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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아래서-12화 (1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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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편 - 몬스터

문제는 그 오크들 뿐만 아니라 마차 주변을 포위했던 오크들까지도 겁에 질린채 물러났다.

모두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물러나는 몬스터들을 쳐다본다.

하지만, 단 한 명.

갑옷에 녹색의 피를 묻힌 기사는 검을 든 벙어리 검사를 쳐다봤다.

검집에서 검을 뽑지도 않고 그저 손을 흔들었을 뿐인데 몬스터들이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이내 꼬랑지를 보이며 도망

쳤다.

"기사님! 역시 기사님입니다! 기사님의 위력에 저 미개한 오크들이 겁에 질려 도망갔습니다."

병사들이 다가온다.

그제야 벙어리 검사를 쳐다보던 기사가 정신을 차린다.

"아. 뭐라 그랬지?"

"기사님들의 위용에 오크들이 물러났습니다."

"아……. 고맙네."

말은 그리 말했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병사가 괜히 건들여 봤자 좋을게 없기에 스스로 물러났다.

'뭐지.'

계속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캘리퍼스."

자신을 부르는 말에 생각을 멈춘다.

앞에 자작님의 딸이 마차문을 열고 겁에 질린 채 쳐다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보는 몬스터의 모습과 소리, 그리고 시체의 모습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것이다.

"예."

기사가 뛰어가 다가간다.

"다 처리된거죠?"

그녀의 표정은 제발 다 처리됐다고 말해달라하는 표정이다.

"예. 전부 처리됐습니다."

"후우."

"마차 문을 닫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십시요. 몬스터들의 사체정리를 해야하니, 안좋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저는 캘리퍼스님만 믿어요."

기사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딸이 마차의 여닫이 문을 닫자 기사가 명령한다.

"기사들은 병사들과 노예, 하녀들의 수와 부상자 체크하라! 병사들은 지금 오크들 사체 처리에 들어가라!"

그제서야 시끄럽던 장내가 정리되는 분위기를 보이면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에 닥치게 된다.

"히끅."

"허, 헉!"

몬스터를 자주보고 자주 토벌에 나섰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렇지 않지만 오크를 처음보고 직접 죽음의 문턱까지 다

가갔던 노예와 하녀들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헛구역질까지 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몸을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후우."

기사가 투구를 벗어 왼쪽 옆구리에 꼈다.

검날에 묻은 피가 진득히 늘어져 검끝으로 떨어져 내린다.

"짜증나는군."

유약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다.

"캘리퍼스님."

기사 후배 하나가 다가왔다.

"음?"

"보고하겠습니다. 다행이게도 전체 인원 중 사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또, 중상자도 없고, 경상자도 오크들과 처

음 부딪힐때 생긴 경상자 세 명정도입니다. 전투에는 손실없습니다."

캘리퍼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장비 점검하고 바로 출발하자."

"넷!"

캘리퍼스가 말에서 내린 후 말의 안장에 달린 자신의 짐에서 천을 꺼내 검을 닦았다.

스윽.

진득한 피가 천에 닦여 나가며 다시 그 매끈한 검날을 드러낸다.

병사들도 창날과 대에 묻은 피를 닦는다.

장내가 정리되고 시간이 지나자 노예와 하녀들도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정리 다 됐습니다."

기사가 다가와 말하자 캘리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닦던 천을 조용히 접어 가죽주머니에 넣었다.

"좋아! 모두 일어나라! 여기 넘어가는 산맥에 앞으로 몬스터들 세 네번은 더 마주쳐야 할 것이다!"

자작의 성을 나온지 벌써 3일이다.

앞으로 4일이나 더 가야하는데 그 중에 세 네번을 혐오스럽고 흉악한 몬스터들을 봐야한다니.

탁.

캘리퍼스가 능숙히 말에 올라타서 말의 고삐를 잡았다.

"출발한다! 출발!"

"출발!"

이두마차가 다시 속력을 내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 옆으로 캘리퍼스가 말의 진동에 몸을 맡기며 출발한다.

그러면서 뒤로 고개를 돌려 벙어리 검사를 본다.

*        *        *

그날 밤.

야산의 온도는 매우 낮아 춥다.

텐트를 쳐 그 앞에 모닥불을 피워도 그 추위를 전부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텐트 안에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모포를 덮고 누운 후 다시 한 번 모포로 방한을 한다.

아우우우─!

산속에서 날카로운 늑대소리가 전부를 울렸다.

부들.

에일리가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낮에 봤던 모습이 제법 충격적인듯 했나보다.

주변의 동료 하녀들이 껴안아준다.

막내이기에 더 챙겨주려 하는 것이다.

처음 3일간 이 산속은 매우 포근하고 야영길과 같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산새소리.

조용한 풀벌레 소리.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들리는 것은 풀벌레와 작은 산새가 아니라, 크고 흉악한 오크.

날쌔고 우악한 턱을 가진 늑대들.

그런 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사이로 들리는 풀벌레와 산새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공포는 전염병마냥 퍼진다.

병사들과 기사들을 제외하고 노예와 하녀들 사이로 두려움이 퍼졌다.

에일리도 당연 그 중 하나였다.

"아르센."

에일리가 부르자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왜."

"……아직 안자?"

양 옆의 하녀동료들은 두려움에 떨다 잠이 들었지만 에일리는 잠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뭐."

에일리가 중앙에서 일어난 후 겉옷을 걸쳐메고 텐트를 나왔다.

아르센이 텐트에 기대 눈을 감고 있다.

아르센은 예정에 없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위한 텐트나 모포 같은게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따로 챙겨온 짐들이 있었기에 항상 에일리가 자는 텐트 앞에 검을 안고 그 위로 모포를 덮은채 잠을 청했다.

털썩.

아르센옆에 엉덩이를 붙힌다.

앞에는 땅을 살짝 파 불을 지핀 모닥불이 탄다.

"물론, 알아들을리가 없겠지만 말이야……."

아르센이 눈을 뜨고 에일리를 쳐다봤다.

에일리는 하늘에 뜬 세 개의 달을 보고 있었기에 아르센이 자신을 쳐다보는지 몰랐다.

"나 사실 너무 무서워. 막! 막! 말이야.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

아르센이 고개를 돌려 모닥불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에일리는 달빛에서 아르센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모닥불의 주황불빛에 비친 아르센의 모습은 제법 멋있었다.

에일리는 턱을 괴고는 말했다.

"근데, 있잖아. 이제는 난 돌아갈 수 없고, 나 혼자 이제 헤쳐나가야하잖아. 근데, 참 아르센. 너가 있어서 다행이

야."

"……."

아르센은 아무 말 없이 모닥불만 바라봤다.

에일리가 몸을 좀 더 아르센 쪽으로 붙혔다.

"너가 있어서 무서움을 이길 수 있던거 같아."

모닥불만 바라보던 아르센이 에일리를 쳐다본다.

에일리의 모습 역시 모닥불에 비춰 얼굴에 홍조를 띈듯한 모습이다.

둘이 말 없이 서로를 본다.

에일리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서로 마주보는 눈.

모닥불.

15살 소녀의 가슴은 두근댔다.

에일리의 얼굴이 아르센 쪽으로 다가간다.

둘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때 쯤, 둘 사이로 컵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응?"

에일리가 깜짝 놀라 아르센을 본다.

컵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아르센이 자신이 마시던 차를 준 것이다.

"마셔라."

"……아."

에일리의 망상이 끝나며 허둥지둥 차를 받았다.

아까 마주볼때보다 더욱 얼굴이 뜨거워졌다.

후룩.

차를 살짝 마신다.

뜨겁지 않고 미지근해서 마시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응? 맛이 엄청 신기하네? 달짝지근하고. 색이 붉은색?"

"홍차다."

아르센이 두 팔을 머리 뒤로 포갠뒤 텐트에 기댔다.

텐트가 살짝 눌린다.

눈을 감았다.

에일리도 말 없이 차만 홀짝였다.

다만 두근거리는 가슴덕에 서로 말을 알아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 한밤중이 되자 차를 다마신 에일리가 졸린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곧 눈을 감은채 있던 아르센의 품속으로 빨려가듯 쓰러졌다.

아르센이 살짝 한쪽눈만 뜨고 에일리를 본다.

쌔근 쌔근.

아르센이 피식 웃는다.

"꼬마가 귀엽네."

아르센이 한쪽눈을 다시 감았다.

*        *         *

"총 기상! 기상!"

병사들이 일어나 텐트를 누비며 외쳤다.

노예들과 하녀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에일리 역시 일어났다.

주변을 살피니 하녀동료들이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르센 옆에서 잔거 같은데……. 아닌가……."

에일리가 눈을 비빈다.

촤학!

그때 텐트 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그녀들의 눈을 아프게 했다.

"총 기상."

아르센이 텐트를 양손으로 벌린채 무표정으로 말했다.

"하래."

그러더니 곧 일어나 사라진다.

"……."

에일리가 벙찐 표정을 지은채 쳐다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렇게 텐트를 걷은 후 죽은 모닥불을 다시 살린 후 그 위에 밥을 지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는 행렬은 바로 출발했다.

"출발~!"

캘리퍼스의 명령에 따라 마차를 중심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 12시 전이다! 옼히! 일일연재!! 지키고 있다!

호랭이가죽님 ㅋㅋㅋㅋㅋㅋㅋ첫코 추카드립니다!!!

파편의혼돈님 괴전파라니ㅠㅠㅠ

핵포탑님 '로그아웃' 제가 생각안한게 아닌데ㅠㅠ 그게 사실 다다다음 챕터나 이쯤 나오려 했거든요ㅎㅎ 설정상 4일간 죽었다가 다시 접속된 상황. 그래서 칼리엄제국앞에 적군들이 많이 있기에 빨리 돌아가려 했던건데... 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ㅠㅠ

아르시아스님 오타 수정했습니다^^

ccaps님 나름 기사단장ㅋㅋㅋㅋㅋ

co쟁이님 감사합니다^^

CaRIDo님 아르센 짱짱맨요!!

페르모르그님 감사합니다^^

이츠히나님 아르센 말씀이신가요?

술마실까?님 키~아~ 감사합니다^^

black보이님 대한태제가 제 필력을 키우고 저와 같이 성장하는 유년기 였다면 깃발 아래서는 내실을 키우는 청소년기가 아닌가 싶네요ㅋㅋㅋ 말해놓고도 오글이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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