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준비된 고급 인력
까악.
새 우는 소리.
리처드는 고개를 들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한 성기사가 배를 까뒤집고 죽은 거미에게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주변 정리는 끝난 것 같습니다.”
횃불을 든 성기사들이 오두막을 포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목적이 토벌은 아니지만, 도망이라도 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 성기사 하나와 같이 있는 사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용건만 마치고 곧바로 철수하겠다.”
마녀의 오두막을 바라보는 리처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들 사주 경계만 확실히 하도록. 전언은 내가 전하고 오겠다.”
그들이 이 깊은 늪까지 온 이유는 하나.
클레이먼 주교의 전언을 마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성기사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다.”
상대는 저주에 능한 마녀다.
단체로 움직이는 것보다, 혼자 가는 편이 더 대처하기 편했다.
리처드는 가슴 위에 성호를 그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오두막 쪽으로 다가갔다.
“후.”
검 손잡이에 올린 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사제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해주할 준비를 마친 사제는 리처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른 리처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클레이먼 주교님의 전언이다.”
오두막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까마귀, 후닌이 고개를 까딱였다.
리처드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7시 경. 시노드 교구에서 네 유일한 핏줄을 붙잡았다.”
사제와 성기사들이 긴장했다.
마녀가 대응하고자 한다면, 바로 철수해야 했다.
성기사단 하나로는 마녀를 상대하기 벅차다.
그러나 마녀는 대답도 없었다.
“내일 정오에 화형이 예정되어 있다. 살리고 싶다면 무장을 해제하고 시노드 교구로 와서 자수하도록.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최후통첩.
클레이먼 주교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녀가 이 늪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벌써 반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리에이트 교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대대적인 토벌이 일어날 것이다.
리처드는 눈을 감았다.
‘내가 무뢰배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을 인질로 사람을 협박한다.
정작 마녀에게는 죄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로 리에이트 교국에 마녀가 자리를 잡은 뒤, 피해를 입은 인물은 없었다.
‘갑옷을 입었다는 것 말고는, 다를 바가 없구나.’
리처드는 자책했다.
하지만 클레이먼의 명령에 불복할 수는 없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 곳까지 찾아와 죽음을 자처하는구나.”
노기 서린 노파의 목소리.
마녀였다.
오두막에서 검은 안개가 쏟아져 나왔다.
리처드는 반사적으로 입을 막고, 뒤로 후퇴했다.
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퇴각을……!”
늪에 반쯤 잠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리처드는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늪은 점점 더 리처드의 다리를 죄어 왔다.
마치, 조금씩 삼키고 있는 것처럼.
“으, 아!”
“다리가!”
“사제님!”
리처드는 다급히 사제를 불렀다.
울상이 된 사제는 이미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맞잡은 손 사이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이 성기사와 사제 들을 감쌌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제가 리처드 쪽을 보고 소리쳤다.
“토, 통하지 않습니다!”
“뭐……!”
리처드는 사색이 됐다.
이미 허리까지 늪에 빠져든 후였다.
이대로라면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늪에 삼켜질 것이다.
검을 마른땅에 박아 넣었다.
“빌어먹을!”
억지로 힘을 써서 올라오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만 뒤따를 뿐이었다.
이윽고 성기사단은 가슴팍까지 늪에 잠기고 말았다.
폐를 짓누르는 감각과 함께 숨이 턱 막혀 왔다.
“죽고 싶지 않아!”
“제발, 누가 나 좀 살려 줘!”
성기사들이 허우적거렸다.
오러도, 신성력도 소용없었다.
검으로 늪을 벨 수도 없는 노릇.
전원이 늪에 발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 패착이다.
마른땅을 밟고 있었던 건 오두막에 다가갔던 리처드뿐이었다.
그마저도 오두막에서 터져 나오는 검은 연기에 당황해 늪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한 성기사가 울부짖었다.
“리에이트시여!”
그와 동시에, 늪이 멈췄다.
* * *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욱하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나는 마녀와 대치 중이었다.
마녀는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일단 성기사단을 몰살시키는 건 막은 것 같은데.’
늪에 어떤 장치를 해 둔 모양이었다.
아마 팔베르크 제국에 대한 방어책이었으리라.
침착하게 마녀를 설득했다.
“지금 저것들 건드리면, 잡혀 있다는 손녀가 무사할 것 같나?”
“할머니 무서워.”
단의 뒤로 숨은 리옐이 중얼거렸다.
마녀는 냉정한 편이다.
머리를 조금 식힌다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손을 내린 마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저렇게까지 흥분한 것은 처음 봤다.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지. 내가 알기로, 피붙이는 없다고 들었는데.”
“숨겨 왔으니까.”
마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손녀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내 눈을 속였을 정도라면.
“연을 끊고 살았나 보군?”
“그 아이가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네.”
“손녀도 마녀인가?”
“아니. 저주나 일족에 대한 것은 모를 걸세.”
일단 같은 핏줄은 맞는 모양이다.
마녀 일족은 대가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실이었다.
후닌이 날개를 퍼덕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패한 성배는 아무래도 좋아. 마음대로 하게. 나는 시노드 교구로 가 봐야 할 것 같으니.”
“머리가 안 돌아가나 보군. 흥분하면 그럴 수도 있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마녀가 한숨을 토했다.
손가락을 튕겼다.
진정(Calm Down).
눈이 차분해졌다.
머리가 좀 식었으리라.
“교구로 가서 어쩔 건가? 무장한 성기사단이랑 한판 붙으려고? 그 몸으로?”
그래도 주교라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있을 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병력을 배치했을 터.
무작정 쳐들어간다면 손녀를 구출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희박해진다.
거동이 불편한 만큼 더욱 그랬다.
마녀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자수를…….”
“자수하면 둘 다 죽을 거 뻔한데. 믿을 게 없어서 저것들 말을 믿나?”
“리에이트 교국의 신자들 아닌가. 거짓을 말하진 않을 터.”
“부패한 성배가 왜 나타났는지 모르나 보군.”
리에이트 교국은 썩어 빠졌다.
대청소 전의 레온하트 왕국이 조금 지저분한 정도라면.
지금의 리에이트 교국은 하수구나 다름없다.
‘황제와 내 의견이 일치했었지.’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머지않아 스스로 무너질 국가.
그것이 리에이트 교국의 현 상황이었다.
클레이먼 주교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가장 먼저 삐딱 선을 탄 놈이니까.
“가면 죽는다. 무조건이야.”
“그렇다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저것들이 내 손녀를 불살라 죽이겠다는데, 보고만 있으라고?”
마녀는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눈동자에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들어차 있었다.
무력감과 원통함.
리옐이 내 소매를 꼭 붙잡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예정에는 없던 일이지만.
“마침 여기 준비된 고급 인력이 대기 중인데, 써 볼 생각 없나?”
* * *
시노드 교구의 검문은 강화된 상태였다.
사제가 하나씩 붙어 일일이 확인을 하고 있었다.
아마 마녀가 아닌가 검사하는 것이리라.
자리에 앉아 서류에 뭔가를 기입하던 사제가 시선을 들었다.
“그건 뭡니까?”
“뭐긴 뭔가, 보다시피 까마귀라네. 방금 잡아 온 참이지.”
단은 큼직한 새장을 들고 있었다.
사제는 유심히 새장을 들여다봤다.
나는 리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가지고 싶다고 보채서 말이네.”
“아빠, 좋아.”
리옐은 내 허벅지를 붙들고 얼굴을 문댔다.
사제는 계속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후닌은 이름 있는 영물이지만, 얼핏 봐선 일반적인 까마귀와 구분하기 어렵다.
시노드 교구 인근에는 종종 까마귀가 보이기 때문에, 의심은 적으리라.
“혹시 까마귀는 반입할 수 없다는 규정이라도 있는 건가?”
“딱히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이런저런 조사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통과했다.
아마 귀족이라는 점이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해주를 깔끔하게 한 덕분에 저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을 테고.
늪에서 묻은 진흙 따위도 클린(Clean)으로 씻어 낸 뒤였다.
‘문제는 신전.’
마녀의 예상에 의하면, 신전 지하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분명 경계가 꽤 삼엄할 것이다.
신성력이 가득한 공간이니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때때로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을 수도 있었다.
‘미리 가서 구조라도 봐 둔다면 좋을 텐데.’
리에이트 신전은 신자 외의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도 한도가 있다.
내 기억에 따르면 1층의 예배실까지다.
안쪽까지 들어가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지그문트 님!”
반가움 섞인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화색이 된 수습 사제가 있었다.
네르갈에서 구해 줬던 리에이트 교국의 수습 사제, 말론이었다.
“음.”
악의 하나 없는 순수한 표정이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단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눈치 빠른 단이 말론에게 다가갔다.
대뜸 어깨동무를 한 단은 너스레를 떨었다.
“누군가 했더니, 제 생명의 은인 아니십니까! 이야, 이게 얼마만입니까?”
“예, 예? 저…….”
“어깨동무하시고, 친한 척하시죠.”
단이 중얼거리자, 말론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더니 덜덜 떨리는 손을 단의 어깨에 올렸다.
“그, 그러네요! 오랜만입니다! 하, 하하!”
“자, 저와 으슥하고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나 나눌까요?”
“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해치지 않습니다. 가시죠. 가시죠.”
단은 반쯤 울상이 된 말론을 끌고 왔다.
나는 둘을 뒤따라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단이 휘파람을 불며 몸으로 골목 내부를 가렸다.
“지, 지그문트 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닙니다. 음,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아아, 그런 거였군요. 하긴, 지그문트 님은 지금 유명인이시니까요.”
“예. 조용한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말론은 꾸벅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괜찮다고 하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폐를 끼친 거 아닐까 걱정되네요. 반가운 마음에 그만.”
“괜찮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안내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내요?”
“예. 아주 구석구석, 꼼꼼하게 안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마다요! 저만 믿으시죠!”
말론은 기세등등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를 감싼 나와 단, 그리고 리옐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딱히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왜 나는 착한 일을 해도 나쁜 그림이 나올까?’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교국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론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혼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트리옌이라면 모를까, 리에이트 교국은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거든요.”
“그렇습니까? 시노드 교구는 아름다운데요.”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리에이트 교국은 미술을 비롯한 각종 예술이 발달한 국가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신상이나 미술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단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비아가 더 예쁜데.”
리옐은 소심하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흥분한 말론에게 묻혀 버렸다.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 아쉽습니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직접 와 보면 감탄할 텐데 말입니다.”
대충 말론에 대해서는 파악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수습 사제.
그리고 목오의 신성을 꿰뚫어 본 유일무이한 인간.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말론이 제정신을 차렸다.
“참,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리에이트의 명물부터 한번 보시죠. 바로 근처입니다.”
단과 리옐이 말론 몰래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어울려 주지. 의심을 사면 귀찮아지니까.”
말론은 우리를 넓은 광장으로 안내했다.
크고 화려한 분수를 중심으로, 리에이트와 관련된 조형물이 군데군데 있다.
분수 중앙에도 하늘로 손을 뻗은 리에이트의 여신상이 있었다.
말론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분수를 가리켰다.
“이겁니다! ‘하늘로 향하는 분수’라고 합니다.”
“멋지군요.”
단은 짧게 감탄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분수는 분명 아름답긴 했다.
그러나 명물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기, 리에이트 님의 손이 보이십니까?”
“저건……?”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여신상의 손끝에 부자연스럽게 파인 부분이 있긴 했다.
말론은 동화 한 닢을 꺼내 들었다.
“저곳에 동전을 넣으면, 리에이트 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낭설 아닙니까?”
“속는 셈치고 한번 던져 보시죠.”
말론이 먼저 동전을 던졌다.
어림도 없었다.
동전은 접시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분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저걸 어떻게 넣습니까?”
“명사수라도 힘들겠어.”
구멍이라고 불러야 알맞을 것 같았다.
동전을 세로로 세워야 겨우 들어맞을 크기였다.
분수의 바깥쪽과 거리도 상당했다.
리에이트의 여신상도 꽤 높이 솟아 있다.
실질적으로 동전을 던져 넣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단이 도전에 나섰다.
“흡.”
신중하게, 하지만 힘을 실어서 동전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 동전이 접시에 거의 닿았다.
팅!
하지만 저 좁은 틈에 들어갈 턱이 없었다.
접시 가장자리에 맞고 튕겨 나간 동전은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 아깝군요.”
“저기 들어가긴 하는 겁니까?”
“왜 못 넣어?”
“도련님도 해 보시면 알 겁니다.”
단은 억울한 듯 보였다.
나는 동전 한 닢을 꺼냈다.
계산을 마치고, 바람이 멈추길 기다렸다.
마법을 쓸 필요도 없다.
‘지금.’
동전을 하늘 높이 던졌다.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보군.”
“1년 동안 빠짐없이 도전하고 한 번도 못 넣은 내가 보기엔, 안 들어가.”
“홀홀. 내가 시노드 교구에 살며 저걸 넣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네.”
이윽고 높이 치솟았던 동전이 떨어졌다.
텅그렁!
들어갔다.
말론은 경악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내 눈을 믿을 수 없군!”
“내 1년은 도대체…….”
“어떻게 보셨나요?”
“인상적이구먼. 예술 점수 10점 주겠네.”
단은 얼떨떨한 표정이 됐다.
“왜 잘 던지십니까?”
“투척술은 익혔잖아.”
“언제 말입니까?”
“밀러 영지 가는 길에, 고블린한테 돌 던졌을 때.”
재밌어 보였는지, 리옐이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아빠! 나도 할래!”
“옛다.”
금화 한 닢을 꺼내 쥐여 줬다.
단과 말론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지그문트 님. 잘못 주신 거 아닙니까?”
“뭐.”
“아, 아닙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옐은 신중히 분수를 바라봤다.
내가 하던 것처럼 각도를 재는 흉내도 냈다.
“얍.”
동전을 던졌다.
하지만 애초에 구멍은 분수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
어린 리옐의 힘으로는 근처에도 닿지 못할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화는 얼마 못 가 힘을 잃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까딱였다.
“어, 어?”
푸쉬(Push)의 추진력을 받은 금화가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구멍 속으로 쏙 빨려들어 갔다.
리옐이 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아빠, 봤어? 봤어?”
“잘했다.”
“놀랍군요.”
감탄한 말론이 박수를 쳤다.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도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소소한 것에서 즐거워한다.
교단이 썩지만 않았다면 이보다 분위기 좋은 나라는 없었을 텐데.
“그래서, 들리십니까?”
“뭐가?”
“리에이트 님의 목소리 말입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안 들리는데.”
-델 로안?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귓속에 스며들었다.
시무룩한 표정이 된 말론이 다시 물었다.
“정말 안 들리십니까?”
“정말 안 들려. 뭐 들리냐?”
“으응. 아니.”
리옐도 고개를 저었다.
“역시 낭설은 낭설이었던 걸까요.”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 분수는 명물이 아니라 성물이었겠지.”
“그도 그렇군요.”
말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죠? 델 로안. 맞잖아요. 왜 제 말을 무시하는 건가요?
하늘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안 들리는 것처럼 하품하며 귀를 후볐다.
리옐이 내 다리를 약하게 두드렸다.
할 말이 있으니, 몸 좀 숙이라는 뜻이었다.
허리를 굽히니 귓속말을 해 왔다.
“아빠, 실은 목소리 들려.”
“무시해.”
“응.”
나는 리옐을 데리고 빠르게 분수에서 멀어졌다.
자연스럽게 목소리도 희미해지더니, 들리지 않게 됐다.
‘리에이트와 연관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데.’
* * *
시노드 교구의 신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수풀에 숨어 있던 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헛수고를 한 것 같습니다.”
“아니. 지형을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야.”
말론의 안내를 받으며 확보한 중요 정보는 두 개다.
신전 외부에 교화 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옥이 따로 없다면, 교화 시설 내부에 마녀의 딸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따로 수용할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가 걸리긴 하는데.’
고민하는 사이, 후닌이 날아왔다.
까악.
검은색의 깃털 때문에 어두운 밤에는 육안으로 보기 어려웠다.
한 팔을 앞으로 내밀자, 후닌은 그 위에 앉았다.
“있었나?”
내 질문에, 후닌은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
마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외부로 드러난 교화 시설에는 없었네.”
“그럼 역시 신전에 있는 건가?”
“아니. 시설 내에 있긴 한 모양이야.”
후닌은 교화 시설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녀의 피붙이가 들어왔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하더군.”
“있긴 하다. 그 말이지?”
나는 몸을 꺾었다.
후닌을 날려 보냈다.
늪 인근에서 대기할 것이다.
“직접 가시는 건 역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국의 정규군도 속이는데, 저것들이라고 다를까.”
여기서 그나마 잠입 경험이 있는 건 나뿐이다.
나는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인비지빌리티(Invisibility).
음소거(Mute).
무취(Odorless).
오감 중 셋,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은 이것으로 막을 수 있었다.
촉각은 내 쪽에서 접촉을 피하면 그만이고.
미각은…… 누가 뜬금없이 허공을 핥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이 없었다.
“여차하면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고 있어.”
“어디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디 같냐?”
“여기!”
리옐이 내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목소리도 동굴에서 울리듯 불분명하게 들렸을 텐데.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다.
단은 엄한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리옐 아가씨께도 들키는데 말입니다.”
“얘가 별난 거야. 그리고 나 거기 없다.”
“히히.”
어쨌든, 교화 시설에는 내가 가는 걸로 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대비책도 있었다.
나는 기억을 붙잡았다.
‘이건 가급적이면 쓰고 싶진 않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교전은 피할 수 있으리라.
문제 될 만한 것들은, 신성력.
그러나 리에이트 교국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진 않을 것이다.
“갔다 오마.”
“다녀오세요.”
“무사하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언덕을 내려갔다.
교화 시설은 감옥 만큼이나 엄중히 관리되고 있었다.
내가 찾은 맹점은 한 군데.
‘문이 없이 벽으로만 둘러싸인 후면은 방비가 상대적으로 적다.’
까마득한 담이 지키고 있어서일까.
순찰이 있긴 하나 간격이 길어서 잠입하기 어려울 것 같진 않다.
성기사가 하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기사는 리에이트 교국을 위해서가 아닌, 각 교구의 주교를 위해서 움직인다.
교화 시설에도 성기사는 없었다.
‘좋아. 이쯤이면 문제없겠군.’
플라이(Fly)만 쓰면 간단하게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법을 준비하는데, 근처 수풀이 부스럭거렸다.
나는 캐스팅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수풀을 지켜보았다.
“빨리 움직여.”
대놓고 수상한 무리가 수풀 사이에서 나타났다.
복면으로 얼굴을 감춘 이들은 각각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다행이 마법사는 끼어 있지 않은지, 모습을 감춘 나를 눈치챈 기색은 없었다.
‘이것들은 뭐야?’
무기가 제각각인 걸 보면 정규군은 아니다.
적어도 리에이트 교국 측 병력은 아닌 것 같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복면인이 명령을 내렸다.
“목표는 마녀의 손녀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 여자만 확보하면 바로 철수합니까? 병력은 어떻게 하고요?”
“죄수들을 풀어 혼란을 일으킨다.”
즉석에서 계획을 설명하고, 통솔이 뭔가 어쭙잖은 감이 있다.
이것들, 용병이다.
누군가 마녀의 손녀 탈취를 의뢰한 것 같았다.
마녀가 했을 리는 없고.
‘뭐. 나로선 잘됐군.’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라서 함부로 침입하기가 꺼려졌는데.
이렇게 순진한 미끼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용병들이 월담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교화 시설 정면으로 돌아갔다.
몸에 걸려 있던 마법을 모두 해제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이보게.”
“……안 졸았습니다!”
닫힌 문을 지키고 서 있던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는 침 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나라 참 잘 돌아간다.
나를 본 병사가 잠을 깨려는 듯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이곳 뒤편에서,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거든.”
“수상한 사람 말입니까?”
“그래. 복면을 쓰고, 이 건물 벽을 타고 있던데. 혹시 공사하나?”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화들짝 놀란 병사는 남은 병사에게 자리를 맡기고, 서둘러 뛰어갔다.
아마 교화 시설 병력이 총출동할 것이다.
남은 병사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누구…… 어? 그새 어디 가셨지?”
* * *
“잡아라!”
횃불을 든 병사들이 시설 뒤편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인비지빌리티(Invisibility)를 사용한 나는 유유히 정문을 통과했다.
남은 보초는 일부에 불과했기에,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죄수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시설이 좋군.’
교화 시설 내부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건물이 넓은 운동장을 둘러싼 구조였다.
운동장을 지나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여기는…… 예배실인가?’
신전보다는 열악하지만, 예배실도 있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온 달빛이 리에이트의 여신상을 비췄다.
여신상 발밑에는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성기사? 성기사가 왜 여기 있지?’
백색의 갑옷과 견갑에 새겨진 문양을 볼 때, 성기사가 확실했다.
그런데 왜 성기사가 교화 시설 내부 예배실에 있단 말인가.
성기사는 뭔가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제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참회다.
뭔가 죄라도 지은 모양이었다.
마주치면 곤란한 쪽은 나였기에, 슬쩍 빠져나가기로 했다.
다행이 참회에 몰두한 성기사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복도로 나온 나는 숨을 돌렸다.
‘그럼 마녀의 손녀가 어디 있을까가 문젠데.’
마녀의 말에 의하면 외부와 연결이 차단된 곳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경우에는 지하부터 의심해 봐야 한다.
땅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퍼트렸다.
웅.
푸른 기운이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 갔다.
로케이트(Locate)와 비슷한 요령이다.
옅은 마나가 벽을 타고 움직이며, 구조를 파악한다.
내 생각대로, 지하가 있었다.
‘하여튼 뻔하다니까. 공간을 뒤틀든지,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을 텐데.’
지하와 연결된 비밀 계단으로 추정되는 것 또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예배실의 여신상 뒤쪽이라는 것이다.
성기사의 눈을 피해 통로를 연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투는 피하고 싶은데.’
고심하고 있던 와중, 복도 한편의 문이 열렸다.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남자 사제 하나가 걸어 나왔다.
“흐암, 이게 뭔 소란이래…….”
침입자들과 병사들이 충돌하면서 생긴 소란 때문에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사제의 등 뒤로 걸어갔다.
제정신이었다면 모를까, 잠에 취한 사제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령 알아차렸다고 한들 반항도 못 했겠지만 말이다.
슬립(Sleep).
안 그래도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던 사제는 슬립 한 번에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무방비 상태에, 졸음을 참고 있는 사람만큼 슬립이 잘 통하는 상대는 없다.
나는 주변을 살핀 뒤, 사제를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제복이 넉넉하게 나와서 다행이군.’
사제는 나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었지만, 사제의 옷은 조금 헐렁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든 입을 수 있었다.
일루전(Illusion)을 사용하는 법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일루전의 경우 부득이한 접촉으로 마법이 탄로 날 수 있다.
변장은 할 거면 확실히 하는 게 좋다.
얼굴에 인식 방해(Disturb Realization)를 사용했다.
‘어째 나쁜 일을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용의 눈물을 훔칠 때도 그렇고.
나는 정의의 편인데 항상 이런다.
완벽히 사제로 변장한 나는 예배실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자, 기도를 멈춘 성기사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유유히 여신상 쪽으로 가자 이내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일단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
‘육안으로 보기에 계단은 없는데.’
아까 마나를 흘려 본 결과에 의하면, 분명 이 밑에 계단이 있다.
그러나 여신상 뒤쪽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바닥을 통통 두드리니, 빈 공간이 느껴졌다.
그때,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 사제님.”
기도하던 성기사였다.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에 손을 얹었다.
보이스 체인지(Voice Change).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로 변조했다.
“예, 형제 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무력으로 제압해 버릴까, 아니면 장단을 맞춰 줄까.
어쨌든 의심을 사는 건 피하고 싶었다.
“저라도 괜찮다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기사는 한동안 망설였다.
아무도 없는 예배실을 둘러보더니, 오랫동안 입 안에 머금고 있던 것을 뱉듯 말했다.
“죄를 지었습니다.”
고해성사다.
성기사의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성기사가 바라는 것도 내 대답이 아닐 테니까.
“명령이라는 변명 아래, 죄 없는 자들을 잡아들였습니다.”
동작을 멈췄다.
이건 좀 솔깃한 얘기다.
마녀의 손녀는 저주나 사령술 따위와는 거리가 먼 민간인.
즉, 죄 없는 자에 속한다.
‘꽤 중직인가 보군.’
신념과 교리, 그리고 명령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가 개판인데 인재가 나오면 이렇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죄인의 핏줄이라면 죄인인 겁니까? 아니, 그 죄인이 죄를 지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건 마녀의 손녀 얘기 같다.
영양가 없는 얘기만 늘어놓으면 재우려고 했는데.
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성기사는 알아서 정보를 줄줄 늘어놓았다.
거기에는 마녀의 손녀가 처한 상황이나, 위치 따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 딴에는 돌려 말한다고 했지만 말이다.
이런 착한 놈 같으니.
‘여기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을 리처드라 소개한 성기사는 한탄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의란 무엇이고, 저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리에이트 님께 물어보셔야지요.”
싹수가 노란 놈은 아니다.
나는 한 가지 조언을 해 주기로 했다.
“시노드 교구의 분수에 동전을 넣어 보십시오.”
“예?”
“될 때까지 해 보십시오.”
* * *
성기사, 리처드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예배실을 떠났다.
비로소 나는 비밀 계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장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미끼들도 있는데, 굳이 뜸 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디그(Dig).
발밑의 땅이 사라지고, 계단이 드러났다.
시설이라기보다는 급조한 땅굴과 비슷했다.
정식으로 건축가를 고용해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말인즉슨 뒤가 구리다는 얘기랑 거의 일맥상통하지.’
성기사가 죄를 고백할 때 넌지시 암시한 바 있다.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
시노드 교구의 주교, 클레이먼의 명령으로 잡혀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심기를 거슬렀거나, 노리개 삼아 잡아 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비지빌리티(Invisibility)를 재사용하고,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갔다.
‘이제야 좀 감옥 같군.’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
그 와중에 간수는 있었다.
아마 클레이먼 주교 휘하의 병사일 것이다.
무슨 주교라는 놈이 사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졸고 있던 병사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서걱!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간수를 베었다.
간수는 저항 한번 못 하고 풀썩 쓰러졌다.
시설 뒤편에서 본 이들과 비슷한 복면을 쓴 사람들이었다.
복면인은 간수의 생사를 확인한 뒤, 검을 집어넣었다.
‘별동대?’
다른 경로로 들어온 것 같았다.
리처드가 말하길, 이곳은 신전과도 연결되어 있었으니.
‘그쪽은 정말 미끼였던 모양이군.’
위에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아래서 진짜들이 움직인다.
복면인 뒤에서 또 다른 복면인이 나타났다.
“찾았나?”
“아직입니다.”
“시간이 없다. 빠르게 수색하도록.”
아마 찾는 건 마녀의 손녀겠지.
아직 찾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저것들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했다.
짧게 상황을 보고한 복면인들이 흩어졌다.
나는 그중 한 놈의 뒤로 따라붙었다.
“음?”
놈은 부자연스러운 통로를 발견했다.
긴 복도에 뜬금없이 난 샛길.
간수가 따로 둘이나 붙어 있었다.
“침입자……!”
복면인이 간수들에게 달려들었다.
가차 없이 한 간수의 급소에 검을 꽂아 넣고, 뽑는다.
그사이 다른 간수가 창을 내질렀지만.
‘이 좁은 곳에서 창을 들고 경계를 하다니. 멍청하군.’
이런 좁다란 곳에서 긴 창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긴 사정거리를 이용한 견제는커녕, 오히려 벽에 창대가 걸렸다.
간수가 당황한 사이, 복면인은 남은 간수마저 베어 버렸다.
서걱!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깔끔한 솜씨.
복면인은 다시 한번 간수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은 어두웠으나, 복면인은 굳이 불을 켜지 않았다.
‘뒷세계 사람이 확실한 것 같은데.’
밤눈이 밝고, 사람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죽인 이의 생사까지 확인하는 철저함을 볼 때, 뒷세계 사람 같았다.
하지만 암국 측 인물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라다.
고용된 암살자나 용병일 확률이 높았다.
“흠.”
복면인은 한 철창 앞에서 멈춰 섰다.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철창 너머, 감옥과 같은 곳 한편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복면인은 철창 안쪽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찾은 것 같은데.”
나는 복면인의 뒤에 섰다.
덕분에 귀찮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보답은 깔끔한 기절이었다.
퍽!
놈의 뒷목을 손날로 때렸다.
앞으로 휘청거린 복면인은 뒷목을 붙잡고 뒤로 검을 휘둘렀다.
“누구냐!”
감이 발달한 암살자였지만, 나를 찾지는 못했다.
투명화에, 냄새와 소리까지 지워 버렸으니.
마나를 느낄 수 있는 마법사였다면 모를까.
나는 손목을 털었다.
‘목오 사막에서 기절시키는 법은 완벽히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힘 조절에 미숙한 것 같았다.
경험 부족이다.
퍽!
다시 한번 뒷목을 때렸다.
이번에는 힘을 좀 줬다.
우득!
복면인의 고개가 위로 꺾임과 동시에,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지면에 얼굴을 박은 복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죽었나?’
거북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목이 앞을 향해 나오긴 했으나, 미약하게 숨은 쉬고 있었다.
나는 블링크(Blink)를 통해 창살 내부로 들어갔다.
몸에 걸린 마법들을 해제했다.
라이트(Light)로 감옥 내부를 밝혔다.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잠깐 일어나 보겠나?”
앞으로 다가가자, 구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장전된 석궁을 들어 올린다.
안정된 자세로 내게 석궁을 겨눈다.
“멈춰! 움직이면……!”
마녀의 손녀로 추정되는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