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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편 - 마왕, 벨제불.
황녀의 모습에서 마왕의 모습으로 완전하게 탈바꿈했다. 크리프가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검이 요동치며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낸다. 주변에 있던 단원들이 크리프 주변으로 모여들어 진형을 형성했다.
"단장님……. 황녀님께서."
"황녀님이 아니시다. 마녀일 뿐이다."
단원의 물음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마왕은 여유롭게 손을 들어올렸다.
"여유롭구나."
땅이 움푹 파이더니 공룡의 입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생물체가 솟아나 크리프를 노렸다.
크리프가 검을 아래로 내려친다.
콰직.
이빨들이 부셔지며 괴수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가루 사이로 또 다시 다른 괴수들이 솟아났다. 끊임 없는 마수들의 출현에 아무리 강한 크리프라도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마왕 벨제불은 은근한 미소를 띄운채 한 발자국씩 걸어왔다.
쿠웅!
중력의 무게가 한 발 한 발 무거워지며 크리프와 단원들을 짓눌렀다. 그에 반해 마족들과 마수들의 힘이 더욱 강력해지는 듯 했다.
"칫, 롤링 크러시(Rolling Crush)!"
검에 마나가 뭉치며 맹렬히 회전한다. 그대로 달려들었다. 분명히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건만 벨제불의 표정 그 어디에서도 불안한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검이 거의다 다다랐을 때 쯤 벨제불이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으로 검을 잡는다.
콰과과곽!
오러의 회전이 강제로 멈춰지자 자연스레 스킬이 취소가 되며 사방으로 퍼진다.
스콰악!
벨제불의 손이 묵빛과 자줏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검의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래, 인간들은 검이란 것을 무기르 쓰지.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검이 크리프의 복부 정중앙을 꿰뚫었다.
"다, 단장님!"
"단장님!"
기사단원 세 명이 그것을 보고 덤벼들었다. 오러를 머금은 날카로운 검세가 벨제불의 심장과 머리, 어깨를 노렸다. 어디 한 군데만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있는 곳이었다. 순간 단원들의 밑에 땅이 갈라진다.
쩌저적!
균형을 잃은 한 명이 균열 틈으로 빨려들어갔다.
"으흣!"
단원 한 명은 뒤에서 덮친 가고일에 의해 하늘로 올라간다.
서걱!
검을 휘둘러 다리를 자른다.
─카아악!
고통에 소리치는 가고일. 그 위에서 나타난 다른 마족 하나가 단원의 목을 움켜쥐고 힘을 주자 혈관이 터지며 그대로 즉사했다. 마지막 단원이 돌격에 성공해 벨제불의 머리를 노렸다.
푸학!
하지만 검 끝이 닿기 전에 몸이 멈추더니 모든 모공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쓰러졌다.
"자기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덤비니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크리프가 불에 지진듯한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벨제불의 눈을 쳐다보았다.
"황녀님은 도대체 어찌한 것이냐."
"호오, 너의 고통은 분명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일 것인데 남먼저 생각하는 것이냐. 황녀? 그래, 이 몸 말인가."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셨다.
"내가 먹었다."
그녀가 비릿하게 웃는다. 크리프가 올려진 손을 잡고 아직 놓치지 않은 검을 휘두른다.
까앙!
하지만 마나를 불어 넣지 못한 검은 상처하나 주지 못한채 검은색의 갑주에 퉁겨져 나왔다. 한 편 그 모습을 본 톰백이 전방에서 적들을 막는 것을 그만두고 달려왔다.
"이 놈!"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섞인다. 분명 크리프보다는 어설프지만 오러 블레이드였다.
"호오, 분명 응축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이 적다 들었는데 소환된 첫 날 부터 많은 놈들을 보는구나."
크리프의 뱃속에 박았던 손을 빼내자 힘을 잃은 크리프가 바닥에 쓰러졌다. 몸에 힘이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피부가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독에 중독된 것이다. 톰백이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다.
"캐스캐이드 브레이크(Cascade Break)!"
마치 자석처럼 땅에있던 모래와 돌들이 딸려오며 폭포처럼 단계적으로 벨제불을 노린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주변에 모래먼지가 일었다. 그 사이에 크리프를 빼내어 뒤로 물러섰다.
"내 직속은 나를 따른다! 벨제불의 목을 칠 것이다!"
"충!"
"충!"
주변의 기사들이 달려왔다. 그 수가 처음에 비해 줄어들었다.
"단원들의 수가……."
크리프가 주변을 살피자 분명 느리지만 단원들의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고 반대로 마족들과 마수들의 숫자가 어느새 하늘과 땅을 메웠다. 이제는 후퇴조차 힘들어 보였다.
"……단장님께서……."
아르센을 불러보는 크리프. 하지만 오기란 분명히 요원한 일이다. 단원들이 벨제불을 막으러 달려들었다.
"분명히 오실겁니다. 아르센 단장님께서는……."
톰백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크리프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와야지. 내가 아픈데."
* * *
"당연히 가야지. 마왕 경험치 혼자 먹게 냅둘 수는 없잖아."
아르센이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맞바람을 느끼며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앞에서 달려들던 마족의 몸이 회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불처럼 타올라 재가 되었다. 아무리 많은 마족들이 앞을 막았지만 어림 없었다. 아르센과 블루윈드 기사단이 내뿜는 기운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아이조드와 에릭센이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아르센의 뒤를 맡는다.
"단장님,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아이조드가 신음성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마왕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느껴집니다."
"……."
"혹여나 힘을 다 찾았다면……."
"……모든 변수는 제외한다. 2기사단이 마무리 짓기전에 빨리 도착한다."
"충."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걱정되는 마음은 아르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군대였지만 알고지낸지만 4년이 다 되갔다. 그 동안 자신이 소개해준 여자랑 결혼까지 성공해서 애를 둔 유부남이기도하고 자신을 가장 잘따르는 동생이었다.
"속도를 더욱 높힌……."
순간 앞에 거대한 덩치의 괴수들이 나타났다.
"……드레이크."
자연적인 드레이크를 죽여 본 드레이크로 만들었는지 뼈만 앙상했지만 요상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속도를 더욱 높힌다. 우리 앞에 방해물이란 존재치 않는다."
아르센의 마나 섞인 말에 단원들이 창과 검을 더욱 꽉 쥔다.
"충!"
"충!"
"충!"
* * *
다른 단원들이 달려오고 있을 때에 크리프와 2기사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중과부적.
지금 그들에게 설명하기 딱인 상황이었다. 처음에 나왔던 힘없고 약했던 그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강력한 마족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고 힘에 부친 단원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그럼에도 악기를 품은 단원들은 죽을때까지도 마족들의 목에 칼을 쑤셔박고 같이 동귀어진했다.
"왜 오지 않느냐."
벨제불의 몸에서 옅은 붉은색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고 단원들이 달려들때마다 붉은색의 마나가 그들을 막아냈다.
"칫."
단원들이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이미 마왕의 주변엔 전우들의 시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힘. 그들 전체가 덤벼도 어찌하지 못했다.
"2기사단은 쫄보들밖에 없는 거냐. 쫄보충 극혐."
톰백이 크리프를 뉘인 상태에서 검을 쥐고 벨제불을 향해 걸었다.
우우웅!
톰백이 마나를 불어넣자 오러가 빠르게 뿜어져 나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
벨제불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단원들의 사이에 갇혀있음에도 여유로웠다. 톰백이 자세를 낮춘채 달려들었다. 투구 사이로 벨제불의 심장이 보였다. 그 심장을 노리고 검을 찔러넣는다.
쇄애액!
파공성이 사방을 울린다.
"커즈 오브 어비스(Curse of Abyss).
벨제불의 몸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톰백의 앞에 서 있었다. 톰백의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턱.
벨제불의 발이 톰백의 가슴팍에 닿았다.
쿠웅!
고오오오!
그대로 밟아 내려찍자 발 밑 아래 뉘여진다. 그리고 엄청난 중압감이 톰백을 향해 집중되었다.
"쿨럭!"
한 웅큼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지켜보던 단원들이 다시 한 번 달려든다. 푸른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찌르는 순백색의 검은 마족들과 마수들 사이에서 빛이 났으나 힘의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왜 인간들의 세계에 계급이 있는지 아는가."
톰백을 밟아놓은채 손을 들어 내려찍자 허공에 마법진이 수 십개가 형성되더니 마법진의 중앙에서 마수들의 손과 입이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그대로 기사들의 몸을 도륙내거나 삼켜버려 마법진 안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수 십의 기사들이 죽어버린 것이다.
지켜보던 크리프도 톰백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여기 있는 놈들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해. 나는 마왕이다."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이 어둡게 드리워졌다.
"아……."
"아……."
단원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일정부분만 먹구름에 드리워졌으나 이제는 태양까지 가려버렸다.
출렁.
그리고 갈라진 틈에서 더 이상 마수들과 마족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엄청난 열기의 용암이 출렁이며 흘러나왔다. 들풀과 들꽃들이 그대로 불이 붙어 타오른다. 하늘에서는 아까보다 몇 배의 마족들과 마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원들의 몸에 스며드는 공포감과 두려움. 제국의 최고 기사단으로써 느끼지 않을거라 생각했건만 지금 그들이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왕이다. 마계의 왕."
벨제불의 말에 마나가 실려있는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콰직.
그 상태에서 발에 힘을 주자 푸른 갑주가 움푹 패이며 톰백의 갑주가 일그러진다. 그 만큼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도 증가했다.
"내 사랑스런 군단의 먹이가 되어라. 조무래기들아."
눈에서 주황빛과 검묵빛의 안광이 뿜어진다.
푸욱.
그대로 발이 갈비뼈를 으스러뜨리며 톰백의 몸을 관통했다. 동공에 힘을 잃는 톰백.
"토, 톰백!"
크리프가 울부짖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 2기사단 부단장 톰백 사망.
블루윈드 기사단에서 첫 간부의 사망이었다. 복부에서 나오는 피는 멎었지만 온 몸에 힘이 풀려 제 몸 가누기도 힘든 크리프였다.
"애, 애초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톰배애액! 톰백! 과, 광휘야! 광휘야!"
뒤에서 커다란 외침과 함께 크리프의 옆을 지나갔다. 이미 그의 눈은 이성을 상실해 있었다.
"아, 안돼! 포, 포금!"
톰백의 쌍둥이 형제 포금이 이성을 잃은채 달려들었다. 그의 검에 압축되고 정제되어 날카롭게 정련되어있어야할 오러 블레이드가 모습을 잃은채 마나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