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85화 (185/191)

# 185

[희망민주당 대선캠프 주요 인사 교체(속보)]

[지병 악화로 떠난 직능본부장 자리에 전 대전시장 양창우 선임]

[황택근, 진보 통합 위해 동교동계 출신 오정흔 기획조정특보에 선임(종합)]

전에 고발당한 캠프 일개 구성원과 달리, 요직 인사들은 결국 교체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연한 것이었다.

직능본부장이나 기획조정특보는 청와대에 가서도 요직을 차지할 사람들이니까.

어쨌든 포장은 그럴싸했다.

지병 악화라는 핑계, 전 대전시장이라는 거물, 그리고 진보 통합이라는 단어까지.

업계 사람이 봐도 다른 이유로 떠났다고 의심하기 힘들어 보였다.

정작 교체의 사유는 따로 있지 않던가?

바로 구속.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같은 검은돈과 관련된 일로 모두 구속 수사를 받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 일을 모두 준비하고 진행한 진도환 검사가 검찰에서 쫓겨났지만.

어쨌든 거슬리던 사람들은 얼추 눈앞에서 쓸어냈다.

남아 있는 건 먼지 뿐.

이제부터는 캠프 업무만 우직하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잔머리나 편법을 넘어서서 불법과 다툴 여지까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 진 검사가 찾아왔다.

"수고 많았습니다, 검사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의원님. 그리고······ 검사는 그만뒀으니 변호사라고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진 변호사님. 여기 커피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비서가 내온 커피를 건네자, 그가 양손으로 받아 마셨다.

그렇게 잠깐 동안 잡담을 나누던 중.

슬슬 본론을 꺼냈다.

"······들으셨겠지만, 희망당 캠프 실장이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네."

"검찰이야, 제 이름이 있으니 파면이나 불명예 사직을 미연에 방지하긴 했지만, 그 사람은 다릅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아마 변호사님 일가친척까지 전부 건드려볼 겁니다. 그러다 약점이 나오면 괴롭힐 텐데······, 선거 전이라도 잠깐 외국에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예 외국에서 거주하셔도 되긴 합니다."

"외국이라면, 어디를······."

"미국, 러시아, 아니면 중국도 괜찮습니다. 영주권 취득이나 생활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진 변호사가 조금은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해보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나온 외국행이니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하긴 기러기 생활을 하든, 외국에서 같이 살든 쉬운 것 하나 없었다.

나는 그를 다독이듯 말했다.

"정 안 되면 외국 여행이라도 잠깐 다녀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 다음은 보상을 줄 차례였다.

내가 채찍질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달가운 말을 꺼낸 것도 아니니, 맛있는 당근을 줘야 했다.

나는 상체를 살짝 숙였다.

그의 시선이 나를 따라 올 때, 응접 테이블 아래서 가방을 하나 꺼냈다.

"이건 제가 작게나마 준비한 선물입니다."

일명 007가방.

까만색 서류가방이었는데, 진 변호사가 주춤거리면서 테이블 바깥으로 나온 가방을 쳐다봤다.

"이런 건 안 주셔도 되는데······."

"저 때문에 부득이하게 부장급으로 은퇴하셔서, 퇴직금으로 조금 넣었습니다."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현금으로 가득 채웠을 때, 들어가는 액수만 5억이었다.

무게는 10㎏이 조금 안 되는 수준.

그가 자신의 옆자리로 옮기다가 묵직한 가방 무게를 느낀 것인지,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런 진 변호사에게 호의를 조금 더 베풀었다.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일수록 아껴야 했다.

내가 그런 대우를 못 받아서 장세룡과 척을 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원하신다면 청와대에 자리 하나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출근하신다면 직책은 검찰에 계셨을 때와 같은 급수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부장검사를 일반 공무원과 비교하면 약 2, 3급 정도였다.

실제 직책은 이사관이나 부이사관이지만 대개 불리는 직함은 국장이나 실장, 혹은 팀장이었다.

청와대에서 일하게 된다면 수석을 보좌하게 될 터.

돈을 받았을 때도 가만히 있던 진 변호사의 머리가 꾸벅 숙어졌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 * *

2017년 11월.

선거운동 준비로 각 캠프가 바빠졌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24일과 25일, 양일간에 후보 등록을 마치게 되면, 이튿날인 26일부터 바로 선거운동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선거 운동의 겉모습이 될, 홍보용 영상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컨셉은 리얼리티입니다."

조양준 미디어홍보본부장과 함께 온 영상 제작 담당자가 말을 이었다.

"일종의 단편 다큐멘터리 같은 컨셉입니다만, 영상 촬영 과정까지 담아서 SNS에서 젊은층까지 공략할 예정입니다."

그러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VJ들이 DSLR과 방송용 ENG카메라를 들었다.

촬영 인원만 세 명이고, 조명과 음향, 분장 담당자, 현장 책임자를 더하면 도합 열 명이 넘는 많은 숫자였다.

기간은 일주일.

돈으로 환산하면 3천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스튜디오 영상 촬영과 편집 금액이 더해지지 않은 것이었다.

소규모 업체의 일일 단가가 최소 백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건 아니었다.

대형 홍보 업체에서 단체로 출장을 나왔으니까.

방송과 라디오에서 쓰일 공식 홍보 자료를 만들면 억 단위가 넘어갈 예정이었다.

물론 윤수혁이 보고 받은 홍보비용은 오래 전에 이미 억 단위를 넘어간 상태였다.

이윽고 현장 책임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짝-

카메라 앵글에서 친 손뼉 이후, 조성현은 조금 어색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 다음은 평소와 같은 업무가 시작됐다.

회의, 지시, 보고, 면담······.

그리고 연출된 상황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러 묵혀두고 있던 것이었다.

바로 조성현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 등에 대해 논의하고 대처하는 과정.

거기서 조양준이나 윤수혁이 원하는 그림은 단 하나였다.

바로 동정심 유발.

이미 조성현이 일을 잘하는 건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니, 추가로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이었다.

선거 유세 때 눈물을 쥐어짜는 것 말고도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예정이었다.

애초에 설득의 가장 큰 방법이 바로 감정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하거나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게 바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감정 중에 가장 좋은 건 바로 분노나 슬픔이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애환과 슬픔 따위를 주제로 한 신파가 각종 미디어를 장악한 나라였다.

그만큼 동질감을 느끼기 쉽다는 뜻.

더구나 가족이었다.

공감 요소가 많아서 써먹기가 좋은 요소가 아닌가?

아무리 개인주의가 만연한다고 한들, 부모에 대한 효나 자식에 대한 애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곧 캠프 직원 하나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보고했다.

"가족에 대한 비방이······ 많이 지나칩니다. 법무팀에서 논의 중인 사항인데······."

화면에 서류 일부가 노출됐다.

후보에 대한 비난이 아닌, 끔찍한 악플이 기록된 종이였다.

조성현이 그 말에 손을 내밀었다.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캠프 직원이 당혹스런 얼굴로 주춤했다. 동공이 커다래졌고, 눈깜빡임이 잦아졌다.

"주세요, 괜찮습니다."

그러나 조성현의 재촉에 결국 직원은 서류를 내밀고 말았다.

조성현은 이내 굳은 얼굴로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다 불쑥 현장 책임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상이 너무 단조롭습니다. 얼굴도 한 번 쓸어내려주시고, 눈가도 문질러주십시오."

컨셉은 리얼리티였으나, 촬영과정 전부가 리얼리티는 아니었다.

엄연한 선거 홍보용 자료였다.

표를 얻기 위한 촬영이지, 다큐멘터리 기록은 위한 게 아니었다.

악플 리스트도 이미 몇 번의 검토 끝에 제작을 마친 것이어서 조성현도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잘 대답한 조성현이 다시금 자료를 내려다보면서 답답하고 슬픈 분위기를 표현했으나 다시 촬영이 중단됐다.

이번에는 분장 담당자가 인공 눈물을 넣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이 괜찮았다.

촬영 일시 중단이나 온갖 지시로 과정 자체는 혼잡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캠프 안의 사람들뿐이었다.

표를 움직이는 대중은 달랐다.

유권자는 카메라 앵글 안의 화면을 보고, 마이크 안의 녹음된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연출하고 편집된 최종본이 바로 그들이 볼 수 있는 전부였다.

윤수혁이 엷게 미소 지었다.

'이제야 좀 선거답네.'

* * *

대선까지 D-30.

이번 주 금요일부터 2일간 후보 등록일이고, 이틀 뒤에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었다.

정말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웬만한 공식적인 준비는 다 됐고, 남은 건 선거운동뿐이었다.

그래도 할 일은 많았다.

계획이 있는 것이지, 지금 생기는 상황 자체를 모두 해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밀려오는 민원인과 각종 전화, 빌딩 앞의 집회, 1인 시위, 온갖 루머 따위에 대응하느라 실무자들은 여전히 바빴다.

나만해도 수많은 유지들의 전화를 받느라 시간이 없었다.

그것도 박 보좌관이 급을 나눠서 선별했음에도 매일같이 대기자가 있었다.

조 후보가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의 단체에서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 때문에 국회 정론관까지 예약이 미어터졌다.

서울시의회 맞은편의 프레스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점점 불이 붙는 상황.

그 와중에 조 후보가 나를 불렀다.

박 보좌관이 알려줘서 일어나는데, 뒷말이 곧장 이어졌다.

"지금 캠프에 계신 건 아니고, 잠깐 밖에 나가 계십니다."

"오늘 외부 업무 끝났을 텐데요?"

"네, 의원님 만나시겠다고 자리 옮기신 것 같습니다."

"어딘데요?"

내 말에 박 보좌관의 대답에 한 템포 늦게 나왔다.

"한강입니다."

"한강?"

"네."

"왜요? 근처에 일정 뭐 있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코트를 챙겨들고 캠프를 나와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호사스러운 롤스로이스 대신, 구형 그랜저HG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타고 다니는 차였다.

물론 단거리에만 해당됐다.

지방으로 가는 순간 도로에서 반나절이 금방 증발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위치 들었어?"

차에 타며 영석이에게 묻자, 금방 대답이 들려왔다.

"네, 당인동 화력발전소 앞 한강변입니다."

"화력발전소?"

선거캠프가 있는 내 빌딩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가까운 인근에 뭐가 있던가?

여의도가 있고, 선거캠프가 있긴 하지만 그 외에 생각나는 건 없었다.

"일단 가자."

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10분도 채 안 돼서 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좁은 1차선 편도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다 영석이가 차를 완전히 세웠다.

"여기서 내리셔서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차는 주차장에 대놓고 대기하겠습니다."

그 말에 차창 너머를 내다봤다.

1차선 편도 옆에 자전거 도로와 인도만 있었다.

곧 경적음이 들렸다.

경호차량 뒤에서 난 일반차량의 클락션이었다.

"김 팀장님, 여기서 일단 내릴게요."

"알겠습니다."

김백현 경호팀장이 바로 무전을 치면서 보조석 문을 열고 내렸다.

나도 따라 내리는데, 어느새 두 명의 경호원이 내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까만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 모습에 일반차량이 경적을 멈췄고, 곧 그랜저HG와 까만 SUV도 출발했다.

"이동하시죠."

걸으면서 둘러봤지만, 역시나 생각나는 건 없었다.

자전거 도로로 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나가고, 조깅하는 사람이 몇 있을 뿐, 별 다를 게 없었다.

오는 길에 석양이 끝나서 밤까지 내려앉으니, 보이던 것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곧 조 후보의 모습이 보였다.

니스칠을 해야 하는 나무 벤치가 서너 개 정도 듬성듬성 놓여 있는 곳이었다.

"어, 왔습니까?"

조 후보가 몸을 일으키면서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뭔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물었는데, 그가 고개를 젓더니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읍시다."

"아, 네."

"아니, 거기 말고. 여기 앉아요. 의자가 찹니다."

조 후보가 그러면서 본인이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키기에 앉았는데, 그가 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 미묘했다.

마치 영화라도 촬영하는 듯 했다.

해가 다진 한강변, 경호원들이 사방에 퍼져 있는 가운데, 차가운 벤치에 앉은 대통령 후보와 총괄본부장이라니.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많이 생각해봤는데, 윤 본만 못 정했습니다."

"······?"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여전히 한강에 눈을 둔 채 말을 이었다.

"내각 말입니다. 어느 자리가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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