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름을 얻다 (5/70)

이름을 얻다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하하! 이 모든 것이 신이 우리 왕국을 돕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하하하!”

메르타니온 국왕을 비롯한 국왕파에 속하는 귀족들은 20년 만에 동시에 탄생한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익스퍼트들인 알마리온과 레드로의 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이에 반해 동시에 두 명의 익스퍼트가 탄생했다는 것도, 그리고 이 두 익스퍼트가 모두 이미 국왕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충격의 결정판은 바로 더글러스 후작의 차자인 레드로가 아버지가 아닌,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왕의 편에 섰다는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께서 왕국과 왕실을 위해 이런 두 젊고 뛰어난 인재를 내려 주신 것일 것이옵니다.”

“하면 전례에 따라 이들 두 사람에게 작위를 내리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신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국왕파의 귀족들이 새로운 두 명의 익스퍼트들에게 작위를 내리겠다는 메르타니온의 말에 적극적인 찬성을 하고 나서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귀족파의 수장인 프리모 공작이 나섰다.

“무엇이오? 말씀해 보시오, 프리모 공작.”

“전례에 따라 새로운 익스퍼트에게 작위를 내리는 것은 지당하신 처사이옵니다.”

“그래서요?”

“하오나 소신 등은 참으로 궁금하옵니다.”

“무엇이 말이오?”

“한쪽은 분명 원수인 더글러스 후작의 차자로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저 청년은 어느 가문의 자제인 것이옵니까?”

알마리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일단 그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것이 시급했다. 아울러 어떤 사연으로 레드로가 국왕의 편에 선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레드로에게 네 아버지가 귀족파의 거두인 더글러스 후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기 위해 부러 레드로의 신분을 들먹거린 것이다.

“폐하, 그에 대한 설명은 소신이 해도 되겠사옵니까?”

“그렇게 하시오, 도르첸 공작.”

공식적인 회의인지라 국왕의 개인 보좌관 신분인 도르첸은 발언권 자체가 없었다. 또한 지금처럼 발언권을 얻어 발언을 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지 국왕을 대신하여 설명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가 자꾸만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 발언을 하는 것은 자칫 기존의 제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었는지라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저자에 대해 설명하면, 그는 얼마 전 해체된 12군단의 일개 병사였소.”

“12군단이라면? 하면 저자가 노예 출신이란 것이오?”

“그렇소, 프리모 공작.”

순간 대전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알마리온과 도르첸에 대한 정보는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들에게도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져 있었기에 국왕파에 속하는 자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도르첸이 언질을 줌으로써 처음 알 수 있었다.

알마리온이 노예 출신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이 보인 반응 또한 지금과 다르지 않아 혹시라도 과거에 벌어진 반정으로 인해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 아닌가 싶어 꺼림칙해하였다. 하나 그런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노예 출신이라는 도르첸의 추가 설명에 이들 모두는 큰 놀라움에 빠졌다.

이들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들 또한 마나 수련법이 없으면 익스퍼트가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들은 어떻게 마나 수련법도 없이 알마리온이 익스퍼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되지는 않았다. 다만 어찌 되었든 그러한 익스퍼트가 자신들 진영에 가담하기로 하였다는 것이 반가울 뿐이었다. 힘이란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한데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바로 알마리온의 신분이 미천한 노예 출신이라는 것으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을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하면 예전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겠소. 저자는 과거에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는 아니오.”

어차피 나중에라도 알려질 일이라면 구태여 감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도르첸은 알마리온의 신상에 대해 가감 없이 그대로 밝혔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노예 출신이라는 도르첸의 말에 프리모 공작은 내심 안심이 되었다.

“폐하, 전란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한 명도 아니고 동시에 두 명의 익스퍼트가 탄생하였음은 확실히 기뻐해야 할 일이옵니다. 하오나 그중 한 명의 신분이 노예라는 것이 우려스럽사옵니다.”

“무엇이 우려스럽다는 것이오?”

“신분의 구분이 뚜렷한 것은…….”

프리모의 입에서 구구절절 쏟아지는 장황한 말들은 결국 신분제도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파격은 배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귀족파의 반대는 이미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특권을 누려 온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신분의 구별이 뚜렷할수록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라면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서로 양보하는 이들이 바로 귀족들이었다.

“일리 있는 말씀이시오. 신분의 구분은 왕국의 근간과도 같은 것. 함부로 이를 파괴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오.”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처럼 신의 충성심을 헤아려 주시니 참으로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메르타니온 국왕이 자신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프리모는 오히려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이어진 메르타니온의 발언에 프리모 등은 자신들이 국왕에게 당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프리모 공작.”

“예, 폐하.”

“그는 이미 노예 신분이 아니질 않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조금 전 도르첸 공작의 설명으로는…….”

“흠! 흠! 공작, 나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도르첸 공작?”

메르타니온과 도르첸의 말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프리모였다.

“공작께서도 잘 아시지 않소? 병사들을 모으는 일이 어려워지자 폐하께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왕실 직영지의 노예를 비롯하여 모든 귀족들의 노예들을 징집하지 않았소?”

“분명 폐하께서 그러시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노예의 신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 나선 것은 레드로의 아비인 더글러스 후작이었다.

“더글러스 후작,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도르첸 공작! 아무리 공작이시고 또한 폐하의 보좌관이시라지만 지금은 국정을 논하는 자리! 공작께는 발언권조차 없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도르첸이 자신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자존심이 상한 더글러스 또한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였지만 별무소용이었다.

“훗! 이보시오, 후작. 나는 지금 국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대리하여 단지 설명을 하고 있을 뿐이네.”

말장난에 불과하였지만 원래 말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 일 아닌가.

“또한 후작의 지적처럼 그들이 노예 신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네. 하지만 그들의 주인은 바로 폐하이심을 잊으셨는가?”

“그건…….”

“후작도 알 것이네. 노예 병사를 징집할 당시 왕실에서는 그들에 대한 몸값을 모두 지불하였음을.”

“으음…….”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소유권은 엄연히 국왕 폐하에게 있는 것.”

주인이 제가 소유한 노예의 신분을 풀어 주겠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미 폐하께서는 전 12군단 소속이었던 모든 병사들에게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신분을 자유민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명령을 내리셨네.”

도르첸 공작의 말에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 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는 것이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냐며 의뭉스럽게 묻는 메르타니온을 바라보면서 프리모 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오시면 폐하, 저들 두 사람에게 작위만 내리실 것이옵니까, 아니면 봉지까지 하사하실 의향이시옵니까?”

프리모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현재 로엔 왕국의 아흔일곱 곳의 영지 중 제법 많은 곳이 비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추수가 시작되면 왕도인 소렌토에 머물던 귀족들도 대부분 영지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세금 관계를 직접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포넬은 바로 이처럼 추수철에 로엔을 침공하였고, 워낙 갑자기 침공당한 이유도 있지만 이를 초반에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서 적지 않은 영지의 영주들과 그 일가족들 전체가 포넬군에 의해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당하면서 적지 않은 수의 영지가 주인 없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특히 프리모 공작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지역에서 이런 일이 많이 벌어졌는데, 정황상 국왕파로 분류해야 할 두 익스퍼트에게 작위는 물론 영지까지 주어지게 되고, 그 영지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지역이 될 것이 걱정이 되어 물은 것이었다.

전례로 보면 익스퍼트가 된 자에게 작위는 물론, 봉지를 하사해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특히 레드로의 경우에는 고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이런 경우에는 봉지가 내려지는 것이 통례였다.

하나 메르타니온의 입에서는 이들의 예상을 깨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 좋겠지만 공도 세우지 않은 저들에게 봉지까지 내릴 수는 없는 법 아니겠소?”

예상 밖의 대답이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었기에 프리모를 비롯한 귀족 파벌에 속한 자들은 이내 호응하였다.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시옵니다.”

일단 봉지까지 내리는 것은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집사장.”

“하명하시옵소서, 폐하.”

집사장인 제거 백작이 명을 받기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오늘 저녁 작위 수여를 위한 예식을 준비토록 하시오. 다만 때가 때이니만큼 최대한 조촐하게 할 것이니 그에 맞춰 준비토록 하시오.”

작위 수여식 또한 이처럼 급박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전시이다 보니 이러한 일도 가능한 것이다.

“명을 받자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처리할 일이 있소.”

또다시 의논해야 할 것이 있다는 메르타니온의 말에 다시 한 번 대전에 긴장감이 돌았다.

“얼마 전 짐에게 한 통의 서신이 도착하였소. 북부 국경 지역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이번 전쟁에 자신들도 기여를 하겠다며 스스로 군단을 조직하였다고 말이오.”

“하면 의용군을 조직하였단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소, 더글러스 후작. 하여 짐은 기꺼이 그들의 충정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소.”

군의 문제라면 당연 왕국의 모든 군대를 지휘하는 원수인 더글러스 후작의 관할이었다.

“하오면 그 수가 얼마나 되는 것이옵니까?”

“내게 온 서신에 따르면 그 수가 3천이라고 하였소.”

정규군단의 10분지 3에 불과한 병력이었지만 지금처럼 한 명의 병사가 아쉬운 판국에 3천이라면 큰 도움이 되는 수였다.

메르타니온의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자원하여 의용군이 된 자들의 용맹함을 칭찬하였다.

“하오면 그들을 곧 정규군에 편입하는 절차를 밟도록 하겠사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의논할 일이 있다 한 것이오, 더글러스 후작.”

“혹 그들이 정규군으로의 편입을 원하지 않는 것이옵니까?”

의용군의 경우 정규군으로의 편입에 대한 문제는 국왕이나 원수가 아니라 의용군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소. 게다가 그들 중의 일부는 게르혼족 출신이라,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것 같소. 그들도 그러한 점 때문에 정규군으로의 편입보다는 자신들을 지휘할 지휘관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오.”

“게르혼족 출신들이라 하셨사옵니까?”

“그렇소, 프리모 공작.”

게르혼족은 로엔 왕국 북방의 대초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만족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목축을 하며 초원의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목 민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로엔 왕국이나 카빌란 제국이나, 이들 게르혼족을 모두 야만족으로 치부하며 경원해 오고 있었다.

“폐하, 그들이 게르혼족 출신이라면 결코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사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그들은 야만족이옵니다. 더욱이 그들을 경계하는 것은 건국 이래 꾸준히 취해 온 정책이지 않았사옵니까?”

북쪽 국경은 늘 이들 게르혼족들의 약탈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과의 국경 지역은 전체가 왕실 직영지로 지정되어 건국 때부터 국경을 방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지만 워낙 긴 국경이었기에 제대로 방비되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국경 지역 중 일부 지역은 아예 영토를 비워 놓은 곳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원수와도 같은 게르혼족 출신의 의용군을 받아들이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처럼 여기는 것이 당연하였다.

“공작의 우려 잘 알고 있소. 하나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살고 있으니 비록 그 조상들은 게르혼족이라 해도 그들 자체는 아국의 백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오.”

게르혼족들 중 일부, 특히 농사를 짓는 부족들의 경우에 빈 땅을 찾아서 국경을 넘어 로엔의 영토에 뿌리를 내린 자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의용군으로 나선 이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었다.

실상 이들은 정식으로 로엔의 백성들이라고 할 수 없었는데, 서류상으로도 이들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번에 그들이 의용군을 조직하여 기꺼이 전장에 참여하겠다는 것 또한 그들 스스로가 로엔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라고 하오.”

“하오나…….”

“프리모 공작.”

프리모가 계속해서 반대를 하려 하자 메르타니온이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말씀하시옵소서.”

“지금은 전시이오. 한 명의 병사들이 아쉬운 우리에게 3천이나 되는 의용군이라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공작은 모른단 말이오? 더욱이 그들은 모든 것을 저들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하오.”

“모든 것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오. 다만 자신들은 군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으니 지휘관을 보내 주기만을 바란다고 하였소. 아울러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을 세우면 정식으로 이 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만 해 달라는 것이었소.”

메르타니온의 말이 끝나자 국왕파에 속하는 귀족들의 입에서는 그들의 충성심에 대해 칭찬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완패군.’

갑작스러운 의제로 인해 생각할 여유도 없었지만, 오늘의 국왕은 딱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수위를 조절했기에 반대를 하고 싶어도 그럴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결국 오늘의 두 가지 사안에서 더 이상 반대하는 것도 명분이 서지 않는 일이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정히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폐하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프리모가 한발 물러서자 더글러스 후작을 필두로 귀족 파벌에 속하는 귀족들이 나서려 하였지만 프리모가 이를 은밀히 만류하자 더 이상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하, 재상인 공작까지 이렇듯 흔쾌히 동의를 하니 참으로 기쁘구려.”

“폐하, 소신이 외람되오나 폐하께 묻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더글러스 후작?”

“하오시면 그들을 지휘할 지휘관으로 어떤 이를 생각하고 계신 것이옵니까?”

“로엔달 자작, 앞으로 나오시오.”

“예, 폐하.”

“다들 알다시피 마침 여기 있는 로엔달 자작이 지휘하던 12군단이 해체되어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려던 참이었소. 해서 일단 로엔달 자작을 그들의 지휘관으로 임명하려고 하오.”

“현명한 판단이시옵니다. 비록 그들이 아국의 백성으로 귀화한다 하지만 천성은 거친 자들. 그런 자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해서는 로엔달 자작 같은 강한 지도력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가 적격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결국 이렇게 해서 공식적으로 제1의용군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지휘관으로는 로엔달 자작이 임명되었으며, 지휘부 구성 또한 전적으로 그에게 모든 것이 일임되었다.

“따라오거라.”

“…….”

대전을 나오던 레드로는 자신의 말만 툭 던져 놓고는 먼저 가 버리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기에 순순히 그를 따라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왜 내게 알리지 않은 것이지?”

“무엇을 말입니까?”

“네놈이 감히 나와 말장난을 하겠다는 것이냐?”

“어찌 저 같은 천한 것이 후작 각하 같은 분께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레드로가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후작 각하라고 부르는 것은 어머니와의 이혼이나 가문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글러스 후작은 지금까지 레드로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고, 때문에 지금까지 그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이놈!”

쾅!

“어디서 감히 너 따위가 내게 건방을 떠는 것이냐!”

“지금 건방이라 하셨습니까?”

“이놈이!”

챙!

검 끝이 목젖에 닿아 있었지만 레드로의 분노 가득한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내 앞에서 건방을 떨면 그땐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알겠느냐?”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놈이 정녕!”

“절 죽이고 싶으시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후후! 너 따위 근본도 모르는 놈이 조금 성취를 얻었다 해서 세상 모든 것이 네 마음대로 될 것처럼 보이느냐?”

“아직은 후작 각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놈이 끝내!”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으니 소관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여전히 목에 검이 겨누어져 있었지만 레드로의 행동은 끝까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아!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 어머님께 함부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만약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 또한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니 말입니다.”

“네 이놈!”

휙! 쾅!

부르르.

레드로의 목을 스치듯 지나친 검이 벽에 절반이나 박힌 채 여전히 남아 있는 힘에 부르르 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드로의 행동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럼 소관은 이만.”

“훗! 후후후! 후후후후! 좋아, 네놈이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까불 수 있는지 두고 보지.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다. 네놈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날, 그날이 네놈이 끝장나는 날이니 말이다.”

아직 정식으로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제1의용군의 군단장으로 내정된 로엔달은 부대 지휘부 구성 등 처리해야 할 일들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군, 알마리온 경이 주군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정식으로 작위를 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알마리온은 임시로 기사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알겠네.”

읽던 서류에서 눈조차 떼지 않은 로엔달이 그를 들어오게 하였다.

“예, 주군.”

잠시 후 알마리온이 로엔달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로엔달은 여전히 읽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슨 용무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를 물었다.

“뭔가?”

“전해 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뭐지?”

여전히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알마리온을 대하는 로엔달이었다.

“이것입니다.”

가져온 조그만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그것을 힐끗 본 로엔달이 다시 물었다.

“이게 뭔가?”

“직접 열어 보십시오.”

잠시 차가운 눈빛으로 알마리온을 바라본 로엔달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건?”

마법사가 아닌 로엔달 또한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진 못했다. 다만 손바닥만 한 미스릴 판에 새겨져 있는 복잡한 문양으로 보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마법과 관련된 물건이라는 것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그것들은 포넬군이 타론 성을 비우면서 로엔군을 일거에 몰살시키기 위해 함정으로 은밀하게 설치해 놓은 마법 아이템들이었다.

“마차 안에서 자작님과 체임버스 남작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뭐라 했는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지만, 상자 안에 든 물건이 최근 로엔군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 마법 아이템이라는 말에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알마리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적들이 사용하는 마법 아이템입니다.”

“진품인가?”

“체임버스 남작님께 확인시켜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이지?”

“마차 안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시 포넬군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여겨져 정령을 소환하여 알아본 결과 그것들이 성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자신이 정령술사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귀찮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으음.”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경험한 알마리온의 설명과 그동안 보고된 다른 사례로 보았을 때, 마법 아이템 하나하나의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데 지금 알마리온이 건넨 상자 안에 담긴 마법 아이템은 무려 20개나 되었다.

‘만약 이것들이 한꺼번에 터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20개에 달하는 마법 아이템이 일시에 터졌다면 타론 성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걸 왜 내게 주는 것이지?”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빚?”

“이것과 그 마나 수련법 말입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정령의 고향이라는 마법 물품과 마나 수련법을 준 것에 대한 대가라는 말에 로엔달은 피식 웃었다.

“그것은 그댈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상관없습니다. 제가 빚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빚입니다.”

“내 말을 믿지 않는군.”

“정령술사인 것이 밝혀지면 마법사들의 표적이 될 거란 말씀이라면 그렇습니다. 설사 자작님의 말씀이 모두 맞다 하더라도 이것들을 제게 주신 이유로는 불충분합니다.”

알마리온의 말처럼 아무리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정령술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도, 정령의 고향이라는 것도 그렇고 가문이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내놓지 않는다는 마나 수련법을 버리듯 던져 놓고 간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지금쯤 자네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야. 체임버스 남작이나 나나, 모두 폐하의 울타리 안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습니다.”

궁으로 올 때까지도 몰랐지만, 궁에 들어온 이후 국왕과 로엔달 그리고 쿤테르의 말과 행동을 본 후 알마리온은 이들이 국왕의 측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사인 체임버스 남작이 그대가 정령술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약 그 자리에 나와 체임버스 남작이 없었다면 그대는 익스퍼트로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정령술사라는 것이 드러나 그 자리에서 제압당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야.”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한 행동이지 호의를 베풀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

‘훗! 만약 궁에 도착을 한 이후에 당신이 이것들을 내게 건네주었다면 어쩌면 그 말을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것들을 내게 주었습니다. 이는 단지 날 국왕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했다는 당신의 설명이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자작님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들을 제게 주신 것은 지나친 호의라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구차하게 설명을 해 봐야 불신의 골만 더 깊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것들이라면 그에 대한 대가로는 충분한 것 같군. 아니, 넘칠 수도 있겠군.”

적의 비밀 병기인 마법 아이템을 단 1개만 손에 넣을 수 있어도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지금 마법 아이템을 손에 넣기 위한 은밀한 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다.

마법 아이템을 로엔에서도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의 효용 가치는 무궁무진하였다.

마법 물품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한 것을 만들 능력을 가진 마법사는 없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마법 물품들은 대부분 최소 9백 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이처럼 더 이상 마법 물품이라는 것을 만들 수 없게 된 것은 로드에릭 대제가 건국한 마법 제국이 내부 분열로 무너지면서 마법 물품 제작을 독점하고 있던 황실 마법원이 제국의 마지막 황제와 함께 끝까지 반란군에 대항하다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마법 물품 제작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 또한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고, 이후 그 어떤 마법사도 마법 물품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법 아이템을 연구하여 이를 제작할 수만 있게 된다면 그 가치는 따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받도록 하지. 그만 나가 보게.”

“예.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

알마리온이 나간 후, 로엔달은 잠시 마법 아이템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여다보더니 이내 그것을 들고 국왕을 찾아갔다.

알마리온과 레드로의 작위 수여식을 겸한 기사 서임을 위한 예식은 전시라는 특별한 상황을 고려하여 단출하게 거행되었다.

이미 식이 있기 전 성전에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신전의 신관이 축성을 한 검을 목에 걸고 식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귀족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알마리온과 레드로가 단 아래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자 국왕인 메르타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을 내려왔다.

이에 레드로가 먼저 신관이 축성하여 준 검을 목에서 떼어 내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자 이를 받아 든 국왕이 검을 그의 머리에 대었다.

“그대 레드로는 성스러운 축복을 받은 이 검으로 성전과 신관들을 보호하겠는가?”

“예.”

레드로가 맹세하자 이번에는 검을 떼어 오른쪽 어깨에 검을 대었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인 짐에게 신하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는가?”

“예.”

“그대는 기사로서 명예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힘을 씀을 기꺼이 하겠는가?”

“예.”

“주신께서 내게 주신 권능으로 그대 레드로가 기사임을 인정하노라.”

레드로에 대한 기사 서임의 의식이 끝나자 똑같은 내용으로 알마리온에 대한 기사 서임의 의식이 진행되었다.

다음 식순으로는 새롭게 여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검을 착용하는 것이었다. 하나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된 서임식인지라 미처 몸에 맞는 갑옷도,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여는 가문의 문장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센과 요들의 도움으로 예식용 갑옷을 모두 걸치자 국왕은 손수 그의 허리에 검을 채워 주자 뒤를 이어 왕실의 여인들이 그에게 다가와 어깨에 붉은색 망토를 걸쳐 주었고, 또한 시종들이 마구와 같은, 기사로서 갖추어야 할 물품들을 예물로 건네주었다.

“모두 들으시오! 왕국이 전란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이러한 때에 이와 같이 젊고 유능한 인재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우리 곁에 오게 된 것은 신께서 우리 로엔 왕국을 돌보심일 것이오.”

잠시 연설을 멈춘 메르타니온이 레드로 앞에 섰다.

“그대 레드로에게는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불의 사람이라는 이그나티우스라는 성을 내리며, 남작의 작위에 봉한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대 알마리온에게는 전장에 나아가 용맹함을 떨쳐 적에게는 두려움을, 아군에게는 희망이 되어 달라는 의미로 용맹함을 뜻하는 혼테르라는 성을 내리며, 그대를 남작의 작위에 봉한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앞으로 두 남작의 맹활약을 기대토록 하겠소.”

“충심을 다해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겠사옵니다.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이로써 간략하나마 공식적인 작위 수여와 기사 서임을 위한 의식을 마침으로써 왕국에는 두 명의 남작이 정식으로 탄생하였고 알마리온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로엔 왕국의 귀족으로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의식 중에 착용한 갑옷 등을 벗기 위해 잠시 물러 나온 알마리온과 레드로가 복도에서 마주쳤다.

“반갑습니다, 이그나티우스 남작.”

“반갑소, 혼테르 남작.”

인사를 나누기는 하였지만 두 사람 모두 안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서먹하기만 하였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국왕을 만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그리고 국왕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중에 얼핏 마주쳤을 때부터 서로를 긴장하게 만들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걱정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걱정이라 말하는 알마리온의 행동에 레드로는 의문이 생겼다.

“무엇이 말이오?”

“우리 두 사람 말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은 끝까지 비교당할 것 아닙니까?”

“훗! 확실히.”

두 사람은 나이도 한 살 차이일 뿐 아니라, 같은 날 익스퍼트로 인정받았고, 또한 같은 날 같은 등급의 작위를 받았다. 여기에 두 사람 모두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까지도 비슷했다.

“게다가 그대와 난 각자 넘을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 말이오.”

“그러네요.”

한 사람은 신분의 문제가, 또 다른 한 사람은 가족 간의 불화가 죽을 때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어떻소?”

“무엇이 말입니까?”

“듣기론 우리 두 사람, 나이도 한 살 차이.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오.”

“선수를 빼앗겼군요.”

“무슨 뜻이오?”

“실은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같은 제안을 하려 했습니다.”

“하하, 그렇소? 그럼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친구로 지냅시다. 어떻소?”

“대환영이야. 앞으로 날 알이라 불러 줘.”

“하하! 좋아, 알. 그럼 난 레드라고 불러 줘.”

알마리온이 내민 손을 굳게 맞잡으며 호탕하게 웃는 레드로는 이내 알마리온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한데 알 너 말이다.”

“왜?”

“넌 사내놈이 왜 그렇게 잘생긴 거야? 이건 사내인 내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니 레이디들이 널 보면 죄다 너한테 빠져 버릴 것 아냐?”

“그런 말 말라고. 레드 너야말로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데? 널 처음 본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기나 해?”

“무슨 생각을 했는데?”

“정말 남자답게 잘생겼다는 생각.”

“하하, 너 보는 눈이 좀 있구나?”

마치 오래전부터 친한 친구였던 것처럼 어깨동무까지 하고 복도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드로의 기사 알렉은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그거 아십니까, 도련님? 지금의 그러한 모습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린 그분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너무나 닮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더글러스 후작은 젊은 시절 왕국의 모든 귀족 가문의 젊은 도령들과 레이디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글러스 후작 가문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후광이 아주 작용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신이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격을 두지 않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 특히 지금 레드로의 모습처럼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젊은 시절 구스타프 폰 더글러스 후작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후……. 부디 도련님께서 그분과 부딪치는 일 같은 것은 없으면 좋으련만.’

“하하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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