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46/134)

6

발락 리빙데드

절그럭. 절그럭.

제 몸만 한 궤짝을 짊어진 남자가 네르갈의 거리를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언식을 구경하러 갔기에, 거리는 한산했다.

남자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적탑 앞이었다.

고개를 들었지만, 남자의 얼굴은 새 부리 모양의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한쪽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모양이 이상하리만치 이상했다.

딸랑.

남자는 적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 사람은 없었다.

맹해 보이는 수습 마법사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종소리를 듣고 졸린 눈을 뜨더니,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자를 본 수습 마법사는 눌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침을 닦았다.

“습. 어서 오세요.”

“적탑주님 계신가?”

“어. 적탑주님께서는 잠시 출타 중이십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나요?”

“찾을 물건이 있거든.”

남자는 수습 마법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수습 마법사는 남자의 가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뢰자가 가면으로 신원을 숨기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떤 물건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신다면…….”

“읏챠.”

쿵.

남자가 등에 지고 있던 커다란 궤짝을 책상에 내렸다.

허리를 뒤로 젖힌 남자가 신음을 흘렸다.

“아이고, 힘들다. 재료야 현지에서 조달하면 되는 걸. 사람을 죽이지 말라니.”

“네? 죽이다니, 그게 무슨…….”

남자는 궤짝의 자물쇠를 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뚜껑이 벌컥 열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힉. 고, 고블린?”

피에 젖은 듯한 붉은 머리와, 충혈된 눈.

고블린 언데드, 레드 캡이었다.

주변을 빠르게 살핀 레드 캡이 수습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수습 마법사는 다급히 마법을 준비했지만, 레드 캡이 한 발 빨랐다.

“꺄악!”

케륵!

레드 캡은 수습 마법사의 목을 죄고 뒤로 넘어트렸다.

수습 마법사의 집중이 끊어지며, 마법진이 사라졌다.

레드 캡은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손톱이 수습 마법사의 목을 꿰뚫기 직전.

“그만해. 이 새끼야!”

남자의 일갈에, 레드 캡이 우뚝 멈췄다.

수습 마법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남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가면을 고쳐 쓰며 궤짝에 주저앉았다.

“아가씨, 미안해. 내가 요즘 짜증 나는 일이 많거든.”

대뜸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수습 마법사는 잠자코 듣기로 했다.

살아남는다면, 남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생고생 다 해 가면서 저 멀리 사막까지 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 놈 때문에 일이 틀어지고, 저번에는 뭐? 뒷수습? 내가 그딴 걸 왜 해야 하냐고. 응?”

남자는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툭툭 발뒤꿈치가 궤짝을 건드리자, 궤짝이 조금 흔들렸다.

레드 캡만 들어 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 내가 성격이 많이 죽었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팔다리 잘라다가 구더기 밭에 처넣었을 텐데.”

“물건을, 찾으신다고 하셨죠?”

냉정을 되찾은 수습 마법사는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 그래. 물건을 찾으러 왔지.”

“적탑주님의 방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주의를 끈 뒤, 마탑의 방어 마법을 가동시킬 생각이었다.

적탑주의 방에 가면 적탑 내부를 요새화할 수 있었다.

발레리아에게 신호도 가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면 살 수 있었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튼짓하면, 너는 변사체가 된다. 알아들었냐?”

* * *

레온하트 왕성 앞, 광장.

요정족의 입장에 이어, 코스타 공작의 연설이 시작됐다.

다행히도 렘브란트 님푸스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놈 몸에 있는 지연된 죽음(Delayed Death), 발동시킬 수 있겠냐? 저번에 가르쳐 줬잖아.”

“으으으으음, 그거 겁나 어려운데요.”

통신구에서 발레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레리아는 이번 선언식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서풍의 지붕에 앉아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수를 대비한 변수였다.

“레드라인 후작이 버티고 있으니 다른 건 걱정 안 해도 돼. 렘브란트 놈이 수작부리는 것만 막으면 되는데.”

“할 수 있긴 해요. 하지만 조절을 장담하진 못하겠어요.”

“그럼 됐어. 저놈이 이상한 짓하면 그냥 갈겨. 저쪽도 약점을 노출하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까, 지병이라고 둘러댈 거다.”

“알겠어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통신이 끊어졌다.

렘브란트 님푸스를 억제할 수단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직 마법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지연된 죽음은 잠복하고 있는 상태였다.

두 번이나 발작 증세가 오면 눈치챌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좀 아쉬웠지만.

저번에도 요긴하게 썼으니, 제 역할은 다 했다고 봐도 좋았다.

“도련님.”

인상이 많이 달라진 단이 걸어왔다.

모르고 보면 귀족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아니, 얘 준귀족 출신이던가?

나는 단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야.”

이번에는 암국의 왕이 아니었다.

암국의 왕은 아마 지금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이 넓은 광장과 네르갈 일대를 전부 돌아보는 건 아무리 암국의 왕이라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도련님께선 시프 왕자님과 함께 입장하신다더군요. 덕분에 근위 기사분들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검술 대회에서 그 정도 성적을 냈으면, 걔네들도 너 알아보지 않냐?”

“예. 대회 잘 봤다고 하더군요. 제의까지 받았습니다.”

“제의? 근위 기사 하라디?”

“그렇습니다. 아마 저를 좋게 봐주신 모양입니다.”

단의 검술은 극단적으로 방어에 치중되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난공불락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확실히 근위 기사가 제격인 인물이긴 하다.

“그래서, 갈 거냐?”

“서운합니다. 제가 도련님께 바치는 충성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말은 잘하는군.”

용의 산맥에 다녀온 뒤로, 부쩍 넉살이 늘어난 단이다.

아마 발레리아의 영향일 것이다.

유독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리옐은?”

“아마 선언식 끝자락에 나오실 겁니다.”

“신의 아이를 화동으로 쓰다니. 레온하트 왕국은 축복 받았어.”

단과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왕실 소속의 시종이 총총 걸어왔다.

“지그문트 님. 단 님. 곧 입장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가지. 단, 준비됐냐?”

“후우, 하아. 예?”

“긴장하지 마. 뭐 큰일이라고.”

“저는 도련님처럼 담이 크지 않아서 말입니다.”

* * *

지그문트 마이어는 최근 귀족들 사이에서 단연 많이 언급된 이름이었다.

시프 레온하트와 하이엘프가 직접 요정족의 은인이라고 지칭한 인물.

“지그문트 마이어라는 청년, 과거에 파울 레드라인을 이긴 전적이 있다더군.”

“그런가? 내가 듣기로는 여색에 빠진 얼간이라던데.”

“레드라인 후작님의 저택에서 몇 번 보였다는 말이 있어.”

“소드 마스터의 제자라는 소문도 돌던데.”

귀족들은 지그문트 마이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경우가 많았다.

지그문트는 몇 달 전 건국제를 제외하고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사교계에서도 알려지지 않았고, 친분이 있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암국에 의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차단됐기 때문에,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번 동맹의 주역이신 시프 레온하트 왕자님과 지그문트 마이어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박수갈채와 함께, 시프 레온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금발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인물이 빼어나다는 시프 옆에 있음에도 결코 꿇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귀족들의 시선은 지그문트에게 집중됐다.

“저 청년인가?”

“이런 큰 자리는 처음일 텐데, 여유 있군.”

그 호위 기사도 심상치 않았다.

검술 대회을 구경한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단 록벨런.

이번 검술 대회에서 파울 레드라인과 명 경기를 만든 기사였다.

“난공불락을 기사로 두고 있었다니.”

“괄목할 만한 인재인 건 확실하네. 남작가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야.”

“가능하면 끌어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접점이 있나?”

벌써 지그문트 마이어에게 매료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여유로운 분위기와, 요정족의 언어를 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잘생긴 외모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신비로운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쯧.”

주요 귀족들의 자제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

파울 레드라인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지그문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있던 귀족 자제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저, 파울 공. 혹시 정말 저분과 결투에서 패배하셨습니까?”

“아가리 닥쳐.”

“옙.”

낮은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귀족 자제는 입을 닫았다.

파울은 지그문트를 바라보며 조용히 힘을 가늠했다.

그사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괴물 자식.’

전에 비해 오러가 안정되어 있었다.

무슨 짓을 하나 했더니, 태초의 숲을 갔다 왔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더 의문이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파울은 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파울의 시종이 파울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선언식을 구경하는 왕국민들이 서 있었다.

파울은 시선을 내렸다.

어디서 들어온 건지, 작은 뱀 한 마리가 발치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파울은 조용히 시종에게 말했다.

“검.”

“예?”

“내 검, 가지고 있나?”

“선언식에는 무기 소지가 안 되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파울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됐다.

빠르게 레드라인 후작을 찾았다.

“아버지.”

“파울, 너도 느꼈더냐?”

“예. 어쩌실 겁니까?”

“나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

레드라인 후작의 역할은 엘비아의 사절단 전체를 지키는 일.

건국제에서 자리를 비웠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는 만큼,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힘은……?”

레드라인 부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기감이 뛰어난 사람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지그문트 또한 시선을 옮겼다.

적탑이 있는 방향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언식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뭐야!”

“이쪽으로! 피하십시오!”

귀족들은 몸을 피했고, 왕국민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적탑 인근, 무언가가 지축을 뒤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선언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눈에 띄게 거대한 뱀.

흰색 뱀을 본 왕국민들의 몸이 굳었다.

드래곤 피어에 노출된 것처럼, 힘에 압도된 것이다.

“어째서.”

트리옌의 늙은 귀족이 경악했다.

한때 해상도시 퀸틴을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갔던 괴물.

“어째서, 종말의 뱀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종말의 뱀, 요르문간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쳐!”

“괴물이다!”

아비규환.

선언식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나는 조용히 통신구를 들었다.

“발레리아.”

“네! 스승님!”

“저거 왜 저러냐?”

“저도 모르겠어요!”

통신구에 이상한 소리가 섞여 들렸다.

뭔가 불타는 듯한 소리였다.

화악!

상공에서 열기를 띤 마나의 잔재가 퍼졌다.

발레리아의 마법이 분명했다.

“뭐야, 교전 중이냐?”

“네! 좀, 바빠요! 아, 진짜! 이것 좀 정리하고 다시 통신드릴게요!”

뚝.

통신이 끊어졌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요르문간드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내가 제 힘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요르문간드 또한 비슷한 상태.

즉, 거대화하지 않으면 벅찬 상대와 교전 중인 것이다.

“단, 리옐 챙겨서 별궁으로.”

“알겠습니다. ……도련님.”

“왜?”

“몸조심하십시오.”

단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혀를 차며 상황을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요르문간드 쪽으로 합류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러면 렘브란트를 견제할 인원이 없다.

레드라인 후작은 입장 상 오롯이 팔베르크 제국만 주시하기 어렵다.

“아니, 있군.”

“찾으실 것 같았습니다. 지그문트 님.”

등 뒤, 그림자에서 암국의 왕이 나타났다.

손에서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싸우다 온 것 같았다.

‘발레리아를 지원해서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암국의 왕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차라리 공공의 적인 제국 쪽에 붙이는 것이 적합했다.

“렘브란트 님푸스, 허튼짓하면 죽일 수 있겠나?”

“준비가 부족합니다. 시간을 끄는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그거면 됐어. 팔베르크 제국만 주시해.”

“확인했습니다.”

암국의 왕은 나타났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왕국민들과 사절단의 대피를 우선시해라!”

“대피할 곳이 없습니다!”

“왕성 내로 들여!”

“그런…….”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진다! 지금 당장 이행하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시프 레온하트와 눈이 마주쳤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요르문간드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반파된 적탑, 상층.

거대한 꼬리가 발락의 눈앞으로 쇄도해 왔다.

발락은 재빠르게 뼈로 만들어진 벽을 소환했다.

콰아아아앙!

요르문간드의 꼬리에 맞은 벽은 간단하게 부서졌다.

부서진 뼛조각이 발락의 살갗에 박혔다.

발락은 가면을 벗고 미친 듯이 웃었다.

“흐히히히히! 멋진데! 땅거북 대신 언데드로 만들면 딱이겠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난리 속에서도 굳게 닫힌 궤짝이 보였다.

위에는 요르문간드에게 뭉개진 레드 캡의 사체가 있었다.

“잠깐, 잠깐! 기다려 봐!”

발락이 궤짝을 향해 달렸다.

당연하게도, 요르문간드는 기다리지 않았다.

발락을 집어삼키기 위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다.

덜컥! 덜컥!

“에이씨, 이거 왜 이리 안 열려!”

신경질이 난 발락은 사령술을 사용했다.

러스트 핸드(Rust Hand).

발락의 손에 닿은 자물쇠가 순식간에 부식되더니, 끊어졌다.

궤짝이 열렸다.

카아아아아아악!

긴 포효와 함께, 활짝 열린 궤짝에서 온갖 언데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발락의 궤짝은 일종의 대용량 아공간 주머니였다.

아공간에는 생물을 보관할 수 없지만, 언데드는 달랐다.

애초에 죽은 것이기 때문에, 아공간에 수납해도 상관없다.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까득! 까득!

언데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떤 강대한 것이 상대일지라도, 일단 물어뜯고 본다.

언데드들이 요르문간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웅! 쾅!

요르문간드가 머리를 젖히자, 붙어 있던 언데드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벽에 부딪치거나 바닥에 충돌한 언데드들은 충격에 부서지고, 터져 나갔다.

산산조각 난 언데드의 몸뚱이는 다시 모여들어, 일어났다.

그리고 지면에 닿은 요르문간드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쩝. 다 열 생각은 아니었는데.”

발락은 해일처럼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들을 보며 입술을 적셨다.

발락은 대단한 네크로맨서다.

하지만 이 정도 언데드들을 동시에 모두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했다.

스켈레톤 같은 저급 언데드 뿐만 아니라, 강력한 놈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발락은 곧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히히! 죽어라! 죽어!”

* * *

쏟아진 언데드들이 요르문간드에게만 쏠린 것은 아니었다.

발락의 통제에서 벗어난 몇몇 언데드들은 네르갈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적탑 인근의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언데드와 마주쳐야 했다.

“모, 몬스터가 왜 여기에?”

봉사 활동을 위해 빈민가로 향하던 리에이트 교국의 사제 하나가 멈춰 섰다.

거리에 보란 듯이 언데드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고스트 아머(Ghost Armor).

갑옷에 혼령이 붙잡힌 언데드였다.

끼익. 끼익.

녹슨 갑옷의 마디에서 철 긁히는 소리가 났다.

고스트 아머가 고개를 돌렸다.

투구의 눈가리개 너머, 녹색 빛과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고스트 아머는 대검을 끌고 사제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사제는 도망치려 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다리가 왜, 왜, 왜 이러지?”

고스트 아머의 주시를 받는 사냥감은 도망치지 못한다.

유령들이 다리를 붙잡기 때문이었다.

철컹. 철컹.

사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스트 아머가 걸어오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사제는 주변을 살폈다.

거리에는 사제와 고스트 아머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이렇다 할 능력도 없는 수습 사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호흡이 가빠진 사제는 빠르게 기도문을 외웠다.

“전능하신 리에이트여. 빛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전능하신 리에이트여. 빛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코앞까지 걸어온 고스트 아머가 사제의 목을 치기 위해 대검을 들어 올렸다.

대검에 태양빛이 가려지는 순간, 사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 살려 줘!”

“그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과 함께, 사제의 뒤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지그문트였다.

쩌억!

총알처럼 튀어나온 지그문트는 고스트 아머의 견갑을 걷어찼다.

철이 우그러지며, 고스트 아머가 뒤로 날아갔다.

5서클급의 마나 번(Mana Burn)과 푸시(Push), 그리고 단련된 신체의 결과물이었다.

콰앙!

날아간 고스트 아머는 벽에 부딪치며 먼지를 일으켰다.

지그문트는 푸른 숨을 뱉었다.

가뜩이나 시간 없어 죽겠는데, 잔챙이들이 어슬렁거린다.

보이는 대로 잡았을 뿐인데 벌써 수십이 넘어간다.

상황을 파악한 사제가 꾸벅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거 말 되게 더듬네. 왕성으로 가라. 사람들 다 그쪽으로 대피했으니까.”

수습 사제는 지그문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선언식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사제는 멍하니 지그문트를 바라보았다.

지그문트의 몸속에 있는 빛을 언뜻 느낄 수 있었다.

사제는 그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지그문트는 아공간에서 이름 없는 검을 뽑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해? 가라니까.”

“예, 옙!”

사제가 헐레벌떡 도망쳤다.

먼지구름이 걷히고, 고스트 아머가 일어났다.

견갑 부분이 우그러지긴 했지만, 멀쩡했다.

지그문트도 언데드를 발차기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오러가 이름 없는 검을 감쌌다.

* * *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 인해전술은 필수였다.

상대가 아무리 강대한 괴물이라고 한들, 압도적인 양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발락도 이만한 양의 언데드를 푼 것은 처음이었다.

궤짝에 앉은 발락은 요르문간드가 언데드에게 물어뜯기는 광경을 관람했다.

쿠오오오오오!

요르문간드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수십이 넘어가는 언데드들이 부서졌다.

문제는 그중에 반은 다시 되살아났다는 점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연달아 추가 공격이 이어졌다.

마구잡이로 물어뜯고, 찌르고, 베고, 파고든다.

“아, 수잔이 죽었잖아. 흠. 뭐 어때. 어디 묘지라도 한번 다녀오지, 뭐.”

모기 수천 마리가 동시에 달려든 것과 같았다.

하나하나는 손짓 한 번에 죽는 벌레에 불과했다.

그러나 머리를 뒤덮을 정도로 양이 많으니 얘기가 달랐다.

처음에는 언데드들을 떨쳐 내던 요르문간드도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렘브란트가 눈에 띄는 짓은 피하라고 했는데.”

계획과 상당히 틀어진 부분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 물건만 챙기고 내빼야 했다.

만약 물건이 없다면, 렘브란트가 있는 광장 쪽으로 합류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

“아쉽다. 아쉬워. 적탑주는 리치로 만들면 딱 예쁘게 나올 것 같았는데 말이야.”

적탑주는 황제가 건드리지 말라고 직접 명령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마주쳤을 때, 교전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만약 만났다면 대판 싸우다가, 실수를 가장해서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탑주는 보이지 않았다.

발락은 본래 목적을 잊은 지 오래였다.

“응?”

궤짝에서 딴생각을 하던 발락이 뒤를 돌아보았다.

요르문간드가 모습을 드러낸 여파로 기절한 줄 알았던 수습 마법사가 있었다.

수습 마법사의 완드 끝이 발락을 향했다.

“파이어(Fire)!”

작열하는 화염이 지근거리에서 발락을 향해 뿜어 나갔다.

발락은 기겁했다.

“스컬 아머(Skull Armor)!”

주변에 흩어져 있던 뼈가 모여들어 발락의 전신을 뒤덮었다.

하지만 뼈의 양이 적은 감이 있었다.

펑!

화염이 발락의 복부에 적중했다.

뼈 사이로 스며든 불이 살갗을 태웠다.

발락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피해는 최소화했지만, 한 방 먹은 것이다.

“이런, 개, 미친년이. 따갑잖아.”

발락이 손을 뻗었다.

뼈가 모여들어 창을 만들었다.

본 스피어(Bone Spear).

순식간에 만들어진 뼈 창은 그대로 수습 마법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푸확!

뼈 창이 수습 마법사의 어깨를 관통하고 벽에 박혔다.

생전 처음 느끼는 엄청난 고통에, 수습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아파? 아프지? 내가 더 아파. 아프다고오오! 이 개 같은 년아!”

발락은 치욕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화를 냈다.

고작 수습 마법사 따위에게 일격을 허용한 것이 너무 자존심 상했다.

떨어져 있던 뼈가 솟아오르며, 작은 나이프가 됐다.

발락은 작지만 날카로운 나이프를 들고 수습 마법사에게 걸어갔다.

툭. 툭. 툭.

굉음 사이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언데드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발락이 고개를 돌렸다.

뒤를 다 돌아보기도 전에, 안면으로 향하는 발끝을 볼 수 있었다.

“히엑!”

발락은 이상한 비명을 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발차기의 궤도가 바뀌었다.

발락은 짐승 같은 반사 신경으로 이번에도 스컬 아머(Skull Armor)를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우득!

하지만 파이어(Fire)에 한 번 불 탄 뼈는 쉽게 부서지고 말았다.

발뒤꿈치가 발락의 뒤통수를 정확히 내리찍었다.

쾅!

하지만 중간에 방향을 수정한 탓인지, 힘이 충분히 실리지 않았다.

지면과 키스를 나눈 발락은 일어나며 흙먼지를 뱉어 냈다.

“투! 퉤! 어떤 새끼야!”

“나다. 이 새끼야.”

발락은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발락이 격노했다.

“너, 너어어어!”

그곳에는 태연하게 발목을 돌리고 있는 지그문트 마이어가 있었다.

* * *

“야, 괜찮냐?”

“아, 아으. 흑, 아파요.”

나는 벽면 쪽의 수습 마법사를 살폈다.

수습 마법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뼈 창이 어깨를 관통한 상태였다.

환부를 살핀 뒤, 뼈 창을 붙잡았다.

수습 마법사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들어찼다.

“쫄지 마. 안 아프게 빼 줄 테니.”

수습 마법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통증 차단(Pain Killer).

마나가 어깨를 감쌌다.

수습 마법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뼈 창을 꽉 잡고, 뽑아냈다.

“아악! 아, 어? 응? 안 아프네?”

“안 아프게 빼 준다니까. 엄살은.”

비명을 지르다가 만 수습 마법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봤다.

그제야 나를 알아본 건지, 눈이 커졌다.

“어? 탑주님의 수제자님?”

“맞다. 그렇게 알고 있었지?”

여전히 건국제 때 했던 오해를 그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수습 마법사의 손을 들어 올려 어깨의 출혈을 막았다.

“마나를 통해 일시적으로 어깨 주위의 신경을 차단했다. 몇 시간 갈 거야. 풀리면 뒈지게 아플 거다.”

“네? 그게 어떻게 가능…… 우읍!”

아공간 주머니에서 영초를 몇 개 골라내 수습 마법사의 입에 쑤셔 넣었다.

이렇게 쓰기에는 조금 아깝지만, 일면식이 있으니 서비스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중에 알아보고, 지혈하면서 왕성 쪽으로 가라. 교국의 사제들한테 치료해 달라고 부탁해.”

“으읍.”

“맛없어도 씹어. 몸에 좋은 거니까.”

수습 마법사는 영초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습 마법사를 마탑 아래로 내려 보냈다.

뒤를 돌아보니, 발락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발락의 언데드들이 부서진 외벽 쪽에서 기어들어 왔다.

통제를 벗어났던 언데드를 일부 불러들인 것 같았다.

“뒤에서 뭐 하나 했더니, 친구 부르고 있었냐?”

“금발 꼬맹이! 너는 내가 죽인다.”

언데드들이 어느새 발락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몹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나는 비위가 좋은 편이라 망정이지, 단이었다면 토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종합 선물 세트도 아니고.’

스켈레톤, 좀비, 구울, 등, 온갖 종류의 언데드가 모여 있었다.

턴 언데드(Turn Undead)각이 너무 예쁘게 잡혔다.

물론 나는 사제가 아니었기에, 격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대검을 꺼냈다.

“후우.”

숨을 들이쉬었다.

마나 서클이 회전했다.

마나 번(Mana Burn).

전 원소 저항(Resist All Element).

마나 아머(Mana Armor).

멘탈 프로텍션(Mental Protection).

지연된 블링크(Delayed Blink).

발락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미친, 펜타 캐스팅? 네가 무슨 대마법사냐?”

“오, 잘 찍네. 감은 좋아.”

“뭐?”

언데드에 휩싸인 요르문간드가 땅을 쳤다.

쿠우우웅!

마탑이 뒤흔들리며, 순간적으로 발락이 균형을 잃었다.

“흡!”

나는 대검을 힘껏 던졌다.

마나 번으로 강화된 힘으로 던진 대검이 노리는 건, 가장 뒤에 있는 유령, 밴시.

여러모로 거슬리는 놈이었기에, 제거 대상 1순위였다.

발락은 저위 언데드를 앞에 세워 대검을 받아 냈다.

콰앙!

오러를 담은 대검을 온몸으로 받아 낸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터졌다.

뒤늦게 블링크가 발동했다.

지연된 블링크(Delayed Blink).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발락의 뒤통수가 보였다.

당황한 발락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대검은 시선 끌기.

진짜는 이쪽이었다.

5서클 마법사의 최대 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이동 마법, 블링크.

저 언데드를 모두 상대하는 것보다 네크로맨서를 치는 쪽이 효율적이다.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발락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캉!

검과 검이 부딪쳤다.

새까만 갑옷이 보였다.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 발락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씁. 믿는 구석이 있었나.’

발락도 내가 뒤로 이동한 것을 눈치챘다.

“개자식! 러스트 핸드(Rust Hand)!”

뒤를 돌아본 발락이 손을 뻗었다.

블링크(Blink).

잡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역시 네크로맨서다.

본체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래도 저렇게 지키는 걸 보면, 목오 사막 때처럼 가짜는 아닌 모양이다.

“좀 있으면 레드라인 후작이랑 다 몰려올 텐데. 그 전에 자수해서 광명 찾지?”

“허세 부리지 마라. 선언식장의 사람들도 발이 묶여 있을 텐데.”

“와, 아시는구나. 그러면 선언식장에 있는 것도 제국 측 사람이라는 거네. 그렇구먼.”

“……너, 너무 많은 걸 아는군.”

“네 생각보다 더 많이 알걸?”

나는 손을 털었다.

한 번 검을 부딪쳤을 뿐인데, 손바닥이 저릿했다.

듀라한은 언데드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놈이다.

마나 번으로 강화했음에도 힘에서 밀렸다.

‘도망만 못 치게 시간만 끌어도 이긴다.’

선언식 쪽 전력은 이쪽이 훨씬 우세했다.

발레리아, 암국의 왕, 레드라인 후작.

하나만 합류해도 발락은 제압할 수 있다.

발락도 그걸 아는지, 공격을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악!

밴시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시작으로, 언데드 무리가 내게 달려들었다.

귀가 조금 아팠지만, 멘탈 프로텍션 덕분에 정신에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어차피 발락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다 잡아야 할 언데드.’

대처법만 안다면, 마법사가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네크로맨서가 압도적인 수량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다면, 마법사는 일 대 다수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이 높은 마법사에게만 한정되는 얘기였지만.

나는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리버스 아이언 메이든(Reverse Iron Maiden).

콰가가가가강!

바닥에서 두꺼운 가시들이 튀어나와, 언데드들을 박살 냈다.

동시에, 후방에 있던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제한됐다.

“좀비 폭탄(Zombie Bomb)!”

발락은 가시에 찔린 언데드를 터트리는 것으로 가시를 제거했다.

나는 그 틈에 요르문간드 쪽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스(Grease).

요르문간드의 몸에 붙어 있던 언데드 일부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것을 본 발락이 분개했다.

“한눈팔지 마!”

“쯧, 집착하네. 구질구질하게.”

“이이! 그 주둥아리부터 꿰매 주마!”

살살 긁자, 곧바로 반응이 온다.

발락의 앞에서 본 스피어(Bone Spear)가 떠올랐다.

언데드를 서포트하는 네크로맨서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직접 공격하는 네크로맨서라면, 한결 수월해진다.

‘발락 리빙데드의 약점은 성격.’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쉽게 흥분한다.

네크로맨서로써 역량은 뛰어나지만, 성격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한 놈이다.

본 스피어가 내게 날아왔다.

‘뻔하다.’

나는 상체를 숙이고 앞으로 달렸다.

본 스피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방패를 든 스켈레톤이 앞을 막았다.

손을 뻗었다.

러스트 핸드(Rust Hand).

손에 닿은 방패가 순식간에 부식되어, 사라졌다.

남은 건 뼈다귀.

두개골을 힘껏 때리니, 머리가 날아가며 몸이 무너졌다.

발락이 인상을 찡그렸다.

“사령술?”

“사실 나도 좀 하거든.”

8서클 당시, 네크로맨시도 나름 열심히 했다.

발락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한다.

그 덕분에,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부웅!

손가락을 까딱이자, 듀라한이 검을 휘둘렀다.

검 끝이 향하는 상대는, 발락 리빙데드였다.

“이런, 썅!”

발락도 조종권이 빼앗긴 것을 눈치챘는지, 재빠르게 다른 언데드를 세웠다.

듀라한의 검을 막은 것은 리빙 월(Living Wall).

꿈틀거리는 살덩어리가 바닥에서 솟아나, 검을 받아 냈다.

키에에에에엑!

리빙 월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동시에 저위 언데드들이 듀라한에게 들러붙었다.

듀라한이 언데드에 묻히기 무섭게, 폭발했다.

자폭으로 듀라한을 막은 것이다.

“안 돼! 조지! 너, 조지를 죽이다니!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이이!”

발락은 죽은 리빙 월을 붙잡고 절규했다.

리빙 월 이름이 조지였나 보다.

“죽인다!”

“말로는 벌써 스무 번은 죽였겠다.”

이번에는 말만 앞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분개한 발락이 손을 뻗었다.

쨍그랑!

창문과 부서진 외벽, 문에서 언데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총공세.

요르문간드를 공격하던 놈들까지 내게 향했다.

수백이 넘는 언데드가 순식간에 마탑주의 방에 몸을 쑤셔 넣었다.

언데드의 해일이 나를 덮쳤다.

* * *

수습 마법사는 어깨를 누르며 달렸다.

레온하트 왕성이 흐릿하게 보였다.

통증은 없었지만, 출혈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람? 어떻게……!”

“이쪽으로 오시오! 어서!”

언데드를 잡던 기사들이 수습 마법사를 이끌었다.

수습 마법사는 떠밀리듯 왕성 내부로 들여보내졌다.

넓은 복도는 이미 사람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보! 어디 있어? 여보!”

“여기! 부상자가 있다! 사제!”

“으아아아아앙! 엄마!”

요르문간드에 이은 언데드들의 출연.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레드라인 후작과 기사들이 활약하고 있었지만, 죽거나 다친 사람이 다수 있었다.

한 젊은 사제에게 이끌려 가던 수습 마법사는 붉은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

발레리아 로안이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적탑주님!”

“어깨가 왜 그래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목이 바싹 말라왔다.

억지로 침을 삼킨 수습 마법사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수제자님이 적탑에 계세요. 거기 네크로맨서랑, 큰 뱀이…….”

“수제자? 아, 이런. 엉켰네.”

발레리아는 혀를 찼다.

선언식으로 한창이었던 왕성이 아니라, 적탑에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요르문간드가 응전하고 있고, 발레리아가 렘브란트를 보지 못하는 상황.

적탑으로는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승님이 한 게 아니었나? 그럼 누가 그런 거지?’

발레리아는 선언식 도중, 정체불명의 암살자들과 마주했다.

그중 일부를 소탕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누군가에게 죽은 후였다.

검에 베인 흔적이 있어 지그문트가 했다고 여겼는데.

또 다른 인물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사제한테 가서 치료부터 받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발레리아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렘브란트 님푸스 때문이었다.

레드라인 후작이 있긴 했으나, 후작의 역할은 국왕과 엘비아의 사절단을 지키는 것.

렘브란트를 주시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했다.

‘일단 조용히 있는 것 같긴 한데…….’

렘브란트는 피신한 사절단에 섞여 있었다.

좀처럼 움직일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발레리아를 의식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리옐을 안아 든 단이 발레리아에게 달려왔다.

“적탑주님!”

“단? 스승…… 지그문트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리옐 님을 지키라는 도련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럼 혼자 갔다고요? 미치겠네. 또 죽으면 안 되는데.”

“적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수습 마법사가 말한 네크로맨서는 발락 리빙데드가 분명했다.

그가 아니고서야 이딴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

예전에 비하면 지그문트 마이어는 정말 많이 강해졌다.

문제는 장소가 네르갈인 만큼, ‘숨결’이나 ‘기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발레리아는 처음 듣는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본 단이 화들짝 놀랐다.

“가, 가주님? 어떻게 여기에…….”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단.”

라스 마이어는 단 록벨런을 직시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내 아들이 어디 있다고?”

* * *

발락 리빙데드는 승리를 확신했다.

지그문트는 언데드 무리에 파묻혔다.

블링크는 시야 내의 장소로만 이동이 가능한 마법.

즉, 시야를 전부 뒤덮어 버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아니지. 그놈이라면 살아 있을지도 몰라.’

발락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언데드 무리가 들썩였다.

좀비 폭탄(Zombie Bomb).

쾅!

내부에 있는 언데드 다수를 폭발시켰다.

확인 사살까지 마치자, 속이 후련해졌다.

“하이 씨, 빡세라.”

수준 높은 마법과 검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사령술까지 사용했다.

여태껏 발락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이런 괴물은 난생 처음이었다.

덕분에 아끼는 언데드가 여럿 죽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지그문트 마이어는 동시에 다섯 종류의 마법을 사용했다.

펜타 캐스팅.

발락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렘브란트 님푸스의 말에 의하면, 펜타 캐스팅을 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뿐.

하지만 발락은 그 한 명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아, 누구였더라.”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산 자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발락이었기에, 흘러 넘겨 버렸다.

중요한 단서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몰라. 나중에 기억나겠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이제 언데드 무리를 치우고, 시체를 회수할 차례였다.

시체는 직접 관짝에 넣고 가서 언데드로 만들 생각이었다.

의자로 쓸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빌어먹을. 큰일 났다. 존나 깨지겠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탑은 반파, 일대 민가는 거의 초토화 상태였다.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발락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언데드를 치울 준비를 하던 발락은 균형을 잃을 뻔했다.

쿠웅!

요르문간드가 다시 한번 땅을 찍은 것이다.

몸을 빽빽하게 뒤덮었던 언데드들은 거의 다 나가떨어진 후였다.

피로 붉게 물든 요르문간드의 머리가 드러났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풀려날지도 모른다.

‘쯧. 저것도 미친 괴물이네.’

마탑 인근은 죽은 언데드들로 가득 했다.

요르문간드가 죄다 박살 낸 것이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락도 저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만약 지그문트에게 신경을 쏟지 않았다면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거기.”

낯선 목소리에, 발락은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벽에 라스 마이어가 서 있었다.

발락은 라스의 금색 머리카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나와 같은 금발의 청년을 보지 못했나?”

“아아, 걔. 봤지.”

발락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라스는 요르문간드를 흘긋 살피며 물었다.

“근데 걔는 왜 찾아?”

“아비 되는 사람이다. 그 애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

“알지. 알아.”

“어디로 갔지?”

발락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저승으로 갔지. 아까 내가 직접 보내 줬거든. 컥!”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발락의 시야가 거꾸로 뒤집어졌다.

무언가가 턱을 강하게 가격해, 고개가 뒤로 젖혀진 것이다.

‘어?’

뒤로 날아간 발락은 그대로 언데드 무리에 처박혔다.

날카로운 뼈 하나가 어깨에 박혔다.

찢어지는 통증에, 발락이 괴성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악! 아파아아아아아!”

“시끄럽다.”

어느새 발락의 앞으로 이동한 라스가 발락의 턱을 찼다.

발락의 입이 강제로 닫히며, 이빨이 깨졌다.

라스는 발끝으로 발락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때렸다.

쿵!

옆으로 넘어진 발락은 땅에 머리를 박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고, 매스꺼운 구토감이 몰려왔다.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미친. 부전자전이라더니.’

발락은 지그문트를 뒤덮고 있던 언데드 일부를 끌어왔다.

정신이 혼탁해서, 고작 한 마리가 한계였다.

레드 캡이 조용히 라스의 뒤를 덮쳤다.

라스의 다리가 호를 그렸다.

퍽!

발뒤꿈치가 레드 캡의 관자놀이에 적중했다.

레드 캡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땅바닥에 엎어졌다.

‘무슨, 사람이. 저리 빨라?’

발락은 피를 퉤 뱉으며 혀를 내둘렀다.

압도적인 속도였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스릉.

라스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녹슨 검을 집어 들었다.

언데드가 들고 다니던 검이었다.

오랜만에 잡았다는 듯, 시험 삼아 허공에 몇 번 휘둘러 본다.

발락은 두 눈을 의심했다.

검날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아아! 알겠다!”

발락은 라스의 정체를 깨달았다.

황제가 섣불리 건드리지 말라고 한 인물 중 하나.

보이지 않는 검.

“검귀! 그래! 너! 검귀구나?”

귀신처럼 검을 쓴다 하여 검귀.

소드 마스터 레드라인 후작과 함께 오래 전,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기사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검을 놓고, 종적을 감췄다고 들었다.

행방이 묘연해, 황제도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린 적도 있었지.”

라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발락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쿠오오오오오!

그때, 듀라한 한 마리를 물어 죽인 요르문간드가 포효했다.

기어코 혼자 그 많은 언데드를 전부 죽여 버린 것이다.

저거까지 풀려난 이상, 승산은 없다.

‘튀자.’

발락은 재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라스가 요르문간드를 살핀 잠깐의 순간, 발락은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하! 방심했네?”

탈출용 텔레포트 스크롤.

전생의 델 로안이 자신의 저택과 연결해 둔 것이다.

라스가 반응하기 직전, 발락은 스크롤을 찢었다.

찌익!

발락은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풍경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몇 초 후.

발락은 다시 눈을 떴다.

“어라?”

발락은 당황했다.

풍경이 그대로였다.

무너진 마탑주의 방.

귀신처럼 노기를 띤 라스 마이어.

자신을 빤히 주시하는 핏빛 뱀, 요르문간드까지.

“이, 이거 왜 안 돼?”

발락은 다급히 예비용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하지만 텔레포트는 발동하지 않았다.

목오 사막에서만 해도 잘되던 것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 것이다.

“유언은 그걸로 끝인가?”

라스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귀신이 걸어왔다.

발락은 도망치기 위해서 겨우 일어났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몸이!’

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목 아래로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시선을 들었다.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의 동공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요르문간드였다.

“이런 씨……!”

귀기 어린 표정의 라스가 발락의 목을 치기 직전, 돌연 언데드 더미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그거 죽이면 안 됩니다!”

* * *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언데드의 해일이 나를 덮쳤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발락이 의도적으로 시야를 가려 블링크(Blink)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미리 사용해 뒀던 마나 아머(Mana Armor)와 겹쳐, 겨우 압사는 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바로 앞에 있던 해골바가지가 폭발할 때는 식겁했지만.

‘이놈이 없었다면.’

내 팔목에 들러붙어 있던 페러시트, 실험체 17호.

놈이 고치처럼 내 몸을 감싸 폭발의 완충제 역할을 했다.

‘용의 산맥에 내려오자마자 개조에 들어간 것이 정답이었나.’

평소에는 내 힘을 흡수하지 않고 가만히 팔목에 붙은 채로 잠들어 있다.

내가 마나를 공급하면, 일시적으로 각성해 내 몸을 지키는 것이다.

전에는 숙주의 의지에 상관없이 공생을 강제했다면, 이번에는 선택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깥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마나 좀 채우고 나가려고 했는데.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원.’

하나는 확실했다.

발락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통해 도주를 시도했다.

나는 마나를 통해 그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바로 디스펠했다.

7서클 마법이었지만, 스크롤에 담긴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더군다나 내 술식은 정확히 알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디스펠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라스 마이어가 온 것 같은데.

우드드득.

위를 짓누르고 있던 언데드 무리가 위로 올라갔다.

요르문간드가 언데드들을 통째로 물어 옮긴 것이다.

바깥이 보였다.

“어, 음.”

곤죽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발락 리빙데드.

태연하게 발락을 걷어차고 있는 라스 마이어.

피 칠갑을 한 요르문간드가 보였다.

일단 라스부터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그만 패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패 놓았는지, 발락은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라스는 발길질을 멈추고 내게 다가왔다.

내 전신을 슥 훑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죽지 않았을 줄 알았다. 지그문트.”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요.”

“저 뱀은, 친구더냐?”

요르문간드는 머리 위에서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데드에게 얼마나 물어뜯긴 건지, 백색의 비늘은 보이지도 않았다.

“비슷한 겁니다.”

“그렇군. 뒷정리는 맡기마. 내 얘기는 하지 말거라.”

라스는 훌쩍 마탑 아래로 뛰어내렸다.

오랜만에 봤음에도 무뚝뚝한 성격은 여전했다.

요르문간드는 라스의 등을 잠시 바라봤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군.

-방임주의라던데.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요르문간드는 혀를 날름거렸다.

언놈이 입속에서도 공격을 감행했는지, 혀가 조금 찢어져 있었다.

-그보다, 너 괜찮냐?

-안 괜찮다. 약한 상태로 잡것들 상대하니, 죽을 맛이더군.

-그래도 그 정도로 거대화할 정도면 많이 찾은 거 아니냐?

-그대. 내 원래 크기를 모른다는 듯이 말하는군.

-알지. 생각해 보니까 그거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긴 하네.

-나는 쉬겠다. 온몸이 다 따갑다. 탈피를 하든지 해야겠어.

어쩌다가 발락과 대면하게 된 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요르문간드는 순식간에 종적을 감춰 버렸다.

나와, 반죽음 상태인 발락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이놈한테 물어봐야 되나.’

조금 아쉬웠다.

발락 리빙데드는 렘브란트 님푸스처럼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 즉 사령술사는 꺼림칙한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직업.

그 때문에 황제는 발락 리빙데드에게 작위와 함께 가짜 신분을 내렸다.

굳이 표현하자면 음지 쪽 전력이다.

즉, 이놈을 잡아 봤자 팔베르크 제국에게 따지고 들어갈 구실은 못 된다.

‘그래도 생포한 건 큰 수확이야.’

흑탑주나 불패의 기사 정도는 아니지만, 발락은 팔베르크 제국의 전력 중 하나다.

이 정도면 팔베르크 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갈 거다.

대놓고 수상하게 생긴 궤짝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겼다.

발락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반응이 없다.

나는 기절한 발락의 뒷덜미를 붙잡고 마탑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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