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0권) (74/134)

기사 가문의 대마법사 10권

글쓰냐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급류를 타고 (2)

그린 포레스트

로브의 주인

끓어오르는 바다

해상 도시 퀸틴

바라

내 걸 건드려?

전도유망한 마법사

불사의 괴물

1

급류를 타고 (2)

환상 마법을 통해 신분을 바꾸고 트리옌 왕국을 빠져나갔다.

마차로 한참을 달린 끝에 북동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람이 짜!”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민 리옐이 입을 아 벌렸다.

세상 걱정 없이 해맑은 표정이었다.

해풍이 신기했는지, 손을 휘젓는다.

나는 리옐의 뒷덜미를 잡고 앉아 있었다.

맞은편의 마리나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별일 없이 도착해서 다행이긴 한데.’

최단 거리로 이동하고자 제국령을 가로질렀다.

외곽을 타고 움직인 덕분에 이렇다 할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약한 몬스터와 몇 번 조우한 것이 전부였다.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바다 특유의 짠 내를 머금은 바람이 코 끝을 스쳤다.

‘딸자식이 가출한 기분이군.’

통신이 끊긴 후로, 발레리아는 연락이 없었다.

레온하트 왕국으로 복귀했다면 레드라인 후작이나 루터를 통해 연락을 취했을 텐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시선이 느껴져 눈을 떴다.

마리나가 궁금한 것이 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퀸틴은 해상 도시라고 하셨지요?”

“그래.”

“그럼 어떻게 가나요?”

“어떻게 가긴. 배 타고 가야지.”

“배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바람을 먹으려고 시도하던 리옐이 마차 안으로 돌아왔다.

배에 흥미를 보인 것 같았다.

마리나는 익숙한 듯 리옐을 품으로 유도해, 머리카락을 빗었다.

“배?”

“그래. 퀸틴과 가장 가까운 항구, 화이트웨일에서 정기선을 운행하거든.”

“정기선이 뭔가요?”

“정기적으로 퀸틴과 화이트웨일을 오고 가는 배.”

“아, 그걸 타고 가는 거군요. 항구에서 그런 걸 운영하다니, 신기하네요.”

“퀸틴은 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굳이 말하자면 자치령이나 국가에 가까우니까.”

화이트웨일 항구도 엄밀히 말하면 퀸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었다.

말을 마친 나는 창밖을 살폈다.

짠 내 섞인 바람이 불어왔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프라우드 산맥의 끝자락이 바다를 둘러싸듯 가로막은 탓이었다.

‘돌아가려면 좀 걸리겠군.’

산맥을 넘는 방법도 있었지만, 괜히 고생만 더 할 것 같았다.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근방에는 산적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더군요.”

“교역을 위해 퀸틴으로 가는 상단이 더러 있으니, 그걸 노리는 놈들이겠지.”

마부석의 단이 심심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워낙 목소리가 큰 편이라, 잘 들렸다.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화이트웨일 항구와 팔베르크 제국 국경 사이, 애매한 위치에 있는 길목이다.

치안 유지 기관의 눈 밖인 만큼 범죄도 성행한다고 들은 바 있다.

“아빠, 산적이 뭐야?”

“산속에 사는 도둑들.”

“왜 산에 살아?”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벌 받으니까.”

“나쁜 짓을 안 하면 되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옐이 냉큼 내 손목을 잡아챘다.

뭘 하나 지켜보고 있으니, 내 손을 제 머리에 올렸다.

그리고 낑낑대며 내 손을 양옆으로 움직여, 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셀프 서비스?’

영 힘들어 보였기에, 손을 움직여 줬다.

머리 위의 새싹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는 지그시 새싹을 바라보았다.

‘조금 자랐군.’

저번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이번에는 확실했다.

줄기도 조금 길어지고, 이파리의 색도 선명해졌다.

아직은 새싹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머, 멈추시오!”

“세워.”

단이 마차를 멈췄다.

리옐을 마리나에게 맡겼다.

목소리가 들린 산지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 위에서 흙이 툭툭 떨어졌다.

이윽고, 비탈길을 따라 누군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어억!”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나 싶었는데, 화려하게 구르고 말았다.

나무나 수풀에 부딪치며 속도가 줄어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죽었을 것이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길까지 겨우 내려온 남자는 마차 옆에서 엎어졌다.

‘누구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거구의 남성이었다.

짧은 머리카락에, 입가에는 흉터가 나 있었다.

가벼운 가죽 튜닉 차림이었는데,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퉤퉤 흙을 뱉어 낸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저 흉악무도하고 우락부락한 얼굴.’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쪼그려 앉아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봐.”

“예?”

“우리 구면 아닌가?”

“……헛! 너는!”

남자도 나를 알아본 듯 크게 놀랐다.

내가 막 환생했을 당시, 마이어 영지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내게 사라라는 이름의 딸을 납치했다고 오명을 뒤집어씌웠던 남자.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마 용병단장이었으리라.

꾸르륵.

배곯는 소리가 찰나의 정적을 깨트렸다.

남자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염치 불구하고 질문했다.

“혹시, 먹을 것 좀 있으십니까?”

* * *

조금 이르지만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남자, 사라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하르만이라고 소개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직전, 마리나가 음식을 내왔다.

하르만은 음식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었다.

“컥, 쿨럭!”

“아저씨! 여기, 물!”

“거맙다, 얘야!”

가슴을 치던 하르만은 리옐에게 물을 받아 호쾌하게 들이켰다.

걸렸던 음식이 넘어가기 무섭게, 다시 음식을 퍼먹기 시작했다.

깊이 파인 볼을 볼 때 족히 며칠은 굶은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하르만은 팔뚝으로 슥 입가를 닦았다.

“기사님.”

“왜 그러나.”

“쓸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검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거절하겠네.”

단은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오해는 풀렸더라도, 나를 한 번 해치려고 했던 인물.

단의 눈에는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르만은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서, 먹을 것 좀 달라고 멈추라고 한 건가?”

“아닙니다. ……나 좀 도와주십쇼.”

“지금 도와주고 있잖아.”

실시간으로 음식에 물까지 제공해 주고 있다.

이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하르만은 자신이 내려온 산 쪽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습격을 당했습니다.”

“몬스터? 사람?”

“사람이었습니다.”

단과 시선을 마주쳤다.

하르만은 한숨을 내쉬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딱 보니, 회상을 시작하려는 모양새였다.

“며칠 전, 저희 워베어 용병단은 상단 호위 의뢰를 받았습니다.”

“안 궁금해. 요점만 간단히 말해라.”

“……습격을 받았고, 용병단과 상단 사람들이 납치됐습니다.”

“납치? 산 채로 잡혀갔다고? 전부?”

“예. 저도 방금 겨우 도망쳐 나온 참입니다.”

“그러면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나는 산지를 확인했다.

마나를 실처럼 길게 늘어트려 산지를 확인했다.

다수의 반응이 걸렸다.

사람 여럿이 내려오고 있었다.

하르만을 뒤쫓아 온 것이 분명했다.

“왔다.”

“예?”

“니 뒤 따라왔다고.”

화들짝 놀란 하르만이 근처에 있던 굵직한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곧 비탈길에서 산적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무장을 한 상태였다.

“저, 저놈들이!”

“리옐.”

“응!”

사람 발길이 끊긴 산지에는 식물이 빼곡했다.

산적들에게는 불운한 일이었다.

리옐의 부탁을 받은 식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있…… 억!”

“우왁!”

“이거 뭐야! 커헉!”

덩굴이 산적의 발과 목을 묶었다.

나무줄기가 크게 휘더니, 산적의 머리를 강타했다.

전부 제압하는 데에는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험상궂게 생긴 거만 빼면, 무기를 든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덩굴이 알아서 척척 기절한 산적들을 포박했다.

“지, 지금 식물이 움직인 겁니까?”

“그래. 이제 하소연 끝났으면 가 봐.”

“예?”

“가 보라고.”

리옐이 내 옷자락을 잡고 살짝 당겼다.

머리를 쓸어 주고 있는데, 시야 한편의 하르만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 왜.”

“도와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염치도 없군. 내가 정규군이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야 돼?”

“……상단 측에서 보상을 해 줄 겁니다.”

“다 털린 상단에서? 퍽이나 해 주겠다.”

“산적들도 모두 수배범입니다. 잡아간다면, 현상금을…….”

“나 돈 많다.”

하르만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내 갈 길 가기도 바빴다.

음식 적선해 주고, 추적대 처리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지.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적당한 크기의 검을 뽑아, 하르만에게 건넸다.

“자. 여기, 검 줄 테니까, 알아서 해결해라.”

“혼자서는 역부족이란 말입니다.”

“사람 불러와. 나 말고 다른 사람으로.”

“하지만!”

“하지만 뭐?”

“……사라도 붙잡혀 있습니다!”

하르만은 정말 마지못해 말한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사라가 누군가 했더니, 마나 메이즈에 들어갔다가 마나 중독에 걸렸던 하르만의 딸이었다.

얼굴도 어렴풋하게 기억이 잘 안 났다.

“그게 뭐?”

“……사라와 연인 관계 아니었습니까?”

나는 지그문트 마이어의 사인을 떠올렸다.

폼 잡으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었다.

지그문트가 목숨을 걸고 폼을 잡으려고 했던 이유가, 사라라는 여자 때문이었다.

내 옷소매를 움켜쥔 리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이 조금이지만 세계수를 닮아 있었다.

“아빠?”

* * *

결국 하르만과는 화이트웨일 항구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마차는 4인승이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화이트웨일 항구는 항구도시라고 불릴 만큼 큰 규모로 발달해 있다.”

“그렇군요.”

“도움을 요청할 만한 경비병이나, 용병도 상주하고 있을 거야.”

“용병…… 알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뭡니까?”

“이렇게 차분한 성격이었나?”

하르만은 막무가내로 마이어 저택에 돌격한 전적이 있다.

딸, 사라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었다.

검을 쥐여 주자마자 돌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순히 마차에 동승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나 혼자서는 무립니다.”

“저번에도 그렇게 냉철하지 그랬나. 그리고 오합지졸 같던데.”

분명 상단과 용병단 모두 산 채로 붙잡혔다고 했다.

무력으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이다.

즉, 산적단의 전력이 상단과 하르만의 용병단을 압도적으로 웃돌았다는 뜻이다.

“맞습니다. 산적 부하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간부들이라면 모를까.”

“그럼?”

“놈들의 우두머리가 문제였습니다.”

“왜, 산적 두목이 오러라도 쓰더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모두 오러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 놈의 산적이 오러를 쓴단 말인가.

아니, 반대로 오러를 쓸 수 있는데 왜 산적질을 한단 말인가.

적당한 귀족가 아래로 들어가서 가신 기사라도 하면 될 것을.

“그리고,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분명 평범한 용병보다 강하다.

하지만 혼자서 전황을 뒤집을 정도는 못 된다.

용병단 하나를 산 채로 제압하려면 지금의 단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르만은 기억을 되짚으려는 듯 마차 천장을 올려다봤다.

“놈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로브? 기사가?”

로브는 마나의 전달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가벼운 천 옷이다.

마법사는 마나 아머(Mana Armor)를 비롯한 여러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로브를 입는다.

자신이 소속된 마탑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부차적인 이유다.

어쨌든 간에 기사에게는 무의미한 복장이었다.

“뭐, 마법이라도 쓰디?”

“예. 그렇습니다.”

“기가 차군.”

나처럼 마나와 오러를 동시에 지녔을 확률은 매우 적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여러 조건이 부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오러와 마나를 한 몸에 지니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마도구나 아티팩트의 효과일 것이다.

“설명해 봐.”

마도구는 흔치 않다.

내가 워낙 아티팩트나 마도구를 많이 봐서 그렇지.

평민은 구경조차 어려울 정도로 희귀한 것이 마도구였다.

그중에서도 실용적인 건 극단적으로 드물었다.

시중에 나오는 건 대체로 견습 마법사들의 실패작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면…….”

하르만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에 대해 설명했다.

로브를 입은 산적 두목의 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내가 주의 깊게 들은 것은, 그놈의 능력이었다.

유독 한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렇군.”

결론이 나왔다.

그 로브,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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