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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리온의 힘 (12/70)

알마리온의 힘

한센이 보낸 전령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알마리온은 회의를 소집하여 이와 같은 내용을 모두에게 전달하였다.

“흥! 포넬 놈들의 기사단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 전사라면 그깟 놈들 몽땅 쓸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하얀이리였다. 하나 모두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한 자신감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하하. 걱정 말라고! 내 반드시 놈들을 묵사발 내 줄 것이니 말이야. 하하하!”

“칸 경.”

“예, 군단장님.”

“언제쯤이면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칠 수 있겠습니까?”

“하루면 충분합니다, 군단장님.”

“하면 내일모레 아침에 출발토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요하네스 경이 새로 받아들인 5백의 병사들과 함께 지키도록 하십시오.”

“예, 군단장님.”

5개 영지에서 소개한 백성들 중 지원자를 받아 새로 뽑은 의용병은 모두 5백이었다.

더 많은 수가 끼니를 위해 그리고 원수를 갚겠다며 의용병이 되겠다고 나섰지만, 이들 중 5백 명만을 가려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령을 보내 드란 경으로 하여금 블랙스톤으로 복귀를 하도록 소식을 전하도록 하시오.”

“예, 군단장님.”

“그럼 다들 출동을 준비토록 하세요.”

“예!”

중장보병을 선두에 세운 포넬 왕국의 7군은 보무도 당당하게 전진해 들어갔다.

“정말 장관이지 않습니까, 백작 각하?”

2만이나 되는 병력이 오와 열을 맞춰 가며 이동하는 모습은 군문에 몸담은 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일임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하, 그렇지? 평생을 군을 지휘해 왔지만 언제나 이러한 때가 가장 흥분이 되더군.”

수많은 군벌로 이루어진 포넬 왕국에서도 백전노장인 서머셋 백작 또한 부관인 제놈 남작의 말에 동조를 하며 한껏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제 자네도 얼마 남지 않았네. 이런 일군을 지휘하는 날이 말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 당연한 일 아닌가? 이제 나와 같은 늙은이들은 물러나야지. 그리고 의당 경과 같은 젊은이가 군을 지휘해야 하지 않겠나?”

“그 무슨 말씀을! 어찌 저 같은 자가 일군을 지휘할 수 있겠습니까.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하하, 아니야. 내 그동안 자네를 늘 곁에 두고 보아 왔지 않은가. 경이라면 충분해.”

올해 서른다섯 살인 제놈 남작은 이미 열여덟 살 성인식 당시에 기사의 작위를 받을 만큼 그 자질이 빼어난 자였다.

이후에도 서머셋 백작을 따라 전쟁터에 여러 차례 출전하면서 많은 공을 세운 인물로, 이번 로엔 왕국 원정전에서도 서머셋 백작이 지휘하는 7군의 선봉장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백작 각하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하하, 물론이지! 물론 그래야 하네. 하하하!”

“아! 저기 정찰을 떠났던 바이렌 경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하면 잠시 이곳에 멈추도록 해야겠군. 부관, 이곳에서 잠시 쉬도록 하지.”

“예! 각하.”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지휘관들은 정찰 보고를 받았다.

“전방에 이렇다 할 적들은 없다고?”

“예, 백작 각하.”

“이상하군. 저들도 아국의 4군을 무너뜨린 후 이 지역 전체가 주인 없는 땅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마도 왕도를 되찾기 위해 병력을 그쪽으로 집중시켰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들도 로엔이 롬 강을 건너면서 왕도인 소렌토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엔은 이미 더 이상 병사들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습니다. 오죽 다급했으면 노예들을 전장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최후의 보루인 북쪽 국경을 지키던 북부군까지 모두 전장으로 내몰았겠습니까?”

“하긴 자네 말도 맞네. 하면 진군 속도를 조금 더 높이도록 하지.”

“예, 백작 각하.”

“비가 올 것 같군요.”

“비가 말입니까?”

“아무래도 곧 태풍이 불어올 것 같습니다.”

“태풍이 말입니까?”

가을로 접어들면서 청명한 날씨만 계속되고 있었다. 올해는 비도 적당하고 날씨 또한 적당하여 전란만 아니었다면 크게 풍년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데 전형적인 높고 푸르기만 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더니 뜬금없이 태풍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하는 알마리온의 행동에 칸은 무척이나 의아해했다.

“이상하시죠?”

알마리온의 행동을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칸에게 요들이 다가와서는 속삭이듯 말했다.

“자넨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저희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면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예. 처음 몇 번은 무척이나 이상했지만 매번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주군을 보고는 다들 더 이상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주군께서 비가 온다 하면 정말로 비가 왔고, 눈이 온다 하면 눈이 왔으며, 바람이 분다 하면 바람이 불었고, 날이 더울 것이라 하면 덥고, 춥다 하면 추웠으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흠.”

‘그러한 능력도 정령술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마스터께서는 그러한 능력이 없으셨거늘?’

칸은 이미 알마리온이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요들이 말했던 것처럼 정령술사가 날씨를 미리 알아맞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그가 속해 있는 곳, 아직 세상에 단 한 번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로열가드의 마스터부터 단원들 중에는 십여 명의 정령술사들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시네요. 하지만 곧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 속삭이며 알마리온의 뒤를 따라 걷던 두 사람은 알마리온이 멈춰 서자 함께 멈춰 섰다.

“대단한 군세이군요.”

2개 정규군단과 1개 천인대 규모의 중장보병, 거기에 기사단이 만들어 내는 기운은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습에 칸도, 요들도 낯빛이 잔뜩 굳어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마법사가 없다. 저들도 무제한으로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모든 부대마다 마법사가 함께하진 못하겠지.’

그의 생각처럼 마법사란 존재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익스퍼트보다는 그 수가 많지만 이는 마법사가 마나에 대한 친화력을 가진 이들을 찾아 마법사로 키워 나가는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검의 길을 걷는 사람들처럼 철저하게 혈통으로만 전했다면 그 수는 익스퍼트들만큼이나 적었을 것이다.

“돌아가도록 하지요.”

“예, 군단장님.”

이미 볼 것은 다 살펴본 알마리온은 두 사람과 함께 부대로 복귀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부터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기어이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강풍과 폭우 속에서 홀로 비와 바람을 맞으며 포넬군의 진영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알마리온이었다.

‘실라페.’

-왜?

‘네 도움이 필요해.’

-뭘 해 주면 되지?

전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고분고분해진 실라페의 모습에 의아해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바람을 일으켜 줘.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바람을.’

지금도 강풍이 불고 있긴 하였지만 아직은 완전히 태풍의 권역에 들지 않아 제법 많은 비가 오고 강한 바람이 불어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알았어! 모처럼 신 나게 놀아 보지. 호호호!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부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넬군 진영은 이내 혼란에 빠져들었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나름 단단히 친 천막들이 삽시간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붙잡아! 천막이 날아가지 않게 꽉 붙잡아! 그리고 말뚝을 깊이 박으란 말이야!”

“으, 으아∼!”

하나 이러한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 바람이 얼마나 강했는지, 천막을 붙잡고 있던 병사들마저 바람에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아침이 되자 밤새 분 광풍과 폭우는 마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거짓말처럼 맑고 무더운 날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로엔군이 머물고 있는 자리는 지난밤에 있었던 광풍과 폭우가 거짓말도, 꿈속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손이 이들이 머문 자리를 마구 헝클어 놓은 것처럼 무엇 하나 제대로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아침나절 보였던 맑은 날씨는 오후 늦게부터 다시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다시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바람만큼은 어젯밤처럼 강하게 불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조차도 다시 밤이 되니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짜증 나네.”

“그러게 말이다. 이 지겨운 비가 벌써 이틀이나 계속되고 있으니. 게다가 이런 날씨에 경계를 서라고 하다니, 하여간 윗대가리 놈들은…….”

빗속에서, 그것도 천둥번개가 쏟아지는 한밤에 경계를 서는 포넬의 병사들의 입에서는 절로 불평불만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긴 이런 날씨에 쏟아지는 비를 다 맞아 가며 경계를 서고 있으니 제정신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불평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출정은 저주받은 것이 분명해.”

“맞아. 어젯밤에는 바람 때문에 깃대가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잖아? 그것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더라고. 이번 출정은 저주받은 것이라고 말이야.”

포넬군의 진영 한가운데에는 포넬 왕국을 상징하는 기를 거는 깃대와, 각 군을 상징하는 기를 거는 깃대가 세워져 있었다.

한데 이러한 깃대가 어젯밤의 광풍에 모두 부러지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이를 두고 병사들 사이에서 이번 출정이 저주받았다는 수군거림이 떠돌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군에서는 유난히 미신을 많이 믿었다.

일부에서는 단지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서 깃대가 쓰러진 것뿐이라며 별 이상한 소리 다 한다는 식으로 반박하였지만, 그렇게 반박하는 자들의 마음속에도 불안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너 발론이라고 알지?”

“아! 그 신이 내렸다고 주장하는 미친놈 말이야?”

“그래. 그놈이 그러는데, 이번 출정은 저주받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쳇! 그놈이야 평소에도 자기에게 신이 강림했다고 주접을 떠는 미친놈인데 그 말을 믿냐?”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밤에 바람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깃발을 쥐고 흔드는 것을 보았다더라고.”

“거대한 그림자가? 그놈 또 이상한 약 처먹고 헛소리한 것 아냐?”

“아니라던데?”

“어쨌든 그런 미친놈 말을 믿는 너도 참. 오죽하면…….”

한데 그 순간이었다. 병사들의 대화는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콰르르릉! 쾅!

번쩍!

쿵!

“버, 버, 번개가! 번개가!”

“……!”

순간 어둠을 몰아내고 대지를 밝게 비춘 거대한 한 줄기 번개가 세상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내리쳤고, 그 번개는 진의 중앙에 두 번 다시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박아 놓은 깃대를 강타했다.

병사들로 하여금 미신에 빠지지 말라며 이번 출정이 저주받았다는 말을 하는 병사들을 가려내어 채찍으로 때리는 형벌을 가하였지만, 그 빗속에도 다시금 깃대를 높이 세움으로써 병사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말들이 쓸데없는 말들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한데 그렇게 세워 놓은 깃대가 이번에는 번개에 맞아 다시 부러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갑자기 진 곳곳에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릉! 꽈르르르릉!

쾅! 쾅! 콰광! 쾅! 쾅!

‘엄청나군.’

-그런가? 하긴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의 힘이란 두려움 그 자체이긴 하지.

놀라는 알마리온의 모습에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노임이었다.

-라이오너 녀석이 보면 질투 좀 하겠군.

‘라이오너?’

-모르나? 번개의 정령인 놈이다. 우리와는 또 다른 정령이지.

‘너희와는 또 다른 정령이 있단 말이야?’

-몰랐나 보군.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를 비롯한 모든 정령술사들에게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매우 단편적인 지식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라이오너라는 번개의 정령은 너희와 같은 속성계 정령이 아니라 자연계 정령이라는 것이군?’

-그렇지. 예전에 너희 인간 정령술사나 엘프 정령술사들은 그런 정령들을 2차 정령이라고 부르더군.

‘2차 정령? 아! 그러니까 속성계 정령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정령들이란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겠네?’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군. 어쨌든 지금 내 눈에는 라이오너 녀석이 신 나 하면서도 한심하다는 듯이 널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는군.

‘하하.’

필립과의 대결 이후 4대 정령을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정령 마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자신을 위기로까지 몰아갔던 강력한 공격인 전격계 마법만큼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데 속성계 정령이 아닌 자연계 정령들 중에 라이오너라는 번개의 정령이 있음을 알았지만, 막상 그러한 라이오너와는 친화력이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되자 강해지고 싶어 하는 알마리온으로서는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고마웠어. 마지막으로 그것을 터트려 줘, 노임.’

-그러지.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노임을 돌려보낸 알마리온은 비를 맞으며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오는군. 운다인.’

-그간 안녕하셨나요, 알마리온 님?

‘덕분에. 운다인도 잘 지냈겠지?’

-…….

안부를 묻는 알마리온의 행동에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운다인이었다.

‘부탁이 있어. 지금 흘러오는 물을 저곳으로 집중되게 해 줘.’

-후……. 알겠어요.

‘미안해, 운다인. 이런 부탁을 해서 말이야.’

자신의 부탁에 어두운 낯빛을 하는 운다인을 보면서 알마리온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알마리온에게 운다인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는 정령계로 돌아갔고, 얼마 후 알마리온도 부대로 복귀했다.

“…….”

막사 안의 분위기는 침통함 그 자체였다.

지난밤 번개와 갑자기 몰아닥친 홍수로 인해 뜻하지 않은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홍수로 인한 피해는 숫자 이상의 피해를 이들에게 가져다주었다.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부대는 1개 천인대 규모의 중장보병들이었다.

처음부터 비가 많이 내려 나름 대비를 하고 있었긴 하지만 갑자기 불어난 물로 인해 미처 피할 틈조차 갖지 못한 채 중장보병들 대부분이 휩쓸려 버렸고, 사실상 이들 중장보병대는 전투에는 참여해 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이는 지난밤 광풍으로 인해 말들이 모두 도망가 더 이상 기사단과 기병대를 운용하지 못하게 된 것과 함께 이들 7군에는 치명적인 전력의 약화를 가져왔다.

“문제는 어젯밤의 일로 입은 피해의 규모가 아니다. 바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는 병사들의 사기다.”

“…….”

서머셋의 지적처럼 현재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입은 피해보다는 그러한 피해를 입은 과정이었다.

전투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라면 그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기겠지만 2천 가량의 병력을 비전투 손실, 그러니까 갑자기 주둔지를 덮친 홍수로 인해 잃었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숫자 이상의 피해를 이들에게 가져다주었다.

“병사들 사이에 이번 출정이 저주를 받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백작 각하, 비록 그러한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식한…….”

“그만! 그 무식한 병사들이야말로 군의 핵심이라는 것을 그댄 잊었단 말인가?”

“으음.”

서머셋 백작은 고위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나 병사들과 어울림에 있어서 격이 없는 자였다. 때문에 그의 영지민들이나 그의 휘하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를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이러한 그의 성품으로 인해 그는 지장智將이자 덕장德將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병사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어느 지휘관의 발언에 잔뜩 인상이 찌푸려졌다.

“백작 각하.”

“무엇인가?”

“병사들이 군의 근간이라는 백작 각하의 고견에는 소관 또한 동감입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무지하다는 하운드 경의 의견 또한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가젤 남작?”

“소관의 생각으로는 이쯤 해서 더 이상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백작 각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일단 본보기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병사들 몇을 공개 처형하여야 합니다.”

“…….”

좋지 않은 소문을 내고 다니는 병사 몇을 공개 처형해야 한다는 가젤을 노려보는 서머셋이었다.

하지만 가젤 또한 그러한 서머셋의 눈길을 전혀 피하지 않고 끝까지 마주하였다.

“소관 또한 가젤 남작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금처럼 불온한 소문을 퍼뜨리는 병사들을 엄벌하지 않는다면 군 전체의 사기가 더욱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으음. 제놈 남작, 그대마저?”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후!”

가장 신임하는 제놈마저도 불온한 소문을 내고 다니는 병사들 몇을 공개 처형하자는 의견에 찬성하고 나오자 서머셋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몇몇을 책임지는 자가 아닌 몇만 명의 병사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신의 막중한 위치를 이들의 지적으로 다시금 상기했기 때문이다.

‘설사 이들의 의견이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그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 또한 필요할 수도 있겠군.’

“좋네. 두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 수는 최소한으로 하도록. 알겠나?”

“예, 백작 각하!”

“그리고, 이러한 대책이 미봉책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네.”

“물론입니다, 백작 각하.”

“다들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게.”

“예! 백작 각하.”

모두가 막사를 나가자 혼자 남은 서머셋의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아직 전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군의 사기가 떨어지다니.”

만약 그가, 아니 그를 비롯한 7군 지휘관들이 이런 피해가 단순한 자연에 의한 재해도, 그리고 병사들이 이야기하는 미신에 의한 것들도 아닌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표정들이 될까?

정령술사의 진정한 능력.

그것은 이처럼 자연과 함께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을 알마리온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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