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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편 - 퍼져나가는 소문들, 들어오는 사람들.
아르센이 숨을 고르며 칼리엄 소드를 검집에 넣고 바닥에 앉았다.
저벅 저벅.
연무장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음인가.
발걸음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아, 여기 계셨습니까."
눕이 안으로 들어왔다.
"음……, 눕. 오랜만이군."
"그렇습니까? 반마족이 물러간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아르센이 일어나자 언제 다가왔는지 에일리가 외투를 가져다준다.
"고맙다. 에일리."
"히히."
에일리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보름 동안 코빼기도 안보이던 양빈이 여긴 왠일인가."
눕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르센을 본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요즘 퍼지고 있는 소문을 듣고는 계십니까?"
"소문?"
"그렇습니다."
아르센이 호기심이 동했는지 눕을 쳐다본다.
"요새 노래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로 많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노래? 노래는 나도 아이들이 부르는 걸 듣긴 들었지. 근데 이야기라니?"
"이야기는 아마 가장 최근에 퍼진 것 같습니다."
"내용이나 듣지."
"네."
눕이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음, 여기 적혀있는 대로라면 하늘에서 여신이 내려와 용사에게 힘을 주었네. 그래서 달려드는 마족들을 물리치고 북쪽의 성을 지켰네."
"흠? 우리 얘긴가?"
"그렇습니다. 여기서 여신은 아마 황녀님을 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용사는 당연히 아르센님이고요."
아르센이 입꼬리가 움찔했다.
"……흠흠. 계속 말해보게."
"네. 그 다음은 사람들이 몰려와 성을 가득 메우니 땅이 부족하다네. 날이 풀려 꽃이 피고 바람이 일면 성문을 열고 내려와 혼란 스러운 이곳을 평정한다네."
눕이 양피지를 적었다.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아르센님이 아마 이 전쟁을 마무리 짓는다는 그런 너무나도 일반적인 용사의 이야기입니다. 왕으로 가는."
"……흠."
아르센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설마. 그렇게 될라고."
"……."
눕이 무언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르센님."
아르센이 말하라는 듯 턱을 매만진다.
"제가 아르센님의 눈이 되겠다고 한 말 기억하십니까?"
"아아. 그때 술 취해서 한 말 아니었나?"
"……서운합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안보이니까 도망간줄 알았지."
"그동안 정보길드를 재정비하고 저만의 독자노선을 만드느라 힘들었습니다."
눕이 억울 하다는 듯 쳐다봤다.
"여튼, 그래서?"
아르센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눈을 피해 안으로 걷는다.
눕이 따라 걸으며 말했다.
"정말, 한 번. 나라를 세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
아르센이 피식 웃었다.
"나는 왕이 아니라 황녀님을 지키는 일개 기사일세."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너가?"
눕이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묻는다.
아르센과 에일리는 어느새 눈을 피해 건물의 처마 밑으로 피했다.
"정말, 마탑 이후로 아르센님의 눈이 되기로 한 이후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런데……, 아르센님이 계신 곳은 지금으로서는 갈 수도 없는 곳일 뿐더러, 멀지 않습니까."
"그렇지."
"칼리엄 제국이라는 곳은 처음 들어봅니다. 아마 카르다니아 대륙이 아니라 다른 대륙인 듯 한데 가운데 거친 해류와 몬스터들이 막고 있어서 가기는 아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눈이 눕의 머리와 어깨로 천천히 쌓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정국이 혼란스럽습니다. 모두가 왕을 자처하고 일어나고 있으며, 그 중 북방의 다리우스와 붉은사냥개 폐루가 나머지를 평정하고 2국 체제로 현재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헌데, 봄이 끝나면……. 아마 전쟁이 시작 될겁니다. 이건 기회입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마련입니다."
"……."
둘의 대치상황은 몇 분이고 지속되었다.
"왕이라……."
아르센이 눈을 감았다.
"왕이라……."
눕의 머리와 어깨에는 어느새 소복이 쌓였다.
"일단 지금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군."
아르센이 눈을 다시 뜨고는 등을 돌렸다.
"아르센님……. 언제든 저는 아르센님의 눈이 되겠습니다. 동생을 구해주신 은혜……,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뒷말은 흐트려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저벅.
눕이 걸음을 돌려 들어왔던 곳으로 나간다.
"왕이라……."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
눕이 깜짝놀라 쳐다본다.
스릉.
품에서 단검을 꺼내든다.
"누구냐!"
황녀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눕으로써는 이 연무장에 출입하는 여자는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스윽.
눕의 목에 서슬퍼런 날이 닿았다.
"단검을 내려라."
아이조드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단검을 내려놓는다.
"무릎을 꿇어라."
"너희는 누구냐."
"황녀님께 무슨 무례냐."
"황녀……."
정신을 차린 눕이 황급히 무릎을 꿇는다.
"화, 황녀님을 뵙습니다."
황녀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일으켰다.
"일어나거라."
"……예."
"아르센 보고 왕이 되라 하였는가."
"……."
눕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황녀라 들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이들은 결국 제국의 기사단이고 자신은 굴러들어온 돌인 것이다.
'생각이 짧았다.'
눕이 질끈 감은채 생각했다.
"왜 대답이 없는가."
"……예. 아르센님 보고 왕이 되라 하셨습니다. 제가 눈이 되겠다 하였습니다."
"너가 무엇이기에."
"……정보길드장입니다."
"정보길드라……. 눈이 될 수 있느냐?"
온화한 미소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
"헌데, 왜 눈을 질끈 감고 보려 하지 않느냐."
그제야 눕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뜬다.
온화하고 자상한 미소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어차피 죽은 목숨."
눕이 결심한 듯 말했다.
"칼리엄 제국. 제가 정보길드에 몸을 담은 지난 십수년동안 들어본적도 없는 나라입니다. 대륙 어디에서 없는 나라이거늘. 그런데 갑자기 뚝하고 나타나 칼리엄 제국의 기사단이라 하며, 심지어 황녀님께서도 나타났습니다. 일개 마적무리가 아니라 진짜 오러를 쓸 수 있는 소드 익스퍼드 유저들이었습니다."
눕이 눈치를 살핀다.
허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예의 자상한 미소만 띄울 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딱하니 나타나 룐 성을 점령했습니다. 덕분에 구출된 저와 저의 동생을 구해준 아르센님의 눈이 되겠다 하였습니다."
"근데 어찌 왕이 되라 했는가."
"지금 나라는 엉망입니다. 배이제 제국은 망했고, 귀족들은 썩을대로 썩었으며 각 귀족들이 자신들의 사병을 끌고 각자 왕이라 칭하며 나라를 무수히 만들고 또 많은 숫자의 나라들이 스스로 망해갔습니다."
눕이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말을 잇는다.
"지금 큰 세력이 두 개 있는데 폐루와 다리우스라는 자입니다. 만약 그 둘의 전쟁이 끝나 하나가 정권을 잡게 되는 순간……."
"아마 산적과 마적, 반란군의 토벌 목적으로 주변에 병력을 보내겠지."
황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마지막에는 아르센님이 이끄는 이 기사단일 겁니다. 반란군이라는 핑계로 서서히 옥죄어와 죽일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는가."
"그 전에 뒤를 쳐야합니다."
이미 구체적인 생각까지 있는지 눕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르센이 왕이라……. 재밌군."
"이제 다 말했으니 저를 죽여주십시오."
"왜?"
"……?"
황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죽이겠느냐. 좋다. 너의 생각은 한 번 고민 해보지."
"……?"
이해할 수 없는 말.
황녀라는 자가 자신의 부하가 왕이 된다는데 생각을 해본다니.
"……."
유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는 그였기에 당황했다.
그것은 아이조드 역시 마찬가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조드. 가만히 있게나. 이곳은 더 이상 칼리엄 제국이 아니야."
"그럼에도 황녀님께서 살아계시지 않으십니까. 칼리엄 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아보겠습니다."
"……어느 세월에."
"……그럼 진짜 아르센 단장님을 왕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아이조드와 눕이 그녀를 바라봤다.
"어쩌면……."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등을 돌려 간다.
"화, 황녀님! 말씀해주십시오! 이것은 황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황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띄며 총총 걸음으로 사라진다.
다만 홀로 남은 눕만이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있었다.
* * *
반마족이 물러간지 한 달 반이 지났다.
룐 성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가득 찼다.
포화상태를 이미 넘긴 상태.
밖에서는 산에서 구해온 목재로 판자집을 짓는 이들이 늘어났고 동사자들과 아사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겨울이라 나무와 식량을 구하기란 마치 하늘의 별따기 였다.
그래도 전부 떠나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 덕분이다.
"그 분은 진짜 성녀님이셔."
"아니야, 여신이셔."
황녀는 매일 아침에 나가 아픈 자들의 몸을 살피고 배고픈 자들에게 자신의 식량을 나눠준다.
또한 자신의 외투까지 벗어 헐벗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당황하고 거부했지만 오히려 황녀의 간곡한 요청에 다들 감동했다.
그것은 곧 천천히 신앙으로 변해갔다.
마치 여신처럼, 성녀처럼.
그녀는 룐 성의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만들어졌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그때 룐성의 남쪽에서 엄청난 양의 수레가 오고 있는게 보였다.
끼이익.
남쪽 성문이 활짝 열린다.
그러자 성문 밖에 판자촌에 겨우 목숨을 연명하던 이들이 스물스물 나와 수레들과 열린 성문을 본다.
안씻은지 오래되서인지 심각한 냄새와 모습은 거지들을 연상케한다.
다그닥.
열린 성문에서 황녀가 나오자 모두들 진심어린 표정으로 엎드렸다.
"모두 일어나세요. 저는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황녀가 말에서 내려 직접 손을 잡고는 일으켜 준다.
"오오오, 미천한 제 손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녀가 웃으며 바라본다.
[스킬 - 위안방문을 사용했습니다.]
[황가의 여식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입니다.]
[방문한 지역의 치안이 올라갑니다.]
[방문한 지역의 충성심이 올라갑니다.]
[주변에 산적과 마적들의 수가 줄어듭니다.]
[굶어죽는 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합니다.]
마치 황녀의 주변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스킬 - 황녀의 존재를 사용했습니다.]
[히든 클래스 여제의 상(女帝之相)의 특수 스킬.]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의 빛이 난다.]
[빛을 본 백성들의 충성심이 극대화 된다.]
[초당 2의 마나를 소모한다.]
모든 이들이 우러러본다.
만약 황녀가 없었다면 아르센과 일행들은 일찍이 룐 성을 떠났을 것이다.
드르르륵.
어느새 수레가 황녀의 앞으로 도착했다.
수레의 가장 앞에는 Hooke가 서 있었다.
가장 이곳 백성들과 닮은 이가 Hooke였기 때문이다.
"신 Hooke가 황녀님을 뵙습니다."
"일어나게."
"충."
"모두 가져왔느냐."
황녀의 말에 Hooke가 뒤를 돌아본다.
5기사단원들 전부가 수레를 끌고 온 것이다.
"모두 조심스럽게 나눠줘야한다. 혼란을 빚을 수 있으니."
Hooke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충."
황녀가 수레를 들추자 먹을 밀과 얼은 고기, 오크통에 담겨져있는 우유들이 있었다.
"뒤편에는 옷가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황녀님께서 말씀하신 그들도 데리고 왔습니다."
Hooke의 말에 황녀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분류하고 백성들에게 나눠줄 준비를 해주겠나."
"충."
"그리고 그 분들을 내 방에 보내주게."
"충."
황녀가 성 안으로 말을 타고 들어간다.
뒤로 수레가 따랐다.
밖에 있던 이들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지나가는 수레를 쳐다본다.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 ㅎㅎㅎㅎ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성 만들기ㅎㅎㅎㅎㅎㅎ
쉬어가는 편입니다ㅎㅎㅎ
댓글들이 많아서 질문 몇개만 간추리겠습니다^^
DarkCircleMan님 게임속 유저들의 충성심이 너무 과하다 하신 질문. 저도 이해 합니다. 같은 유저이니까요ㅎㅎ
지금도 리니지나 카발 같은 경우에도 길드장에게 길드장님 하면서 꼬박 존댓말도 쓰고 하잖아요ㅎㅎ
설정상 가상현실게임이니 실제와 같이 보면서 플레이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 설정이라고 보시면 되요.
조금 두서가 없는데 죄송합니다ㅎㅎ;;;
그냥 자기 캐릭터에 맞게 설정잡고 플레이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ㅎㅎ
황녀가 앞부분에서 철부지 였던건 제가 좀 실수를 많이했어요ㅠㅠ
캐릭 설정하다가 많이 꼬여버렸네요ㅠㅠ 이건 진짜 제가 골백번이고 죄송합니다ㅠㅠ 부족한 작가의 실수라고 생각하시고 좋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나기사러브님 국가만들면 칼리엄 소드 못쓰는거 아니에요? 라고 하셨는데ㅎㅎㅎㅎ 넵. 못쓰겠죠? 아직 어떻게 할까 구상중이라서요ㅠㅠ
그리고 진짜 저도 프롤로그가 끝난 듯한 느낌.. 이제 시작인것 같아요ㅎㅎㅎ
항상 많은 관심과 비판, 오타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