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의 혈투
서로 공격을 멈춘 양측은 지루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기다리던 24군단이 도착을 하였고,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7군단의 클레이튼 자작과 24군단의 티모시 자작, 그리고 카넬 자작은 로엔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넬군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적이 비록 보급 물자를 모두 잃고 뒤로 물러서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이들은 2만의 병력이 건재하였고, 무엇보다 적장인 카즈모 백작의 용병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몇 개 확보하지 못하였지만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이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카넬 자작의 영지군과 7군단, 24군단 병력은 단번에 2천이나 되는 병력을 잃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카넬 자작의 너른 집무실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다시피 하였지만 단 한 사람만의 목소리만이 방 안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렇게 적의 후방 지역을 교란하는 한편, 적에게 전달될 보급 물자를 차단. 적의 힘을 최대한 빼 놓은 후, 7, 24군단 그리고 카넬 자작의 영지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적의 전면을 공격한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로엔달의 계획은 다시 한 번 산을 통해 남쪽으로 이동하여 적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 남쪽에 위치한 조른 남작의 영지에서 앞뒤로 적을 상대하는 한편, 적의 보급 물자를 차단하여 최대한 힘을 빼게 한 후 단번에 밀어붙이자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또다시 제1의용군의 활약만이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찬성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다.
결국 이러한 로엔달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제1의용군은 또다시 거친 산을 이동하여 만 하루 만에 조른 남작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른 남작 영지에 도착한 제1의용군은 하루를 휴식과 정찰을 하면서 보낸 후 적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조른 남작 영지에 도착한 후 로엔달은 알마리온에게 힘든 명령을 내렸다.
“자네가 성문을 열어 줘야겠네.”
“소관 혼자서 말입니까?”
“그래. 자네만이 병력의 피해 없이 유일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네.”
조른 성에 주둔하고 있는 포넬의 병사가 얼마 되진 않지만 마법사가 머물고 있고 성의 주변 곳곳에 마법 아이템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일이었다.
설사 알마리온이나 로엔달 자신이 정령을 이용하여 사전에 마법 아이템을 무력화시킨다 해도, 문제는 마법사들이었다.
가뜩이나 충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제1의용군의 입장에서 병력의 손실은 가장 치명적인 일로, 마법사가 버티고 있는 성을 무작정 공략할 수는 없었다.
하여 로엔달은 알마리온에게 조른 성에 머물고 있는 적의 마법사를 제거하고 성문을 열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알마리온에게 이러한 위험한 일은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로엔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유는 그 또한 익스퍼트가 아닌 정령술사로 알마리온에게 준 정령의 고향이 없는 지금, 그가 익스퍼트가 아니란 것이 밝혀지면 커다란 파장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알마리온뿐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날이 어두워지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이 기운은?”
마법서를 읽고 있던 필립은 갑자기 느껴진 마나의 파동에 흠칫했다. 4서클 마법사인 그였기에 일정 거리 안에서 마나가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면 이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호∼! 이건 새로운 마법이 아니야. 그렇다면? 맞아! 이것은 정령 마법만이 가능하다!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정령 마법이라니!’
마법사에게 있어서 최강의 적은 바로 정령술사였다. 오죽하면 마법사들이 지속적으로 힘을 합쳐 이 땅에서 모든 정령술사들을 제거하려 했겠는가.
‘한데 이 정도 마나의 움직임이라면? 후후, 좋아. 겨우 하급 정령술사가 감히 내가 있는 곳으로 몰래 기어들어 온다 이것이지?’
4서클 마법사인 필립이었다.
과거 마법 제국 시절에는 7서클 마법사를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마법 제국이 무너지면서 마법은 급격하게 쇠퇴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공식적으로 6서클 마법사가 세상에 알려진 최고의 마법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4서클 마법사라면 이는 실로 엄청난 존재였다.
실제로 필립 폰 아르몬 자작은 포넬 왕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마법사였다. 그런 그가 이렇듯 전장, 그것도 최전선까지 나와 있는 것은 포넬의 실권자인 고메즈 대공과의 사이에 있었던 한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재미난 실험을 해 볼 수 있겠군. 후후후.’
정령술사를 대상으로 많은 마법 실험을 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그 기록들에 의하면 정령술사들은 마법사나 익스퍼트 들과는 많은 점이 달랐다.
정령이라는 것은 그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순수한 기운이 모이고, 모이고 또 모여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정령술사 또한 순수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정령술사들은 선천적으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병이라는 것이 걸리지 않는다. 또한 부상을 당했을 때에도 그 회복 속도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마법사들에 의해 밝혀진 정령술사 최대의 불가사의는, 바로 정령술사가 죽은 후의 현상이었다.
마법사나 익스퍼트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동안 체내에 쌓여 있는 마나는 당연히 곧바로 자연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에 반해 정령술사의 경우에는 사후에도 마나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그 기운이 짧게는 몇십 년을, 길게는 몇백 년 동안이나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정령술사가 묻힌 지역에는 그 정령술사가 평소 소환할 수 있었던 정령의 기운이 강하게 어려 있어 그러한 곳에서 정령에 대한 친화력을 가진 이가 수련을 할 경우 그만큼 더욱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령술사는 마법사나 익스퍼트와는 많은 점이 달랐고, 단지 문헌을 통해서만 보았던 이러한 것을 이제 직접 실험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필립은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성 자체의 경계는 삼엄하다 못해 그 어떠한 침입도 허락되지 않을, 그야말로 물 샐 틈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그에 반해 성안의 경계는 너무나 허술했다.
뚜벅. 뚜벅. 뚜벅.
구태여 소리를 죽인 채 움직일 필요조차도 없을 정도였다.
똑똑!
“누구지?”
똑똑!
“들어와.”
똑똑!
“들어오라니까!”
똑똑똑!
“어떤 놈이냐!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나!”
벌컥!
“어떤……. 컥!”
화가 나 벌컥 문을 열던 볼튼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 화끈거리는 느낌에 볼튼은 입을 크게 벌렸지만 그 어떠한 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컥! 크윽!”
정확하게 마나 홀을 파고든 날카로운 검에 잠시 허우적거리던 볼튼의 작지 않은 덩치가 이내 힘없이 알마리온에게 기대듯 쓰러졌다.
마법사 한 명을 처리한 알마리온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처치해야 할 마법사가 한 명 더 남아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계단을 올라 한 층을 더 올라간 알마리온은 한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막 노크를 하려다가 갑자기 몸을 날려 옆으로 피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갑작스레 방문이 터져 나갔다.
펑! 콰지직!
“제법이군.”
부서진, 아니 터져 버린 문을 통해서 반백의,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날카로운 인상의 초로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수백 년이 더 된 정령술사를 만나게 되다니 난 참 행운아로군.”
이미 자신이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
“후후! 네가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아보니 놀라운가 보군?”
“그렇습니다.”
정령의 고향이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면 아무리 마법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령의 힘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고 하였기에 어떻게 자신이 정령술사인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간단하지. 나 같은 고위 마법사의 경우에는 일정 지역 안에서 마나가 급격하게 움직이면 이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지.”
“단지 마나의 움직임만으로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후후, 그건 아니지. 하지만 네가 사용한 것처럼 땅속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 결국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정령을 이용한 정령 마법일 경우에나 가능하지.”
“으음. 그렇군요.”
이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이 둘은 마치 스승과 제자가 의문 나는 것을 묻고 답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실상 두 사람 모두 언제든 손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한데 마치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이곳에 침입하기 전에 소환하였던 정령이 네가 소환할 수 있는 최고의 정령이라면 넌 오늘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인 중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다 해도 결국은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중급 정령이라면 마법으로 따진다면 3∼4서클 정도의 마법과 비슷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결국 저자는…….’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필립 폰 아르몬이네. 그대는?”
“알마리온.”
“알마리온? 성은 없는가?”
“혼테르. 알마리온 폰 혼테르 남작이오.”
자신의 이름이었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한 이름이었다.
“혼테르? 훗! 용맹함이라? 좋은 이름이군. 하지만 아무래도 그대는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군.”
“……?”
“용맹함이 아니라 무모함으로 지었어야 했단 말이야. 후후후!”
어쩌면 그의 말처럼 지금 자신은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중급 정령술사라고는 하지만 그는 아직 정령 마법이라는 것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홀로 이들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성에 잠입하였고, 확실히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상대하기 버거운 적과 맞닥뜨렸으니 무모해 보일 만도 하였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해 봐야 알 것이다.’
“재미없군.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말이야.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재미를 느껴 볼까?”
온갖 여유를 부리는 필립에 비해 알마리온은 전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선공! 실프!’
알마리온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정령은 바람의 정령이었다. 하급 정령이긴 하였지만 실프를 이용한 바람의 칼날이라는 정령 마법은 알마리온이 지난 1년 반 동안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자신과 동료들을 보호해 온 확실한 수법이었다.
팡!
“뭐야, 익스퍼트 흉내를 내는 것인가? 하긴 정령술사가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니 제대로 된 정령 마법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렇다 해도 겨우 익스퍼트를 흉내 내다니 어이없군.”
달려드는 기사와 말을 단번에 두 동강을 내 버렸을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실드 앞에서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미리 말해 두지만 네게 주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니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처럼 무시를 당한다면 당연 화를 내거나 분노하게 될 것이지만 알마리온은 오히려 더욱 냉정해졌다.
아니, 그 또한 분노하긴 하였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무시를 당해서가 아닌, 자신의 약함 때문이었다.
‘강해져야 해. 이제 더 이상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좋아. 어차피 저자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당하는 일이니. 실라페!’
“제법!”
실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알마리온은 실프를 돌려보내고 실라페를 소환하였다.
당연히 그만큼 마나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그것을 느낀 필립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알마리온이 한 단계 더 강력한 정령을 소환한 것에 기뻐하였다.
“차핫!”
필립이 자신감을 확신하는 사이 알마리온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런 무식한! 실드! 블링크! 매직 애로우!”
파앙! 피웅! 피웅! 피웅!
마법사는 근접전을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그만큼 대응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마법이란 것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을 알면서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마법사들은 없었고, 결국 계속된 노력 끝에 마법사들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메모라이즈라는 마법을 개발함으로써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모라이즈’는 미리 몇 가지의 마법을 준비해 놓고 있다가 스펠spell하는 복잡하고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리는 사전 작업을 배제하고 간단한 시동어만을 사용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단한 마법이었다.
하나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아무리 스펠하는 사전 작업을 없애 주는 메모라이즈 마법이었지만 이 마법으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마법의 수는 최대 3개뿐이었다.
즉, 미리 메모라이즈해 놓은 3개의 마법을 모두 사용하면 그 이후부터는 복잡하고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펠 작업 후에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데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포넬에서 결국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고메즈 대공이 개발한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이었다.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 자체가 미리 특정 마법을 인챈트하여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든 것으로, 이것만 있다면 간단하게 시동어로 마법을 발휘할 수 있으니 더 이상 귀찮은 스펠 작업을 할 이유도 그리고 제한된 메모리 마법으로 신경을 쓸 이유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정령을 통한 원거리 공격을 예상하고 있다가 익스퍼트가 마법사를 상대하는 전형적인 전법처럼 근접전으로 나온 알마리온의 공격에도 필립이 이내 침착하게 방어는 물론 역공까지 취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마법 아이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파팡!
1서클 마법인 매직 애로우를 바람의 칼날로 간단하게 없애 버린 알마리온.
마치 서로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공격하기로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반격을 가했다. 하나 그러한 알마리온의 공격은 또다시 간단하게 가로막혔다.
“훗! 역시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막는군. 그럼 이것도 막아 보라고! 라이트닝!”
파지직!
“웃!”
한 줄기 번개가 스쳐 지나가자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두 곤두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대가 마지막 순간에 힘을 줄여 주지 않았다면 이런 마법 공격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알마리온은 그대로 당했을 것이다.
‘그렇군. 만약 저자가 나를 사로잡기 위해 힘을 줄이지 않았다면……. 좋아, 당신이 그런 생각이라면…….’
잠시 상대의 공격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내 그 가운데서 적의 약점을 찾아낸 알마리온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생포하길 원하여 힘을 조절하는 이상 그만큼 행동의 폭이 넓은 쪽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유리한 것은 오히려 나다!’
생각은 곧바로 의지로 변하였고, 의지는 곧바로 행동으로 변하였다.
“이얍!”
강한 기합과 함께 날카로운, 하지만 상당한 위력이 담긴 바람의 칼날이 필립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후후! 파워 실드!”
파앙!
“좋아! 아주 좋아! 확실히 날 흥분시키는구나! 더욱 날뛰어 보거라! 더욱! 날 더욱 흥분시켜 보라고!”
알마리온이 분발하자 오히려 필립 또한 더욱 흥분하였다.
“원한다면!”
쿠우우!
간단한 베기 동작이었지만, 그의 검에서 인 바람의 칼날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며 날아갔다.
“좋아! 더블 파워 실드!”
파아앙!
“크.”
중급 정령인 실라페의 힘이 실린 바람의 칼날에는 하급 정령인 실프에 의해 만들어진 바람의 칼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힘과 날카로움이 실려 있었기에, 비록 그것을 충분히 막았지만 그 충격 중 일부가 필립에게도 전해지면서 온몸이 얼얼해졌다.
“하압!”
파앙! 파직! 콰앙!
마치 광풍이 몰아치듯 알마리온의 공격이 필립에게 쏟아졌다.
“거기까지! 이젠 내 공격을 받아 보도록! 에어 밤!”
알마리온의 공격을 몇 번 받아 준 필립이 반격을 취하기 시작하자 알마리온은 이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마법이라는 것도 결국 마나의 변형일 뿐인 것인가?’
공방의 시간이 길어지고, 필립이 여러 수법들을 보이면서 알마리온은 결국 마법이라는 것이 특정 현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마나를 변형시키는 고도의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다면 같은 마나를 사용하는 자신 또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좋아. 그렇다면…….’
필립의 마법을 보면서 정령으로 동일하거나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을 실험해 볼 틈이 없었다. 흥분한 필립의 공격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라이트닝 스피어!”
“놈!”
펑!
몇 차례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필립은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었던 전격계의 3서클 마법인 번개의 창 공격을 가해 왔고, 알마리온은 대지의 정령인 놈을 소환하여 이를 막았다.
이때 뜻밖의 공격 기회를 잡은 알마리온이었다. 필립의 강력한 마법 공격에 놈으로 만든 방패가 터져 나가면서 흙이 사방으로 비산하였고, 이것이 필립의 시선을 가려 주었던 것이다.
“터져 버려!”
펑!
“이런! 파워 실드! 크흑!”
에어 밤이라는 마법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지만, 오히려 마법보다 더욱 빠르게 전달된 효과에 필립은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한 채 먼저 부상을 당하였다.
“이, 이놈! 감히!”
강자의 자존심을 내보이던 필립은 자신이 펼친 마법을 어설프게 그대로 흉내 낸 수법에 부상을 당하자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강력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인페르노! 룬프레이어!”
“샐리스트!”
강력한 화염계 공격이었지만 아무리 강력한 화염이라 하더라도 뚜렷한 힘의 우위가 있는 것 아닌 이상 불의 정령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이놈! 도대체 몇 가지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지?’
벌써 세 가지나 되는 정령을 소환한 알마리온을 보면서 필립은 처음으로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전에 없던 빈틈이 생겨났다.
‘빈틈!’
지난 1년 반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알마리온이 이러한 빈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필립의 움직임에서 빈틈을 찾아낸 알마리온의 몸이 순식간에 필립의 곁으로 이동하였다. 대지의 정령인 놈을 이용하여 마치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다가간 것이었다.
“헛! 블링크! 라이트닝!”
“큭!”
분명 빈틈을 노리고 순식간에 필립에게 다가가 일격을 가하려 했던 그의 생각은 좋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좋지 못했다.
필립 또한 많은 실전을 겪어 온 인물. 알마리온의 의도를 눈치챈 그는 블링크 마법으로 다시금 거리를 벌리면서 그래도 알마리온이 가장 방어하기 힘들어했던 전격계 마법을 사용하여 역공을 취해 왔다.
이로 인해 알마리온은 오른쪽 옆구리에 제법 큰 상처가 생겼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본능적으로 허리를 틀어 대부분의 힘을 흘려 버리지 못했다면 지금쯤 온몸이 숯 덩어리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 그럼 이쯤 해서 마무리를 지어야겠군. 받아라! 라이트닝 블레이드! 라이트닝!”
강력한 전격계 공격에 이어 같은 전격계 마법이긴 해도 위력이 가장 낮은 라이트닝 공격을 연달아 펼쳤다.
첫 공격은 강력하지만 알마리온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공격이야말로 알마리온을 생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임! 실프! 샐러맨더! 운디네!”
정령술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네 정령을 동시에 소환하였다.
대지의 중급 정령인 노임으로 필립의 강력한 전격계 공격을 차단함과 동시에 바람의 칼날을 순식간에 세 차례나 펼쳤다. 아울러 샐러맨더로 하여금 불덩어리를, 운디네로 하여금 물 폭탄을 쏘아 퍼붓게 하였다.
“이런 젠장! 블링크!”
이미 몇 차례 블링크 마법이라는 것을 보았기에 그 이동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알마리온은 어디서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 긴장하며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필립의 공격이 다시금 시작되었고, 이전과는 달리 계속되는 강력한 공격에 알마리온은 이제 반격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방어하기에도 급급해졌다.
하지만 공격을 취하는 필립의 마음도 이제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다급해졌다.
‘큰일이다. 이제 내가 지니고 있는 마법 아이템도 거의 다 사용하였거늘…….’
마법 아이템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마법 아이템에도 약점은 존재하고 있었는데, 마법 아이템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마정석이 필요했고 일단 한번 사용하게 되면 마정석에 다시금 마나가 채워질 때까지는 마법 아이템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한데 손쉬운 상대라고 여겼던 알마리온을 상대로 이처럼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 그만 가지고 있던 마법 아이템을 거의 모두 사용해 버린 것이다.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6개, 그리고 메모라이즈해 놓은 마법까지 모두 아홉 번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의 방어 마법이 없다는 것. 그사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제압해야 한다!’
그동안은 알마리온을 생포하기 위해 가급적 힘 조절을 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남아 있는 마법 아이템 중에도, 그리고 미리 메모라이즈해 놓은 마법 중에도 더 이상 방어 마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4서클 마법사인 필립은 이토록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을 자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방어 마법은 거의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반면 필립과의 대결을 통해 알마리온의 정령 마법은 더욱더 그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결국 마나의 변형이었고, 그것은 정령을 통해서도 충분히 그리고 더욱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에 실상 전격계 공격 마법을 제외하고는 이미 필립이 사용했던 마법들 모두를 그대로 답습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파이어 월! 윈드 토네이도!”
연이은 4서클 공격 마법이 펼쳐졌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샐리스트! 실라페!”
“우아악! 죽어! 죽어, 이 자식아!”
자신의 모든 공격이 무력화되고 이제 쓸 수 있는 마법 또한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결국 완전히 이성을 잃은 필립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을 재촉하였다.
또 한 번 필립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알마리온은 순식간에 그에게 다가가서는 검을 찔러 넣었다.
“컥!”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필립의 표정은 한마디로 어이없음이었다. 도저히 벌어져서는 안 될 일.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표정이었다.
“방심이었는가?”
“그렇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날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가?”
회한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그랬군……. 그랬어.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쿵!
검을 뽑자 필립의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
“후.”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알마리온은 전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의 예민한 감각에, 두 사람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도 용케 다른 곳과는 달리 거의 부서지지 않은 필립의 방에서 또 한 명의 인기척이 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나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 나가겠습니다. 하니 제발 공격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자를 보며 알마리온은 조금은 당황했다.
“음? 드워프?”
“그, 그렇습니다, 나리.”
그랬다. 방 안에서 나온 이는 인간이 아닌, 순수 혈통의 드워프였다.
드워프 혼혈인 얄란족의 전사들을 본 때문에 아주 낯설지는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순수 혈통의 드워프는 처음 봐서 그런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대 이름은?”
“단단한머리라고 합니다, 나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가 아니고서는 드워프는 인간의 노예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단단한머리 또한 대대로 인간의 노예로 살아오면서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노예 특유의 사고와 행동이 몸에 철저하게 배어 있었기에 처음 대하는 알마리온에게도 이처럼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알마리온 또한 노예로 살아온 때문에 이러한 단단한머리의 행동이 그저 안쓰럽게만 보였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을 깨뜨리기 전에는 누가 명령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단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드워프인 그대가 이곳에 어쩐 일로 있는 것입니까?”
“저, 저는 저기 누워 계신 주인님의 노예로, 주인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모든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말이오?”
“예, 나리.”
“그렇다면 혹시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예, 나리. 나리께서 나타나시기 전에도 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리.”
혹시나 해서 물었던 것인데 진짜로 마법 아이템까지 만들 수 있다는 단단한머리의 말에 오히려 크게 놀란 알마리온이었다.
“아무래도 그대는 나와 함께 가야 할 것 같군요.”
함께 가야 한다는 알마리온의 말에 처음에는 놀란 눈으로 알마리온을 바라보더니 이내 체념하는 표정으로 순순히 따르는 단단한머리였다.
“예, 나리. 곧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저자와 관계된 것들 중 내가 가져가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나요?”
“주인님께서는 중요한 모든 것을 로브 안에 넣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하면 서둘러 준비하도록 해요.”
“예, 나리. 아니, 주인님.”
함께 가야겠다는 알마리온의 말에 단단한머리는 벌써 그를 자신의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단단한머리가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나오자 알마리온이 그와 함께 성문을 열 때까지, 성안에 머물고 있던 포넬의 병사들 중 그 누구도 알마리온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대하던 제1의용군은 성문이 열리자 물밀듯이 성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고, 그와 거의 동시에 얼마 되지 않던 포넬의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성주 집무실에서 간략하게 회의를 마치고 모두를 내보낸 알마리온은 단단한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단단한머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드워프에 대해서입니다.”
“드워프 노예 문제라면 자네 재량이니 알아서 하게.”
노예도 물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장에서 습득한 물건인 전리품으로, 습득한 자의 소유였다. 때문에 로엔달은 알마리온의 말을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단단한머리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줬다.
“그는 마법 아이템을 제작하는 능력을 지닌 드워프입니다.”
순간 로엔달의 눈이 알마리온과 마주쳤다.
알마리온이 습득한 마법 아이템을 넘겨받은 메르타니온은 그것을 쿤테르에게 넘겨 마법 아이템에 대한 분석과 제작을 의뢰했고 몇 차례 제작을 시도하여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라고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법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드워프를 생포했다는 것은 그 의미와 파장이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에 대한 나의 답은 같네. 그에 대한 권리는 그를 습득한 자네에게 있네.”
“…….”
간단하게 유권해석을 해 주는 로엔달을 보며 알마리온은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법 아이템을 제작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단단한머리를 빼앗으려 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어떻게라도 한 다리 걸치기 위해 온갖 수작질을 부렸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로엔달은 자신의 것 이외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간단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하면 그에 대한 문제는 소관이 알아서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더 이상 할 말이 있나?”
“있습니다. 그를 은밀히 폐하께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더 있나?”
“없습니다.”
“그럼 나가 보게.”
“예, 자작님.”
로엔달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이제는 자신의 소유가 된 단단한머리가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마도 오늘 중으로 그대는 왕궁으로 가게 될 것이오.”
“…….”
왕궁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란 알마리온의 말에 놀란 표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곳에서 그대는 마법 아이템을 제작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오.”
그저 묵묵히 알마리온의 말을 듣고만 있는 단단한머리였다.
“하지만 폐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비록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그대는 더 이상 노예로 살지는 않아도 될 것이오.”
“그게 무슨…….”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해도 최소한 노예로 부림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란 알마리온의 말에 처음으로 말문을 여는 단단한머리였다.
“폐하께 그대를 보내는 대가로 난 그대의 신분을 자유롭게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오.”
“아.”
노예 신분을 풀어 주겠다는 말에 단단한머리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알마리온은 내심 마음이 무거웠다. 비록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는 하였지만 어차피 마법 아이템이라는 것을 제작할 수 있는 그로서는 평생을 제한된 공간에서 갇혀 지내야 할 것이기에 결국 신분이 바뀌었다 해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말장난과도 같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곳에 가서 그대가 잘 지냈으면 하오.”
“왜 제게 이런?”
왜 오늘 처음 만난 자신에게 이러한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단단한머리였다.
“훗! 나 자신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대와 같은 노예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오.”
“예? 그게 무슨?”
“자세한 것까진 말하고 싶진 않군요.”
“죄송합니다, 나리.”
“됐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다짐받아야 할 것이 있소. 오늘 밤 보았던 모든 것을 잊으시오. 혹시라도 누가 오늘 밤 그대가 보았던 일에 대해 묻더라도 절대 그것을 말해서는 안 될 것이오.”
“……?”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설사 그대의 목숨을 담보로 묻는다 하더라도, 절대 오늘 밤 본 것을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오. 다짐할 수 있겠소?”
“예, 나리.”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겠다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면 아예 그를 왕궁으로 보내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
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남작님, 자작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칸 경. 역시 그대가 왔군요.”
“예, 남작님.”
“그럼 그대는 저분을 따라가도록 하시오. 그리고 칸 경은 잠시 기다리시오. 내 곧 서신을 한 통 쓸 것이니 그것을 폐하가 보실 수 있게 해 주시오.”
“예, 남작님.”
이날 밤. 그 누구도 모르게 단단한머리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팬픽으로 이동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