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66화 (166/191)

# 166

[수신 : 행복한국당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

[참조 : 국회 의원회관 818호]

[제목 :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 관련 간담회 요청]

오성에서 보내온 공문이었다.

파란 로고가 눈에 띄는 가운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형식적인 말에 웃음이 났다.

같잖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여태 보좌진이나 개인 연락처를 통해 오성에서 만남을 요구했었다.

그것도 직접해온 게 아니었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 그것도 내가 조금이라도 봐줄만한 사람을 통해서 연락해 왔었다.

치바그룹 비리사태 이후보다 더 많이 왔었다.

괜히 오성 공화국이 아니구나 싶었고, 그래서 작정하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치바그룹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해왔던 웬만한 불공정 행위는 물론이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뇌물공여 따위로 엮으려고 했었다.

자료 조사도 쉬웠다.

오성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언론과 검찰에 끈이 있으니까.

물론 정치권력이라는, 재질이 좀 다른 줄이긴 했지만, 나는 더 중요한 것도 갖고 있었다.

전생.

그런 점에서 내부 기밀이 아닌 이상 웬만한 건 넝쿨째로 내 손에 굴러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쓸데없는 영역을 배제하고, 필요한 분기별 계좌나 관련 사업, 인물만 조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걸 이제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오성에게 공문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정치인들이 좋아 할 만한 대기업과의 간담회라는 카드였다.

그래선지 전화며 문자, 카톡이 슬슬 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건 근로특위 단체 카톡 채팅창이었다.

[다들 오성 간담회 요청 보셨습니까? 이거 협상 요청 같은데요.]

[벌써 입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이번에 제대로 된 성과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다른 대기업도 움직일 거고요.]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만나서 협상해봤자 국민들은 똑같은 놈들이라고 손가락질 할 겁니다. 오성도 입막음 하려고 간담회 연 거 아닙니까?]

알아서 찬반이 갈렸지만, 나는 뭘 고를 생각이 없었다.

내게 오성은 의도치 않게 척결해야 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물론 사업적이고 정치적인 도구로서의 기능도 차고 넘치지만.

어쨌든 당장 협상을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우선은 어디까지 써먹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했다.

정치적 판단보다는 전문가들이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실리를 계산하는 게 먼저였다.

곧장 인터폰을 눌렀다.

“근로특위 위원들, 소집가능한 사람만 여의도로 바로 오라고 하세요. 오성 간담회 공문 첨부하고요.”

- 알겠습니다.

* * *

행복한국당 당사 로비.

백 명이 넘는 기자들이 안을 가득 채웠다.

당사 정문부터 로비까지는 움직일 수 있는 길만 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반원으로 공간이 남아 있었다.

“좀 옆으로 갑시다.”

“아, 진짜. 그럼 일찍 오셨어야죠.”

늦게 온 기자들이 자리 경쟁에 어깨 싸움 중이었고, 사다리와 의자 따위를 밟고 올라선 기자들이 큼직한 방송용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중.

“어, 온다!”

한 기자의 말과 동시에 기자들이 정문을 쳐다봤다.

오성그룹의 부회장, 이진철이 들어서고 있었다.

회장이 와병 중이므로 그가 경영권을 쥔 최고 대표였다.

찰칵- 찰칵- 찰칵-

기다렸다는 듯 셔터 눌리는 소리가 내부를 채웠고, 갖은 렌즈들이 들어오는 이진철을 향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달한 이진철이 백 명이 넘는 기자들을 바라봤다.

대표 기자 한 명이 방송사 구분 없이 한 뭉치로 묶은 마이크를 내밀자, 이진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근로특위와의 간담회에서 좋은 결과가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짧은 한 문장.

가볍게 묵례한 이진철이 몸을 돌리자, 놀란 기자들이 소리쳤다.

“질문 하나만 받으세요!”

“부회장님! 질문 좀······!”

“간담회를 먼저 요청한 이유가······, 부회장님!”

이진철이 사장단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자, 기자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 이럴 줄 알았다.”

기자들이 짜증을 내긴 했지만, 분노를 터뜨리진 않았다.

그들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오성그룹의 부회장인 이진철이 순순히 인터뷰를 하고 질문을 받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애초에 오성그룹이 그랬다.

고위 인사의 요청에도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인다 한들 기자들에게는 정해진 것 외의 대답은 하질 않았었다.

웬만한 언론사의 광고주였으니까.

이후 당직자가 나와서 기자들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간담회 결과는 직후에 근로특위원장인 윤수혁이 직접 브리핑한다고.

당사 6층의 제2회의실.

오성그룹의 부회장 이진철과 함께 사장단이 등장하자, 미리 자리해 있던 근로특위 위원과 윤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꾸벅 고개 숙이며 악수를 나눴던 이진철이 자리를 보곤 멈칫했다.

흡사 청문회장과 비슷한 구도였다.

근로특위가 ‘ㄷ’자로 감싸고, 남은 한 줄에 이진철을 비롯한 사장단이 앉는 구조.

이진철이 불쾌함을 참으며 자리로 이동했다.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의석을 정돈해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근로환경개선특별위원회의 오성그룹 간담회를 개회하겠습니다.”

땅- 땅- 땅-

세 번의 타봉과 함께 간담회가 시작됐다.

* * *

당연하게도 회의는 지지부진했다.

근로특위에서 근로 환경의 투명성을 요구하면, 오성그룹에서는 경영 기밀을 이유로 내세웠다.

계약직의 퇴직금 절약을 위해 364일 근무 후 해고시키는 편법도 준법이라고 하니, 말이 통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한 시간 즈음 평행선을 달린 뒤.

박 보좌관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오성 측에서 좀 쉬고 싶답니다. 한 30분 정도만 시간을 내달라는데요.”

오성그룹의 수행원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그 말을 전하려던 모양이었다.

이진철을 보니, 무표정한 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 시간 회의하고, 30분의 시간을 내달라는 건 밀담을 하자는 뜻이었다.

애초에 바라는 것도 나하고 직접 얘기하는 것일 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정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30분이나 필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내가 간담회를 가진 이유도 따로 있었고.

“······여기까지 하고, 10분 후에 다시 간담회를 개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내 말에 오성과 말싸움을 하던 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나갔다.

나도 대강 서류를 정리하고 일어나는데, 웬 사내가 다가왔다.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말씀을 못 붙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경영지원실장 장신원입니다.”

말이 실장이지, 사장급이었다.

전생에 중앙당에서 실장 노릇하던 것과는 격이 달랐다.

이 부회장과 동행했으니 실권도 제법 있을 터.

“예, 윤수혁입니다.”

정중하게 악수를 받자, 그가 좀 더 저음으로,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부회장님께서 따로 말씀 좀 나누고 싶어 하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쉬는 시간 짧은데, 괜찮으시죠?”

“아아, 네.”

“그럼 자리를 아예 옮기기는 좀 그렇고, 옆에 저 방에서 말씀 나누시죠.”

“어느 방을······?”

그가 못 찾는 듯 하기에 회의실 옆에 난 쪽문을 가리켰다.

“저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하고 먼저 이동하시죠.”

방으로 같이 들어가자, 장실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작 3평 남짓한 비품실이었다.

소형 냉장고와 싱크대, 커피포트와 믹스커피, 녹차티백 등이 구비되어 있고, 벽 한 쪽은 잡다한 용품으로 가득 찬 곳.

“저, 죄송하지만 위원장님. 여긴 앉을 곳도 없고······.”

그가 당황해했다.

하긴 대기업 부회장님이 이런 곳을 와본 적이나 있을까?

그러나 편히 앉아서 티타임이나 즐길 생각은 없었다.

“쉬는 시간도 이제 7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따로 응접실 들어가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시간이야 지연하면 되고······.”

“저 시간 어기는 거 안 좋아합니다. 행복당에 지각하면 일 난다는 소문 파다한데, 모르세요?”

“그래도······.”

장 실장이 변명을 잇던 사이.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벌써 오셨네요.”

“부, 부회장님.”

문 앞에 선 이 부회장을 보고 장 실장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새 이 부회장이 무표정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습니다, 나가 계세요.”

장 실장이 급하게 고개 숙인 뒤 비품실을 나갔고, 이 부회장이 나를 바라봤다.

“처음 뵙습니다, 위원장님. 따로 연락을 많이 드렸는데, 그동안 전부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전에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요.”

“······?”

이 부회장이 의아하게 바라 보길래, 내 카시오 손목시계를 톡톡 쳤다.

“쉬는 시간 6분 남았습니다. 용건만, 되도록 빨리 말씀을 해주셔야 돼요.”

“위원장님, 그럼 오늘 일 마치고 따로 뵙는 게······.”

“그러기엔 너무 바빠서요.”

“······.”

나를 차갑게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저희 쪽에서 준비한 게 있는데 확인해주십시오. 대선도 앞두셨으니, 성과용으로 괜찮을 겁니다.”

그가 품에서 편지처럼 접힌 서류를 꺼냈다.

펼치자마자 아, 소리가 절로 났다.

[오성전자 대학생 인턴 추가 모집의 건]

[오성물산 건설부문 채용설명회]

[오성화재 행복일꾼 프로젝트]

한마디로 취업 인원 늘리겠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대선 이목 끌기로도, 성과용으로도 괜찮은 카드였다.

원래 대기업과 취업이라는 단어의 조합 자체가 시너지 효과가 좋기도 했고.

어느새 이 부회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체적인 계획은 마무리 중이지만, 취업 인원은 대동소이할 겁니다. 일주일 뒤부터 발표도 가능합니다.”

나는 종이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그냥 하시면 되겠는데요?”

“네?”

“그냥 하시면 되지, 왜 저한테 보여주시는데요?”

무표정 했던 그가 눈썹을 꿈틀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근로특위 위원들과 저희 오성이 함께 팀을 구성해서 고용 불안을 해결하고, 앞으로의 근로 환경 개선까지······.”

쉽게 말해 함께하자는 말이었다.

치바그룹 비리 사태처럼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뜻이기도 했고.

“여태 논의 중에 합의한 거 하나도 없는 건 아시죠?”

“하지만 본질적으로 취업이 해결 되면······.”

생각보다 저 자세에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보니까 계획하지 않은 추가 고용 같은데, 사측 손해 아닌가요?”

“근로특위의 활약에 십분 공감해서······.”

“독대할 기회가 더 없을 거 같아서 여쭤보는 겁니다. 부회장님도 지금 말씀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사람 통해서 이런 얘기하긴 그렇잖아요?”

“······.”

내 말에 이 부회장이 전처럼 입을 닫고 있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겠다고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뭘요?”

“근로특위 막겠다는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수월했었다.

치바그룹을 표적 삼아서 난리를 쳤는데도, 나를 제재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돌아보니 모든 게 보였다.

내 위치가 벌써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눈앞의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에서 이 사람과 독대할만한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전생에는 김정환 대통령이랑 마주했고, 국감과 공판에서 안가에서 독대했음을 시인했었다.

슬슬 웃음이 날 뻔 했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게 새삼 감격스럽기도 했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올라온 게 웃기기도 해서.

“위원장님? 그럼 합동팀 창설과 오늘 논의 결과 발표는······.”

이 부회장이 어느새 말을 잇기에 고개를 저었다.

“부회장님이 선택하시면 됩니다.”

“······?”

“첫째, 한 시간 만에 간담회 파행. 둘째, 장시간 논의 끝에 의견 불일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 중에 하나 고르시라고요. 2분 남았습니다.”

애초에 밀담이니 뭐니 할 생각이 없었다.

이 부회장이 내민 취업 협상에 응해봤자, 결국 대기업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만 갖게 될 게 뻔했다.

언론이 아무리 좋게 써줘도 인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대기업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

그건 나 혼자 해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혼자는 혼자로 끝날 뿐이니까.

그래서 국회도, 행복당도 나를 마스코트로 삼는 것이었다.

자신들 이미지가 개판임을 아니까.

그랬기에 내가 할 일은 간담회가 아니라 그 다음이었다.

바로 인터뷰.

아니,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이었다.

예컨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서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인 등등.

그런 수식어가 붙는 국회의원이 될 생각이었다.

캡틴코리아도 벌써 2년 전의 일.

학생 운동하던 과거를 훈장으로 삼는, 꼰대 같은 국회의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이 부회장에게 시계를 보여줬다.

“이제 1분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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