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8월 중순.
[3당 이견 차에도 오성 특검법 발의 최종 합의(종합)]
[오성그룹, 3당 특검법 합의에 들썩···미래전략실 해체? 지배구조 개편안 솔솔]
[오성그룹, 근로특위에 이어 오성일반노조와 접촉 중···특검법 발의에 무노조 대표기업 탈바꿈하나?]
오성그룹 부회장실.
두 달 전에 나온 88인치 벽걸이 LED TV에 요약된 언론보도가 나왔다.
곁에 있던 미래전략실 직원이 동시에 브리핑을 했다.
언론배포 자료와 여론 반응, 업계의 입장 등등이 그의 입에서 나왔고, 화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그룹 운영 방안.
언론에서 의뭉스럽게 언급된 미래전략실 해체와 지배구조 개편, 노조 관련 정책들이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뒤, 브리핑을 마친 직원이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동안 적막이 내려앉았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룹 운영 방안으로 브리핑이 끝났으나, 시발점은 오성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뜬금없는 재벌 공격에 이어서 오성 특검법까지 발의된 상황.
모든 게 나빴다.
청와대는 조기 레임덕을 앓았고, 대선 민심을 의식한 국회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계는 오히려 윤수혁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윤수혁은 사람과 단체까지 휘어잡고 있었고, 자비를 들여서 국회에 마수를 끼치고 있었다.
거기에 여론전하기 좋은 이미지까지 갖고 있었다.
헌정사상에 없던 국회의원.
그렇다고 오성도 힘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검찰과 판사를 움직이고, 최후의 수단에 대통령을 이용할 순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
결코 보기 좋고,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가장 좋은 건 특검법 발의 무산이었으나, 그건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특검법을 발의한 사람이 윤수혁이었고, 윤수혁은 과반석을 차지한 행복당의 주인으로 불리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타 정당의 대선주자들조차 의석이 모자라서 말도 함부로 못하는 위치.
쓴소리 하는 건 카메라 앞에서 한정됐다.
뒤에서까지 꾸지람을 했다가는 진짜 정치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정당 정치라곤 해도, 의석으로 하는 정치에 가까운 게 현실인 탓이었다.
행복한국당 앞에서 나머지는 약소 정당에 불과했다.
오성도 마찬가지였다.
법안 개정과 발의, 지역구 관리, 국정 감사 권한은 기업 괴롭히기에 특화된 것이었다.
그랬기에 기업이 대관팀을 돌렸고, 조직적인 스폰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었다.
기업까지 규제하는 건 결국 정치였으니까.
이진철은 길어지는 생각에 헛기침을 하고, 테이블에 앉은 임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제 변화에 적응해야 할 때입니다. 정치권이 움직인 것과 별개로, 그룹형 기업체 운영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미전실 해체도 그 일환이고, 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인 말이었다.
미전실 해체는 특검의 조사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도였고, 이미 각종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특검과 상관없는 노조도 마찬가지.
임원들은 노조 설립이 정계의 요구라고 짐작하고만 있을 뿐, 따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이진철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여러분들은 미전실 해체와 동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특검 조사 기간 동안 쉬고들 계세요. 다시 불러오겠습니다.”
“네, 부회장님.”
임원들이 일시에 대답했다.
그들이 바로 미래전략실의 구성원들이었다.
전략1, 2, 3팀, 경영진단팀, 커뮤니케이션팀 등등 각 팀의 팀장들.
말이 팀장이지, 모두가 평균 연령 50대 이상의 전무이사급 임원들이었다.
반평생 회사를 위해 살아왔기에, 그리고 미래전략실 해체부터 특검 조사, 사후 복귀까지 직접 준비했기에 그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잘 알았다.
미래전략실은 또 부활할 예정이었다.
비교적 근래인 2008년 7월에도 오성 비자금 특검을 계기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됐었으나, 2010년 11월 미래전략실로 부활했었다.
오래된 과거부터 반복되어 온 역사였다.
회장 비서실이 수십 년 뒤 몇 개의 팀으로 나뉘었고, 이후 구조조정본부가 됐다가 전략기획실로 바뀌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 미래전략실이 됐었다.
지금은 해체될지언정, 총수와 계열사의 간극을 메울 미래전략실 같은 부서는 또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지주를 대리해서 소작농을 다룰 마름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이진철이 미래전략실의 팀장들을 바라봤다.
“노조는 계열사들 별로 준비들 됐습니까?”
경영지원팀장이 얼른 입을 열었다.
“예, 전 계열사 노조 설립 준비 완료했습니다.”
사측 인원을 요직에 앉혀서 형식적인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일이었다.
빨간 조끼를 입고 확성기를 들고 있는, 오성생명 사옥 앞의 오성일반노조와는 동 떨어진 노조였다.
한마디로 보여주기식 가짜 노조.
오성일반노조와의 접촉도 언론 보도를 위한 단순 대면일 뿐, 의미는 없었다.
“계획 진행하세요. 담당 언론사주들한테 고지 사항 잘 알리시고.”
딱딱한 이진철의 지시에 임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임원들의 대답이 단단했다.
이로써 오성그룹은 닥쳐오는 풍랑도 결국 뚫고 지나가게 될 것이었다.
* * *
오성그룹과 관련된 기사가 특종처럼 터져 나온 다음이었다.
논란이 될 틈도 없이 다른 것들이 지면을 채우고, 방송사 채널을 채웠다.
[새정치당 21명, 신민주당에 입당]
[새정치당 反통합파 7명 잔류···교섭단체 지위 상실]
[신민주당 새정치당 21명 합류로 의석 108석 달성···새정치당 합류 인원과 9월 초 전당대회 개최 예정]
정치면뿐만 아니라, 종합면의 헤드라인도 새정치당 의원 21명의 입당으로 가득 했다.
전당대회도 질질 끌더니, 같이 하기로 얘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아마 오성에서 스폰을 해줬을 터.
그런데도 7명이나 여당으로 남고자 하고 있었다.
당대표란 사람은 정당 의원들 1/4을 포기했고, 망한 진성애국당보다 적은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어쨌든 새정치당도 끝났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과 정당의 말로다웠다.
대통령은 임기가 1년 반이 남아 있긴 했으나, 내가 봤을 때는 이미 끝을 걷고 있었다.
개각(改閣)이 그 증거였다.
이번에 여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것을 구실로 삼은 것이었다.
이로서 올해 들어 개각만 세 번째였다.
벌써 공신들을 위한 자리 만들어주기가 시작됐다는 뜻.
장차관뿐만 아니라, 개각을 핑계로 행정부 고위공무원들과 법조계, 검경까지 전부 손대고 있었다.
이미 손 지검장도 타격을 받았다.
그에게 전화가 왔었다.
- 의원님, 비정기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여태 들었던 것 중에 가장 무겁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장 의원 때문에 고난을 겪을 때도 이렇진 않았었다.
아니, 애초에 손 지검장은 변호사보다 못한 수입에 답답한 공무원 생활, 과도한 업무와 정치질에 목매던 삶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던가?
-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급기야 나를 철썩 같이 믿던 그가 앞으로의 일까지 묻고 있었다.
좌천이 그만큼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애초에 검찰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최소 20%가 그 과정에서 사표를 내고 일을 그만뒀었다.
후배가 치고 올라가고, 외딴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탓이었다.
명예를 먹고 사는 이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부에서도 기존의 고위직이 그만두길 바랐다.
새 술을 새 푸대에 채우듯, 인사발령에서 기존 고위직을 털어내고 자신의 사람들을 메워 넣는 것이었다.
심지어 법무연수원장도 손 지검장의 후배였다.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해도, 당장 느끼는 자괴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법무연수원은 검사의 무덤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출세도, 승진도 끝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조금 거칠게 불렀다.
“손기택 씨.”
- ······네, 의원님.
여전히 기운 빠진 목소리.
“1년 반만 기다리세요. 화려하게 복귀시켜드리겠습니다. 아니, 새 정부 들어서면 가장 먼저 검찰총장에 임명될 겁니다.”
구체적인 말에 그제야 손 지검장이 수긍하듯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의원님.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사실 내 정당과 국회를 움직여서 검찰 인선에 개입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도 자체가 과했다.
국회 안에서만 힘을 쓰는 게 아니라, 행정부까지 간섭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트집 잡힐 수도 있을 터.
그래선 좋을 게 없었다. 어떻게 만든 이미지던가?
검찰 인사 문제 따위로 무너질 순 없었다.
최대한 담백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힘을 쌓아야 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이 안에서.
* * *
2016년 9월.
국회가 국정감사를 앞둔 때였다.
신민주당이 당명을 희망민주당으로 바꾸며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고, 전당대회로 이목을 끌기 위해 전국을 순례했다.
바쁜 국회 업무에도 불구하고 108명의 의원들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언론의 이목을 끌진 못했다.
전당대회는 일종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는, 국민들에게는 이미 익숙하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당헌당규에 맞게 2년에 한 번 개최해야 했으나, 선거 실패, 각종 논란 따위로 지도부가 사퇴하고 전당대회가 매년마다 열려서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종종 합의 추대로 지도부가 선출되긴 했으나, 극소수에 불과했고.
반면에 지면과 TV는 다른 얘기로 가득했다.
바로 행복한국당.
그것도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의 활동으로 떠들썩한 것이었다.
- 오늘 오전, 행복당 근로특위가 대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마감장 조작, 위탁 수수료 가로채기 등의 불공정행위를 자체 조사하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대양유업 측은······.
- 대양유업 갑질 고발은 치바그룹 비리사태와 오성그룹 특검법 발의에 이어 벌써 세 번째인데요, 정치권 일부에서는 행복당이 대선 표심을 의식해서 기존 보수 정당이미지를 탈피한다는 분석을······.
- 근로특위에게 고발당한 대양유업은 작년에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최종 과징금 5억 원을 선고 받은 이력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법원과 공정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오성그룹을 검찰에 넘긴 이후, 행복한국당 근로특위가 또 다시 칼질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대양유업.
2013년에 대양유업 사태로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나, 커피믹스업계 2위, 우유업계 3위, 분유업계 4위로 자리 매김한 대기업이었다.
치바나 오성과 비교하면 기업 규모면에서 약소했으나, 시가총액 5,000억이 넘는 대기업이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오성을 끝으로 재벌 때리기를 멈출 줄 알았던 행복당이 연이어 대기업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 오너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치바그룹과 오성그룹, 특검법이 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이 움직였다.
동시에 미래자동차 대관담당 박경익 부사장이 펄쩍 뛰었다.
국회 대관팀에게 들려온 소식 때문이었다.
“미래자동차 맞어? 확실해?”
- 네, 818호 의원실에서 나온 얘깁니다. 통신사 그룹 자료도 모으고 있긴 한데, 비율로 봐서는 미래자동차 언급이 가장 많았습니다.
“니이미! 끊어!”
박경익이 고함을 치고 스마트폰을 내던졌다.
그가 머리를 굴렸으나, 당장에 떠오르는 대처 방안은 없었다.
청와대도, 언론도 마뜩찮았다.
오성그룹이 특검에 한 발 양보한 뒤, 대통령과 만찬을 갖던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조용했다.
한마디로 각개전투라는 뜻.
애초에 경쟁 구도에 있는 기업간에 뭉치고 협력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통신사 대기업과 몇 번이라도 언급된 각 분야별 대기업들도 급하게 대관팀을 운영했다.
그리고 얼마 뒤.
기업마다 임원들이 새로이 보고 받았다.
“뭐? 재단을 만들어?”
“참나, 이거였어? 재단에 돈 대라는 뜻이네?!”
“어떻게 돈 벌었나 했더니, 이딴 식으로 했구만? 가서 재단 설립 행사 알아보고 후원비용 확보해서 품의 올려라.”
대기업 임원들이 짜증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