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가문의 대마법사 15권
글쓰냐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불과 얼음 (2)
8서클
불패의 기사
라그힐 팔베르크
피를 머금은 땅
악마들의 행진
대마법사의 죽음
어린 신
흐름의 끝
종장
결말
외전 1 유치한 신
외전 2 지옥에서 온 소환장
외전 3 마리나가 본 미래
외전 4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
외전 5 해피엔딩?
1
불과 얼음 (2)
지연된 죽음(Delayed Death)은 8서클 최상위 마법 죽음(Death)의 변형 마법이다.
걸리더라도 어떤 마법에 걸렸다는 느낌도 없을뿐더러, 신체에 어떤 이상도 생기지 않는다.
죽음을 부여해 놓은 뒤, 술식을 사용해 그것을 활성화시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마법이다.
즉, 발레리아 로안이 할 일은 델 로안에게 배웠던 술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뿐.
그러나 렘브란트 님푸스는 멀쩡했다.
“멀쩡하네?”
“델 로안의 마법이라면, 이미 해제했다.”
“어머. 그 알량한 머리로 어떻게 우리 스승님 마법을 해제했담?”
“발레리아 로안. 너는 델 로안을 신격화시키는 경향이 있어.”
렘브란트 님푸스는 오래 전, 심장의 이상을 감지했다.
그리고 끝끝내 저주와도 같은 지연된 죽음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발레리아 로안은 그것이 의문스러웠다.
“마법에 있어서는 우리 스승님이 신이죠. 그런데, 당신이 그걸 해제했다고?”
지그문트는 분명 환생(Reincarnation)을 위해 모든 서클을 끊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술자의 죽음은 마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죽거나 일정한 마나 공급이 없어도 마법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마법에 영구화(Permanency)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를 실현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 영구화를 덧붙이면 수십 수백 배의 마나를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한참 뛰어 넘은 델 로안은 태연자약하게 그것을 사용하곤 했다.
대마법사의 던전이나, 지연된 죽음이 유지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연된 죽음을 해제하기 위해선 마법 위에 코팅처럼 덮여 있는 영구화를 제거해야 한다.
문제는, 영구화가 지그문트 마이어의 고유 마법에 해당한다는 데 있었다.
‘고작 1년 안에 해제할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이 아니야.’
최근 렘브란트 님푸스의 활동은 상당히 위축된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자력으로 해결하기에는 마법의 완성도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완벽했을 것이다.
즉 외부의 도움이 있었다는 건데.
‘청탑주?’
바로 연결되는 건 역시 죽은 청탑주였다.
불사의 괴물이라는 연결 고리로 팔베르크 제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두 탑주가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풀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마탑주들은 모두 극소수인 천재에 속한다.
그러나 발레리아는 알고 있다.
델 로안의 압도적인 마법 이해도를.
‘아니야. 추가적인 외부 개입이 있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마계 정도였다.
발레리아는 머릿속 한편에 정보를 적어 두고, 렘브란트를 노려봤다.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얼핏 보였다.
무영창으로 마법 하나를 캐스팅한 것이다.
‘일단 수비적으로 나가야겠지.’
렘브란트 님푸스와 발레리아 로안은 같은 7서클 마탑주다.
그러나 그 역량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전면전에서 불리한 것은 발레리아였다.
렘브란트가 먼저 술식을 외우며 허공을 움켜잡았다.
“스톱(Stop), 아이스 니들(Ice Niddle).”
발레리아는 무언가에 억눌린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렘브란트의 앞에 나타난 수천 개의 얼음 바늘이 미세한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홀드(Hold)의 상위 마법 스톱으로 이동을 막고, 아이스 니들로 상대를 찔러 죽인다.
렘브란트가 종종 사용하는 연계로, 흑탑주가 적을 바느질 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물론 발레리아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플레임 아머(Flame Armor).”
붉은색의 로브가 불타오르며, 주변에 불똥을 튀겼다.
불의 서와의 연결을 통해 사용한 상위 마법의 고속 영창.
그러나 수천 개의 얼음 바늘을 막아 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해 보였다.
렘브란트의 앞에 정지해 있던 얼음 바늘들이 일순간 발레리아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과열 지대(Overheating Zone)!”
추가적인 마법 영창과 함께, 발레리아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온도가 급상승했다.
마나 메이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한 아지랑이와 함께, 열기가 폭발했다.
발레리아를 향해 똑바로 쏘아져 나가던 얼음 바늘들이 녹아내렸다.
렘브란트는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얼음 바늘 뒤에 또 다른 바늘을 숨겨 뒀으나, 과열 지대를 통과해 발레리아에게 닿은 얼음 바늘들은 플레임 아머에 증발해 버렸다.
“사일런스(Silence)!”
발레리아가 반격으로 사용한 마법은 상대를 침묵시키는 마법, 사일런스.
평범한 사람들은 사일런스를 두고 공격 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법사 간의 전투에서, 사일런스는 꽤 유효한 마법이었다.
“……!”
상대가 무영창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강요할 수 있다.
무영창 마법은 트리거가 부족하기에 위력이 떨어지거나, 술식 구성에 시간이 걸린다.
그래 봤자 수 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전투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그 짧은 순간이다.
과거, 발레리아는 델 로안에게 한 번이라도 유효타를 넣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거기서 착안한 일종의 재치였다.
‘디스펠(Dispell)은 못 한다!’
발레리아가 스톱의 디스펠을 포기하고 방어에 전념한 이유.
디스펠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눈 깜빡할 사이에 고유 마법도 디스펠 하는 델 로안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
언제부터인지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로 오래 전 제작된 마도서들과, 불의 서는 다르다.
불의 서는 발레리아를 위해서 대마법사 델 로안이 특수 제작한 마도서였다.
마도서 사용 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해서 제작했다.
대신, 그만큼 효율이 떨어졌다.
‘아직 업화는 충분……!’
불의 서에는 업화라 불리는 지옥의 불이 필요했다.
그 제작에 마계 대공 베르제가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발레리아는 불의 서에 손을 올렸다.
오래 끌면 불리했기에,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다.
동시에, 눈앞에 텔레포트한 렘브란트 님푸스가 보였다.
“아!”
발레리아 로안은 블링크(Blink)를 시도했다.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마법, 크라우드 컨트롤(Crowd Control)을 무영창으로 사용하고 왔다기엔 간극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레리아는 블링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얼음 알갱이?’
공기 중에 촘촘히 퍼져 있는 얼음 알갱이.
비록 손톱만 한 크기였으나, 이는 공간 이동을 저해하는 효과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
블링크는 마법사가 벽에 끼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물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가 술식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렘브란트의 팔은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극저온 상태로 접촉한 부분을 얼려 버리는, 프리즈 핸드(Freeze Hand).
이와 같은 근거리 마법은 마법사에게 접근이라는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나.
그만큼 강한 위력으로 리턴을 가져온다.
‘과열 지대에서도 멀쩡하다는 건.’
극저온. 아마 닿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이 뻔했다.
렘브란트야 얼음의 서와 연결된 상태기에 멀쩡하다지만, 발레리아는 아니다.
제대로 방비하지 않는다면 당할 것이 뻔했다.
발레리아 로안은 가까스로 마법을 외웠다.
그리고.
쩌저적!
발레리아의 몸이 얼어붙었다.
* * *
‘싱겁군.’
렘브란트 님푸스는 승리를 확신했다.
과열지대로 인해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진 데다가, 플레임 아머까지 두르고 있다.
얼음의 서를 기반으로 얼음 속성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렘브란트에게는 상성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얼음은 결코 불을 이길 수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상성의 차이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
마법사의 마나 서클은 우선 형성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성된다.
일곱 번째 서클이 완성되는 데는 일반적으로 10여 년의 세월이 요구된다.
이건 발레리아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그 간극은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설령 발레리아 로안이 그 대마법사 델 로안 대공의 제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쩌저저적!
발레리아의 몸이 얼어붙더니, 거대한 얼음 결정이 몸 전체를 감쌌다.
렘브란트 님푸스의 고유 마법,
콜드 슬립(Cold Sleep)이었다.
마나 서클도 회전을 멈췄는지, 플레임 아머와 과열지대의 효과도 사그라졌다.
콜드 슬립은 극저온의 냉매로 상대를 동결시키는 7서클 마법이다.
공격 마법이라기보다는 제압 마법에 가까웠는데, 제압 마법이 대체로 그렇듯 적중률이 낮다.
그렇기에 지근거리에서 프리즈 핸드로 상대의 행동을 제한한 후, 연계할 때 유효했다.
‘얼결에 산 채로 잡아 버렸어.’
라그힐 팔베르크는 발레리아 로안을 건드리지 말거나 생포하라고 지시했다.
아마 그 같잖은 사랑 놀음 때문일 것이라고 예상됐다.
렘브란트는 얼어붙은 발레리아 로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런 여자는, 필시 황제 폐하께 독이 될 터.’
발레리아 로안의 부재는 라그힐 팔베르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렘브란트 님푸스는 발레리아 로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웅!
아슬아슬하게, 검이 렘브란트의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이안의 마법으로 형성된 기둥에 타고 올라온 것은, 무연과 파울이었다.
검이 빗나간 무연이 곧장 힘의 방향을 바꿨다.
카앙!
아무리 근접전에 약한 마법사더라도, 렘브란트는 7서클 마법사.
아이스 블락(Ice Block)으로 간단하게 검을 미끄러트렸다.
그리고 무연이 서 있는 평평한 기둥에 마법을 걸었다.
그리스(Grease).
무연은 순간적으로 미끄러질 뻔했지만, 검을 잡고 버텼다.
이어서 반대쪽 기둥에 있던 파울이 검을 휘둘렀다.
검을 부수는 검.
‘이건.’
렘브란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평범한 마법으로는 막기 어렵다고.
마법사답게, 거의 반사적인 블링크(Blink)가 나왔다.
문제는, 파울의 반응이었다.
‘이놈!’
파울은 한 손으로 렘브란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모두 지그문트와 대련 당시 배운 것이었다.
-만약 마법사가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면 어떡하지?
-멱살을 틀어잡아. 공간 이동을 하더라도 둘이 하게 되니까, 목 따는 데는 문제없어.
-일리가 있군.
렘브란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스톱(Stop).
순간적으로 파울이 정지했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큭!’
그리스로 미끄러워진 기둥 위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던 무연이었다.
무연은 칼로 작은 홈을 만들어, 거기에 신발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흡!”
무연의 검이 렘브란트 님푸스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지나갔다.
집중력이 흩어지며 스톱(Strop)이 해제됐다.
‘이놈들이, 방해를.’
렘브란트 님푸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주변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얼음 바늘이 나타났다.
위험을 감지한 파울은 무연이 있던 기둥으로 넘어갔다.
“큭!”
“파울! 뭐 하는 짓인가! 좁다!”
“닥쳐!”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렘브란트는 마법을 사용했다.
사일런스(Silence)는 이제 해제된 상태였다.
얼음의 서와 연결되어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8서클 마법.
푸른 입술이 열렸다.
“절대 영도(Absolute Zero 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