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33/134)

15

외전 4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

마이어 저택, 정원.

리옐은 오도카니 풀밭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리옐은 늘 정원에 나오곤 했다.

평소라면 마리나나 단이 동행했겠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혼자였다.

-리옐?

-리옐!

기분 좋게 광합성을 즐기던 리옐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고양이 두 마리가 담장을 훌쩍 넘어 리옐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정체는 악몽의 정령, 메어리 남매 나고와 얘야였다.

둘은 리옐 또래의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꿨다.

“좀 이따가 같이 숲에 놀러 갈래?”

“마을에서 재밌는 소문을 들었는데!”

“재밌는 소문?”

리옐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서로를 마주 본 메어리 남매가 신나서 설명했다.

“망아의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대!”

“그것도 엄청 무서운 소리라더라?”

“맞아. 가주 아저씨가 접근 금지까지 선언했다니까.”

리옐은 눈을 깜빡였다.

얼마 전부터 숲에서 들려온 기이한 소리.

리옐도 나무에게 건너건너 들은 바 있었다.

일 때문에 네르갈에 있는 라스 마이어는 기사단을 파견했다.

단 록벨런이라는 전력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모두 소식이 끊겼다.

“갈래?”

“가자!”

“그치만, 마리나 언니가 혼자 나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도 같이 가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우리도 같이 가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말을 곧잘 듣는 리옐은 조금 머뭇거렸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 나고가 씩 웃었다.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면, 지그문트 마이어도 좋아할 거야.”

“아빠가? 얘야, 정말 그럴까?”

“바쁜데 일손을 돕는 거니까, 분명 그러지 않을까?”

나고의 윙크로, 얘야가 말을 맞췄다.

결국 리옐은 메어리 남매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망아의 숲에는 마녀가 살고 있었기에, 자주 드나들었던 장소다.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가기로 했다.

“우리 손잡아!”

“꼭 잡아야 돼?”

메어리 남매는 리옐의 양손을 잡고, 훌쩍 날아 담장을 넘어갔다.

그렇게 세 아이는 곧장 망아의 숲으로 향했다.

* * *

망아의 숲, 초입.

리옐은 거대한 나무에 손을 얹고 길을 물었다.

나고와 얘야 남매는 무슨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 괜히 주변을 기웃거렸다.

곧 리옐이 답변을 듣고 왔다.

“여기서 쭉 안쪽으로 들어갔다는데?”

“지그문트 부하도 같이 들어갔지?”

“응. 단 아저씨가 선봉이었대.”

“걔도 나름 강한데. 우리보다는 아니지만.”

나무는 리옐에게 경고를 했으나, 거의 괜한 걱정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어린아이 셋처럼 보였으나, 그 전력은 결코 만만지 않았다.

마족도 가지고 노는 악몽의 정령이 둘에, 땅에서 태어난 신이 하나.

웬만한 몬스터는 쪽도 못 쓰고 기가 눌려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일단 들어가 보자!”

“못 먹어도 고?”

“좋아!”

염려하듯 흔들리는 나무를 뒤로하고, 세 아이는 성큼성큼 망아의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옐은 여러 차례 망아의 숲에 온 적이 있었다.

리옐의 호위 역할을 자처하는 메어리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인적이 드물어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숲을 헤치고 간 곳은, 마녀의 집이었다.

숲 한가운데 있는 공터에, 오두막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후닌!”

리옐은 처마 위에 앉아 있던 후닌에게 손을 흔들었다.

평범한 까마귀의 모습을 한 후닌이 까악 울더니, 리옐 옆에 있던 바위 옆에 날아와 앉았다.

리옐은 그런 후닌이 귀엽다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쓰다듬어 줬다.

“마녀는?”

“나 그 할머니 무서운데.”

메어리 남매는 마녀에게 조금 거부감을 드러냈다.

속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지그문트와 비슷한 부분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옐은 후닌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마녀 할머니도 단 아저씨랑 같이 갔다는데?”

리옐은 후닌의 기억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상당히 다급한 표정의 단이, 마녀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녀는 후닌에게 집을 지키라 한 뒤, 지팡이를 짚고 단을 따라 나섰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는군요.”

“나고 탐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큰일 난 것 같습니다. 재밌겠다.”

“역시 그렇지? 재밌겠지?”

메어리 남매는 태평해 보였다.

푸드득 날아오른 후닌이 그런 남매를 질책하듯 가볍게 머리를 쪼았다.

“아야? 아야?”

“알았어!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메어리 남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아픈 머리를 붙잡았다.

후닌은 상공을 배회하다가, 숲 안쪽으로 안내하듯 날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단과 마녀가 들어갔다는 망아의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지네?”

“그러게.”

“나무 아저씨들이 많아서 그래!”

들어갈수록 숲은 울창해졌다.

나무들의 간격은 좁아, 나뭇잎이 하늘을 가렸다.

마녀가 정착한 후 자라나기 시작한 기이한 식물도 더러 보였다.

낮은 안개까지 깔리며, 점점 분위기가 으스스하게 변화했다.

“잠깐.”

“왜?”

“소리 들려.”

“소리?”

멈춰선 나고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리옐과 얘야도 나고를 따라 눈을 감았다.

후닌은 방해하기 싫었는지 나뭇가지에 앉아 조용히 깃털을 골랐다.

우우우우…….

귀를 기울이자, 섬뜩한 소리가 고막에 스며들었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나고와 얘야는 본능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웬만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리옐마저 살짝 인상을 찡그릴 정도였다.

“뭐지?”

“몰라.”

“이쪽이래!”

리옐은 곧바로 나무에게 길을 물어본 뒤, 소리가 들린 방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닌이 곧바로 뒤를 따랐고, 나고와 얘야도 정령의 모습으로 변해 따라 붙었다.

무성한 수풀이 리옐의 길을 만들 듯 양쪽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안쪽까지 들어가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단 아저씨! 마녀 할머니!”

그것은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었다.

수십에 달하는 마이어가의 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단과 마녀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행히도 숨은 붙어 있었다.

메어리 남매가 그들을 끌어와 나무에 기댄 채 앉도록 했다.

리옐은 곧바로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까악.

걱정스레 우는 후닌의 울음소리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단이었다.

단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리옐을 바라봤다.

“리옐 아가씨?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단 아저씨,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도망치셔야 합니다.”

“왜?”

“그것들. 그것들에게는 검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마녀님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단은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리옐은 치료를 이어 나가며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그 어떤 이에게도 외상은 없었다.

모두 정신적인 타격을 입고, 잠깐 기절한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낮고 선명한 울음소리.

메어리 남매가 인상을 찡그리고 사주를 경계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뭐야?”

“나도 몰라.”

그것들은 수십에 달하는 흐릿한 검은색의 형체였다.

안개와 같은 검은 천을 뒤집어썼는데,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다.

해골처럼 뼈만 앙상한 양손으로는 웬만한 사람보다 큰 거대한 낫을 들고 있다.

그저 소리 없이 유유히 리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몽계에 안 들어가져?

-큰일 났다!

당황한 메어리들이 리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들은 메어리 남매의 힘으로도 재울 수 없었다.

까악!

공중에서 제 모습으로 돌아온 후닌이 하강하며, 리옐과 가까운 놈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부리 사이로 검은 안개만 흩어질 뿐, 그것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리옐은 반사적으로 신성력을 터트렸다.

화악.

싱그러운 풀 내음이 퍼져 나가며, 주변 공기가 일순간 따뜻해졌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성력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뼈로 앙상한 손끝이 리옐 쪽으로 다가왔다.

겁먹은 리옐이 울망울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빠!”

그 순간.

공간이 크게 일그러지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신보다 더 사신 같은 표정을 한, 사나운 얼굴의 남자.

“누가 우리 애 건드렸냐.”

지그문트 마이어였다.

* * *

웬 거적때기를 뒤집어쓴 것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

리옐이 내 다리에 폭 안겼다.

나는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한기와, 익숙한 어둠의 감각.

-저것들 뭐냐?

-지그문트 마이어. 쟤네들은 나를 따르는 애들이야. 그림 리퍼, 사신.

-근데 이것들이 왜 여기서 애 겁주고 있는 건데?

-죽음의 신을 찾아뵈러 왔는데, 못 찾아서 길 물어보려고 했다는데?

요컨대,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림 리퍼들이 일제히 낫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대충 견적을 뽑아냈다.

‘파견된 기사단과 마찰이 있었고, 마녀도 동행, 피해는 없었고.’

제 잘못을 아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메어리 남매가 보였다.

‘저것들이 호기심 때문에 리옐을 끌어들여서 여기로 왔다. 이거군.’

나는 리옐에게 손을 뻗은 채 정지한 그림 리퍼를 가리켰다.

“너. 기준.”

그림 리퍼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일렬횡대로 헤쳐 모여.”

그림 리퍼들이 일렬횡대로 쭉 늘어섰다.

눈치를 보던 메어리 남매가 은근슬쩍 끄트머리로 합류했다.

“차렷.”

그림 리퍼들은 낫을 놓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나는 놈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열중쉬어. 차렷. 엎드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일어나. 앉아. 날아. 앉아. 동작 봐라.”

사신들이 얼차려를 받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단과 마녀, 기사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구경했다.

울상이 된 메어리들이 리옐 쪽으로 눈을 돌렸다.

-리옐. 살려 줘.

-리옐. 도와주지 않을래?

* * *

사신 소동은 일단락됐다.

지그문트는 그림 리퍼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단과 기사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몬스터가 있는지 정찰한 후 돌아오기로 했다.

지그문트는 리옐과 손을 잡고 마이어 저택으로 향했다.

“아빠.”

“응?”

“아빠는 엄청 멀리 있었지?”

“그렇지. 동대륙에 있었으니까.”

“근데 내가 부른 거 어떻게 알았어?”

“몰라.”

지그문트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뭔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리옐이 자신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가 보니, 망아의 숲이었다.

어떤 원리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지그문트도 리옐도 잘 모른다.

지그문트는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함부로 밖에 나가면 안 돼.”

“그치만, 위험하면 아빠가 짠 와 줄 거잖아.”

지그문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가 워낙 당연하다는 듯 말해, 빈말이라도 뭐라 하기도 뭐했다.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다음에도 올 것 같았다.

“그래.”

“히히!”

지그문트는 당해 낼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냥 순수해 보이는데 반해, 은근히 영악한 구석도 있는 리옐이었다.

‘쯧.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지그문트는 불 켜진 마이어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투덜대면서도 반박하지 못하는 지그문트를 올려다보며, 리옐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우리 아빠가 제일 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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