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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아래서-110화 (110/173)

0110 / 0173 ----------------------------------------------

제 32편 - 차원이동자.

한 겨울.

매서운 찬 바람이 성벽위를 훑고 지나간다.

"시발. 존나 춥네."

"그렇습니다."

성벽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병사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저 앞에 또 다른 성이 보인다.

그 위에 깃발이 붉은색 바탕에 금색 활과 대거가 박혀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붉은 사냥개 폐루의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벅 저벅.

밑에서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 벌써 근무 교대 시간이냐?"

"아닙니다."

"그럼 순찰시간이야?"

"방금 왔다 갔습니다."

"알아. 근데 왜 발자국 소리냐. 적이냐?"

"성 안쪽입니다."

계속 묻다가 열이 난 초장이 초병의 머리를 때린다.

"그니까 누군지 보고 오라는거 아니야! 눈치가 없어요! 눈치가!"

"아, 아닙니다! 가, 갔다 오겠습니다!"

초병이 당황하며 뒤를 돌아선다.

"어버버……."

허나 초병이 말 없이 초장의 몸을 툭툭 친다.

"……선임을 쳐? 이게 미쳤나……. 히끅."

초장 역시 얼굴이 샛누렇게 변했다.

"충! 근무 중! 이상 무!"

걸어올라 오는 것은 다리우스 였다.

뒤로 수행원 둘과 기사 셋이 호위를 맡고 올라왔다.

"근무를 잘 서고 있나 했드만 후임을 괴롭히고 있었구나."

"아, 아닙니다!"

초병이 다리우스와 초장의 눈치를 살핀다.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그보다 적의 상태는 어떤가."

"성에서의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개의 성.

붉은 사냥개 폐루와 북방의 다리우스는 서로 최전방에 있는 성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쌍둥이 성이라고도 불리는 네그얼 성은 냇가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에 있었는데 이유는 우기가 되면 냇가가 불어나 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둥이 성이라고 불리며 과거 도시국가에서도 중앙을 담당하며 교류세로 많이 부를 챙겼고 배이제 제국 시절 역시도 서쪽과 동쪽을 지나기 위해서는 지나야 하는 필수 코스 였기에 관광과 문화가 발달을 많이 한 성이었다.

네그얼 성은 다른 성 처럼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노래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음주가무가 발달했다.

바드가 이 두 곳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 때로는 다른 성들의 성주와 사람들을 불러 같이 화합을 할 정도로 이 지역의 평화에 한 축을 담당했다.

허나 그 쌍둥이 성이 지금은 반으로 갈라져 서로 대치 중이었다.

"다행이군. 따뜻하게 입었나."

"그렇습니다!"

초장이 답한다.

"최대한 따뜻하게 해주려 했건만. 그런데 여기는 횃불 하나 없는가."

"……그게."

다리우스가 호통을 낸다.

"부관!"

"예! 여기있습니다!"

"자네 뒤를 돌아보게!"

그의 말에 모두가 뒤를 본다.

성안쪽으로 지금은 백성들을 북쪽으로 소개하고 이곳은 병사들이 쓰고 있었다.

"이곳의 병력이 몇인가!"

"예, 2만여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그 2만명의 생명을 누가 맡고 있는가."

"……."

다리우스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두 명과 성벽 위로 일정 범위로 늘어서 있는 경계근무자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들 겨우 수십여명 덕분에 2만여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걸 자네는 모르는건가!"

"……죄송합니다."

"당장 근무자들에 대한 방한용품을 더 지급하고! 횃불을 근무자들이 있는곳에 배치하여 동상에 걸리지 않게 하게!"

"충!"

부관이 물러났다.

다리우스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바라봤다.

"걱정말게. 내가 비록 일신에 가진 힘은 부족할지 몰라도 항상 자네들과 배이제 제국의 부활을 위해 힘써주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니까 말이야."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컸다.

근처에 있는 다른 근무자들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럼, 경계 근무에 만전을 기하게. 만약에 경계를 서다가 뚫리면 자네는 2만의 병력을 죽인 것과 같다네."

"절대 뚫리지 않겠습니다!"

"좋다."

다리우스가 수행원과 물러났다.

물러나자 긴장이 풀리며 다른 병사들의 몸도 축 늘어진다.

"휴우. 죽는건 아닌가 했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리우스 공작님은 멋지신 것 같습니다."

"……다 보여주기지."

"……그래도, 저는 이런거 처음 봤습니다. 전 그저 윗 놈이라면 다 뜯어먹는 줄만 알았습니다."

"……."

초장이 초병의 머리를 검집으로 툭툭 쳤다.

"야야. 됐어. 경계나 서."

그리고 잠시 후 병력 몇몇이 삼각대로 이루어진 쟁반같은곳에 기름과 장작을 넣은 채 가져오고 불을 붙힌다.

화륵.

성벽 전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이 붙었다.

온기가 손과 상체에 전해지자 추운 기운이 조금씩 사라진다.

초장이 두 손을 모아 비비며 호하고 불자 입김이 크게 나온다.

"시부럴. 따뜻하긴 하네."

"그렇습니다."

초병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뭐가 그리 좋냐."

"아뇨……, 그저 다리우스 공작님 밑이라면 싸워도 괜찮을 것 같다 싶어서요."

"……병신."

욕을 한 번 해주고는 속으로 진짜 그럴지도라고 조심히 생각하는 그였다.

한 편 내성안으로 들어간 다리우스.

저벅 저벅.

임시로 마련된 저택으로 들어가며 부관의 설명을 듣는다.

"다행히 다리우스 공작님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이 북쪽으로 많이 이주해 왔습니다. 덕분에 병력이 7천이나 늘어서 지금 훈련중입니다."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또 기존의 병력들의 훈련도 이제 시작했습니다. 아마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제식과 행군, 창술과 검술은 전부 익힐 수 있을겁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하게나."

"충."

"그들 하나하나 실력이 높아져야 전쟁의 승률도 생존률도 느니까."

"그렇습니다"

"봄이 끝나고 찾아오는 이번 년에는 전쟁이 끝나길 빌어야지."

"……그렇습니다."

그렇게 안으로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다른 부관 하나가 앞에서 뛰어온다.

"다리우스 공작님!"

"무슨 일이기에 이리 바쁜가."

다리우스가 희끄무레한 수염을 한 번 쓴다.

추위에 살얼음이 낀 수염이 손 온도에 녹으며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리우스 공작님께서 명하셨던 것 있지 않습니까."

"어떤 것?"

"아르센 말입니다."

"아르센? 아! 찾았나!"

다리우스가 눈을 크게 뜨며 묻자 부관이 살짝 당황했다.

"그, 그렇습니다! 룐성에 있다고 합니다."

"룐성? 휘젠가르트의 위에?"

"그렇습니다."

"거긴 마법사과 용병들이 있어서 거의 무법지대 일텐데?"

사실 반마족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지 않고서는 쓸모가 없는 낙후지역이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룐성에 있던 나머지 1만 5천의 병력도 내려오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반마족 2만 명이 병력을 이끌고 내려왔다합니다."

"2만이면……."

"2만이면 그 옛날 3백년 전에 1만이 내려 온 것의 두 배 입니다."

"허어…….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그렇다면 휘젠가르트가 위험해질텐데?!"

반마족의 남침이란 말에 휘젠가르트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황했다.

"그, 그게……. 믿을 수 있는 첩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센이 이끄는 기사단이 전부 격퇴하였다고……."

"뭐? 2만의 반마족들을?"

가끔 10여명씩 내려오는 반마족들에 의해 룐성이 함락 되니 마니 했는데 2만이였다.

지난 역사에서도 반마족이 한 번 내려오면 한 나라가 거의 쑥대밭이 되지 않았는가.

그것을 한 기사단이 막았다 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믿을 수가……."

"게다가 단장인 아르센 혼자서 반마족의 족장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소문이 너무 과하군."

일개 기사단 하나가 막았다고 거짓말하기에는 너무 허황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겐타와 전투를 시작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에 족장의 목을 베자 반마족화가 풀리며 학살 아닌 학살을 했다.

그렇기에 빠르게 전투가 마무리 지어진 것이다.

이미 포기한 상태인데 싸우고 자시고 할게 있겠는가.

"흐음……. 일단 반마족이 무슨 연유에선지 물러갔다는건가……. 룐성에 박히다니. 아르센……, 무슨 생각인가."

다리우스가 생각에 잠긴다.

밖에는 다시 함박눈이 바람과 함께 매섭게 몰아친다.

*                          *                            *

"아, 심심해."

크리프가 성벽 위에서 하품을 한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숲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                          *                            *

"돌아가라."

아르센이 무심하게 말했다.

복부가 찔렸으나 죽지는 않은 베메타가 아르센을 바라본다.

"……치욕이다.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라."

베메타의 말에 아르센이 주위를 둘러본다.

쿠르비크족 전사들 전부가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주먹을 꽉 쥐고 베메타의 뒤에서 으르렁 거리며 쳐다봤다.

"돌아가라. 이미 전투는 끝났다."

아르센이 칼리엄 소드를 등에 맸다.

"……."

말 없이 묵묵히 서있었다.

아르센이 등을 돌려 준비된 말에 올라탔다.

다그닥.

올라타자 말이 입김을 뿜었다.

푸릉.

추위 덕분에 입김이 크게 나왔다.

"만약……."

아르센이 뒤쪽에서 후판을 보며 울고있는 미소와 당황하며 힐링 마법을 계속 하고 있는 베이트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같은 4기사단 부단장인 베어링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성하나와 맞먹는다는 주신의 교주가 신성마법을 걸었다는 포션을 아낌없이 뿌리고 있었다.

"후판이 죽었다면 너네 역시 이곳에서 단 하나도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

베메타가 후판을 쳐다봤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몸.

버서커 모드가 풀려 그 커다란 배가 출렁 거린다.

지금까지 부은 마법과 포션 덕분인지 외상은 사라져 있었다.

"돌아가라. 져서 기분이 좆같으면 나중에 더 강해져서 다시 와라."

아르센이 거기까지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기사단은 들어라!"

─충!

2천 5백여명이 말 위에서 답하는 소리.

땅이 살짝 울렸다.

"전투는 끝났다. 돌아간다!"

─충!

4기사단원들 몇 명이 수레를 끌고와 말과 이었다.

다그닥.

아르센이 승자라는 것을 보여주듯 등을 보이며 천천히 걸었다.

베메타가 등을 보며 살짝 유혹에 빠졌으나 고개를 젓는다.

"더 이상 비참해지기는 싫다. 쿠르비크족 일족이여. 바겐타 족장님이 돌아가셨다. 일족의 염원이며 한 남자의 꿈이 오늘 이곳 숲 바로 앞에서 꺾였다."

모두 고개를 숙인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장례를 치룰 것이다. 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나올 것이다. 내가 장담하지. 내가 너희들을 이끌고 다시 나오겠다."

베메타의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제 바겐타의 뒤를 이을 족장이다.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베메타가 일족을 이끌고 악마의 숲으로 들어갔다.

아르센은 그 기척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찬 바람에 실려오는 익숙한 냄새.

눈을 살짝 뜨고 정면을 본다.

룐성의 성문 앞에 황녀와 호위를 위한 단원 다섯이 서 있었다.

"……."

아르센이 살며시 미소를 띄며 눈을 감았다.

"정말……, 드디어 만났습니다."

아이조드의 말에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야."

아르센과 블루윈드 기사단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

성벽 위와 안에 있는 용병들이 입을 벌린 채 지나가는 것을 쳐다만 봤다.

*                         *                            *

크리프가 회상을 마치며 하늘을 봤다.

눈이 오려는지 눈구름이 살며시 하늘을 가린다.

"단장님?"

크리프가 돌아본다.

성벽 밑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빼꼼히 내린다.

밑에는 톰백과 포금이 어제 먹지 못한 닭과 맥주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씨익.

크리프가 웃는다.

"한 잔 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톰백이 크리프 흉내를 내며 묻자 크리프가 짐짓 인상을 쓰며 내려갔다.

"죽을려고 환장했구나."

크리프가 뛰어 내려갔다.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용병 넷이 부러운 듯 쳐다봤다.

"부럽다."

"부러운가."

용병들이 놀라 뒤를 본다.

기척없이 나타난 사내.

아르센이 칼리엄 소드를 이제는 옆구리에 매단채 나타났다.

편한 차림의 복장으로 보아 그냥 심심해서 올라온듯 보였다.

"여기서 다른 경계조가 보이는가."

"그게……, 북쪽 근무는 이제 저희만 서는걸요. 아무도 없어요."

그 말에 아르센이 성벽 끝 철(凸)에 앉은 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봇짐을 내려 놓았다.

"아무도 안 본단 거지. 이거나 들게."

아르센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손짓으로 가져가라 하자 용병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레 봇짐을 펼친다.

안에는 돼지고기가 구워진채 있었다.

김이 뜨겁게 하늘로 솟구쳤다.

딱 보아도 방금 요리한 것이다.

"경계를 서는데 맥주는 불허(不許)한다."

"그렇습니다요."

용병들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아르센을 조심스레 쳐다본다.

"먹어. 그러라고 가져온 거니까. 춥지?"

"아닙니다."

"……아님 말고. 먹어라."

그러자 다들 달려들어 하니씩 집어 먹는다.

뜨겁기 때문인가 추운 날씨에도 입김을 호호 불어 먹었다.

아르센이 아까 크리프와 같이 숲을 바라본다.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술병을 내려놓고 성벽에서도 내려왔다.

전투는 어제 부로 끝났다.

그리고 저녁부터 지금까지 성 전체에 축제가 있었다.

겨울에 먹을 것도 없던 판에 기사단이 점령하고 나서 먹을 것이 풍족해졌다.

게다가 평소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반마족까지 막아내니 그들에게 더 이상의 영웅은 없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도 정리가 안된 중심가가 나왔다.

기사단과의 전투로 가장 큰 건물이 마탑이 무너지고 관청과 중요 시설인 용병길드들 까지도 파괴되었다.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 드디어 전투가 끝났네요ㅎㅎ 몇 챕터는 쉬어가야 할 듯ㅎㅎㅎ

어제 코멘트가 너무 많아서 쓰면 길어질 것 같네요ㅠㅠㅠㅠ

대신에 2연참으로 답해드리겠습니다ㅎㅎ

아, 그리고 후판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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