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34)

8

종말의 뱀

“뭘까요. 거대한 뱀이라는 건.”

마차 안, 마리나가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나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었으니까.

윌리엄이 의견을 제시했다.

“라미아가 아니련지요?”

인간의 상반신에 뱀의 하반신을 한 몬스터, 라미아.

뱀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라미아는 그렇게 크지 않아. 몸길이는 기껏해야 2~3미터지.”

“큰 것 같은데요.”

“꼬리에 잡히지만 않는다면, 위협적인 몬스터도 아니야. 용병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걸?”

“꼭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윌리엄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직접 본 적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라미아 소굴에 들어가 본 적도 있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책에서 봤어.”

“호오, 어떤 책입니까?”

“몬스터 대백과.”

실제로 라스 마이어의 서재에 있는 책이었다.

몬스터의 이름이나 모습, 습성을 기록한 일종의 사전이었다.

파브른가 파블론가 하는 몬스터 학자가 편찬했는데, 내용이 꽤 괜찮았다.

괜찮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부탁을 받아 내가 직접 검수한 책이니까.

윌리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 때도 그렇고, 몬스터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

모르는 거 빼고 다 안다.

물론 내가 모르는 건 거의 없다.

나는 머릿속으로 뱀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흠, 히드라일 가능성은?”

“글쎄요. 머리가 여럿이라는 뚜렷한 특징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랬다면 얘기했을 거야.”

노인은 거대한 뱀이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뱀의 이렇다 할 특징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거대한 뱀이라고만 했다.

“배, 뱀은 질색인데요…….”

힐데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팔을 쓸었다.

마리나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귀엽지 않나?”

“귀엽다고요, 뱀이?”

“그래. 자꾸 혀를 내미는 점이라든가.”

“그 부분이 소름 끼치는 건데요…….”

힐데는 진저리를 쳤다.

뭐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딱히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며칠 후, 마이어 영지에 다다른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뱀 때문이었다.

“도련님, 이거…….”

“그래. 아무래도 이건 좀 심하네.”

걷다 보면 걷어 차일 정도로, 길가에 뱀들이 널려 있었다.

그 종류도 다양했고, 많기도 많았다.

단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숲에서 나와 연무장으로 기어드는 놈은 몇 봤지만,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군요.”

“이 근처에 원래 뱀이 많나?”

“아닙니다. 장마철에 습기가 지면 한두 마리 나오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는 건,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거네. 저주인가?”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가설을 세웠다.

쥐나 벌레를 몰고 오는 저주처럼, 뱀을 들끓게 하는 저주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수는 비상식적이었다.

저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뱀은 집 한 채의 바닥을 채울 정도.

이렇게 많은 수의 뱀을 불러들이긴 힘들었다.

‘마녀라도 오면 또 모르겠지만.’

서대륙의 유일한 마녀는 북쪽에 있다.

여기까지 왔을 리도 없고, 이유 없이 저주를 내릴 인물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저주는 아니야.”

“그럼, 이 뱀은 전부 뭘까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시종들이 나를 따라 내렸다.

힐데는 질겁했지만, 다리를 덜덜 떨며 참았다.

“여기선 걸어가지. 어차피 한 시간도 안 걸릴 테니.”

“그냥 마차를 타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단은 뱀 무리를 살피며 말했다.

“독사도 꽤 섞여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괜찮아. 뱀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니까.”

뱀은 대체로 온순하다.

위험을 느끼거나 번식기일 때는 예외지만.

단은 검을 꺼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검 집어넣어.”

“예?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그들에게 당부했다.

“여기 있는 뱀, 절대 죽이지 마.”

“어째서입니까? 지금이라도 수를 줄여 나가는 게.”

“내 말 들어. 괜히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으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심기라니요?”

기사들과 시종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이 됐다.

나는 영지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했다.

놈이 이곳에 와 있었다.

“누구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겁니까?”

“종말의 뱀.”

놈을 부르는 명칭은 지역이나 종족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요르문간드.”

* * *

우리는 뱀을 밟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길을 걸었다.

다행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뱀의 수는 적어졌다.

단은 조심스럽게 발을 떼며 입을 열었다.

“요르문간드라면 들어 본 적 있습니다. 퀸틴에 나타났던 그 뱀 몬스터지요?”

“명확히 정의하자면 몬스터는 아니지만, 퀸틴에 나타났던 건 맞지.”

“……제가 알기론 그때 퀸틴의 삼 할이 부서졌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삼 할이라. 너는 그걸 진짜로 믿냐?”

단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해상도시 퀸틴.

규모는 작지만, 한 나라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삼 할은 너무 많…….”

“삼 할이 아니라 절반이야.”

단은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요르문간드가 해상도시 퀸틴을 부순 일화는 유명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요르문간드는 죽은 거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요르문간드가 해상도시 퀸틴을 반파시킨 건,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그 이후로 요르문간드는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 죽었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죽지 않았다.

“저, 저, 저, 도,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응?”

“히익.”

용기 내서 말을 꺼낸 힐데가 뒷걸음질 쳤다.

그냥 되물었을 뿐인데.

내 인상이 무섭나?

지그문트는 여자한테 잘 먹히는 상이었는데.

“어이쿠, 조심하십시오.”

윌리엄이 뒤로 넘어질 뻔한 힐데의 허리를 받쳐 주었다.

힐데는 등 뒤를 보고 기겁했다.

넘어졌으면 뱀 몇 마리는 깔아뭉갰을 것이다.

“가, 감사해요.”

“별말씀을.”

윌리엄은 신사다운 동작으로 힐데를 세워 주었다.

“그래서, 왜 돌아가자는 건데?”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도련님 말씀대로 저, 정말 그런 괴물이 나타난 거라면 증원을 요청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어디에? 밀러 영지에? 아니면 네르갈까지 갈까?”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한 것 같았다.

힐데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시를 반파시킨 괴물이다.

밀러 영지 전체가 일어난들,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뭐, 루이스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겠어?”

영지를 맡은 건 지그문트의 동생인 루이스 마이어였다.

윌리엄이 중얼거렸다.

“이럴 때 가주님이 계셨더라면.”

라스 마이어가 있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인물이다.

내가 보증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이건 뛰어난 인물이라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뛰어난 인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 뛰어난 인물이 나서면 된다.

예를 들면 나처럼 말이다.

기사들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진심이십니까?”

“너희 나 못 믿냐?”

“솔직히 저는 요르문간드부터 못 믿겠습니다만.”

“그냥 뱀이 들끓은 거 아닐까요?”

“됐다. 다 꺼져.”

곧 우리는 마이어 저택에 다다를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뱀은 저택 내부까지 침입하진 못한 것 같았다.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루이스를 찾았다.

“루이스!”

“저, 지그문트 도련님.”

어린 시동이 내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루이스의 옆에 붙어 있던 꼬맹이였다.

마침 잘됐다.

“루이스는 어디 있지?”

“그, 가주님을 불러오신다고, 네르갈로 가셨습니다.”

“……튀었구먼.”

그래도 배짱은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임시라고는 하나, 영주가 도망친 것이다.

영지민이 피난을 가는 것도 이해됐다.

“저택에 남아 있던 기사들은 뭘 하고 있길래 코빼기도 안 보여?”

“저택 내에 나타난 뱀을 처리하고 있을 겁니다.”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 아마 연무장에서 뱀의 사체를 불태우고 있을 겁니다.”

이마를 탁 쳤다.

그렇군!

왠지 저택에 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했는데.

처리했으니 없는 게 당연한 거였다.

“첩첩산중이군.”

요르문간드의 별명 중 하나가 뱀의 왕이다.

모든 뱀은 본능적으로 놈을 따른다.

우르릉…….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 아니었다.

무언가 아주 거대한 것이 땅에 끌리고 있었다.

내 말을 반신반의하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지그문트 도련님이 말씀하셨던 거, 진짜 아니야?”

“그러고 보면 커맨더 때도…….”

“에이, 암만 그래도 이번 건 농담이겠지.”

“맞아. 지진. 지진 때문에 뱀들이 단체로 이동한 거 아닐까?”

꼴값들 떨고 있다.

왜 사람 말을 못 믿을까?

나는 시동에게 물었다.

“언제 태웠어?”

“예?”

“뱀 사체, 언제 태웠냐고.”

“조, 조금 전입니다.”

“곧 오겠군.”

나는 저택 밖으로 나갔다.

단이 다급히 나를 따라왔다.

“도련님! 혹시 모르니, 안에 있는 것이……!”

“저택 부숴 먹을 일 있냐?”

나는 저택 정문 앞에 섰다.

뱀들이 똬리를 틀거나 기어 다니고 있었다.

단은 잔뜩 긴장한 눈치로 검을 뽑아 들었다.

우르르릉…….

하늘은 어두웠다.

밤이 되도 밝았던 밀러 영지와 달랐다.

마이어 영지는 꼭 죽은 것처럼 캄캄했다.

단은 문 옆에 꽂혀 있던 횃불에 불을 붙였다.

화악.

곧 주위가 훤해지며, 시야가 트였다.

단은 횃불을 이리저리 돌렸다.

우르릉…….

땅이 흔들렸다.

단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땅 울림은 상당히 가까웠다.

뱀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것들은 한 방향을 보더니, 일제히 몸통을 들었다.

단이 움찔했지만, 뱀들은 우리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스슷…….

뱀들이 고개를 숙였다.

신하가 왕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처럼.

진귀하고 기묘한 광경이었다.

단은 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횃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아아…….”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몸길이만 족히 10미터를 넘길 듯한, 거대한 뱀이 있었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과 금색의 몸.

역삼각형의 대가리는 독사임을 뜻했다.

라미아도, 히드라가 아니었다.

뱀.

그저 거대한 뱀이었다.

“지, 진짜 요르문간드?”

단의 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초급은 약자가 아니다.

하지만 강자도 아니었다.

내 기준으로 단은 성장성이 높은 풋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경험이 부족한 단이었다.

이런 괴물과 대면한 것은 처음이리라.

“쫄지 마.”

“도련님.”

그는 목에 뭐라도 걸린 것처럼 가까스로 말했다.

식은땀이 턱선을 타고 흘렀다.

“위험합니다. 이건 위험하다고요. 레드캡 따위랑은 궤가 다르단 말입니다.”

레드캡은 소드 익스퍼트 둘이면 충분히 사냥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놈은 나와 단을 보고 혀를 날름거렸다.

단은 공포에 몸이 굳었다.

검으로 땅을 짚고 겨우 서 있을 뿐이었다.

우르릉…….

놈은 저택의 담장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무장 방향이었다.

단이 풀썩 주저앉았다.

“허억.”

“쫄지 말라니까.”

고작 저거 보고 다리에 힘 풀리면, 내 옆에 못 있는다.

앞으로 저것보다 더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데.

“요르문간드입니다. 신화 속 괴물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많이 무섭냐?”

단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났다.

“분하지만, 마주하자마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놈의 먹잇감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저거 요르문간드 아니야.”

“……예?”

“따라 와. 저것 좀 말려야 될 것 같으니까.”

쾅!

굉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연무장의 담장이 무너져 있었다.

단은 검을 지팡이 삼아 나를 따라 왔다.

“이게 뭐, 뭐야!”

“보면 모르겠어? 뱀이잖아!”

“뭔 뱀이 이따위로 무식하게 커?”

놈은 바깥과 연무장을 구분하는 담장을 완전히 박살 낸 상태였다.

연무장에는 저택에 남아 있던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급이 다른 놈이긴 하다.

저걸 사냥하려면 소드 마스터는 데려와야 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겁을 먹을 일은 아니었다.

“야, 너희들, 등 보이지 마라.”

“지그문트 도련님? 언제…… 그보다 등을 보이지 말라니,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뱀 앞에서 뒤돌지 말라고. 산 채로 먹히기 싫으면.”

기사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

“도련님 말씀대로 해!”

가까스로 단이 그것을 말렸다.

그냥 도망치게 뒀으면 즐거운 몸속 탐험을 경험했을 텐데.

좋은 동료가 있어서 목숨을 건졌다.

운이 좋은 놈들이다.

단은 소리를 질러 놓고 뱀의 눈치를 봤다.

이목은 끈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한 기사가 내게 겨우 질문했다.

“이 뱀은 도대체 뭡니까? 갑자기 습격했는데……!”

“너희들이 저택 내에 뱀을 처리했지?”

“예?”

“대답.”

“……그렇습니다. 독사도 섞여 있었는데, 시종들을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스슷.

뱀이 기사의 면전에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기사들은 기함하며 동작을 멈췄다.

두려움에 이빨을 딱딱거리는 기사도 있었다.

본성이 나쁜 놈들은 아니었다.

그냥 멍청했을 뿐이다.

내키진 않지만 구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마이어가의 기사기도 하고.

“야, 구해 줄 테니까 나중에 니들 봉급에서 깐다?”

“…….”

그들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뱀이 면전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다.

그냥 뱀도 아니고 사람을 한 입에 꿀꺽할 수 있는 크기의 뱀이다.

주의를 끌고 싶진 않을 것이다.

“대답도 안 하고. 쯧.”

뱀은 귓구멍이 없다.

정확히는 외이(外耳)가 퇴화한 것인데, 그 때문에 청각이 매우 안 좋다.

즉, 말을 해도 못 듣는다.

기사들은 그걸 모르고 있는 듯했다.

대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도와달라는 것 같았다.

사내놈들이 애절한 눈빛을 보내니 기분이 더러웠다.

주머니를 뒤졌다.

“도련님, 뭘 하시려고…….”

“매수.”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닢 꺼냈다.

단은 금화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금화? 던지기라도 하실 겁니까?”

“오, 너 좀 예리하다? 어떻게 알았냐?”

“예?”

나는 금화를 놈에게 던졌다.

팅!

금화는 놈의 대가리에 맞고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기사들이 경악했다.

내 뒤를 굳건히 지키던 단마저 주춤 물러섰다.

“무, 무, 무슨!”

놈은 금화를 느끼지도 못한 것 같았다.

몸길이가 10미터에 육박하는 괴물이다.

이 정도로는 느낌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어쭈, 이쪽 안 보네.”

나는 금화를 한 움큼 집었다.

다시 놈에게 금화를 투척했다.

티티팅!

비늘에 맞고 튕겨 나간 금화가 연무장 바닥에 떨어졌다.

그제야 놈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야! 돈 줄 테니까 꺼져!”

“도련님! 이건 정말 아닙니다!”

단이 숨죽여 소곤거렸다.

상대는 괴물.

인간의 화폐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놈이 그냥 괴물이라면 그랬다.

스슷.

놈은 대가리를 움직여 금화 쪽으로 혀를 내밀었다.

금화를 핥아보더니, 혓바닥을 이용해 회수했다.

놈은 떨어진 금화를 전부 입안에 머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더 달라는 것 같았다.

“쯧, 욕심은 더럽게 많아요.”

고작해야 금화 몇 닢이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사람 목숨값치고는 싼 편이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화를 더 꺼냈다.

놈은 좋다고 입을 벌렸다.

“그래. 오랜만인데, 기념이다. 먹어라. 이놈아.”

나는 놈의 아가리에 금화를 던져 주었다.

비둘기 모이 주는 것처럼 금화를 뿌렸다.

금화가 들어오자마자, 놈이 답삭 아가리를 닫았다.

놈은 새처럼 고개를 들어 금화를 삼켰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왔다.

우르릉…….

놈의 근처에 있던 기사들은 졸지에 연무장의 흙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끝까지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딱 뱀 앞의 생쥐 꼴이었다.

충성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놈들이다.

스슷.

놈은 내 코앞에 대가리를 들이밀고 혀를 날름거렸다.

기사들은 숨죽여 나를 지켜보았다.

“하압!”

돌연 단이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제 딴에는 엄청난 각오를 했는지,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나는 단을 막았다.

“단, 너 뭐 하냐?”

“도련님을……!”

“됐어. 그런 거 아니니까.”

놈은 천천히 내게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그리곤 내 뺨에 대고 자신의 주둥이를 살살 문질렀다.

기사들의 입이 벌어졌다.

단도 마찬가지였다.

애정표현.

놈은 내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지금 길들인 거야? 저걸?”

길들인 게 아니라 매수한 거다.

이놈은 돈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금화 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나는 금화를 많이 주는 사람이었다.

자본주의에 물든 뱀 같으니라고.

“아양 그만 떨고 이제 꺼져.”

스스슷.

우르르릉.

놈은 내 말대로 연무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택 내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시동들은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놈을 보고 벙했다.

나는 무너진 담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뱀을 태웠던 기사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 담장은 너희들이 알아서 고쳐라?”

* * *

“저희가 저택 내의 뱀을 잡아서 그 괴물이 온 거라고요?”

“그래.”

“직접 본 이상 믿을 수밖에 없군요. 허 참, 그런 괴물이 갑자기 왜.”

“자이언트 골드라는 놈이야.”

거대한 금색의 뱀.

금화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요르문간드의 부하지.”

“요르문간드. 그러고 보니 그 말씀도 하셨죠. 정말 이 영지에 있는 겁니까?”

“그래. 확실해.”

뱀들이 경의를 표했다.

요르문간드가 확실했다.

자이언트 골드가 왔다고 해서 뱀들이 절을 하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죠?”

“저희로서는, 솔직히 자이언트 골드라는 놈도 힘듭니다.”

“기사단이 전부 있다면…….”

허세인지,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마이어가의 기사들이 전부 있어도 저놈 못 잡는다.

자이언트 골드를 잡으려면 레온하트 왕국의 근위기사단 정도는 끌고 와야 한다.

“헛소리 그만하고. 괜히 건드리지나 마.”

대부분의 뱀이 그런 것처럼, 자이언트 골드도 온순하다.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별로 없다.

뱀을 죽이거나, 성질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자이언트 골드 앞에서 석상처럼 굳어 있던 기사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 영지를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에잉,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예?”

“아니. 혼잣말이야.”

나는 혀를 찼다.

윌리엄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가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다.

지금 전력으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이성적인 방법은, 토벌대를 꾸려 오는 것이었다.

아니면 정말 영지를 포기하던가.

“그럴 필요 없어.”

그건 내가 없었을 때의 선택지였다.

의견이 묵살되자, 윌리엄이 떨떠름한 눈으로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

이 사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요르문간드다.

뱀이 모인 것도, 자이언트 골드가 출현한 것도.

전부 그놈이 이 영지 내에 있기 때문이었다.

“요르문간드 좀 만나고 와야겠다.”

직접 담판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마리나를 비롯한 시종들이 나를 말렸다.

“안 됩니다! 도련님!”

“위험합니다.”

“집사장의 말대로, 가주님을 기다리는 게.”

나는 귀를 후볐다.

충분히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호들갑이 너무 심했다.

“됐어. 갈 거야. 따라올 놈만 따라와.”

기사들과 시종들은 갑자기 딴청을 피웠다.

어지간히 무서웠나 보다.

힐데는 슬금슬금 뒤로 도망치기까지 했다.

침묵을 지키던 단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왜.”

“요르문간드는 아까 봤던 금색 뱀보다 몇 배나 강합니까?”

“글쎄다.”

몇 배라고 정확히 정의하지는 못하겠다.

강함의 절댓값은 없으니까.

“자이언트 골드는 영지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지.”

단이 침을 삼켰다.

자이언트 골드와 직접 마주했던 단이다.

거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라.

“그럼 요르문간드라면 한 나라의 수도 정도는 멸망시킬 수 있지 않겠어?”

내 말에, 기사들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자이언트 골드를 보고도 꼼짝하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 그런 괴물이 저희 영지에…….”

“지금이라도 네르갈에 연락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을 말해 줬는데, 겁을 준 것처럼 됐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해결한다니까? 나 죽으면 연락 넣든가. 일 크게 만들지 마.”

고민하던 단이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괴물과 직접 마주할 경험은 흔치 않다.

단순히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저, 저도 갈게요!”

“마리나? 너는 저택에 남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닙니다. 저는 도련님의 전속 시녀니까요!”

마리나까지 나섰다.

얘도 확실히 담이 크긴 하다.

아니면 자이언트 골드를 못 봐서 그런가?

“그래. 그럼 바로 출발하지.”

요르문간드.

놈을 찾아야 했다.

“그 전에, 여기서 큰 뱀 본 사람?”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자이언트 골드라면.”

“그거 말고. 더 큰 거.”

요르문간드는 크다.

코끼리보다 두 배 가까이 큰 자이언트 골드조차도 놈의 앞에선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모르는 사람은 움직이는 산맥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니까.

놈이 이 영지에 있다면, 영지에 들어서기 전부터 보였어야 했다.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크기였으니.

하지만 나는 놈을 보지 못했다.

영지에 남아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못 봤습니다.”

“제가 본 뱀 중에 가장 큰 놈은 아까 그놈입니다.”

“영지 사람들도 놈을 보고 도망쳤으니까요.”

“이상하군.”

나는 습관적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놈이 영지에 없다는 건가?

뱀들은 분명 예를 표했다.

왕에게 올리는 절.

요르문간드에게만 보이는 행동이었다.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어떻게 찾죠?”

단은 무장 상태를 점검하며 물었다.

마리나도 비슷한 의문이 든 모양이었다.

대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아까 그놈의 부하가 왔었잖아.”

“자이언트 골드 말씀이시군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되지.”

“아.”

우리는 무너진 담장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흔적을 따라갔다.

선명한 곡선은 길을 따라 쭉 이어졌다.

나는 흔적을 따라갈수록 기시감을 느꼈다.

“단.”

“그렇군요. 망아의 숲입니다.”

자이언트 골드의 흔적은 망아의 숲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망아의 숲은 요르문간드를 들일 정도로 크지 않다.

자이언트 골드만 따로 여기에 자리를 잡은 건가?

아니면 망아의 숲 너머에 있는 걸까.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아무래도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흔적이 숲 안쪽으로 이어져 있긴 하다만.”

나는 랜턴으로 숲을 비춰 보았다.

“썩 내키진 않네.”

땅에는 수많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작은 물웅덩이를 헤엄치는 물뱀도 보였다.

나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뱀들이 나뭇가지를 휘감고 있었다.

망아의 숲이 아니라 뱀의 숲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좋을 것 같았다.

“……어마어마하네요.”

마리나가 식은땀을 흘렸다.

여태껏 지나온 길과는 차원이 다른 밀도였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땅바닥이 안 보였다.

나는 마리나를 앞세웠다.

슥 등을 밀었다.

“이럴 때는, 레이디 퍼스트지.”

마리나는 당황했다.

“도, 도련님? 진심이세요?”

“나는 언제나 진심이야.”

단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제가 뱀을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왜 편한 길을 두고 돌아가려 그러는데?”

“마리나는 도련님의 전속 시녀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왜 산 제물로 바치려는 겁니까?”

제물?

마리나와 단의 표정을 확인했다.

마리나는 울상이 되어 있었고, 단은 측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놈들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내 설명이 부족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마리나. 팔찌.”

마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목을 가렸다.

“이건 도련님께 받은 선물이에요.”

“내가 그 도련님 아니냐?”

“하지만.”

“안 뺏어. 다시 돌려줄 테니까, 내놔 봐.”

마리나는 쭈뼛거리며 팔찌를 벗어 내게 건넸다.

나는 팔찌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팔찌 기운이 약하긴 하네.”

만들어진 지 꽤 오래된 팔찌다.

향도 기운도 거의 다 지워져 있었다.

태우면 일시적으로 효과가 강해지긴 하겠지만.

그랬다간 팔찌를 마리나에게 돌려줄 수 없게 된다.

‘마나는 될 수 있으면 아끼고 싶었는데.’

나는 팔찌 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리나가 깜짝 놀랐다.

“어?”

조잡하게 보였던 팔찌가 조금씩 바뀌었다.

팔찌를 구성하고 있던 나무가 생기를 되찾았다.

없었던 이파리도 생겨났다.

“팔찌가…….”

태초의 숲 나무들은 마나를 먹고 산다.

충분한 마나를 먹지 못했으니, 어린아이가 만든 조잡한 팔찌 같았던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마나를 먹인 후, 팔찌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 다시 차.”

내가 찰 수는 없었다.

이 팔찌는 여성용이니까.

마리나는 조심스럽게 팔찌를 손목에 끼웠다.

그러자,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스슷. 스스슷.

뱀들은 그 향기로부터 도망치듯 멀어졌다.

마리나의 주위로 길이 만들어졌다.

그 어떤 뱀도 태초의 숲에 살지 않는다.

숲 중앙에 있는, 뱀의 천적 때문이었다.

모든 뱀은 본능적으로 태초의 숲과 관련된 것을 꺼린다.

“가자.”

* * *

마나 메이즈는 이미 사라진 후였기에, 망아의 숲은 평범한 숲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자이언트 골드의 흔적을 따라갔다.

“도련님, 저기…….”

숲 한가운데, 작은 공터.

자이언트 골드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놈의 주변에는 그 어떤 뱀도 보이지 않았다.

요르문간드조차도.

“습, 잘 안 보이네.”

게다가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랜턴을 제외하면, 나무 사이로 빠져나온 달빛뿐이었다.

“마리나, 괜찮냐?”

“네. 네. 조금 무섭긴 해도…….”

단은 놀랐다.

그는 자이언트 골드와 마주했을 때 터무니없는 공포를 느꼈으니까.

마리나는 조금 떨고 있지만, 그에 비해 비교적 태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도련님의 시녀, 대단하군요.”

“네?”

영문 모를 소리에, 마리나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단의 오해였다.

마리나는 팔찌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뱀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경감된 상태였다.

더군다나 멀찌감치 지켜보는 거랑 직접 마주하는 건 달랐다.

스슷.

자이언트 골드가 대가리를 들었다.

놈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더니, 우리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걸렸군.

괜히 숨어서 지켜보는 건 무의미했다.

나는 수풀에서 나와 공터로 걸어갔다.

우르릉…….

자이언트 골드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놈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소리를 냈다.

스슷. 스슷.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뱀의 언어.

정확하진 않지만, 의역은 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골드가 다시 한번 소리를 냈다.

스슷. 스슷.

돈 많은 인간. 좋은 인간.

다행히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소리쳤다.

“요르문간드를 만나러 왔다!”

놈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다.

말을 하면, 알아듣는다.

다만.

슷.

뭐?

소리를 잘 못 들어서 그렇지.

외이가 퇴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이용해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요르문간드와 만날 때를 대비해 아껴 둬야 했다.

“요르문간드! 네 왕을 보러 왔다고!”

그러나 놈은 듣지 못했다.

대신 대가리를 아래로 내렸다.

내가 전할 말이 있다는 건 대충 파악한 것 같았다.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데, 단이 나섰다.

“요르문간드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되는 겁니까?”

내 옆에 선 단은 조금 떨고 있었다.

여전히 자이언트 골드가 조금 무서운 것 같았다.

자이언트 골드는 혀를 날름거렸다.

스슷.

약한 인간.

단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심상치 않은데?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마리나도 재빨리 나를 따라 했다.

이윽고 단의 입이 열렸다.

“요르문간드를! 만나러 왔다!”

손가락을 뚫고 들어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숲에 남아 있던 새 몇 마리가 놀라 날아올랐다.

마리나는 몇 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스스스…….

시끄러운 인간…….

청력이 퇴화한 뱀이 시끄럽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단은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기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수통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생각보다 쓸모 있는 놈이다.

스…….

음…….

자이언트 골드는 단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민했다.

대가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끝내 나를 보았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돈 달라는 거다.

이놈이 나를 아주 호구로 본다.

협상을 하고 싶었지만.

“쿨럭. 쿨럭.”

단의 목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움큼 꺼냈다.

자이언트 골드가 다급히 내게 대가리를 내밀었다.

“입 벌려.”

돈 들어간다.

* * *

마리나가 비명을 지를 정도의 낭비를 한 후에야, 자이언트 골드는 만족했다.

놈은 우리를 머리에 태워 주는 서비스 정신까지 발휘했다.

우르릉…….

자이언트 골드가 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이파리가 우수수 쏟아졌다.

단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도련님,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뭘?”

“요르문간드 말입니다.”

단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요르문간드는 강하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최종 보스가 갑자기 등장한 것과 같았다.

놈은 서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영지를 초토화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칫 나와 만나기 전에 영지를 박살 낼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벌레처럼 죽을 것이다.

“놈은 함부로 못 움직이는 상태야.”

“예?”

“계약으로 영혼에 손상을 입었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

“있어. 그런 게.”

놈이 마이어 영지를 찾은 이유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나.

요르문간드는 나의 잔재를 찾아 마이어 영지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의문이었다.

망아의 숲에 온 걸 보면, 기연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요르문간드가 어렴풋이나마 내 환생을 눈치챘다는 것.

“놈한테는 물어볼 게 많아.”

어떻게 알게 됐는지.

누가, 얼마나 내 환생을 알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만약 제국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끝이었다.

황제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레온하트와의 전쟁을 마다치 않을 거니까.

스스스.

도착했다.

자이언트 골드가 대가리를 땅 가까이에 댔다.

단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여긴…….”

“그래. 우리가 던전을 찾았던 곳이네.”

망아의 숲 안쪽.

내가 기연을 찾기 위해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은 땅.

요르문간드는 이곳에 있었다.

자이언트 골드의 대가리에서 내린 우리는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군요.”

“그러네.”

“마리나의 팔찌 때문일까요?”

“아니.”

저 팔찌는 기껏해야 평범한 뱀이 꺼리는 정도다.

자이언트 골드나 요르문간드 같은 괴물들은 영향을 안 받는다.

단은 복잡한 얼굴로 랜턴을 움직였다.

“요르문간드는커녕, 뱀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만.”

“……어? 저기, 한 마리 있긴 한데요?”

마리나가 한 곳을 가리켰다.

작은 바위 위.

기껏해야 한 뼘 정도 할 법한 길이의 작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머, 귀여워라. 도련님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새하얀 몸에, 검은 눈.

작고 앙증맞은 것이, 확실히 귀엽다고 할 만도 했다.

하얀 뱀은 가만히 우리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우르릉…….

그때, 자이언트 골드가 서서히 몸을 숙였다.

왕에게 표하는 예.

당황한 단이 두리번거렸다.

“요르문간드가 온 겁니까? 어디죠?”

“어디긴. 네 앞에 있잖아.”

“예?”

나는 하얀 뱀 앞으로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요르문간드.”

“이게…… 요르문간드라고요? 종말의 뱀?”

“그래.”

단은 미심쩍은 얼굴로 내 옆에 섰다.

요르문간드에게선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이언트 골드를 만났을 때의 압박감과 공포 같은 건 일절 없었다.

단은 요르문간드에게 손을 뻗었다.

“그냥 뱀처럼 보이는데요.”

“그렇다는데. 그냥 뱀?”

스슷.

하얀 뱀이 꿈틀거렸다.

자이언트 골드가 몸을 말았다.

순간, 하얀 뱀의 뒤로 거대한 뱀의 환영이 나타났다.

“허억.”

단이 눈을 치떴다.

산과 같은 크기의, 희고 아름다운 뱀.

뱀은 가만히 나와 단을 내려다보았다.

쩌억.

뱀이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아가리를 쩍 벌렸다.

쿵.

단은 꼿꼿하게 굳은 채로 쓰러졌다.

크게 놀란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한도를 초과한 공포로 기절한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내 쪽으로 혀를 날름거렸다.

언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자네는 누구인가?

요르문간드는 자신의 환영을 나와 단에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놈의 본체를 본 적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의 내가 비록 힘은 약하다고 하지만, 정신까지 그런 건 아니다.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까먹은 건가? 실망인데.”

-이 오만방자한 재수 없음. 익숙하군.

“그게 내 매력이지.”

-뻔뻔한 것까지 보니 그대는 델 로안이 확실하구나.

대놓고 힌트를 주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알아볼 줄은 몰랐다.

전생의 나와 인연을 생각해도.

환생을 간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요르문간드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젊어졌군. 그러나 원래의 몸은 아니야. 환생(還生)이 아니라 환생(換生)인가.

“그래. 정확히 짚었다. 어때. 좀 잘생겨졌냐?”

-인간은 전부 비슷하게 생겼다.

요르문간드는 내 농담을 흘려 넘겼다.

내가 팔을 뻗자, 요르문간드는 익숙하게 내 손바닥으로 올라왔다.

몸이 맞닿은 상태라면, 마나를 통한 언어 전달이 쉬워진다.

마리나도 있으니, 여기서는 마나로 대화하는 게 맞다.

나는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내가 환생했다는 걸 알았지?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그대라도 죽음을 거스를 줄은 몰랐거든.

-마나 서클 아홉 개를 대가로 바쳤는데, 할 만하지 않냐?

-그렇다면 드래곤들은 전부 환생했겠군.

요르문간드는 내 손바닥에서 똬리를 틀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대의 환생을 아는 자는 거의 없으니.

-거의 없다는 건, 있긴 있다는 거네.

-그대는 운명을 거슬렀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들킬 건 예상했다.

환생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힘을 모으려 했던 것이었다.

혀를 찼다.

분명 나를 없애려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들.

저택에 돌아가면 죽을 각오로 오러 연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너는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내 몸속에는 아직 그대의 마나가 남아 있다.

나는 요르문간드를 응시했다.

아주 미세하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마나였다.

요르문간드와 처음 만났을 때, 내 의지로 건넨 내 마나.

-그대가 뭔가 준비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환생을 대비한 것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서대륙에는 오직 나만 찾을 수 있도록 설계한 기연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기연 중 처음으로 변화가 생긴 망아의 숲을 찾아온 듯했다.

내 마나가 체내에 남아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너 말고는 나를 찾을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거로군.

그런 요르문간드조차도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내 환생 여부를 아는 놈들도 나를 찾지는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 적어도 당분간은. 아마 나무라면 알고 있을 거다.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었다.

가장 현실적이긴 했지만.

나는 툴툴거렸다.

-그나저나 왜 뱀까지 전부 데려온 거야? 민폐잖아.

-원래는 자이언트 골드만 데려오려 했다. 그것들은 내 기운에 자연히 모여든 것이지.

-힘 조절이 안 되나 봐?

-힘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괜히 깝죽거렸다.

지금의 나는 요르문간드는커녕 자이언트 골드조차 어떻게 하지 못한다.

이놈은 지금 나를 돌려서 까고 있었다.

약하다.

단번에 내 힘을 가늠한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내 얼굴을 보며 즐겁다는 듯 머리를 움직였다.

-재밌군. 내가 그대를 놀리는 날이 올 줄이야.

-억울하다. 오러만 없었어도.

-오러라.

요르문간드는 내 심장과 단전 부분을 번갈아 보았다.

오러와 마나가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대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다니는군.

-이것밖에 수가 없었거든. 그리고 뱀들 좀 어떻게 해 줄래? 우리 영지 망하겠다.

-아이들이 불편하다면, 물려 주지.

스스슷…….

요르문간드는 하늘을 향해 몸을 뻗었다.

그러자, 수없이 많은 기척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어 영지에 모여들었던 뱀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남은 건 요르문간드와 자이언트 골드뿐이었다.

-내가 환생했다는 걸 확인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그래. 그대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

요르문간드는 흘긋 마리나의 팔찌를 쳐다보았다.

-탄생을 찾아라.

전생의 나, 델 로안에게는 상징과도 같은 네 개의 아티팩트가 있었다.

완드, 로브, 목걸이, 그리고 장갑.

‘탄생’은 완드의 이름이었다.

-아티팩트를 찾긴 할 생각이었어.

죽을 때, 나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티팩트가 없어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아티팩트는 기연처럼 서대륙 전역에 두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탄생을 찾으라는 거지?

-다른 것들은 쉽게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탄생은 드러나 있지.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지 않나?

-제국이 그대의 아티팩트를 노리고 있다.

팔베르크 제국.

설마, 그 이름이 요르문간드에게서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탄생의 위치를 떠올렸다.

-탄생은 내 제자 놈이 가지고 있을 텐데.

완드, 탄생.

나는 그것을 내 제자에게 주었다.

나 없이 혼자 제대로 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강력한 아티팩트를 하나 쥐여 준 것이다.

-그래. 자네의 제자, 그 천방지축인 꼬맹이가 가지고 있지.

-알고 있었다면 바로 그 녀석한테 갔으면 됐잖아. 네가 찾아 주면 덧나냐?

-내가 그곳으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작은 모습이라고는 해도, 나라를 무너트릴 수 있는 괴물이다.

요르문간드가 나타난다면 필시 난리가 나겠지.

-그건 그렇군. 그런데 왜 내게 이런 걸 알려 주는 거지?

요르문간드는 의리 같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놈이 아니다.

더군다나 탄생은 요르문간드가 병적으로 싫어하는 아티팩트다.

내게 이런 정보를 일러 줄 이유는 없었다.

요르문간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건…….

* * *

“헛!”

단은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뽑아 들었다.

“요르문간드!”

“갔어.”

단은 바위 쪽을 보았다.

요르문간드가 있던 바위였다.

바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요르문간드는 곧바로 망아의 숲을 떠났다.

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요르문간드와 만났어. 단, 너는 기절했지.”

단은 30분 동안 기절해 있었다.

요르문간드의 기세에 정면으로 노출되었으니.

소드 익스퍼트라고 해도 기절하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30분이면 상당히 일찍 깨어난 것이었다.

요르문간드가 기세를 조절한 걸까.

아니면 단의 정신력이 강한 걸 수도 있었다.

“그럼 영지의 뱀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전부 다 사라졌을 거야.”

“도대체 제가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단은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러려니 넘어갈 뿐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마리나, 너는 그 거대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었나?”

“네. 저는 아무것도…….”

마리나는 기세를 받지 않았다.

요르문간드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나와 단뿐이었으니.

그녀는 환영을 보지 못했다.

“혹시 도련님께서도?”

나는 어깨를 으쓱여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단이 중얼거렸다.

“역시 본체를 본 건 나뿐인가…….”

단은 또다시 착각의 늪에 빠졌다.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자이언트 골드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도련님, 원래부터 그런 목걸이를 하고 계셨습니까?”

“이거?”

내 목에는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장식 때문에 눈에 띈 것 같았다.

“선물 받았어. 괜찮나?”

“머리색과 잘 어울리십니다.”

좀 화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옷걸이가 화려하니 괜찮은 건가.

나는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황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황제는 내가 없는 제국을 이끌고 서대륙을 통일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는 안 된다.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 꼴은 못 본다.

까드득.

“도련님?”

“어, 왜?”

“표정이, 아니, 제 착각이었나 봐요.”

나는 내 얼굴을 매만졌다.

지그문트의 기억이 섞인 뒤로, 조금 감정적으로 변했다.

환생의 부작용이었다.

무표정을 유지하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저택에 돌아가면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다.

“단.”

“네. 도련님.”

“곧 건국제 기간이지?”

“건국제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벌써 그런 시기군요.”

건국제는 1년에 한 번 있는 레온하트 왕국의 축제다.

레온하트 왕국은 비록 약소국이지만, 그 역사와 전통이 깊다.

팔베르크 제국보다 두 배는 더 긴 역사를 지닌 나라.

뿌리 깊은 나무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왕국의 귀족은 물론, 다른 나라의 인사들도 찾는 자리다.

전생의 나도 중대사가 겹치면 종종 참여했을 정도다.

그리고 팔베르크 제국은 건국제를 틈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버지께선 건국제에 자주 참여하시나?”

“그렇습니다만…….”

단은 말을 잇지 못했다.

라스는 건국제 시기가 되면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곤 했다.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즉, 라스는 루이스를 데리고 건국제에 가곤 했다는 말이었다.

얼간이인 지그문트는 집에 두고.

그것 때문에 단이 말을 못 하는 거겠지.

“됐어. 그것만 알면 돼.”

중요한 건 라스 마이어의 건국제 참가 여부다.

다행히 별일이 없는 한, 라스는 건국제에 출석하는 듯했다.

이번 건국제에 따라간다.

남작의 자제, 얼간이 지그문트 마이어의 신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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