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19대 대선 막 올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대선 선거운동 첫날 趙는 종로行, 黃은 광주行]
[대선 D-21, 선거운동 첫날부터 조성현․황택근 양자구도 초접전 예상돼]
온라인에 게재된 기사를 확인했다.
대선 선거운동에 돌입하니 정치면을 새로고침 할 때마다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몇 가지를 키워드로 삼아 살펴보던 중.
운전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의원님."
영석이가 어느새 기어를 파킹으로 당겼고, 보조석에서는 김백현 경호팀장이 내렸다.
카니발 리무진을 한 대 빌린 상황이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서 타는 것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몇 대 없는 VVIP 의전용 차량을 렌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커튼이 내려진 차창 대신에 영석이를 바라봤다.
"어딘데?"
"번동 사거리입니다."
원래라면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유세 차량과 자원봉사자들만 배치해도 될 일이었는데, 굳이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기에 내가 짓기로 공약한 산후조리원이 있었다.
바로 강북 해뜸 공공산후조리원.
강북구에만 산후조리원이 두 개가 지어지니, 차별화를 위해서 공모전을 열어 만든 이름이었다.
준공을 받고 개원한 건 올해 중순.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개원일에 방문해서 기념사를 한 번 낭독했을 뿐, 따로 신경 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나는 비상등을 점멸시키는 영석이를 향해 물었다.
"여기 돌면 오늘 몇 군데 남았는데?"
"11개 장소 남았습니다. 의원님, 밖에서 김 팀장이 기다립니다."
영석이가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말하기에 고개가 저어졌다.
"벌써 지친다, 이거."
"의원님? 밖에 경호팀 대기 다 끝났습니다."
"······재촉은, 간다."
문을 열자, 카메라 플래시가 나를 맞이했다.
동시에 강북구선대위원회의 관계자들이 내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예, 반갑습니다. 선거 운동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대표자의 인사를 받아주면서 유세차량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걸었는데, 어느새 경호팀이 나를 감싸고 좌우에 박 보좌관과 오 비서관이 붙어있었다.
한 1, 2분.
그동안 걸으면서 원고를 받고, 짤막한 설명을 들은 뒤에 개조된 선거 유세 차량에 올랐다.
차량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는 3천만 원짜리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앞을 보자,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유세 행사를 미리 고지한 덕분에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다.
와아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고, 내 이름도 들려왔다.
"윤수혁! 윤수혁! 윤수혁!"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후보자로 선거에 나온 기분이었다.
곧 선대위 관계자가 진정시키자 환호가 줄어들었고, 나는 마이크를 켜서 윗부분을 쳤다.
툭툭-
스피커가 울리고, 사람들이 떠들던 입을 닫았다.
나는 모여든 사람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강북구을 국회의원 윤수혁입니다. 먼저 추운 날씨임에도 유세장에 모여주신 강북구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함께 유세중인 선대위 관계자 여러분,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현장 치안을 맡아주신 경찰 관계자 여러분, 시끄러운 소음을 견뎌주시는 인근 주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필요한 만큼만 유세하고 내려갈 테니, 차분히 경청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겸손, 또 겸손해야 했다.
그리고 진정성도 있어 보여야 했다.
겸손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일반 서민을 위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표심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이 조 후보에 대한 지지율뿐만 아니라, 내 이미지까지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대통령선거같은 특수한 기간이 또 언제 있겠는가?
더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각 지역구별 국회의원들과 원외당협위원장, 공인들도 이런 때에 얼굴 한 번 팔아보겠다고 찬바람을 쐬어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업무를 겸한 것이고, 빽빽한 유세 스케줄 때문에 녹초가 되겠지만.
얻는 게 있었다.
22일 동안 유권자와 매일같이 대면하게 하는 일.
누군가는 억지로 하겠지만, 이건 결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홍보용 미디어가 아닌, 직접 대면으로 나를 알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잘 써먹어야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되긴 했지만, 여기서 안주할 생각은 없었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정계의 끝이라고 해봐야 대통령이 뻔하지만, 그냥 대통령이 될 생각도 없었다.
이민수처럼, 혹은 조 후보처럼 대통령이 되면 무엇하랴?
비선이 따로 있고, 실세가 따로 있었다.
말이 국가의 수장이지, 간섭이란 간섭은 다 받게 될 것이었다.
모든 대통령들이 그랬다.
언론, 검찰, 국회 등등 수많은 기관과 단체에서 대통령에게 손을 뻗어 왔었다.
그 목적이 올바른 국정 운영을 위한 것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온갖 부조리 속에서 성장한 기득권층이었다.
언론의 자유나 검찰의 독립성, 원활한 당청 관계로 따위를 주장했지만, 최종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바로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이익.
그리고 그 역하고 추한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힘.
전부를 아우를만한 권력이 필요했다.
대충 얼러주고 달래주는 걸로는 부족했다.
역으로 기어오르는 탓이었다.
부족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 비선이 권력을 잡고 실세를 자처하는 인간들이 기어 나오곤 했다.
역사가 그랬다.
나는 그런 역사에 남을, 평범한 대통령이 될 생각은 없었다.
* * *
2017년 12월 6일, 부산 서면.
황택근이 막 지하상가에서 도보 유세를 마치고 리무진버스에 올랐을 때였다.
안에 있던 캠프 핵심인사 몇 명이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그래, 언제들 와 있었어?"
"어제 TV토론회 여론조사 결과를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주최하는 후보자 간 TV 토론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선거운동 기간 중에 총 3번만 개최하는 것으로, 황금 시간대에 지상파에 생중계되는 중요한 토론회였다.
그러나 결과를 가져온 이들의 얼굴이 밝지 못했다.
황택근의 표정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안 좋은가 보군."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앉아서 듣지."
비서에게 외투와 옷을 벗어주고서 마련된 자리에 앉자, 종합상황실장과 공보단장, 기획본부장이 황택근의 두고 둘러편에 앉았다.
"그래, 상황이 어떤가?"
"방송 직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0.5%р 상승했습니다."
"아쉽네, 그것 밖에 안 되나?"
황택근의 목소리가 중후하고 화술이 좋아서 많은 포인트를 얻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토론회에서 실수한 것도 없어서 역전은 아니더라도 조성현의 지지율 포인트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0.5%р는 너무 적은 수치였다.
공보단장이 자료를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조 후보는 포인트가 감소하긴 했습니다만, 많이 미미합니다. 0.03%р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해서 몇 이야?"
"저희가 42.5%고 조 후보가 47.2%입니다."
약 5%의 차이.
선거운동 전부터 좁혀지지 않았다.
황택근이 진보단일화를 선언하고, 군소 후보 두 명을 캠프에 합류시켰지만 효과도 예상보다 미미한 탓이었다.
황택근이 고개를 저었다.
"TV 토론회 두 번 남았어. 그 안에 되겠나?"
"······."
공보단장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황택근이 종합상황실장을 바라봤다.
"강 실장."
"네, 후보님."
"자네는 어때? 작전도 안 된다, 뭣도 안 된다고 겐세이 놨다면서?"
"······?!"
종합상황실장이 움찔했다.
황택근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러 언급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상관없다는 듯 황택근이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런 거 따지지 말자고, 선거 이기고 봐야지. 이길 방법 말이야, 어디 없나?"
그말에 기획본부장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희 팀에서 한 번 의견이 나왔었는데, 재산 사회 환원하는 건 어떻습니까?"
"행복당이랑 비교가 되겠어?"
"금액 말고, 전 재산은 어떻습니까? 전 재산을 환원하는 경우는 적으니, 충분히 반등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쓴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종합상황실장이 기획본부장을 바라봤다.
그러나 황택근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전 재산이라······. 괜찮네, 그래. 강 실장 생각은 어때?"
"저는······."
멈칫한 종합상황실장이 잠깐을 고민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게 괜찮으시다면, 하나 더 추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를?"
"윤수혁이랑 엮으면 네거티브로 써먹기에도 좋지 않습니까?"
"조성현이 아니라 윤수혁?"
"네, 윤수혁 재산이 1조입니다. 그것도 총선 때 집계한 거니까, 지금은 그것보다 더 되겠지요."
"그렇긴 한데, 그게 되겠습니까? 총선 때도 별 이슈 없이 얌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기획본부장의 말에 종합상황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총선이고, 이건 대선이잖아?"
한마디로 특수구간.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웬만하면 끌어다 쓰는 때였다.
"김 주간한테 단독 주고 비교 사설 쓰게 하면 돼, 받아쓰는 기사가 백만 개는 나온다. 한 번 보면 알아."
그 말에 황택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호화, 사치, 낭비······. 그런 쪽으로 그림 하나 그리면 되겠어. 대신에 너무 표적 삼으면 안 돼, 결국에 행복당 대가리는 조성현이니까."
"그럼요, 잘 압니다. 조성현도 방관자나 책임자로 넣겠습니다."
"그래, 윤수혁이 재산 리스트는? 확보한 거 있나?"
"지난 총선 때 보관한 게 있긴 합니다. 부동산, 차량, 주식 정도 있고······. 재단도 확인해보겠습니다."
"요트 같은 건 없나? 아니면 호화 별장도 좋고."
"소문은 있긴 한데, 은근히 집어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후보님, 다음 유세 준비하셔야 합니다."
"어디지?"
"부산역 광장입니다."
"벌써 다 왔나?"
"네, 도착 5분 전입니다."
그 말에 황택근이 피로회복제를 마시고서는 둘러앉은 이들을 바라봤다.
"자네들도 일 봐, 아까 말한 거 잘 착수해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걸 로는 부족해, 잘 해야 돼. 알겠나?"
"알겠습니다."
황택근이 종합상황실장의 어깨를 툭 치고는 비서실장이 내주는 외투를 입었다.
두꺼운 패딩이었는데, 걸치기만 했는데도 묵직했다.
비싸고 따듯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노쇠한 탓이었다.
황택근이 고희연을 한 것도 벌써 수년 전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유세의 강행군을 버티기에 그는 너무나도 늙었다.
몇 년만 있으면 팔순이 될 터.
그에게 다음은 없었다. 나이 80이 넘어서 대선 선거 운동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며칠의 일정도 소화하지 못하고 쓰러질 터.
당장 지금만 해도 눈이 뻑뻑하고 목도 칼칼한데다가, 무릎과 허리가 쑤셨다.
의사도 치료로는 소용이 없다고 했었다.
오로지 휴식만 권했다.
늙기 때문에 생기는, 노병(老病)이기 때문이었다.
황택근은 비서실장에게 부산역 광장에서의 유세 설명을 들으면서 아린 무릎을 주물렀다.
이번 선거가 그에게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전 재산 환원이라는 말에도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었다.
이미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도 끝냈고, 갖고 있는 건 지역구에 있는 집 두 채가 전부였다.
그사이 버스가 멈추자, 황택근이 일어선 선대위 간부들을 바라봤다.
"잘들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