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76화 (176/191)

# 176

스마트폰 화면을 보자마자 알았다.

2010년도의 일이었다.

내가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된 뒤, 편한 정계 진입을 위해 돈을 쓴 적이 있었다.

찌라시에는 5,000만 원이라고 부풀려져 있었지만 당시에 쓴 돈은 1,500만 원이었다.

내가 산 직책도 경기도당 청년대책위 부위원장이었다.

무급의 명예직.

마치 5,000만 원을 주고 정당에 들어간 것처럼 나와 있는데, 내가 한 건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자원봉사나 인턴따위로 시작할 순 없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찌라시에 이 얘기가 실려서는 안 됐다.

따지자면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건 엄연히 내 비밀이었다.

바로 6년 전 인사부장인 강석배 부장과 있었던 일.

어떻게 이게 찌라시에 실렸을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건지, 아니면 원인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물론 당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은 하나 있었다.

바로 강 부장.

그가 떠들었고, 그게 여기 실렸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이건 나와 그의 사이에 있던 일이었으니까.

더구나 찌라시에 실린 것도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니라, 금액만 부풀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강 부장이 그걸 떠들만한 사람이라고?

원래라면 앞으로 4년 뒤에 중앙당 총무국 부국장을 역임할 당직자였다.

또한 그 동안 숱하게 청탁을 받아 처리하면서, 승진을 거듭하면서 셈도 빨라졌을 인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전생에 내 지시를 받았던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했고.

지금은 보직이 바뀌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행복당 소속이었다.

그래서 찜찜했다.

여전히 우리 당에 있으면서 이런 얘기를 떠드는 건 말도 안 됐다.

최소한 여태 받은 보수 이상의 대가와 앞으로의 미래까지도 보장 받아야 했다. 아니면 내 보복을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분명 그만한 사리판단은 했을 터.

생각이 길어지는 사이, 미디어홍보본부장인 조양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언론사 단도리하고 법적 조치 준비 중에 있는데······, 총괄본부장님 견해는 어떻습니까?”

그의 물음에 시선을 들었다.

조 본부장은 찌라시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묻는 게 아니었다.

사태를 알려주고, 지시 사항을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여태 조그마한 부정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거짓에 가까우니까.

짧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공론화될 일은 없을 겁니다. 조 본부장님도 재량껏 조치해주세요.”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발본색원하면 됐다.

바로 인사부장인 강석배를 없애는 것.

물론 사실 확인이 우선이었다.

처리한다고 해도 장세룡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할 거고.

곧 조 본부장의 단단한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역시 프로페셔널했다.

그 외의 잡담 없이, 조 본부장은 자신의 일을 처리하러 내려갔다.

나는 잠깐 서서 스마트폰으로 찌라시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대선 경선을 앞둔 만큼, 정치면 얘기가 유독 많았다.

그 중에 차지한 한 줄이 내 이야기였다.

그것도 무려 6년 전 얘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전화를 걸었다.

음지와 양지를 오가며 번거로운 일을 해주는 권창훈 팀장에게 건 것이었다.

- 권창훈입니다.

“우리 당에 강석배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 위치 확인하시고, 조용히 대화할 자리 좀 만들어주세요. 아니, 전화 통화가 낫겠네요.

-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수고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뒤, 캠프로 내려가자 문화특보로 임명된 안순익 협회장이 보였다.

그가 옥상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딱 봐도 급한 모습.

“안 특보님, 무슨 일이세요?”

“윤, 윤 본부장! 흐, 흐억······. 소식 들었나?”

“예?”

찌라시를 말하나 싶었는데.

“예비군 특혜 의혹 떴단 말일세!”

“그게 무슨······.”

“저질 온라인 기사입니다.”

어느새 안 특보 뒤에 방금 내려갔던 조 본부장이 부연 설명을 덧달았다.

계단 입구에 선 채 헛웃음을 흘렸다.

찌라시에 이어서 예비군 특혜라니?

우우웅-

동시에 스마트폰도 바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 * *

행복한국당 당사.

사무실에 자리해 있던 당직자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기사 때문이었다.

[2013년 국방위원회 국회의원 신분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았던 모 의원이 당시 부대장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제기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매해마다 논란이 됐던 국회의원 특혜 논란이 예비군 훈련에도 적용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캠프 출범하자마자 이게 무슨 난리인지······.”

강석배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옆 자리에서 비교적 젊은 당직자가 물었다.

“이거 윤수혁 의원님······.”

“야. 어디 이름을 입에 올려? 기사에서도 모 의원으로 적었는데······, 너 제 정신이냐?”

“아,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담배 태우고 오니까 일이나 해. 공보국 협조 요청 오면 재깍 받아주고.”

강석배가 마뜩찮은 어투로 말을 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머리 위에 달린 지원협력부 팻말을 지나서, 원내행정국 명패가 부착된 사무실 문을 밀었다.

복도로 나오던 강석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양반도 내가 정계 입문 시켰는데, 결국 뭐가 뜨긴 뜨네.”

그러면서 입에 담배를 무는 순간.

“강석배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 예. 접니다만, 어디서 오셨는지······.”

반사적으로 강석배가 살짝 굽혔으나, 대답은 없었다.

사내는 묵묵히 다가오기만 했다.

딱 벌어진 어깨와 날카로운 눈매가 눈에 띄는 장년의 남성.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강석배가 슬쩍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전화 받으시죠.”

“네, 네?”

강석배가 움찔하자, 그가 구형 폴더폰 하나를 내밀었다.

“얼른.”

“아, 네.”

폴더가 열린 통화 중인 핸드폰이었다.

눈치를 보던 강석배가 일단 전화를 받았다.

마주 온 사내가 무섭긴 했지만, 여기서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진 않았다. 여의도 한복판이고, 당사 사무실이 있는 복도였다.

비록 복도나 사무실에 감시 카메라도 없는 오래된 건물이긴 했지만.

“······여보세요.”

- 오랜만입니다, 강 부장님.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 저 윤수혁입니다. 기억 하십니까?

“헙, 아! 의원님. 아, 예예! 기억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강석배의 허리가 순식간에 45도로 굽어졌고, 양손이 조심스레 폴더폰을 잡았다.

- 바로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물론입니다.”

- 증거 남겨뒀어요?

“네?”

- 청탁 증거. 여러 사람 거 했을 거 아닙니까?

“아아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감히 그런 위험한 걸 남기겠습니까?”

- 그럼 저와 관련된 청탁 사실은 없는 겁니다. 만난 적도 없고요, 맞습니까?

“아아, 물론입니다.”

- 검경 수사 견딜 수 있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청탁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순간 강석배가 주춤하고 말았다.

여태까지 자신이 받은 뇌물과 했던 일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생활 당직자를 했고, 온갖 청탁 해결을 했던 사람답게 정신을 수습했다.

“그, 그럼 제가 어떻게······.”

- 오늘부로 사직서 내고 여행 좀 다녀오세요.

“사, 사직서요?”

- 예.

윤수혁의 단호하고도 확고한 대답에 강석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음, 그럼 여행은 언제까지인지······.”

- 우선 한 달, 그리고 업무 복귀는 대선 이후입니다.

대선이 끝나는 건 앞으로 7개월 뒤였다.

너무 멀었다.

차마 그러겠노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간 받은 뇌물이 있었지만, 남은 건 별로 없었다.

주식도 했고, 종종 경마도 했다.

물론 받은 뇌물이 있으니 나가는 뇌물도 있었고.

더구나 처자식도 있는 몸이라서 강석배는 대답이 더욱 힘들었다.

폴더폰 너머에서 다 안다는 듯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 집에는 해외 출장이라고 말하시고, 월급은 매달 드릴 겁니다.

“아······.”

전부 해결해준다는 말.

그러나 작은 공포가 남아 있었다.

외국으로 나갔다가는 사달이 나지 않을지, 지금의 생활이 끝나는 건 아닐지 등의 두려움이었다.

망설이는 사이, 폴더폰에서 윤수혁이 대답도 필요 없다는 듯 말을 마쳤다.

- 그럼 바빠서 이만 끊습니다.

“의, 의원님!”

강석배가 마지막 남은 택시를 잡듯 소리쳤다.

-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윤수혁은 고용주나 다름 없는 정계의 권력자였고, 자신은 일개 당직자였다.

수틀리면 어떻게 될까?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당장 윤수혁의 말 한마디에 움직일 단체와 사람들이 전국에 수두룩하게 깔려 있었다.

반항했다가는 무슨 일을 겪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 앞에 계신 분이 도와줄 겁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어느새 넘어 온 윤수혁의 말에 강석배가 황급하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자신이 살 길은 이것뿐이었다.

* * *

강 부장과의 통화를 마친 뒤.

이어서 조 본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조 본부장님.”

- 일단 기사는 전부 내리고 온라인 신문사는 폐쇄 요청했습니다만······, 사이트 폐쇄는 경찰이 등록된 주소로 출동한 뒤에 허위 소재인 거 확인되면 바로 진행한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뻔했다.

온라인 기사만 뿌려대는 가짜 언론사가 수두룩했으니, 그걸 이용해서 작업했으리라.

“수고하셨어요, 부대 접촉은 어때요?”

- 당시 전포······사격관이던가요?

“전포사격통제관이었고, 지금은 행보관. 맞습니까?”

- 아, 기억하시는군요. 그 행보관하고 당시 작전과장, 대대장, 여단장까지 전부 증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병사였거나 예비군이었다는 제보자가 몇 명 있어서 확인 작업 중에 있습니다.

역시 일 하나는 잘했다.

기사 터진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비공식적으로 선거캠프 출범한 지도 꽤 됐고, 경선도, 대선도 준비한 지 오래됐으니 만반의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이미 선거 공약도 최종 점검을 앞두고 있었고.

어쨌든 발군의 대처 능력을 칭찬했다.

“고맙습니다, 본부장님.”

- 그리고 따로 파악한 게 있는데······.

그가 말꼬리를 흐리길래 귀를 기울였다.

“예, 말씀하세요.”

- 희망민주당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선 후보자 넷 중에 누구 같아요? 황택근? 염상수? 권상태, 김성엽?”

-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돼서······.

찌라시든, 기사든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된 시간이니 배후까지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

“괜찮습니다, 대신에 준비만 해두세요. 누구든 반격할 수 있게.”

- 물론입니다. 그런데 아직 정보는······.

“그건 괜찮습니다. 제가 챙겨드릴 겁니다. 아, 직접 보도하면 안 되는 건 아시죠?”

그렇게 되면 나도 똑같이 진흙탕에 들어가야만 했다. 쉽게 말해서 오십보백보 소리나 듣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 놈이 그놈이다, 도토리 키재기다 등등······.

그래서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 들이 네거티브 전략을 아주 좋아라했다.

상대방을 깎아서 같은 수준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어느새 조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어떤 정보인지······.

“색깔론 아니니까 조 본부장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상대방 확인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약간 염려하던 그의 목소리가 금방 밝아졌다.

색깔론 공격만큼 뻔하고 모자란 공격은 비효율 적이기에 걱정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조 본부장과와 통화를 마친 후, 다시 권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 한 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의원님.

“일 하나만 더 해야 될 거 같네요.”

- 말씀만 하십시오.

“찌라시하고 예비군 특혜 기사 난 거, 유포자 좀 찾아봐 주세요.”

- 알겠습니다.

“가급적 빠르게. 오늘 조치한 것처럼 해주세요.”

-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이제 사용할 때가 왔다.

2010년도에 정리해둔 뒤로 확인하면서 간직했던 것들이었다.

정보였다.

그것도 황택근, 염상수 그 외의 후보자들이 2020년까지 겪은 사건들.

이미 역사가 많이 바뀌어서 일어나지 않은 일도 있고, 딴판으로 바뀐 것도 있지만 생각외로 쓸 게 많았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만했다.

아니,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라서 그럴 터.

그래서 이 수첩은 노다지였다.

깔 게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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