실을 나간 지 한참이 지나도 눈을 감은 채 의자에 몸을 기댄 메르타니온은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폐하.”
함께 배석했던 함멜이 걱정이 되어 메르타니온을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폐하! 밖에 아무도 없는가! 당장! 당장 체임버스 남작을 불러오도록 하라! 어서!”
“아니, 되었소.”
“폐하? 괜찮으신 것이옵니까?”
“난 괜찮으니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마시오, 자작.”
“하오나 폐하, 아무래도 소신의 눈에는 폐하의 용태가…….”
“괜찮대도.”
“아니옵니다. 체임버스 남작을 부르도록 하겠사옵니다.”
“허허, 사람 참.”
함멜이 끝내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메르타니온도 어쩔 수가 없었다.
메르타니온의 명에 따라 제국의 사신과의 협상은 도르첸이 전담하기로 하였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오.”
“부족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그 정도로는 부족하오.”
도르첸과 베르그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흠! 흠! 이보시오, 도르첸 공작. 이것은 제국에서 특별히 원하는 일이오. 게다가 5개 군단의 지원군과 함께 1천만 골드라는 막대한 군자금까지도 함께 지원한다지 않소? 이쯤 해서 물러서는 것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시오?”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프리모가 끼어들었다.
“그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오. 하나 두 분도 아실 것이오.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이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그 쓰임새가 과거 마법 물품과 같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말이오.”
도르첸의 말처럼 마법 아이템은 과거 마법 제국의 힘의 근간이 되었던 마법 물품처럼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재물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단지 5개 군단과 1천만 골드라는 돈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은 마법 아이템을 날로 먹겠다는 심산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면 공작은 제국이 어느 정도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오?”
‘허……. 양보라? 이자가 정말!’
프리모의 말에 도르첸은 어이가 없어졌다. 로엔의 재상이자 공작이라는 자가 로엔의 편이 아닌 제국의 편에 서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왕국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매년 생산되는 마법 아이템의 절반을 왕실로 넘겨주시오.”
“아니! 도르첸 공작! 그러다 제국의 눈 밖에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오!”
“아아, 아무래도 두 분 모두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국을 들먹이며 압박을 가해도 꿈쩍하지 않는 도르첸의 행동에 프리모가 화를 내자 베르그가 끼어들었다.
“일단 공작 전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나 그런 조건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했소?”
“그렇습니다, 공작 전하.”
도르첸과 베르그의 눈빛이 마주쳤다. 하나 결국 도르첸은 베르그의 다음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공작 전하, 친구도 때로는 적이 될 수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
명백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훗! 이쯤 해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해야겠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베르그는 이쯤 해서 상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전하, 아우 되는 로엔이 형인 제국에 무리한 것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형의 입장에서는 못된 버릇을 가진 아우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따끔하게 혼을 낼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또한 소관은 그동안 형과 아우인 제국과 로엔의 우애 깊은 관계를 해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
참으로 어리석게도 카빌란 제국을 형으로, 그리고 로엔 왕국을 아우라 처음 칭한 것은 로엔의 선왕들이었다. 그것이 이토록 가슴 사무치게 되돌아올 줄이야.
“하니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이오?”
도르첸 대신 프리모가 먼저 베르그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의 이러한 행동은 이미 사전에 둘 사이에 있은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형인 제국이 어찌 아우인 로엔 왕실의 어려움을 모른 체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이미 국경에 도착한 5개 군단에 추가로 5개 군단을 더 파병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재정 지원도 1천만 골드에서 5백만 골드를 추가로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병력과 자금은 처음 논의하였던 정도로 충분하오. 또한 아국의 사정상 당장 마법 아이템도 필요하니 일단 아국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마법 아이템을 아국에서 제작할 수 있는 메이슨 남작을 관리하겠소. 물론 그의 안전을 위해 제국에서 그의 신변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오.”
메이슨 남작이란 바로 알마리온에 의해 왕실로 보내진 단단한머리를 말하였다.
메르타니온은 알마리온의 요청에 따라 그를 노예에서 풀어 줌과 동시에 로한 메이슨이라는 이름과 함께 남작이라는 작위를 주어, 이제 단단한머리는 로한 폰 메이슨 남작이라는, 로엔 왕국 최초의 드워프 출신 귀족이 되었다.
“또한 앞으로 제국에서 생산되는 마법 아이템의 10퍼센트는 왕실로 보내져야 하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제안이오.”
마지막으로 하는 제안이라는 말을 하는 도르첸의 표정에서 결연함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협상을 하는 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자질을 의심받을 수 있는 모습이긴 하였지만, 실상 이 또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으음. 일단 그쪽의 요구 조건을 들었으니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어차피 아국과 제국과의 관계는 백작의 말처럼 지난 2백 년 동안 매우 돈독하였고, 폐하께서도 그러한 제국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으신 생각은 전혀 없으시오. 다만 이번 전란으로 인한 피해가 워낙 크기에 이처럼 무리한 조건을 내거셨다는 것을 그대 또한 이해를 해 주었으면 하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최대한 귀국의 폐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소.”
도르첸이 나간 이후 프리모와 베르그의 밀담이 이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숙부님.”
“그러자면 네 가문에 피해는 없겠느냐?”
뒤늦은 제국의 참전 결정은, 베르그 대공의 제국 황제에 대한 설득이 성공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제국의 황제는 종이호랑이와 같은 존재로, 제국의 국정은 재상인 플레툰 폰 베르그 대공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있었기에 달리 황제를 설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아니, 이번 일은 절대로 제국 황제가 알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제국 황제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또한 마법 아이템에 대해 욕심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번 일은 제국 황제조차 전혀 모르는, 오로지 플레툰 폰 베르그 대공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고, 그가 이처럼 독단적인 일을 벌인 것은 모두 마법 아이템을 독차지하겠다는 탐욕에 의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국경 지역에 와 있는 5개 군단의 병력도 그리고 1천만 골드나 되는 지원금도 대공의 가문에서 내놓은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번에 지원하겠다고 한 병력과 자금은 제국 황실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니 베르그 공작 가문에서는 단 하나도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숙부님.”
설사 외가라 하더라도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은 구태여 알릴 이유가 없었기에 저간의 사정은 말하지 않는 베르그였다.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의 효용 가치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 정도 제안은 최대한 양보한 것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내가 너희 가문에 그것을 알려 준 것이고 말이야.”
“아버님께서도 숙부님의 이번 도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허허, 그래도 이번에 보내 주신 것은 너무 과하더구나.”
프리모 공작이 영지를 통해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이 대략 90만 골드. 한데 이번에 5촌 조카인 베르그 백작은 3백만 골드에 해당하는 보석들과 앞으로 제국에서 판매될 마법 아이템에 대해서도 앞으로 30년 동안 이익금의 10퍼센트를 주겠다는 계약서를 들고 왔던 것이다.
만약 이 계약이 그대로만 이행된다면 프리모 공작 가문은 누대에 걸쳐, 대대손손 물 쓰듯 재물을 퍼 써도 결코 창고가 비는 일이 없게 될 것이었다.
물론 이 정도의 대가는 마법 아이템 제작 기법을 독차지할 베르그 가문이 챙길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얻어 낼 것은 최대한 얻어 내야겠지.’
내심 마법 아이템의 제작 기법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흘려야 할 엄청난 피의 대가에 비해 그것을 독차지할 확신은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고종사촌이자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베르그 공작 가문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던 것이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르그 가문과 프리모 가문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맞는 말씀이다. 너희 베르그 가문과 우리 프리모 가문은 둘이 아닌 하나지. 암!”
‘그래, 이것이 최선이야. 더 이상의 욕심은 자칫 화를 불러올 수도 있어.’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프리모였다.
제국의 사신단과의 협상은 베르그 백작이 로엔 측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빠르게 마무리되어 갔다.
일각에서는 제국의 요구 조건이 알려지면서 드러내 놓고 이를 반대하진 못해도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많이 생겨났는데, 대부분 국왕 파벌에 속하는 자들이었으나 귀족 파벌 내에서도 이러한 제국의 뻔뻔한 행동과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왕국의 나약함을 두고 개탄하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특히 마법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제국을 개입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엄청난 대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프리모 공작에 대해서는, 쉬쉬하긴 하였지만 같은 귀족 파벌에 속한 이들까지 그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가문을 비난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버님.”
제국을 끌어들인 대가를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프리모 공작 가문과 공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아들인 아놀드의 말에도 프리모 공작의 표정은 여유로울 뿐이었다.
“상관없는 일이다.”
“하오나 아버님…….”
“너는 이 일이 왜 벌어진 것인지 모르느냐?”
“아옵니다.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제국의 갑작스러운 개입의 원인과 그들에게 대가로 내주어야 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일을 만든 공작가가 얻는 이득 등이 세상에 퍼진 것은 모두 국왕인 메르타니온에 의해서였다.
“알지만 가문과 아버님을 비난하는 자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니 문제이지 않습니까.”
“잠시 잠깐일 뿐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훗! 아들아, 넌 아직도 멀었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님?”
아직도 멀었다는 프리모의 말에 아놀드는 자신의 어떠한 점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인지 내심 반발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느냐?”
“그거야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도 모르진 않겠지?”
지금처럼 국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이 이번 전쟁을 종결짓는다는 것은 왕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귀족 파벌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잘 알고 있다는 녀석이 그따위 비난 같은 것에 신경을 쓴단 말이냐?”
“하오나 아버님, 이번에 아버님과 가문이 비난받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모두가 같은 맥락의 일이다. 지금의 군은 과거와는 달리 국왕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 전쟁이 승리로 끝나게 되면, 당연히 이후에 있을 논공행상을 통해서 국왕의 힘만 더욱 커질 뿐이다.”
“…….”
“그걸 막기 위해서도 제국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했다. 제국이 개입을 하여 이번 전쟁이 끝나게 되면 결국 가장 큰 공은 제국을 개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나와 우리 가문이 세우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국왕의 의도는 자연스레 무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으음…….”
“국왕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 전쟁이 끝나고 늘 가난했던 왕실에 든든한 자금줄까지 만들어 준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
“그거야…….”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왕실의 힘이 강화되면 그만큼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그동안 권력을 장악해 왔던 귀족들이다.
“흥! 비난? 그따위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뭐, 정히 네가 그 문제에 대해서 걱정이 된다면, 적당히 다른 귀족들에게도 이익을 챙겨 주면 오히려 나나 가문에 대한 지지만 더욱 공고해질 것이야.”
“아!”
‘역시 아버님이시다! 역시 아버님 말씀처럼 난 아직도 멀었구나. 겨우 이따위 비난에만 신경 써서 정작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제대로 생각해 내지 못하다니.’
아들인 아놀드의 표정만으로도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파악한 프리모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한 가지씩 착실하게 배워 나가면 되는 것이야.’
“내 뜻을 알았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아버님. 이번 일이 결코 아버님이나 본 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려야겠지요.”
“어떻게?”
“조금 전에 아버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훗! 좋아. 그럼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 보도록 해라.”
자신이 물러난 다음을 위해서도 아들인 아놀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공고히 다져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은 결국 권력과 금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프리모는 아들인 아놀드에게 일단 금력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공고히 만들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버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허허,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암! 누가 뭐라 해도 다음 대의 프리모 공작 가문은 네가 이끌어 나가야 하니 말이야.”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네.”
야심한 시각이었다. 메르타니온과 로엔달이 도르첸조차도 없이 은밀히 마주하고 있었다.
“사신에 관계된 문제입니까?”
“그렇다네.”
“소관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간단하네. 그들 모두를 제거하게.”
제국의 사신을 모두 제거하라는 말에도 로엔달은 전혀 놀라는 빛이 없었다.
“사신으로 온 베르그 백작은 대외적으로는 3서클 마법사이지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4서클 마법사더군. 하여 자네가 직접 나서 줘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오게 된 것이네.”
“…….”
“조만간 제국과의 협상은 타결될 것이네. 자네는 은밀히 그들을 뒤쫓아 게르혼족들의 땅에서 그들을 제거하도록 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조치는 곧 취해질 것이니 준비하고 있게나.”
로엔달이 나가고 난 후 메르타니온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아울러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후. 프리모 공작, 모든 것이 그대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감히 날 상대로 그따위 수작을 부린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고 그 내용에 따라 제국이 이번 전쟁에 공식적으로 함께하기로 결정되었다는 발표는 메르타니온과 로엔달의 은밀한 만남이 있은 지 이틀 후 이루어졌다.
또한 이날에는 그동안 공을 세운 자들에 대한 포상 또한 전격적으로 실행되었는데, 이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은 폰티악과 로엔달, 갈리 그리고 알마리온과 레드로에 대한 부분이었다.
또다시 포넬의 해군을 상대로 믿기 힘든 대승을 거둔 폰티악의 경우 백작에서 후작으로 승작함과 동시에 아직은 적의 수중에 있지만 동남부 최대의 항구도시인 쿠텐베르를 봉지로 받았으며, 로엔달 또한 백작으로 승작함과 동시에 역시 아직은 적의 수중에 있는, 쿠덴베르 후작 영지와 인접해 있으며 쿠덴베르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역시 규모가 상당히 큰 항구도시인 카이네를 포함한 케이네 백작 영지가 그의 봉지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갈리 자작에게는 소렌토 남부를 흐르는 디엔 강 남쪽에 남아 있던 세 곳의 직영지인 케이프와 그린힐, 케인을 하나로 묶어 그의 영지로 삼게 하였다.
레드로에게는 현재 제1의용군이 주둔하고 있는 주둔지인 조른 남작 영지를 봉지로 내렸다.
하나 가장 특이한 것은 알마리온의 포상 내용이었다. 국왕인 메르타니온은 알마리온에게도 레드로와 마찬가지로 승작 없이 봉지를 내주었는데 그곳은 왕국 최북단에 위치한 케일이라는 곳으로, 실상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귀족들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케일은 로엔 왕국은 물론 게르혼족에서도 신성시하는 오라클 오브 오딘Oracle of Odin 산, 보통 오딘의 산이라고 불리는 곳의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실상 알마리온이 봉지로 받은 케일은 엄격히 말하면 로엔의 영토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곳으로 이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된 북방의 게르혼족들의 잦은 약탈로 인해 아예 방치하고 있던 곳이다.
이러한 곳을 알마리온의 영지로 내준 것은 이곳 케일이 메코이족과 얄란족에 내준 곳과 붙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제1의용군에서 그의 지휘를 받는 두 게르혼족과 그의 관계가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알기에 그로 하여금 이 두 부족을 관리하라는 차원에서 이곳을 그의 영지로 내준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사람들이 이번 포상으로 승작을, 그리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영지를 하사받았는데, 이들 네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귀족 파벌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그가 이처럼 전격적으로 공이 있는 자들에 대한 갑작스러운 포상을 발표한 것은 모두 자신들의 측근들인 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챙겨 주기 위해서였다.
제국의 개입으로 이번 전쟁이 끝나게 되면 그동안 큰 공을 세운 이들의 공적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전격적으로 취해진 일이었다.
하나 이 또한 온전히 자신의 사람들만 포상할 수 없어 곁가지로 그동안 파악된 공적을 바탕으로 공이 있는 자들 모두를 그 공적에 따라 함께 포상하게 된 것이다.
며칠 후, 협상을 마친 제국의 사신단은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정에 올랐고, 그리고 20여 일 정도 후에는 국경을 넘어 제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은밀히 쫓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이들 사신단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는?”
“약속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기 중입니다.”
오늘의 거사를 위해서 로엔달은 많은 준비를 하였다. 그중 하나가 북방의 야만족인 게르혼족을 동원한 것이다.
일부는 제국에 빌붙어 살기도 했지만 보편적으로 게르혼족의 제국에 대한 반발심은 무척이나 강했다.
그중에서도 제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베르그 공작 가문에 대해서는 단순히 적대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와도 같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부족들이 많았다.
이러한 증오심은 그동안 베르그 가문이 중심이 되어 펼친 분열 정책으로 인해 게르혼족들 사이에 많은 충돌이 있었고 이로 인한 피해가 엄청났기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베르그 공작 가문에 대한 게르혼족의 증오심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한 게르혼족의 제국에 대한 감정, 그리고 제국의 핵심인 베르그 공작 가문에 대한 감정을 잘 알고 있던 로엔달은 이들을 자극함으로써 이번 일에 끼어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신호를 올리면 곧바로 저들을 공략할 것입니다.”
“좋아. 그러면 오늘 밤 일을 마무리 짓는다.”
“예, 마스터.”
적지나 다름없는 대초원에서 1개 천인대 정도의 규모만으로 호위를 한다는 것은, 제국의 핵심인 베르그 공작 가문의 후계자가 포함된 사신단임을 감안했을 때 부족한 듯 보이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부족하지 않은 것이, 사신단을 이끌고 있는 베르그 백작 자신이 4서클 마법사였고 그를 호위하고 있는 쉰 명의 기사들 중 세 명이나 익스퍼트급 기사였으며, 1천의 병사들 또한 공작 가문에서 추리고 추린 정예 병력으로 병사들 전원이 드물게 기병대로 구성되어 있어 빠른 기동력과 강력한 돌파력까지 갖춘 최정예들이었다. 아니, 어지간한 규모의 게르혼 부족 정도는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전력이었다.
“그들이 과연 성공할 것 같습니까?”
게르혼족의 한 부류인 푸른구름 일족의 여러 소족장들 중 한 사람인 아홉손가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족장인 단단한심장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밤의 일은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훗! 무슨 상관이지? 저들이 우리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는 애초의 약속대로 저 원수들을 짓밟아 주면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처음 약속대로 이대로 물러나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겁이 나 있는 아홉손가락을 약간의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본 단단한심장이 퉁명스레 대답해 주었다.
게르혼족 중 한 부류인 푸른구름 일족은 게르혼의 많은 부족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제국과의 국경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부터 제국의 분열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부족으로, 이들 푸른구름 일족은 제국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어 그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오나 저들을 공격하게 되면 분명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붉은말꼬리족과 함께하기로 했잖은가? 이번 일을 끝내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부족 전체가 이동할 것인데 무슨 상관이겠어.”
이렇게까지 말하니 도저히 더 이상 반대를 할 수 없게 된 아홉손가락은 조용히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 순간이었다.
펑! 펑! 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수십 미터에 달하는 화염이 일어났다.
“시작한 모양이군. 우리도 준비한다!”
“예!”
“저, 정령술사? 그것도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론을 소환할 정도라니!”
갑자기 정체불명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베르그는 곧바로 마법으로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세 차례나 되는 자신의 강력한 마법 공격은 번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 의해 간단히 차단당했다.
한데 그 정체불명의 적이 다른 것도 아닌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정령을, 그것도 하급 정령이 아닌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론을 소환할 정도인 상급 정령술사라는 것에 베르그는 심장이 그대로 멈춰 버릴 정도로 놀랐다.
4서클 마법사인 그였지만 상급 정령술사에게는 감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공격에서 이미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놀라운가 보군.”
“어떻게? 분명 정령술사는 이 땅 위에서 완전히 사라졌거늘!”
“훗! 어리석군. 정령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너희 마법사들이 없앤다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군.”
“으으. 넌 누구냐!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것이냐! 내, 내가 마법사라서 그러는 것이냐?”
“후후! 그런 해묵은 원한 같은 것은 내 알 바 아니지.”
“그, 그럼 무엇 때문이냐?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면 내 얼마든지 내주겠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난 바로 카빌란 제국의 재상 가문인 베르그 공작 가문의 적자인 하인리히 폰 베르그 백작이다. 날 살려만 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겠다. 하니 제발…….”
“구차해 보이는군. 제국의 권력자인 재상가의 장자라면 다음 대의 최고 권력자일 텐데 그대의 모습을 보니 그럴 만한 그릇이 못 되는 것 같군.”
“이익!”
빈정거림은 아니었지만 정체불명의 사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비수처럼 가슴에 박히는 것들이었다.
실상 하인리히는 아버지인 플레툰에게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별하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거나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진한 느낌을 들게 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젠 끝내야겠군. 보시다시피 그댈 제거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은 다 끝난 것 같으니 말이야.”
“이유가 뭐지? 무엇 때문에 날 제거하려는 것이지?”
죽을 때 죽더라도 왜인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건 그대가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을 낸 것에 대한 대가이다.”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낸 대가라고? 내가 대체 무슨…… 혹시?”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에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고 화를 내려던 하인리히는 그제야 짚이는 것이 있었다.
“로엔의 국왕이 보낸 것인가?”
“알았으니 됐군. 그럼 잘 가도록 하라!”
“으, 으악!”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론으로 펼친 정령 마법인 바람의 칼날은 하인리히가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고, 몇 점의 살점들과 진득한 핏물만이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알려 주는 흔적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