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간담회 끝났습니다!”
행복한국당 당직자의 말에 흐트러져 있던 기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카메라!”
“야! 사다리 가져와!”
기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들었고, 당직자의 요청에 따라 포토라인을 만들었다.
기자들이 일부 빠져 나갔지만, 여전히 백 명이 넘었다.
“오늘 따라 시간 무지하게 끄네.”
기자들이 피곤한 기색으로 구시렁대면서도 카메라를 조정했다.
7시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당사에 도착해서 카메라 세팅하고 준비한 기자들은 거의 10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도착음이 울린 뒤.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윤수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바바바밧-
플래시가 총탄 쏟아지듯 터졌고, 보고문을 든 윤수혁의 좌우와 뒤로 위원들이 나란히 도열했다.
대표 기자의 마이크 뭉치가 다가오자, 윤수혁이 발표를 시작했다.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성그룹과 취업, 임금, 근로 환경 등에 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노조 설립, 근무 투명성 강화, 내부 고발자 차별 금지 등의 대한 이견 차이로 합의점을 찾진 못했습니다.”
카메라 셔터가 바쁘게 터졌다.
“결과적으로 무산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오성그룹이 근로특위와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한 점, 차후 개선의 의지를 보인 점에 대해서는······.”
윤수혁의 담담한 발표가 이어지는 사이.
오성그룹 일행은 행복한국당 당사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사장단과 수행원, 경호원들이 모두 차에 오르고, 경영지원실장 장신원도 뒷좌석에 앉아서 한숨을 뱉었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부회장인 이진철을 비품실에 들어가게 한 탓이었다.
그 비좁은 곳에서의 독대라니.
상상하던 장신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구나 대화도 잘 풀리지 않은 것인지 이진철이 붉어진 얼굴로 비품실을 나왔고, 회의는 이후로 여섯 시간 내내 지지부진하게 흘러갔었다.
물밑에서 얘기된 게 있다면 나와야 할 얘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장신원이 짜증을 삼키는 사이.
조수석에서 스마트폰이 슬그머니 건네졌다.
“전화 왔습니다, 실장님.”
장신원이 전화를 받아들고서 무슨 일이냐고 한 마디 뱉은 다음.
장신원의 언성이 급작스레 높아졌다.
“무슨 소리야?! 경찰서를 가다니?”
- 보좌관한테 붙었던 직원입니다. 김성호라고······.
“지금 그거 묻는 게 아니잖아!”
- 죄송합니다, 실장님.
“보고나 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2팀이 따라 붙었는데, 경호 업체에서 채증을 했던 것으로 파악 됩니다. 이틀 동안 따라 붙었던 차량 넘버하고 직원 몽타주까지 전부 경찰로 넘어갔고, 주택가에 있던 직원은 현행범으로······.
“이런 씨팔!”
- ······.
직원이 아무 말도 못했고, 장신원은 구긴 얼굴을 쓸어 내렸다.
잠깐의 침묵 뒤.
장신원이 화를 참으며 다시 목소리를 냈다.
사태 수습은 해야 했다.
“후······, 그래서?”
- 아, 네. 지금은 경찰 쪽 입막음 하고 조사실 따로 배정 받았습니다. 현재는 법정 구금 시간 이전에 나올 수 있도록 합의 중이고······.
장신원의 얼굴이 있는 데로 구겨졌다.
입막음에도 한계가 있었다.
언론 같은 공론화만 막는 것이지, 검경이나 청와대 같은 라인으로 이 소식이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작은 약점 정도는 될 터.
무엇보다도 직접 채증한 경호 업체는 또 뭔가?
장신원이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채증한 경호 업체는 어디야?”
- 무궁입니다. 윤수혁 의원이 고용주로 있는······
“니기미, 또 윤수혁이야?”
- 네?
“됐고, 가서 마무리하고 현행범으로 잡혔다는 놈 잘라버려.”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장신원이 한숨을 뱉었다.
다른 수를 내야 했다.
간담회는 무산됐고, 비품실에서 독대한 불쾌한 이진철의 마음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었다.
* * *
왜 오성 공화국인지 알만했다.
증거와 함께 잡혀간 현행범이 고작 하루 만에 풀려났다.
강력범도 아니고 경찰을 압박하지 않고 놔뒀으니 그럴 만했지만, 쉽게 풀려나리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피해자가 내 보좌진이었다.
그것도 박 보좌관.
국회에서도 웬만한 초재선 의원도 한 수 접는 게 박 보좌관이었다.
내 오른팔로 소문이 자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행에 감시라니?
직접적인 해를 가한 건 아니지만, 건드렸다는 게 썩 불쾌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질 못했다.
현행범이 풀려나는 동시에 인터넷에 검색어 하나가 올라온 것이었다.
[검색어 순위 1 김세은]
김세은은 근로특위의 위원 중 한 명이었다.
종합편성 채널의 패널인, 박사 출신의 30대 중반 여성.
김세은 위원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전에 간혹 인터넷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없는 걸로 알았다.
인지도가 있긴 해도 결국 일반인 패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뉴스면을 보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근로특위 김세은, 바람펴서 이혼했었다!]
[외도로 이혼한 김세은 충격 과거···행복당의 입장은?]
[김세은 전남편 불륜으로 인한 이혼 언급···근로특위 행보는 어디로?]
저급 찌라시나 다름없는 인터넷 기사 제목이 판을 치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아는 일이었다.
소재지도 불분명한 인터넷 언론사들이 기사를 복제하는 과정이었다. 전생에 나도 직접 의뢰한 적이 있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검색 추이 그래프까지 확인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김 위원은 그 어떤 순위도 거치지 않고, 단번에 1위가 되어 있었다.
수백, 수천 위였던 그녀의 이름이 한 큐에 1위로 올라갔다는 뜻.
더 확실해졌다.
돈깨나 써야 하는 일이었다.
가짜 언론사를 비롯해서 포털사이트까지 작업해야 하니, 필히 기업체나 고위급 인물이 지시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나 중소형 업체는 거금을 들고 와도 받아주질 않았다.
내가 봤을 때는 오성 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의 붉어진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을 시킬 사람은 없었다.
뒤처리 해주는 비서실에서 움직였을 터.
마침 김세은에게 카톡까지 도착했다.
[검색어 때문에 놀라셨을까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 인터넷에 올라온 이혼 기사는 일부분 맞지만, 불륜이나 외도는 아니에요. 사적인 얘기라 말씀드리기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당시에 전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고 서로 합의해서 이혼을······.]
고해성사 같은 장문의 카톡이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제가 아는 기자 보낼 테니 거기하고 인터뷰하세요. 걸려오는 전화에 대응할 생각 말고, 평소처럼 업무 보시고요.]
[정말 감사해요, 의원님.]
나보다 서너 살 연상인 김 위원이 마치 은인 대하듯 채팅을 해왔다.
그녀 말고도 다른 열한 명의 위원들 대부분이 그랬다.
치바그룹 비리사태 이후부턴가?
호텔과 경호원 제공은 물론이고, 정보까지 끌어오자 위원들이 알아서 기는 것이었다.
나한테는 잘된 일이었다.
그들 모두가 국회나 청와대로 데려갈 만한 인재들이기 때문이었다.
인지도와 실력이 있어서 정치인으로 쓰기 적절했다.
대표적으로 김 위원.
30대라는 나이와 여성이라는 조건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쓸 만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들 챙기려고 했는데, 이런 사달이 난 것이었다.
기자에게 연락하고, 박 보좌관에게도 언질을 주는데 헛웃음이 났다.
오성그룹의 심보가 보였다.
한 번 찔러보고 안 되니, 아예 걷어차겠다는 것 아닌가?
치바그룹 비리사태처럼 업적이나 쌓는 건 물 건너갈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푸닥거리 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사실 협상도 있고, 합의를 봐도 되겠지만 맞아야 할 놈이 대드는 꼴을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내 관용은 아랫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었다.
덤비는 놈한테는 응징의 대가를 안겨줘야만 했다.
사람을 붙였다가 경찰서에 잡혀가거나,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조작하는 저급한 짓 대신에 국회의원답게 품위유지하면서, 있어 보이게 보복할 것이었다.
명색이 원내 제1당의 최고위원이 아닌가?
* * *
8월 초순.
집무실에 있던 오성그룹 경영지원실장 장신원이 펄떡 일어났다.
그의 손에 사무실 수화기가 들려 있었다.
“똑바로 보고해!”
- 현재까지는 물산 건설부문의 재하청 과정과 토목사업 자금내역, 오성모직과 물산의 합병 과정까지 수사 요청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장신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합병 과정? 구체적으로 뭘 수사 요청했다는 거야?”
다른 사장들과 함께 모직과 물산의 합병을 준비하고 공모했던 게 장신원이었다.
직접 국민연금 책임자와 실무 협상을 했었고, 이진철 부회장이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게 다리를 놓기도 했었다.
이후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고, 물산 지분을 고스란히 흡수하는데 성공했었다.
그 과정에서 날린 국가 재산과 오성그룹이 소모한 돈이 무려 천억을 넘었다.
동원한 차명 계좌도 최소 수백 개가 넘었다.
이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에서 차명계좌의 숫자와 천억이라는 금액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 국민적 이슈가 될 게 뻔했다.
이전에 국회의원이 터뜨렸던 100억대 논란에도 검찰이 재빠르게 움직였던 걸 생각하면, 1,000억대는 더할 게 분명했다.
검찰에 오성의 장학생이 있다 한들 일부에 불과했다.
어느새 그의 부하가 대답을 이었다.
- 현재 일선 보고만 받은 사항으로 긴박하다고 판단되어 직보했습니다, 실장님.
“구체적 내용은 모른다, 이거야?”
- 네, 실장님.
“한 시간 내로 알아와.”
- 저, 이건 행복당에서도 지켜보는 사안이라, 시간이······.
부하의 대답에 장신원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룹 지분과 관련된 문제고, 국민연금이라는 기관이 연루되었기에 잘못하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도 있었다.
주춤해선 안 되고,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장신원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서 한 시간 줬잖아! 검사장 서랍장을 뒤지던, 불을 지르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이 새끼야!”
- ······.
“대답 안 하지?”
- ······알겠습니다.
부하의 뒤늦은 대답에 장신원이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너 대관팀 새끼들 잘린 거 몰라? 정신 차리고 움직여. 설렁설렁하다가 그 놈들 꼬라지 난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하와 통화를 마친 뒤, 그의 개인 스마트폰이 바쁘게 울렸다.
장신원이 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알고 지내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다.
진성애국당의 재선 의원.
지금은 교섭단체 지위도 잃고, 힘도 다 빠져서 별 볼일 없는 무소속과 다름없는 이였고, 최근에 연락했을 때도 앓는 소리만 했었다.
윤수혁 말만 꺼냈는데도 진저리를 쳤었고.
통화를 무시하려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신원이 통화를 수락했다.
“네, 의원님. 어쩐 일이십니까?”
-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 했소.
의원이 평소와 다르게 안부도 묻지 않고, 본론부터 꺼내고 있었다.
방금 전의 통화를 떠올린 장신원은 모른 척 대꾸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 그게, 특검 얘기가 나오는데······.
“네?”
난데없는 단어에 장신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검이라니?
검찰 수사 요청에 비하면 커도 너무 큰 문제였다.
- 아니, 확실하다는 게 아니고······. 행복당에서 은근히 나온 얘기요. 압박용으로 쓰려는 것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욘 없고. 나도 그냥 넘어가려다가 윤수혁이 하는 짓이 영 찜찜해서 말해주는 거요.
“아······, 아, 네.”
장신원이 당황함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특검이 과연 단순 압박용일까?
약 10년 전에 비자금 문제로 국회 본회의에서 오성 특검법이 통과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오성에 재직했기에, 장신원은 특검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잘 알았다.
단순 압박용 치고는 묵직한 한 방이었다.
‘이거 느낌이 쎄한데······.’
통화를 마친 장신원이 애꿎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