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가문의 대마법사 13권
글쓰냐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마를 꿰뚫는 창 (2)
접촉
종합 선물 세트
검 없는 소드 마스터
지그문트 마이어
보물 고블린
내전 난입
1주일
하루 (1)
1
마를 꿰뚫는 창 (2)
단과 무연이 포함된 두 번째 창은 동선을 바꿨다.
세 번째 창이 죽이지 못한 글러터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불가피하게 지휘관 구출을 포기해야 했다.
“끄아아아악!”
“로버트! 안 돼!”
몬스터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사람들의 체력은 떨어졌다.
구심점이었던 지휘관까지 잃어버리자,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부지휘관은 부단히 상황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능숙하지 못했다.
“단!”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단 록벨런 덕분이었다.
반격하는 자의 클레이모어가 폭발시킨 충격파로 길을 만들고, 돌파한다.
몰려드는 몬스터들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단의 상태였다.
“쿨럭!”
“더는 무리다!”
단을 부축하던 무연이 소리쳤다.
여태껏 클레이모어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왔던 단이었기에 몰랐던 사실이다.
한계까지 그 힘을 발휘한 반격하는 자의 클레이모어는 상당한 반동을 동반했다.
몸 전체에 무리가 가는 것은 물론이고, 오러까지 소모한다.
단은 총 세 번에 걸쳐 클레이모어를 사용했고, 그 결과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빌리겠다!”
부지휘관은 단의 손에서 클레이모어를 뺏어 들었다.
대신 자신의 검을 쥐여 준 뒤,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미 충격이 충분히 쌓인 탓에, 검날은 터질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오러를, 써서…… 검에 응축된 힘을, 터트려야……!”
“큭! 부지휘관님! 더는 못 버팁니다!”
부지휘관은 이를 악물었다.
세 번째 빛기둥은 이제 거의 손에 닿을 거리였다.
한 번만 제대로 길을 열면 돌파할 수 있다.
기사들이 전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태.
“흐아아아!”
부지휘관은 반격하는 자의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검날에 쌓여 있던 충격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부지휘관은 검을 놓칠 뻔했다.
팔의 근육이 전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반동이었다.
오러 소모로 인해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이게 뭔!’
갑작스레 오러가 빠져나간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폭음으로 인한 이명이 지나가자,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신체에 가해진 부담으로 호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지휘관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다.
당연히 단의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걸 세 번이나 썼다고?’
한 번 사용한 것만으로도 온몸에 부담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당장 제대로 서서 검을 잡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데 단은 이 무기를 그 짧은 전투에서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이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부지휘관님! 이동해야 합니다!”
누군가 겨드랑이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기사 하나가 부축하기 위해 팔을 제 목에 둘렀다.
부지휘관이 잠시 반동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돌파가 시작됐다.
그나마 멀쩡한 기사들과 무연이 선두로 나섰다.
“저기 보인다!”
다행인 점은 부지휘관의 일격으로 빛기둥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철창 속에 갇힌 글러터도 확실히 보였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 같았다.
“뭐 저렇게 많아!”
드문드문 보였던, 특출나게 강한 몬스터들.
미노타우로스나 키메라 등이 대거 포진한 상태였다.
철창 위에는 가고일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뚫어야 한다!”
부지휘관은 없는 힘을 짜내서 악을 썼다.
100여 명으로 출발한 두 번째 창은 30명 가까이로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부상 속에서 악전고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물러서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웨스트리아를 위하여!”
포효와 함께 기사들이 격돌했다.
기사들의 목표는 글러터.
이미 진형의 의미가 없어진 지금, 난전을 각오한 돌격이었다.
그 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콱!
한 기사가 미노타우로스의 목에 검을 꽂았다.
동시에 오우거 한 마리가 곤봉으로 기사를 후려쳐 날려 버렸다.
검을 잃어버린 기사는 비명을 지르며 몬스터에게 끌려갔다.
부지휘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녕, 실패란 말인가.’
설령 글러터를 사냥한다고 해도, 이 아비규환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멸할 것이 뻔했다.
절그럭.
쇠 부딪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단 록벨런이 한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부지휘관은 단이 요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있네.”
잠시 빌렸던 반격하는 자의 클레이모어를 넘겼다.
단은 클레이모어를 움켜쥐고, 숨을 내뱉었다.
거친 호흡을 보아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부지휘관은 단을 붙잡았다.
“자네, 자네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지금의 몸 상태로 저 전장에 뛰어든다는 건, 죽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단은 지쳤을지언정 포기한 눈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생존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까지 느껴졌다.
부지휘관은 경외심 어린 눈으로 단을 올려다봤다.
단에게는 강한 정신력,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의지가 있었다.
“언젠가 제가 위험한 전투를 하게 됐을 때, 제가 모시는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안 죽는다고요. 신기하게도, 정말 안 죽더군요.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뭐라고 하던가?”
“글쎄요. 못 들었습니다만.”
단 록벨런은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추고, 클레이모어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죽는다고는 안 하셨습니다.”
몬스터들의 수는 계속 많아졌고, 아군의 수는 줄어들었다.
무연은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의 목을 베었다.
마물의 침공 이후, 동대륙의 검술은 마물 사냥에 특화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무연은 다른 기사들보다 많은 수의 몬스터를 베어 낼 수 있었다.
퍽!
하지만 아주 찰나의 방심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등 뒤를 봐 주고 있던 기사가 쓰러지며, 무연이 말려든 것이다.
자세가 흐트러졌고, 정면에 있던 몬스터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컹!
헬 하운드 한 마리가 무연의 팔을 물어뜯었다.
지그문트와 마찬가지로 빠른 움직임을 위해 갑옷을 입지 않은 무연이었다.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자세가 흐트러진 지금은 불가능했다.
헬 하운드의 날카로운 이빨이 팔뚝을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당황하자 동대륙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곧바로 헬 하운드를 검으로 찔러 죽였다.
팔을 거칠게 휘두르자, 절명한 헬 하운드가 나가떨어졌다.
“큭.”
불에 덴 듯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사자 같은 몬스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집에, 등에 달린 날개와 뱀처럼 보이는 꼬리.
만티코어였다.
이미 코앞까지 달려든 상태라, 피하긴 늦었다.
검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헬 하운드에게 물린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연!”
만티코어의 앞발이 무연을 내리치기 직전.
측면에서 단이 난입했다.
양손으로 쥔 클레이모어로 만티코어의 가죽을 뚫었다.
푸확!
그대로 검을 아래로 내리그어, 만티코어를 베어 냈다.
만티코어가 쓰러지며, 무연은 재정비할 잠깐의 시간을 얻었다.
“괜찮습니까?”
“안 괜찮다!”
“예의상 물어본 겁니다! 글러터는……!”
단이 고개를 돌렸다.
글러터가 갇힌 철창이 코앞이었다.
기사들이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밀어내고 있었다.
남은 건 철창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뿐.
무연과 단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기회였다.
“소는?”
“제가 맡겠습니다!”
둘이 글러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발견한 미노타우로스가 거대한 삼지창을 찔렀다.
쾅!
단은 제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삼지창을 전력으로 밟아, 무력화시켰다.
미노타우로스의 창술이 거의 마구잡이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어어어어!
분개한 듯 포효한 미노타우로스가 창을 들어 올렸다.
단은 삼지창 사이에 클레이모어를 꽂아 넣고, 옆으로 뒤틀었다.
쩌엉!
창의 날 부분이 클레이모어의 손잡이 장식에 걸려, 창대가 올라가지 않았다.
단이 시간을 번 사이, 무연이 글러터를 향해 돌진했다.
중간에 가고일 하나가 튀어나와 경로를 방해했으나.
퍽!
뒤에서 날아온 창 한 자루가 가고일의 목을 꿰뚫었다.
흘긋 뒤를 돌아보니, 투척을 끝낸 자세의 부지휘관이 있었다.
부지휘관은 무연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동시에 옆에서 튀어나온 키메라 한 마리가 부지휘관을 휩쓸고 지나갔다.
“무연!”
“나도 안다!”
단의 외침에 무연은 숨을 들이마셨다.
단전에 남은 오러가 검을 휘감았다.
글러터에 시선을 고정한 무연이 검을 휘둘렀다.
“흐읍!”
검날이 철창에 거의 닿았을 무렵, 무언가 무연의 검 앞에서 나타났다.
몬스터 사이에 끼어 있던 이질적인 존재.
마족이었다.
캉!
무연은 눈을 부릅떴다.
마족의 검이 무연의 검을 막았기 때문이다.
“검기?”
무연이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벗어난 단이 재빠르게 무연과 합류했다.
마족은 검을 쥔 채 무연과 단을 번갈아 보았다.
-왜 자꾸 일이 틀어지나 했더니.
특히 단 록벨런을 노려보았다.
시선을 마주한 단은 숨을 크게 내뱉었다.
전신의 모공이 따끔거리는 느낌.
눈앞의 마족은 상당한 강자였다.
-불완전한 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변수인가.
둘은 지그문트처럼 마족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마족을 베어 내야 글러터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친 단과 무연은 힘든 전투를 예상했으나, 마족은 예상치도 못한 돌발 행동을 보였다.
검을 검집에 넣고, 뒤로 천천히 물러난 것이다.
-직접 상대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군.
단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마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토록 시끄럽던 전장이 부지불식간에 조용해진 것이다.
“이건…….”
무연은 당황했다.
몬스터들이 전부 모든 동작을 정지한 것이다.
거친 숨을 내뱉을지언정, 무기를 휘두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온 전장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단과 무연을 응시했다.
섬뜩한 광경에 단은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디 한번 살아남아 보거라. 그분의 곁에 있고 싶다면 말이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마족은 몬스터의 틈바구니 속으로 사라졌다.
단과 무연은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기묘한 상황이었다.
이윽고 마족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단, 이거.”
“좀 섬뜩하군요.”
단에게 목이 꿰뚫렸던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뒷목을 잡은 채 단을 응시한다.
쿠어어어어어!
동시에, 전장의 모든 몬스터들이 단과 무연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