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75화 (175/191)

# 175

4월 중순.

[행복한국당 경선 일정 발표]

[조성현 대선 출마 선언···당대표 사의 표명]

[조성현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 윤수혁 총괄선거대책본부장에 위촉]

행복한국당 대선후보 조성현이 기사를 확인할 무렵.

똑똑똑-

노크 소리 뒤에 윤수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윤 최고. 아니······, 윤 본. 일단 자리에 앉아 봐요.”

선거캠프 직책인 본부장을 줄여서 부르자, 윤수혁이 가볍게 웃었다.

“예, 후보님.”

윤수혁도 마찬가지로 선거캠프에서의 호칭으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조성현이 미리 타놓은 커피를 건넸다.

“요새 어떻습니까?”

“선거철이 그렇죠, 뭐. 이제 캠프도 공식화했고······. 아시잖습니까?”

선거철과 캠프 공식화가 뜻하는 건 바쁘다는 말이었다.

비록 아직은 경선이었지만 대선을 염두에 둔 상황이 아닌가?

바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조성현이 웃음기를 거두지 않고 대답했다.

“대선은 처음이라······, 많이 힘듭니까?”

그 말에 윤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경선 후보자도 실무자 이상으로 힘든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로 유세를 다니고 원고를 낭독하다보면 체력적으로 힘들고, 저급한 네거티브와 정책 공부 따위로 정신적으로도 힘든 게 바로 후보 당사자들이었다.

윤수혁이 슬쩍 찌르듯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미안해서 그럽니다.”

“후보님이 뭐가······, 아! 혹시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겁니까?”

윤수혁이 움찔하며 되묻자, 조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대답 대신 웃음이 돌아왔다.

“하하하, 윤 본답습니다.”

“예?”

“다른 뜻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미안해서 하는 말이었어요. 우리 캠프에서 가장 힘들고 바쁜 사람이 윤 본 아닙니까?”

“아······.”

선거만 생각하던 윤수혁이었다.

뒤늦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탄식을 뱉자, 조성현이 엷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군말 안 하고 받았으면 합니다.”

“······?”

윤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스윽.

손바닥만한 가죽 상자가 하나 나왔다.

뚜껑을 연 윤수혁은 바로 조성현을 바라봤다.

“이건······.”

금팔찌와 금반지였다.

“얼마 안 합니다, 윤 본한테도 몇 푼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아니지······. 그러니까 그냥 받아두세요.”

잠깐을 바라보던 윤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보님이 주시는 거라 받는 겁니다. 다른 데는 말씀하시면 안 돼요.”

“하하, 물론이죠. 내가 소문내서 뭐 하겠어요?”

윤수혁의 아들 윤지훈이 태어난 지 1년으로 돌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수혁은 돌잔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또한 각종 축의금이나 화환, 선물도 받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선 때문이었다.

돌잔치에서는 식대를 대주고, 금품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특히나 총괄본부장이라는 직책까지 단 상황이었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훼방을 놓는다면?

중앙선관위가 움직일 것이었다.

그게 허위든, 사실이든.

이후에는 번거롭고 시끄러운, 지난한 과정으로 흘러갈 게 뻔했다.

그건 인지도 없는 후보가 아닌 이상, 전혀 도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거전에서 네거티브가 많이 발생하곤 했고.

이윽고 조성현이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가요.”

“어떤······.”

단단하게 포장된 큼직한 액자였다.

“내가 잘 아는 화백한테 부탁해서 하나 그렸습니다.”

“아는 화백이라면······.”

윤수혁이 궁금하단 얼굴로 물었다.

화가에 따라서 그림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한 점에 수십만 원에서 수십억까지 호가 하는 게 예술판이었으니까.

“무명은 아닌데, 그렇다고 유명한 친구도 아니니까 너무 신경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가격도 비싸진 않고, 아니지······. 저렴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내가 윤 본 생각해서, 미안해서 주는 거라고 생각해줘요.”

“예, 후보님.”

“그럼······, 바쁠 텐데 일 보세요. 내가 너무 오래 잡았습니까?”

조성현이 멋쩍은 듯 말을 돌리자, 윤수혁이 씩 웃었다.

“아닙니다, 적당했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줘요.”

조성현이 고마운 눈으로 윤수혁을 바라봤다.

한 층을 리모델링한 선거 캠프와 능력 있는 각계각층의 선거 전문가들, 그리고 쏟아지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고마웠다.

윤수혁에게 함께 하겠노라고 말하긴 했지만, 대선 경선까지 오게 되니 감개무량한 것이었다.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대선 후보로 언급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모든 게 윤수혁 덕분이었다.

사람 한 명이 정치를 주무르고, 대선 후보를 만들었다는 게 과연 말이나 되는 걸까?

조성현은 지금도 믿기 어려운 현실을, 믿기지 않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 * *

마포역 인근 빌딩 8층.

짝짝짝짝짝-

캠프에 박수소리가 퍼졌다.

공식화된 캠프에 인원이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정책위원회, 공보단, 각 분야의 특보들로 구성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었다.

실리만 따지자면 필요 없는 이들.

그러나 포함시켜야 했다.

딴 것도 아닌 대선 캠프였다.

캠프에 필요한 건 분야에 맞는 능력뿐만 아니라, 인맥, 허울, 자리, 이름 등등의 온갖 요소였다.

행정공무원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수장을 뽑는 일이었다.

일종의 대국민 쇼.

온갖 게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그중 대표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전직 정치인이 입을 열었다.

YS시절 총리를 역임한 80대 노인이었다. 안순익 협회장보다 나이가 두어 살 즈음 더 많은 사람.

“여러분들께서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 부어서 정권 교체 이룩하길 바랍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더 힘내야 합니다. 이번에 총괄본부장에 임명된 분이······ 그 유명한 윤수혁 의원이지요?”

그가 돌연 나를 지목하기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젊은이들의 희망이라고 들었습니다. 점점 성장하는 모습 보여주고, 위기에 굴복하지 말고······.”

이어서 나에 대한 조언과 칭찬으로 넘어왔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했는데, 그의 말이 또 다시 옆으로 샜다.

“그리고 곧 아들 돌이라고 들었는데······?”

“아, 예.”

“축하해요. 아들내미도 잘 키워서 본인 못지않은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길 바랍니다.”

이어서 내 아들, 지훈이에게로 덕담이 옮겨갔다. 조금 어리둥절한 상황.

나이 들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는가 싶었는데, 눈빛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주 또렷했다.

아직은 모르지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얘기가 좀 엇나갔지만, 요점은 이겁니다. 결국 최전선에서 일하는 건 여기 젊은 분들이니 노력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사람들이기도 하고······. 자, 너무 길어지니 여기까지.”

신변잡기도 아닌 요상한 말이었지만, 이해 못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공식석상도 아닌 캠프 방문이니까.

그렇게 선대위원장 행렬이 돌아가는 길.

배웅하러 나가자, 그가 나를 잡았다.

“잠깐 얘기나 좀 하지.”

“예, 위원장님.”

옆으로 슬쩍 나온 사이, 일행과 슬쩍 떨어진 틈에 물었다.

“하실 말씀이······?”

“내가 자네 보려고 선대위원장 한 거 아나?”

“저를요?”

“그래, 실은 내 장손이 지금 외국에서 공부 중에 있거든? 작년에 아이비리그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 중인데······.”

“아, 예.”

뭔 부탁인지 자랑인지 몰라서 대꾸만 하는데, 선대위원장의 말이 훅 찔러 들어왔다.

“자네가 좀 써주면 안 되나?”

“쓰다니요?”

무슨 소린가 싶었다.

전직 총리였고 지금은 선대위원장인 사람이 아닌가?

대기업 취업은 자신의 위치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더구나 경선 준비 중이었다.

괜한 흠은 만들어서 좋을 거 없는 상황.

선대위원장이 손을 내저었다.

“자네가 쓰라는 말이야.”

“······제가요?”

“그래, 자네 같은 사람이면 내 마음이 놓이겠어. 명색이 전직 총리 장손인데, 이름만 그럴싸한 외국기업 돌아봤자 뭐해? 결국 월급쟁이 아닌가? 그런데 자네는 앞으로 국가적으로 종횡무진할 인재니까······.”

그의 말이 변명처럼 늘어졌다.

나를 설득하려는 것 같은데,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법무법인 손문이나 대화투자자문, 윤수혁재단도 아닌 나보고 고용주를 하라는 말에 약간 당황했었다.

더구나 전직 총리가 이렇게 갑자기 제안한 것도 그렇고.

그러나 짤막한 고민 끝에 감정을 추스르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길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단번에 대답하자, 선대위원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맙네, 고마워.”

사람 쓸 곳이야 차고 넘쳤다.

더욱이 선대위원장의 부탁이 아닌가?

물론 그가 지체 높은 양반이라 말을 들어줘야 한다는 게 아니었다.

원활한 캠프 운영을 위해서 내민 손을 잡아준 것이었다.

어차피 그가 원한 건 나였다.

은퇴한 정치인이라도 이 바닥 소문은 뻔히 알 테니, 이렇게 접근해온 것이겠지.

몇 년 전에도 손기택 지검장이 딸 운운한 거 생각해보면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그가 고른 어휘가 난해했고, 상황이 갑작스러워서 그랬을 뿐.

나는 선대위원장 행렬을 배웅하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이제부터 물밑이 아니라, 공식출범한 47명의 선거캠프를 본격적으로 진두지휘해야 했다.

* * *

5월 초.

캠프 안은 혼잡했다.

대부분의 경선 후보자들이 출마를 선언한 것과 별개로 각종 책과 인쇄물이 테이블마다 한 뼘씩은 쌓여 있었다.

지역구별, 성별, 연령별로 이뤄진 교육감 선거, 총선거, 지방선거 투표 결과와 후보자별 공약 등에 대한 분석 결과였다.

이는 조금이라도 유권자의 성향을 이해하고 공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대선 투표수를 한 표라도 더 갖기 위해서였다.

물론 17대 대선처럼 강력한 후보가 등장하면 이런 노력이 헛수고가 되겠지만, 지금 그만큼 강력한 후보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희망민주당의 황택근 정도.

그러나 그도 유력하진 못했다.

이민수 정부의 집권 기간 내내 국민 다수의 호감을 산 건 행복한국당이었고, 조성현이었다.

총선 결과가 그 증거였다.

그랬기에 양강구도(兩强構圖)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조성현이 황택근을 앞서고 있었다.

6월에 경선 과정이 남아 있긴 했지만, 윤수혁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전당대회를 주물러 봤던 전력이 있었고, 후보도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선 경선룰도 유리했다.

대의원과 책임당원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과 여론조사 결과도 절반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정확히는 선거인단 숫자가 19대 총선 유권자 수의 0.5%인 20만 1320명으로, 그 중 대의원과 책임당원,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로 나뉜 구성 비율이 각각 2:3:3:2였다.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라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다른 데서 언급한 것이었다.

한국행복당의 후보자들은 출마 선언에 의의를 둘 뿐.

또한 대선 당선 가능성도 없었고, 정당을 잡고 있는 것도 윤수혁이니 조용히 있었다.

시끄러운 건 원내 제2정당인 희망민주당이었다.

그랬기에 8층의 캠프 사무실에는 별 다른 잡음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일이 힘든 투정 정도.

그러나 옥상으로 불려간 윤수혁의 미간이 급하게 구겨지고 말았다. 평소보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디서 나온 얘깁니까?”

윤수혁의 차가운 물음에 맞은편에 선 미디어홍보본부장 조양준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윤수혁 5천만 원 주고 청년부위원장으로 정계 입문···]

찌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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