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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아래서-111화 (11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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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편 - 차원이동자.

다들 복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충! 아르센 단장님. 황녀님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그렇습니다."

춥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까 마신 맥주때문인지 볼이 붉으스름했다.

"다른 단장님들과 몇몇 단원들까지도 모여있습니다."

"알겠다."

아르센이 빠른 걸음으로 마을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가장 상석에 황녀가 앉아 있었고 밑에 에릭센, 크리프, 톰백, 포금, 샤르피, 세미킬드, 림드강, 미소, 베어링, Hooke, 라우탈이 있었다.

단장, 부단장들을 제외하고도 이십 여 명이 더 자리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유저들?"

아르센이 들어오면서 의문에 띈 얼굴로 들어오자 다들 목례로 간단히 예를 갖춘다.

"왔는가."

"신 아르센, 황녀님을 뵙습니다."

"그래. 전부 모였구나."

황녀가 무심히 상석에서 그들을 쳐다본다.

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마을 회관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단상과 그 위에 성주가 쓰던 화려한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의자 앞에 전부 모인채 침묵을 지켰다.

가장 먼저 고요를 깬 건 황녀였다.

"전부 이곳에 왜 온 것인지 이유를 모를 것이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전부 유저만……."

비록 후판은 중상을 입어 못왔다지만 이 멤버는 유저들 아닌가.

황녀가 목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들었다.

아르센은 저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구출하고 엘리시움 성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때 저 목걸이 빛이나며 허공에 붕뜨더니 이내 자신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의문의 사내까지.

"이곳은 현실이야."

황녀의 뜬금 없는 소리.

"무슨 소리냐는 듯 하군."

"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미소가 의문을 표한다.

"다시 말해주겠노라. 이곳은 현실이다."

"……현실이라면?"

"이곳은 게임 속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본다.

"황녀님. 아무리 오류가 나 게임이 이동이 되었다 한들 어째서 현실이라고 하십니까. 어제만해도 반마족들을 보았고 지금까지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마법들과 몬스터들. 어찌 이곳이 현실이란 겁니까?"

미소가 묻자 황녀가 목걸이를 흔든다.

"미소."

"충. 하명하시옵소서."

"차원이동이라고 들어보았는가?

미소가 당황한다.

"못 들어봤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차원. 그러니까 아예 다른 지구로 왔다고 보면 된다."

그 와중에 황녀의 목소리는 옥이 굴러가는 듯 맑고 청아했다.

"어찌……."

말도 안된다고 묻는 것이다.

"그럼 로그아웃도 안되고 전혀 다른 곳이고. 고통도 기존 게임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은가?"

"……."

"그리고 후판. 후판 일은 안됐다만 만약……, 후판이 죽으면. 실제로 죽는다."

"……!"

미소의 눈이 커졌다.

오류가 나 혹시나 했지만 황녀의 말을 듣자 걱정이 더 커졌다.

"아르센은 혹시 눈 앞에 이상한 자를 보았는가."

"……엘리시움 성 앞에서 말씀이십니까."

황녀가 조용히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보았습니다."

"그 역시……, 차원 이동자다."

"……그 말을 지금 저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전부 유저만 있으니 이야기가 편할꺼라 생각했는데."

황녀가 목거리를 매만졌다.

"그는 현실에서도 나에게 찾아왔었다."

"언제……."

아르센이 조심히 물었다.

"너와 내가 헤어진 날. 그 날 내 마음도 모르고 하늘은 쨍쨍했지."

"……."

황녀의 말에 다른 단장과 부단장들이 이크 하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살짝 빠진다.

"……그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

황녀가 말 없이 쳐다만 본다.

아르센 역시 마찬가지.

그녀를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엉켰다.

황녀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나보고 차원 이동을 하라더군."

"……그래서 어찌 하셨습니까."

"싫다했지."

아르센이 내심 안심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부를 보내버렸더군."

"……."

"처음엔 나도 안 믿었네. 차원이동이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차원이동이란 말을 믿겠는가.

"그리고 이곳에와서 로그아웃이 안되고, 실제로 화살에 찔려보니 고통이 완화 없이 그대로 느껴졌었지."

"……활에 맞으셨습니까."

"……걱정되는가."

"……안됩니다. 그저 옥체에 손상이 가 칼리엄 제국의 지존이신 황제 폐하께서 노하실까 걱정이 되었을 뿐입니다."

아르센과 황녀가 서로 째려본다.

옆에 있던 다른 인원들은 심각한 상황에도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다.

"여튼, 시간이 지날 수록 확실해졌다. 이곳은 지구와 똑같은 곳이야."

"……."

"나에게 마지막에 이 말을 하더군. 답을 찾아라."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랑 같네."

"그렇습니다."

황녀와 아르센이 다시 째려보다가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주위를 살핀다.

"웃흥."

"꿀잼. 크흐흐."

"도그허니잼. 크큭."

크리프와 톰백, 포금이 옆에서 둘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옆을 보니 샤르피와 세미킬드, 림드강이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미소와 베어링은 마치 주말 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Hooke와 라우탈만이 표정변화가 없을 뿐이었다.

황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일은 그 답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황녀가 다시 분위기를 잡고 말했으나 이미 분위기는 넘어간 상태였다.

뭔가 멜랑꼴리한 분위기.

그때 크리프가 초치는 한 마디를 한다.

"아, 맞다. 에일리는 어쩌지?"

황녀의 부끄럼타는 표정이 싹 가시며 정색한다.

"에일리?"

아르센 역시 당황하다가 곧 정색한다.

"황녀님."

쿵!

무릎을 강하게 찍으며 머리를 숙였다.

"신! 아르센이 생각해옵건데! 지금은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듯합니다! 우선은 룐성의 치안과 내정을 다지고 황실의 위엄을 세운 후에라야 그 답이 보일 것 같습니다!"

"……에일리?"

상관없다는 듯 황녀가 크리프를 바라본다.

크리프는 진땀을 빼며 뒤로 물러선다.

"그냥 뭐, 어린 아이입니다. 우리 또래로 보면 그냥 중학교 3학년 정도?"

"……에일리?"

황녀의 똑같은 의문에 크리프가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냥 저를 따라다니는 착한 아이일 뿐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마침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안에 들어가면 안돼요?"

"에일리양 안됩니다."

"……왜요? 안에 아르센있지 않아요?"

"단장님이 있긴한데 황녀님도 같이 계십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네, 에일리양도 수고하세요."

밖을 지키던 단원과 에일리의 말은 안까지 전부 들렸다.

"에일리라는 소녀를 안에 들라하라."

황녀가 말하자 크리프의 안색은 거무티티하게 변했다.

아르센이 스킬 투지를 쓴 후 모든 투지를 자신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 모양.

넌.죽.었.다.

크리프가 코를 한 번 훌쩍인다.

"아르센. 지금 무엇을 하는 건가."

"……아닙니다."

문이 열리고 에일리가 들어왔다.

에일리가 들어오자 정색하고 있던 황녀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진짜 말 그대로 중학생이기 때문이다.

애기나 다름 없는 모습.

황녀가 살짝 미소를 띄며 에일리에게 물었다.

"소녀는 누군가."

무릎을 꿇고 있는 아르센 바로 옆에 다가가 엎드린다.

"소, 소녀 에일리라 하옵니다."

흑발과 흑안. 그리고 백옥같이 흰 피부.

그곳에서 풍겨져오는 황가의 위엄과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그에 반해 자신은 자작의 일개 하녀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청아하고 맑은, 잡티 하나 없는 목소리다.

에일리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 소녀의 나이는 올해로 열일곱입니다."

"……아직 소녀이구나. 좋은 나이다."

"가, 감사합니다."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떨렸다.

아르센이 가엾다는 듯 에일리를 바라본다.

"그래, 아르센은 무슨 연고로 찾았느냐."

황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그득했다.

아르센이 이런 어린 아이에게 못된 마음을 품었을리 없지 않은가.

그저 동생처럼 돌봐줬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 밤 소, 소녀와 같이 있어주기로 하였사옵니다."

"……."

황녀의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다른 단장과 부단장, 그리고 단원들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려던 순간 그대로 굳었다.

"밤에?"

"그, 그렇습니다. 평소에도 같이 밤을 보내고는 했사옵니다."

에일리의 말은 제노니아 백작성에서 탈출이후 말안장 위에서 밤길을 걷는다거나 노숙을 뜻하는 것이다.

"아르센……."

"신 아르센. 여기 있사옵니다."

아르센이 고개를 죄인처럼 떨구었다.

"취향이 많이 바뀌었구나. 어린 아이가 좋아졌느냐."

"아닙니다. 그저 제가 처음 왔을 때 언어도 모르고 했을 때 도움을 주고 죽을 뻔한 것을 도와주고 나서 저와 둘이 아니라 기사단 전체와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이 있어준다는 것은 다른 단원들과 노숙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르센. 예전보다 말이 늘었구나."

"……."

"에일리라 했느냐. 고개를 들라."

에일리가 고개를 살짝 든다.

아직 애기살이 빠지지 않아 앳된 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가슴도 살짝 봉긋하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래, 아르센과 밤에 무엇을 했느냐."

에일리가 주위 분위기와 황녀의 말투에 여자의 직감으로 눈치를 챘다.

잘못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에 황급히 말했다.

"화, 황녀님. 황녀님께서 생각하시는 밤일은 아직 안했사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귀족의 하녀로써 배운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분위기를 눈치챈 에일리가 급히 고개를 조아린다.

"제,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몸이 바르르 떨린다.

허나 황녀의 시선은 아르센을 향했다.

"……아직 안했다는구나. 아직……."

"……."

아르센이 이미 포기한 상태로 황녀를 바라본다.

"취향이 많이 변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피곤하구나. 물러가고 나중에 차원에 관해 다시 부르겠다."

모두 일치단결하여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다.

"충!"

"충!"

"충!"

그리고 빠르게 빠져나갔다.

뒤도 안돌아보고 말이다.

황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에일리 앞에 다가가섰다.

그러더니 조심히 상체를 일으켜준다.

"아가야. 너무 무서워 하지말거라."

온화한 미소.

에일리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예, 예. 흑, 스읍!"

황녀가 에일리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는 영혼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아르센의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귓가에 입을 갖다대고는 한 마디 했다.

"변태……."

황녀가 그대로 일어나 나갔다.

아르센이 한 숨을 푹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후!"

"아, 아르센. 왜? 내가 잘못했어?"

에일리가 퉁퉁부운 얼굴로 쳐다본다.

"……아니다. 잘했어. 가자."

힘이 축 빠진채 마을 회관을 벗어난다.

"오와~! 눈이다! 눈 와 아르센1"

"……그래. 눈이네……."

지구가 망할 것 같은 표정.

그의 눈에 톰백이 보였다.

"톰백."

"충. 칼리엄의 영웅이신 아르센 단장님을 뵙습니다. 미천한 제가 아르센 단장님 앞에 서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크리프."

톰백은 바로 눈치를 챘다.

"포금과 제가 막으려 했으나 자신이 오늘 순찰할 시간이라고 2기사단원들을 데리고 순찰을 갔습니다."

"……."

"제가 바로 잡아오겠습니다."

"……내가 직접간다."

"……꿀꺽."

톰백이 침을 삼킨다.

그는 악마를 보았다.

어제 싸운 반마족 보다도 악마같았다.

"아르센? 그럼 오늘 밤은 어떻게 해?"

순수한 목소리.

아르센이 웃는다.

"걱정마라. 크리프하고 같이 가겠다."

"히히. 알겠어!"

에일리가 사라지자마자 아르센의 눈동자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제,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빨리."

"추, 충!"

그 날 룐성에 밤이 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렸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 하루만에 한 챕터 끝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다남은개미님 첫코 축하드립니다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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