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깃발 아래서-57화 (5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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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편 - 휘젠가르트.

뜯겨지며 두루마리가 풀린다.

촤악.

촥 풀어 글을 읽는다.

─번호 19930107

휘젠가르트.

병력 3천.

빈폴 4백.

악마의 숲. 1만 5천.

훈련도, 중.

심각성 인지, 하.

특이사항.

: 아르센 단체의 수장이 현재 휘젠가르트로 오는 중.

폐루가 두루마리를 접었다.

"아르센이라……."

그의 혼잣말에 그의 부장이 옆으로 온다.

"후작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나의 기사여."

폐루가 부장을 본다.

풀 플레이트 메일.

햇살에 비치는 청결한 그의 갑옷은 백마와 어우러져 마치 고귀한 귀족과 같았다.

"예, 하명 하십시요."

"아니다. 그냥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아보입니다."

"그래 보이는가, 나의 기사여."

폐루가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붉은사냥개라 불리며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의 위엄대신 내리쬐는 햇살을 담은듯 부드러움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구나. 그런거 없다. 그래, 나의 기사여, 만약 대의를 그르쳐 상황이 좋지

않다면 기사단을 이끌고 멀리……, 멀리 돌아가라."

"후작님, 절대 그럴리 없습니다. 저는 후작님을 지키다 죽겠습니다."

"후후……."

폐루가 웃었다.

"어릴 적 너와 같이 뛰놀던게 생각나는군."

"……."

두루마리를 접고는 병사에게 건넨다.

병사가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물러났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소리와 병사의 군홧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근데, 벌써 이렇게 커버렸나."

"예."

"벨렌시아."

"네, 말씀하십시오."

"아니다……."

폐루가 벨렌시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전방을 바라본다.

전방에 고요한 산길만이 그들을 반겼다.

"벨렌시아……, 벨렌시아……."

"네."

"그저 옛 추억에 잠겨 읊조려 봤을 뿐이다."

"……."

폐루가 묵색과 붉은색의 조합인 적홍색의 투구를 쓴다.

진홍색의 풀 플레이트 메일.

적철광(Hematite)으로 만든 진귀한 갑옷이다.

말의 갑주 역시 그러했다.

흑마 위에 덧 씌어진 적홍빛의 갑주.

마치 피로 만들어진 듯한 모습이다.

"이젠 옛날로 돌아갈 수 없겠지."

말 위에서 흔들거리며 몸을 맡긴다.

옆에 있던 벨렌시아 만이 측은한 눈빛으로 주군의 뒤를 바라볼 뿐이다.

*               *                 *

채챙!

서걱!

"쫓아라! 모조리 사살하라!"

"우라!"

"우라!"

백여필의 말들이 사방으로 도망가는 오크들을 추격해 죽였다.

오크들은 기에 질려 싸울 전의를 잃고 사방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그럴수록 그들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아르센이 고삐를 낚아채 속도를 낮췄다.

뒤에서 쫓아오던 일행 역시 자연스레 속도를 늦춘다.

"워워."

주변을 살핀다.

대지의 기사단원들이 흩어진 오크들을 잡기 위해 흩어진다.

허나, 그냥 흩어지는게 아니라 대오를 맞춰 세 네 명씩 쫓았다.

"우린, 여기서 이제 북쪽으로 올라가는게 좋을 것 같군."

지금 기세로 보아하니 절대 이들이 오크들에게 역습 당할 실력도 상황도 아니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이들이 멈추자 드로이드 역시 말머리를 이쪽으로 돌린다.

"아르센 경."

드로이드도 그의 표정을 보아 짐작했는지 살짝 미소를 띄우며 다가왔다.

"이제 가는 거요?"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 가야할 시간이 왔구려."

드로이드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 기사단원 몇 명이 드로이드의 뒤로 다가와 선다.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오. 이런 실력자들을 두고 내가 몰라봤다니."

"괜찮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지."

"하하하! 그럼 나야 영광이죠."

드로이드가 말 위에서 손을 내민다.

아르센 역시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혹여, 하는 일에 차질이 생기고 막힌다면 이 사람을 찾아가보시요."

"누구."

"휘젠가르트의 최고 명물이자 괴짜이지. 테이티 아베노이다."

"테이티 아베노……."

"그는 원래 6서클의 고위 마법사였으나 위로 승급하기 위해 무리하다가 내부 마나피폭을 당한 상

태요."

"……그럼 장애인 아닌가."

그의 말에 드로이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엇다.

"그렇소. 마법하나 못쓰지. 겨우 2서클 정도의 마법만 쓸 수 있소이다."

"그런 자를 왜 찾아가라 하는가."

"그의 나이가 4백살에 육박하고 있소. 이리 말하면 믿을 것이오?"

"……하프 블러드인가."

"아니, 순수 인간이요."

그의 말에 아르센을 위시한 나머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단 한 사람 카트리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원래는 성공 직전이었으나 베이제 제국의 침공으로 인해 안정을 잃고 폭주하고 말았소."

"……."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부 피폭에 의한 마나로 인하여 그는 무한정 살 수 있게 되었지."

"그게 말이 되나."

"세상에 말이 안되는 것이 어딨소."

"……."

드로이드와 아르센이 마주잡은 손을 놓았다.

"그를 만나 도움을 청하면 될 것이오. 마법사이지만 신기하게 기사를 좋아하오. 만약 이 동패를

가지고 간다면 도움을 줄 것이외다."

"……고맙군."

어느새 드로이드의 뒤로 기사단 전부가 모였다.

"그럼 이만 가보지."

아르센이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향한다.

일행들도 머리를 돌려 아르센의 뒤를 따른다.

가장 뒤에 있던 막내 아하드.

아하드가 드로이드의 앞으로 왔다.

"아하드……."

"드로이드……."

아하드가 손을 내밀고 드로이드가 손을 잡았다.

"조심히 가게. 내가 아쉬운게 있다면 처음 왔을 때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

과하지."

"괜찮습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아하드 경.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마음이 넓구나."

"아닙니다. 제가 본 기사들 중 실력은 으뜸이 아닐지라도 그 부드러운 성품은 저의 귀감이 되었

습니다."

"허허허, 민망하구나. 어여 아르센 경을 쫓게. 자신의 주군이지 않은가."

"……주군은 아니지만 항상 배우고, 또 배우고 싶은 분입니다."

드로이드가 손을 놓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하드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아르센의 뒤를 쫓았다.

빈폴 드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바라봤다.

"자작님."

"……그래, 이것 역시 인연이겠지."

"그렇습니다."

아르센 일행은 점차 작아지며 눈에서 사라져간다.

"그래,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일을해야겠지. 붉은사냥개 폐루. 이 미친작자는 어디까지 왔다는가

."

"……남쪽 경계선을 뚫고 북진중이랍니다. 여기까지 그 속도면 이 주 안에 올것입니다."

"그런가……. 돌아가자 성으로 준비하자 전투를. 이 성을 절대사수 한다."

"옛."

드로이드가 기사들을 이끌고 성으로 돌아간다.

성벽위와 밖에는 시체들을 처리하는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주라……."

드로이드가 침중한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씨익 웃는다.

"그 정도면 미친개를 잡는데 준비하는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와라……."

하늘은 가을을 뽐내듯 높고 푸르렀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기사들 위로 철새들이 날아 성벽 위를 넘어간다.

*               *                 *

휘젠가르트.

예로부터 많은 지식인들이 몰려와 서로의 지식을 토론하고 공유하며 세계의 흐름에 대해 논의했

던 장소.

산 기슭에 위치해있어 적의 방어로부터 용이하고 바로 밑에 있는 빈폴 성의 기사들로부터 많은

도움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천혜의 성.

배이제 제국의 백만 대군 역시 기습조 침투로 피해는 줬으나 결국 함락은 못했다.

허나, 결국 식량과 물, 고립으로 인한 정신적 폐해로 항복을 한다.

3백여년이 지나 배이제 제국이 망하고 이제는 북방의 다리우스 공작에 의해 지식과 문화의 중심

지로 각광 받고 있다.

시끌벅적.

바글와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길가의 주점과 식당에는 지식인들이 책을 들고 서

로의 생각을 토론하고 있었다.

"여기는 뭔가 굉장히 신기하네."

"……."

아르센의 앞에 앉아 있던 에일리가 신기한듯 물어봤다.

"뚜뚜루~ 뚜뚜뚜두~."

에일리가 신기한 분위기에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르센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모두 로브를 쓰고 있어 얼굴이 드러날리 없지만 여섯명의 일행 전부가 로브를 쓰고 있으니 신기

하게 쳐다봤다.

크리프가 주변을 살핀다.

확실히 이곳은 너무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정말 좋은 곳이네요."

어느 여관앞을 지나가자 음악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바이올린과 하모니카, 트럼펫으로 합주하고 있는 밴드.

짹짹.

참새가 여관의 알림판대 위에서 지저귄다.

─지식인들의 쉼터.

여관거리인듯한 이곳은 여관과 식당들이 몰려 있었다.

커다랗게 팻말로 이 거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부분이 젊거나 늙은 학자들이었다.

간혹 상인들이 눈에 띄긴했지만 말 그대로 간혹이었다.

"참……."

크리프가 볼을 긁적인다.

이러한 도시는 [더 그레이트3 - 엠페러]에서도 본 적 없는 정말 특이한 도시였다.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마치 학자인듯했다.

그의 혀 차는 소리를 들었는지 카트리나가 뒤에서 허리를 잡았던 손을 풀고 바라본다.

"아……, 그, 휘젠가르트는 도시 인구가 11만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에 속해요……. 그니까……,

인구의 2만명이 학자이자 지식인들이고 어, 음……, 5만여명이 학생들이에요……. 그러니까 대학

생들……."

"대학?"

크리프가 신기한듯 되물었고 카트리나는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하, 네……."

"대학이라……."

크리프가 어깨를 으쓱한다.

"오늘은 여기서 묵도록 하지."

"충."

"충."

아르센이 멈춘 곳.

─꿈꾸는 동화.

알림판 밑에 기사단의 상징.

네 개의 물결 무늬가 가운데로 모이고 두 개의 날개가 하나의 원을 감싸방어하고 있는 모양.

천이 펄럭이고 있었다.

딸랑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개의 탁자가 놓여져 있었고, 주인장이 흔들의자에 앉은채 졸고 있었다.

손님들 역시 개의치 않고 책을 읽거나 잠에 빠져 있다.

크리프가 따라 들어오며 말한다.

"거의 천국입니다. 아닌지 알고싶습니다."

아르센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장."

주인장에게 가 말하자 졸고 있던 그가 일어났다.

"아아……."

"여섯명이고 말 네 마리. 얼마요."

"대충 돈 놓고 가게 말은 뒷뜰에 알아서 묶어 놓게……, 흠냐 흠냐."

"……? 그래서 얼마라고요."

"너가 이 여관을 찾은 이유는 이 여관이 맘에 들어서 아니겠는가, 너가 이 여관의 가치를 매긴 만큼 놓고가게."

크리프가 뭔 개소리야 라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아르센이 대충 품속에서 금전 하나를 올려놨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숙소 역시 우리가 정하면 되나."

주인장이 감고 있던 두 눈중 한 쪽을 실눈을 뜨며 돈을 바라본다.

금인것을 알아보고 재빨리 금전을 품속에 숨긴다.

"그러슈. 식사는 셀프요."

"……."

뒷쪽에 뷔폐형식처럼 음식이 만들어져 있었다.

먹고싶은 만큼 퍼가면 된다.

"못먹을 만큼 푸지는 않겠지, 무식하게 말이오."

잠시 후.

우걱우걱.

모두가 아르센 일행을 쳐다본다.

아르센 일행 역시 에릭센을 쳐다본다.

"꺼억. 음……."

에릭센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들을 전부 먹고는 배를 매만진다.

"허어, 시발……, 뷔폐라니 아주 만족이네 만족이야. 여기 좋은 곳이네."

주인장은 텅텅빈 뷔폐 메뉴를 보았다.

"……저 무식한 새끼……."

눈물을 흘리는 주인장의 말에 동감하는 크리프였다.

능청스런 에릭센의 모습에 카트리나와 에일리가 웃는다.

"담배만 있으면 딱인데. 존나게 아쉽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탁자 위의 늙은 학자 한 명이 다가온다.

"허허허, 그렇게 먹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실컷 웃었소. 담배가 필요하다 들었는데, 이건 어떻소?"

학자가 자그마한 시가를 건넨다.

"옹……?"

에릭센이 두건을 질끈 매며 늙은학자와 시가를 번갈아 본다.

"아아……, 장님이었소?"

학자가 시가의 끝부분을 살짝 깨물어 뱉은 다음 불을 붙혔다.

화륵.

1서클의 마법.

몽게몽게.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에릭센의 콧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귀와 코가 쫑긋댄다.

"허어, 참. 단장님 저 갔다와도 됩니까?"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에릭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학자에게 다가간다.

"장님인데 유연하게 잘 걷는구려."

"다 보입니다요, 학자님. 헤헤헤. 그, 담배라는게 원래는 몸에 나쁜거지만 꼭 그렇게 나쁜것만은 아닌데 말이죠. 근데, 처음보는 저에게 담배를 주신다니, 역시 지식인은 뭔가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헤헤, 이쪽으로……."

담배하나에 목숨을 내놓을듯 아부를 떨며 뒷뜰로 사라지는 둘.

"하긴 담배 강제로 금연한지 두 달 가까이 됬으니까."

아르센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 흠. 그나저나 내가 짐을 풀다 말고 나온듯한데……."

아르센이 살짝 질린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음을 향한다.

"아, 아르센. 나도 까먹은게 있는거 같아."

에일리가 따라붙는다.

크리프가 슬그머니 뒤를 쫓았다.

"기사로써 어찌 단장님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 않은지 알고싶습니다."

카트리나는 볼을 붉히며 졸레졸레 따라간다.

혼자 남은 아하드.

아하드가 질린 표정을 짓는다.

눈 앞에 놓인 높이 쌓인 접시를 바라본다.

접시 틈으로 보이는 주인장.

주인장을 애처롭게 쳐다보았으나 주인장은 무언가를 적더니 팻말을 너무나 잘 보이게 걸었다.

─설거지 역시 셀프.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 오오, 완전 길어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해야하는데..ㅠㅠ

레다구닌님 연참대신 글을 길게 썼습돠!!ㅎㅎㅎㅎㅎ

북방의 다리우스님 글쎄요? ㅋㅋㅋ 누가 이길지 저는 짐작을..ㅎㅎ;;

꾸느님 그렇죠ㅋㅋㅋ 에릭센이 쓸수 있는 기술이 저거 하나뿐이라서요ㅋㅋㅋㅋㅋㅋㅋ

무적인인간님 그럼요ㅎㅎ 활약편이죠ㅋㅋㅋ 감사합니다ㅎㅎ

붉은사냥개님 이제 본격적인 출연입니다.

아하드님 감사합니다.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ㅎㅎ

레샤드님 감사합니다^^

BellnesiaS2님 멘탈케어를 제 글로ㅎㅎ 감사할 따름입니다^^

眞.天님 감사합니다^^

co쟁이님 항상 감사합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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