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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1권) (1/134)

기사 가문의 대마법사 1권

글쓰냐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프롤로그

세상에 우연히 환생하는 사람은 없다

내 기연은 내가 준비한다

싸구려 발 받침대

마법사 지그문트 마이어

레드캡

그랜드 마스터 정도는 목표로 잡아야지

종말의 뱀

대마법사의 제자

1

프롤로그

인간은 대마법사가 될 수 없다고 여겼다.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수명 때문이었다.

마법의 심연을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그래서 나는 억지로 수명을 늘렸다.

그 끝에, 인간 최초로 대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 * *

테라스 위로 달빛이 내려앉았다.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팔베르크 제국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쿨럭.”

입을 막았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떨리는 손을 폈다.

주름진 손바닥에 검게 죽은피가 묻어 나왔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원히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얼마 남지 않았군.’

수백 년을 넘도록 살아왔다.

그동안 이룬 건 적지 않았다.

전 역사를 통틀어, 인간 최초로 9서클을 마스터했다.

한때 소국에 불과했던 팔베르크를 서대륙 최강의 제국으로 만들었다.

역사를 넘어, 신화라고 칭송받는 업적이었다.

‘아직 부족하다.’

테라스 난간을 붙잡았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팔베르크 제국은 머지않아 서대륙을 제패할 것이다.

죽더라도,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죽고 싶었다.

우웅.

마나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사내가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내의 주위로 마나가 일렁거렸다.

‘마법사?’

나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내 물음에, 사내는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얼굴을 감춘 이에게 정체를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래. 내 직접 알아보면 될 것을.”

사내의 양손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를 동경하는 건 좋네만, 무단 침입이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허락은 받았습니다.”

“내 허락한 기억이 없는데. 누구에게 허락을 받았단 말인가?”

“오락가락하시나 봅니다. 치매가 오신 거 아닐까 의심스럽군요.”

“자네는 젊은 혈기를 주체하는 법을 배워야겠군.”

쿵.

완드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손끝에 떠오르던 마법진이 사라졌다.

사내는 황당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마법사가 그것도 모르는가. 디스펠로 파훼한 것이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할 마법을 미리 알았는지, 그것을 묻고 있는 겁니다.”

디스펠은 상대의 술식이 완성되기 전에 술식을 반대로 풀어내는 기술이다.

상대가 사용할 마법을 정확히 알고, 개입하여 빠르게 역술식을 써내야 한다.

사용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 중 하나다.

쓸 수 있는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은 영창을 듣고, 술식을 파악해 풀어낸다.

“마법을 감추려고 영창 없이 쓴 건가?”

“그렇습니다.”

“무영창이 능사는 아닐세.”

마나의 움직임, 성질, 밀도.

마법을 예측할 방법은 많았다.

사내는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그걸 이제 알았나?”

“같은 마법사로서, 경외심이 들 정돕니다.”

“의외로군. 여태껏 내게 경외심을 느끼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말입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노인네를 왜 맘대로 보내고 그러나?”

사내가 품속에서 완드를 꺼냈다.

그보다 한 발 빠르게,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완전 속박(Perfect Restraint).

지연된 죽음(Delayed Death).

사내는 완드를 꺼내기 직전,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나는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 다시 한번 묻겠네.”

로브를 들춰 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사내의 입술이 조금씩 떨렸다.

마법?

아니다.

역술식이다.

나는 픽 웃었다.

“디스펠? 파훼할 수 없을 텐데.”

내가 사내에게 사용한 마법은 모두 내 고유 마법이었다.

술식은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평범한 마법사가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역술식으로 풀어낸다?

불가능했다.

수 년 동안 연구했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근육이 조여들어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허억……!”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몸을 뒤틀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아, 음.”

사내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집중이 깨지면서, 완전 속박이 해제된 것이다.

자유를 되찾은 사내는 손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역시 당신은 위험합니다. 대마법사, 델 로안 대공.”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무슨, 짓을……?”

“당신이 아까 했던 것처럼 디스펠 했을 뿐입니다.”

사내의 발끝이 내 가슴을 쿡 찔렸다.

“당신의 그 심장을 뛰게 하고 있는 마법.”

“……!”

사내의 말대로였다.

내 심장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늙은 심장은 아홉 개의 서클을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내 심장에 마법을 걸었다.

내 심장은 마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일무이하고 치명적인 약점.

나를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었다.

“황제……!”

“맞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허락은 받았다고.”

배신감에 몸을 떨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키우다시피 한 놈이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황제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알고 있으셨겠지요.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손에 쥐여 준 것이고요.”

사내는 혀를 쯧쯧 찼다.

“한 국가, 어쩌면 제국과 홀로 맞설 수 있는 마법사.”

“…….”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걸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그게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요.”

“흐흐, 그……렇지.”

심장 박동이 점점 약해졌다.

서클을 버티지 못한 심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다시 마법을 건다고 해도, 살 수 없겠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사내가 뭐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사내에게 손짓했다.

호기심이 일었는지, 사내는 내게 귀를 가까이했다.

나는 사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또, 보자. 이 새끼야.”

툭.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 심장을 둘러싸고 있던 마나 서클이 일제히 해제된 것이다.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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