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79화 (179/191)

# 179

고토 요시히로의 접촉 소식을 캠프 간부들에게 알렸다.

금세 회의가 잡혔고, 테이블에 실무 책임자들이 둘러앉았다.

부서와 관계없이 저마다의 능력이 있고 식견이 있는 이들은 전부 모인 것이었다.

얘기는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게 일본 정계가 좀 특별하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 간의 교류 모임의 명칭도 일반적인 외교협의회나 친선협회가 아닌, 한일의원연맹(韓日議員聯盟)이었다.

마치 동맹 같은 어감.

대한민국의 유일한 우방국인 미국 의원과의 교류 모임도 외교협의회가 명칭이니, 이건 정도가 심각했다.

더구나 거의 매해마다 친선 축구 경기까지 했었다.

그것도 국회의사당 운동장뿐만 아니라, 119구급차를 상비한 상암월드컵경기장까지 임대한 적이 있었고.

물론 연맹에 소속된 의원들에 한해서 그랬다.

나는 한러의원외교협의회 소속이라서 축구 게임을 하지도 않았고, 사진 촬영도 한 번 하질 않았었다.

당연히 나한테 접근한 적도 없었고.

이유는 알만했다.

내가 2012년도에 김정환의 친일 증거를 최초로 공개했었으니까.

그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확률이 컸다.

그러나 내가 저물지 않고 여전히 승승장구하니 어쩔 수 없이 연락했을 터.

왜 움직였는지는 뻔히 보였다.

다만 일본이, 고토 요시히로가 할 말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이윽고 가까이 앉아 있던 조양준 미디어홍보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의원님께서 친일 카드로 후보를 낙마시킨 경력이 있어서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안 좋은 말이어서 조 본부장이 뒷말을 흐렸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안순익 문화특보가 고개를 저었다.

“어허, 총본이 어떤 사람이요? 그리고 일본은 또 어떻고? 잘 주무르면 근사한 작품이 하나 나올텐데, 안 그래요?”

“총괄본부장님 능력은 믿지만, 일본이 못 미덥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친일 논란 나오는 거 일도 아닙니다. 받지도 않은 예비군 특혜 났던 거 모르십니까?”

다시금 조 본부장이 말하자, 안 특보가 반박했다.

“나도 잘 압니다. 그런데 말이요, 총본이 어디 보통 잘난 사람이요?”

조금은 맹신 같은 말.

나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칭찬 듣는데 끊을 필요도 없고.

“그거야 그렇지만······.”

조 본부장이 말꼬리를 흐린 뒤.

대화를 지켜보던 이들이 두런두런 말을 꺼내 놨다.

“맞습니다, 만에 하나 라는 게 있긴 있죠.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나는 지경인데······.”

“하지만 외교만큼 대선에서 요긴한 게 없지 않습니까? 일본 경제를 써먹으면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면 일단 접촉이라도 해보는 게 어떨런지요?”

일본의 연락으로 회의 테이블이 달아올랐다.

당장 일본의 반응으로 지지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필수 능력 중 하나가 외교이기도 했고.

덧붙여 외국어 회화 여부를 따지기까지 하는 게 언론이고 여론이었다.

그래서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가닥을 잡고 있었다.

물론 나한테는 일본보다 더한 카드도 손에 들어올 뻔했었다.

바로 북한.

다만 회의 테이블에서 꺼낼 얘기가 아니고, 나 혼자 판단해야 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북한 얘기를 꺼낸다면 테이블이 뒤집어지겠지.

그 사이, 회의자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총괄본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 본부장이 대표로 묻기에 대답해줬다.

“용건이라도 확인은 해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접촉이 혹여 드러나게 된다면······.”

“저도 쓸만한 한 수 정도는 있습니다.”

“역시!”

안 특보가 손뼉을 짝 치더니 끌끌거리면서 웃었고, 조 본부장은 궁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웃어줬다.

* * *

7월 중순, 일본.

일본의 정치 1번지 나가타초의 국회의사당.

고토 요시히로를 수행하던 보좌관이 조용히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그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고토 요시히로는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

“저희 쪽에서 연락한 용건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답니다.”

보좌관의 짧은 대답에 고토 요시히로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게 끝이라고?”

“네,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고토 요시히로의 미간이 구겨졌다.

“내가 누군지······, 됐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모를 리가 없었다.

현 일본 총리의 오른팔이자, 자민당의 실세로 차기 총재가 예약된 정치인이 바로 자신이었다.

더구나 사무실 번호를 알려준 대상도 윤수혁의 외삼촌인 국회사무총장 김정수였다.

사전 확인을 안 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혹시 몰라 일한의원연맹의 동료에게 언질까지 해뒀었다.

접촉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데 꼴랑 한다는 게 용건을 묻는 전화였다.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에게는 일본 내의 우월한 지위와 전 새한국당 당대표이자 대선후보였던 김정환을 다뤘던 경험까지 있었다.

윤수혁의 태도가 마뜩찮을 수밖에.

옳다구나 하고 전화해오는 게 아니라 용건만 묻고 뚝 끊는 건 상당히 건방진 것이었다.

윤수혁은 고작 서른셋에 불과한 정치 풋내기가 아닌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그건 한국 내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어린놈이······.’

고개를 저은 그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약속 자리나 잡아놔.”

“의원님.”

“뭐?”

“용건을 안 이후에 대면하겠다는 말을 남겼답니다.”

고토 요시히로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정신 나간 놈이군.”

“어떻게 할까요?”

보좌관이 상체를 15도로 기울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에 누가 있지?”

“외무성의 오자와 요시로가 나가 있습니다.”

“다른 인원은?”

“바로 확인해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됐다, 오자와 요시로한테 연락해.”

오자와 요시로도 자신의 측근 중에 하나였다.

김정환의 왕보좌관이 일본에 방문하기 힘들면 그를 통해 종종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로 믿는 수하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지시는 따로 내리겠다.”

“네, 의원님.”

* * *

“전화 회신은 했습니다만······.”

박 보좌관이 조금 주저하듯 말하기에 선거 자료를 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요?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조치했습니다.”

“괜찮으니까 다 말씀하세요.”

“······언성이 좀 높아졌습니다.”

단순히 목소리만 커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일본 외무성에서 파견 나온 오자와 요시로라는 일본 외교관이었다.

그것도 고위직 공무원.

박 보좌관의 말에 쉽게 응하고 고개 숙일 리가 없었다.

우리나라 공무원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상대는 일본이었다.

각종 원자재 수출입 의존도에 발목이 잡힌, GDP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욕도 했어요?”

“······그 부분은 일본어라 못 알아들었습니다.”

나머지는 한국어였다.

외무성에서 한국으로 파견 나온 사람답게 한국어 구사도 수준급이기 때문이었다.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박 보좌관이 발음을 흉내 내서 잘 알았다.

내가 다시 선거 자료로 시선을 내리는 사이.

“그리고······.”

박 보좌관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가길래 다시 바라봤다.

“······?”

“찾아온답니다.”

“그럼 국회 안내 데스크에 미리 말해두세요.”

“뭐라고 말할까요?”

“뭘요? 약속 잡아서 만나는 게 기본인데. 그냥 찾아 왔으면 돌려보내야죠.”

“아, 네.”

박 보좌관이 조금 주춤하며 대답했다.

그도 우리나라 공무원들 앞에서는 거칠 게 없지만, 일본 외무성의 공무원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현재 위치는 결국 일개 보좌관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대선 기간이니까 일본인은 특히······, 아시죠?”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김정환의 친일 논란은 결국 지난 대선의 일이었다.

희망민주당의 경선마저 끝나게 되면 이번 19대 대선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18대 대선의 일이 재조명될 터.

그 때의 친일 논란이 언급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희망민주당에서 조성현 당대표를 까 내리기 위해서 과거의 일을 들춰낼 테니까.

어느새 박 보좌관이 단단하게 대답해왔다.

“네, 의원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보세요.”

그렇게 박 보좌관이 나가는 사이,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송신자는 고일준 의원이었다.

행복한국당의 최고위원 중 한 명이자, 현재는 대선 캠프의 정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람.

“여보세요.”

- 아, 윤 의원. 의원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개인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뭔가가 탁 떠올랐다.

오자와 요시로.

그와 박 보좌관이 통화한 일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의원실에 일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다. 대선과 국감이 겹쳐 바쁠 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별 일 없었습니다.”

- 일본 외무성 간부가 전화를 했더라고, 윤 의원 의원실이랑 무슨 오해가 있던 모양인데.

그에게는 아직 일본의 접촉에 관해 말하질 않았었다.

대선캠프의 실무 책임자들과 의논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공개적으로 논의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지금 묻는 걸 보니 역시나 모르는 모습이었다.

다만 오자와 요시로를 아는 건, 전직 외교통일위원장이었던 경력 때문이겠지.

“아, 별 거 아니었습니다. 대뜸 만나자고 하길래, 저번 대선이 걸려서 우선 거절했거든요.”

- 에이, 그 때하고는 다르지.

고토 요시히로가 핫라인 넘버까지 남겨둔 걸 모르는 말이었다.

고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 몰래 호텔에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외무성 공무원 약속인데 뭘. 저번 대선에서는 한일 관계를 망쳤으니까, 이번에는 증진한다는 식으로 써먹어도 괜찮잖아?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겠습니다.”

- 에이, 그렇게 까긴 아까워서 그래. 일본 외무성 애들이 목에 깁스하고 다니거든, 웬만해선 먼저 만나자고도 안 해.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짤막하게 대꾸하자, 고 의원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설득이 아닌 수긍이었다.

- 그렇다면 뭐······, 윤 의원이 알아서 잘 하겠지.

두 번이나 거절하니 명확하게 알아들은 것이었다.

국회의원을 4선이나 했고, 경기도당 위원장과 최고위원을 겸임하니 이 정도는 눈치 챘을 터.

- 그럼 잘 둘러대지 뭐, 혹시 모르니까 외통위에도 말해둘게. 그럼 고생해, 일도 많을 텐데.

그가 수습한다는 듯 말하기에 엷게 웃었다.

“아닙니다, 그럼 끊습니다.”

- 어어, 들어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음에는 국회 업무까지 봤다.

대선이 중요하긴 하지만, 국토위 일도 그렇고, 민원인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됐을까?

똑똑똑똑-

급한 노크소리와 함께 박 보좌관이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와, 왔습니다.”

“누가······, 설마?”

“네, 외무성의 오자와 요시롭니다.”

“데스크에서 돌려보내라고 했잖습니까?”

“그게 지금······, 의원실까지 왔습니다.”

하긴 외무성 공무원이었다.

콧대 높은 일본의 고위공무원이고, 고 의원에게 전화할 만큼 인맥도 있는 이였다.

데스크의 말단 공무원이 돌려보내긴 어려웠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모셔······.”

“아뇨, 내가 입구로 갈 겁니다.”

“아, 아, 네.”

당황한 박 보좌관과 함께 의원실 입구로 가자, 두 사람이 보였다.

먼저 낯선 얼굴.

잔뜩 굳은 표정을 보니 그가 오자와 요시로인 모양이었다.

그의 곁에는 진성애국당의 외통위 위원이 한 명이 따라와 있었다.

아니, 꼴을 보니 의전한 모양이었다.

이러니 데스크에서 돌려보내질 못했지.

속으로 혀를 차는 사이, 외통위 위원이 잘 됐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아! 윤 의원, 일본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그럼 그에 걸맞게······.”

헛소리를 잘랐다.

“뭡니까, 이게?”

“응?”

“누가 누구 손님이랍니까? 나는 약속 잡은 적도 없습니다. 안 그래도 대선이고, 국감이고 바빠 뒤지겠는데.”

“아니······.”

불쑥 거친 말이 나와선지, 위원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렸다.

그를 내버려두고 이번에는 오자와 요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오자와 씨, 공문을 보내던 일정을 기다리던 알아서 하시는데, 절차는 제대로 밟읍시다.”

“······.”

답은 없었다.

주위에서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려올 뿐.

나는 등을 돌리려다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새빨개진 오타와를 쳐다봤다.

“전화해서 불러내는 짓도 그만 하라고 전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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